오월을 보낸 날
오월이 가는 마지막 날이다. 주말을 앞둔 금요일 오후 아동안전지킴이 봉사활동은 집합 교육으로 대체되었다. 아침부터 일찍 서둘러 근교로 나가는 등굣길 동선은 평소와 다르게 잡았다. 그간 틈을 자주 내지 못한 교육단지 도서관에서 오전을 보내고 오후에 교육 장소로 나갈 생각이다. 아침 식후 현관을 나서 아파트단지 뜰로 내려서니 간밤은 예보에 없던 비가 살짝 내린 듯했다.
이웃 동 언덕에 한 노인이 가꾸는 수국은 연일 새로운 꽃송이가 늘어 풍성해졌다. 건너편 뜰로 가니 꽃대감 친구와 밀양댁 안 씨 할머니는 꽃밭으로 내려와 있어 인사를 나누었다. 계절이 바뀌는 즈음에도 구역이 구분된 꽃밭에는 초여름에 피는 꽃들이 싱그럽고 화사했다. 재건축 얘기가 나도는 아파트단지인데도 정성 들여 꽃을 돌보는 이들 덕분에 다른 주민은 눈이 호강한다.
도서관으로 가려고 아파트단지를 벗어나 외동반림로를 따라 걸었다. 반송 소하천 냇바닥에는 흰뺨검둥오리 가족이 눈길을 끌었다. 텃새로 머물러 사는 흰뺨검둥오리는 금실이 좋아 뵈었는데 어미가 예닐곱 마리 오리 새끼를 데리고 먹이활동을 했다. 늦은 봄 어딘가 둥지를 틀어 알을 모아 품어 새끼를 쳤다. 수컷은 누룩뱀이나 길고양이의 접근을 막은 호위무사였는지 모를 일이다.
흰뺨검둥오리 가족을 피사체로 삼아 폰 카메라에 담아 원이대로를 건너 창원 레포츠파크 동문 앞을 지났다. 공사 기간이 꽤 걸리는 대상공원 정비 현장을 거쳐 폴리텍대학 구내를 통과해 교육단지 보도를 따라갔다. 초봄에 벚꽃이 화사했던 나무는 녹음을 드리웠다. 등굣길 학생들은 각자 제 학교 교문으로 들어서고 나는 창원도서관으로 향했는데 9시가 되지 않아 바깥에서 기다렸다.
낮의 시간이 길어진 때라 썸머타임 제도라도 시행되면 좋을 듯한데 나에게만 해당할 희망 사항이었다. 열람실로 올랐다가 입장 시각이 아니라는 직원의 얘기에 문밖으로 밀려나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현직 시절 새벽같이 일찍 출근하기는 예사였고, 어쩌다 일찍 등교한 학생이 있어도 교실 밖에서 기다리라고 하지 않았는데 공공도서관은 업무를 시작할 시각을 준수해야 했다.
교육단지 도서관 입구에 서성이다가 몇몇 지기에게 아침에 남겨둔 사진을 보내면서 안부를 전했다. 현관을 나선 아파트단지에 피는 수국을 비롯한 여러 가지 꽃이었다. 도심이 콘크리트 건물과 아스팔트 도로라고 하지만 내가 숨을 쉬는 공간에서 이만한 꽃을 볼 수 있음에 감사했다. 거기다가 생태하천으로 복원된 반송 소하천에는 흰뺨검둥오리가 새끼를 쳐 데리고 나오지 않는가.
업무가 개시된 시각에 맞추어 열람실로 올라 지정석이 되다시피 한 창가 자리를 차지했다. 집에서 못다 읽은 ‘유학 오천 년’ 시리즈 4권과 5권을 완독하고 대출 불가 도서였던 ‘식량위기 대한민국’과 ‘히말라야, 내 삶에 꽃을 피우다’는 대략만 훑고 책 수레에 두었다. 지난번 집으로 가져갔던 책은 반납처리하고 본관에 해당하는 꿈담으로 건너가 소설 ‘목숨’ 1,2,3권을 다시 빌렸다.
어린이실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춤을 추어 보모들과 찾아온 꼬마들에게 인기가 있었다. 다른 공간에서는 교양 강좌 노래 교실에는 다수의 아주머니급 할머니와 사내들도 몇 보였다. 오후 교육 시간에 맞추려고 향토 사단이 떠난 식당가로 가서 점심을 때우고 경찰서 강당으로 갔다. 다른 지구대에서 근무하는 안전지킴이 동료들과 규정에 정한 성희롱 예방 교육과 전달 업무가 있었다.
현장 순찰 대신 실내 연수로 대체한 근무를 마치고 동료들과 때가 이른 식사 자리를 가졌다. 소답동 골목집에서 수구레국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 궁금해하던 점에 공약수를 찾았다. 동료 셋은 거주지가 대산면이고 내가 시내에 살아 자리를 주선했더니, 그 답례로 연장자인 시골 교회 목사는 찻집으로 옮겨가자고 청해 전망이 좋은 곳에서 커피 향을 음미하고 헤어졌다. 24.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