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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흔히 정통 교단이라 불리던 개신교 목사들은 비교적 공개적으로 정치 활동을 해 왔다. 전두환을 비롯하여 이명박과 박근혜, 윤석열에 이르기까지 감옥에 간 행정수반들은 모두 개신교에서 개최하는 조찬 기도회에 참석했다. 목사들은 강단에서 노골적으로 특정 이념이나 후보를 지지하거나, 교회가 집회의 거점이 되기도 했다.
반면 사이비 종교 집단은 보이지 않는 네트워크와 자산을 통해 은밀하게 정치권과 맞물린다. 통일교의 국제 네트워크, 언론과 기업, 신천지의 지역 조직력, 교육 프로그램 등이 그 역할을 한다. 전광훈이 사이비 교주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 부분이다. 대놓고 정치를 한다. 강단에서 갈고 닦은 ‘정서 고양 - 결단 촉구’의 기술을 곧장 광장으로 옮겼다. 이후 그에게 설교당과 도심 광장은 사실상 같은 장(場)이 되었다.
사랑제일교회 : 코로나와 알박기
전광훈이 목회를 하는 사랑제일교회는 서울 성북구 장위10구역 재개발과 장기간 충돌했다. 감정과 이권이 뒤얽힌 재개발 현장에서 교회는 겉으로는 ‘신앙의 터전을 지키겠다’고 주장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500억이라는 고액 보상 요구로 ‘알박기’라는 비판을 받았다. 불법 건축물 지정, 점거·충돌과 관련한 공방이 잇달았고, 지역 주민과의 갈등은 결국 교회 대 지역사회의 대치로 비화했다. 사랑제일교회는 이때부터 종교시설을 넘어 정치·사회 갈등의 상징 공간으로 서서히 변모했다.
화룡점정으로 전광훈을 전국구로 만들어준 건, 다름 아닌 코로나 바이러스였다. 2020년 코로나 국면에 전광훈은 전국적 화두가 되었다. 광복절 전후로 광화문 대규모 집회가 열렸고, 방역 지침, 집합금지 명령 및 감염 확산 논란이 뒤엉키며 사회적 파장이 커졌다. 집회 주최의 책임, 손해배상 소송, 형사, 행정 재판이 장기간 이어졌다. 이 시기의 본질은 단순하지 않다. 강단에서 말과 광장의 동원 기술, 자유일보(전광훈의 가족이 운영 중이다) 그리고 유튜브 라이브 같은 플랫폼의 확산력이 하나의 회로로 연결되면서, 참여자들은 ‘영적 감동’과 ‘정치적 행동’을 사실상 동일한 체험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전광훈은 종교 지도자와 정치 선동가라는 두 이미지를 동시에 띠게 되었다.
법정은 결국 이 회로와 마주했다. 전광훈은 예배 중 특정 후보를 지지한 발언 등으로 선거법 위반 유죄가 확정된 바 있고, 등록 절차 없이 대규모 모금을 한 혐의로 기부금품법 위반 벌금형(1심)을 선고받았다. 사건별로 쟁점과 항소 여부는 다르지만, 판결문들에 공통으로 드러나는 초점은 명확하다. 예배와 광장, 신앙과 정치, 설교와 선거운동, 봉헌과 모금이 분리되지 않은 채 하나의 동원 구조로 묶여 있었다는 점이다. 법은 그 경계선을 다시 그으려 했고, 전광훈의 방식은 그 선을 넘나들었다.
정통 혹은 사이비 : 선동가로서의 기술
전광훈의 동원 방식은 세 축으로 설명할 수 있다.
첫째, 강단이다. 그는 설교에서 종말, 민족주의, 반공 같은 강렬한 기호들을 결합한 세계관을 제공한다. 선악의 구도는 선명하고, 선택의 요구는 즉각적이다. 둘째, 광장이다. 광화문과 세종대로 같은 도시의 상징 공간을 반복 점유해 가시성과 결속감을 극대화한다. 군중은 ‘우리가 다수’라는 감각을 체험한다. 셋째, 플랫폼이다. 유튜브·SNS·라이브 방송은 설교-호소-모금-집회 공지를 한 줄로 엮는 컨베이어 벨트가 된다. 이 삼각편대는 ‘믿는다→움직인다→낸다’의 순환을 크고 빠르게, 자주 반복시킨다. 법정에 오른 사건들은 바로 이 순환이 공적 규범과 충돌한 지점들이다.
이 지점에서 많은 이들이 묻는다. “전광훈은 사이비인가 정통인가?” 이 질문은 절반만 맞다. 정통과 사이비의 구분은 교리·정통성·교단 소속 같은 종교 내부 기준으로는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의 특정 장면에서는 정치와의 결합 양식이 더 중요한 분기점이다. 통상 정통 대형 교회는 강단에서 공개적으로 특정 이념, 진영을 호명하고 집회를 조직한다. 반대로 사이비형 집단은 캠퍼스, 복지, 문화 네트워크를 통해 은밀하게 지지기반을 넓히고 필요할 때 정치권과 결탁한다. 방법은 다르지만, 최종 함수는 닮아 있다.
종교적 권위→대중 동원→정치적 영향력→제도적 우산
이렇게 이어지는 사다리이다. 전광훈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공개적이고 직선적인 방식으로 사다리를 탔다.
정통과 사이비라고는 하지만 결과는 닮았다. 공개적이든 은밀하든, 종교가 정치와 만나면 면세, 규제 완화, 제도 보호 같은 우산을 얻고 정치는 동원과 결집을 얻는다. 이때 강단에서 울려야 할 은혜와 자유의 언어는 적과 아군, 진영과 선거의 언어로 대체된다. ‘이단은 끝이 다르다’고 말하지만, 오늘 우리가 목격하는 끝은 ‘권력화’라는 한 점으로 수렴된다. 대표적인 예가 손현보와 전광훈이다.
기독교와 사이비, 정통과 이단의 경계는 무너지고 이념으로 하나 되었다. 이념을 뛰어넘지 못한 시대적 한계를 지닌 종교에 대해 대중은 더 이상 신뢰를 보내지 않는다. 정통과 이단은, 누구 하나 먼저랄 것 없이 서로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지극히 상식적인 시각에서 둘의 경계는 점점 허물어져 왔고, 앞으로는 더더욱 그럴 전망이다.(옮김)
첫댓글 감사합니다
빤스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