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호지 제216회
채경이 병법을 얘기하다가, 자신의 말은 듣지 않고 천장만 쳐다보고 있는 관원에게 물었다.
“자네는 누군가?”
관원이 대답했다.
“저의 이름은 나전이며, 운남군 달주 사람입니다. 지금 무학유(武學諭)를 맡고 있습니다.”
채경이 노기가 치밀어 막 발작하려고 하는데, 천자의 어가가 당도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채경은 할 수 없이 나전을 내버려두고, 백관을 거느리고 어가를 영접하였다. 백관이 천자에게 절하고 만세를 세 번 부른 뒤, 도군황제가 병법을 강론하였다.
황제의 강론이 끝나자, 무학유 나전이, 채경이 말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먼저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무학유 소신 나전이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회서의 역적 왕경이 반역한 정황을 폐하께 아룁니다. 왕경이 회서에서 반란을 일으킨 지 5년이 되었는데, 관군은 그를 막지 못하고 있습니다. 동관과 채유가 성지를 받들어 역적을 토벌하러 회서에 갔다가 전군이 몰살당했는데, 죄가 두려워 은닉하고 있습니다. 군사들이 풍토를 이기지 못해 잠시 전쟁을 멈추었다고 폐하를 속임으로써, 큰 우환을 기르고 있습니다.
왕경의 세력은 더욱 창궐하여, 지난달에는 신의 고향인 운남군을 깨뜨리고 노략질과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데 그 참혹함을 차마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왕경은 8개의 군주(軍州)와 86개의 주현(州縣)을 점거하고 있습니다.
채경은, 그의 아들 채유가 군대를 잃고 나라를 욕되게 했는데도, 오늘 어가가 당도하기 전에 오히려 윗자리에 뻐기고 앉아 병법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큰소리를 치면서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니, 미친 것이 아닌가 의심됩니다!
폐하께서는 속히 채경 등 나라를 그르친 적신(賊臣)들을 죽이시고, 장수를 선발하고 군대를 일으켜 역적을 토벌하시옵소서. 그리하여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제하고 사직을 보전한다면, 신민들에게도 다행이요 천하도 다행일 것입니다.”
도군황제는 나전의 상주를 듣고 크게 노하여, 채경 등이 은닉한 죄를 크게 꾸짖었다. 하지만 채경 등은 교묘한 말로 둘러대, 천자는 벌을 내리지 않고 궁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박주태수 후몽이 동경에 와서, 동관과 채유가 군대를 잃고 나라를 욕되게 한 죄를 상주문으로 써서 올렸다. 그리고 송강을 천거하였다.
“송강 등은 재능과 도략이 남들보다 뛰어나 누차 대단한 공을 세웠습니다. 요나라를 정벌하고 돌아왔으며, 또 하북을 평정하여 지금 개선가를 부르며 회군하고 있습니다. 지금 왕경이 창궐하고 있으니, 폐하께서는 조칙을 내리셔서 송강 등의 지난 공을 포상하시고 회서를 토벌하게 하십시오, 그러면 필시 큰 공을 세울 것입니다.”
휘종황제는 즉시 성원(省院)에 명을 내려 송강 등에게 관작을 내릴 일을 의논하게 하였다. 성원관은 채경 등과 상의한 다음 천자께 아뢰었다.
“왕경이 완주를 깨뜨려, 어제는 우주·재주·내현 세 곳에서 위급을 알리는 공문이 올라왔습니다. 이 세 곳은 동경에 속한 고을로서 동경과 가깝습니다. 폐하께서는 칙명을 내려, 진관과 송강 등은 동경으로 돌아오지 말고 군마를 거느리고 우주 등으로 가서 돕게 하십시오.
신들은 후몽을 행군참모로 천거합니다. 그리고 나전도 평소에 도략이 있으므로, 후몽과 함께 진관의 군대로 가서 명을 듣게 하십시오. 송강 등이 지금 정벌 중이기 때문에 관작을 내리기가 어렵습니다. 회서를 정벌하고 돌아오면 다시 의논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원래 채경은, 왕경의 병사들이 강하고 장수들이 용맹한 것을 알고서, 동관·양전·고구와 의논하여 일부러 후몽과 나전을 진관에게로 보낸 것이었다. 송강 등이 패전하게 되면 후몽과 나전도 도망칠 곳이 없을 것이므로, 그때 일망타진(一網打盡)할 생각이었다.
네 적신의 건의를 도군황제는 모두 승인하였다. 칙서를 내려 후몽과 나전으로 하여금 상으로 하사할 금은·비단·의복·갑옷·말·어주 등을 하북의 송강에게 가지고 가게 하였다. 또 하북에서 회복한 각 고을에 신임관원들을 보내라는 칙명을 내렸다. 도군황제는 정무를 마치고 왕보과 채유의 권유로 간악(艮嶽)으로 유람을 떠났다.
한편, 후몽은 조칙과 수레 35대에 가득 실은 하사품을 가지고 동경을 떠나 하북으로 출발하였다. 며칠이 걸려 호관산과 소덕부를 지나 위승주로 갔는데, 성에서 20여 리 떨어진 곳에서 역적 수괴를 호송해 오는 송군을 만났다.
송강은 회군하라는 조칙을 먼저 받았는데, 마침 그때 경영이 부모의 장례를 치르고 돌아왔다. 송강은 경영 모녀의 정절과 효성 및 섭청의 절의, 역적의 수괴를 사로잡은 공, 교도청과 손안 등이 조정에 귀순한 일, 그리고 여러 사람의 공 등을 자세히 아뢰는 표문을 썼다. 그리고 장청·경영·섭청으로 하여금 표문을 가지고 역적 수괴를 압송하여 먼저 가게 하였는데, 도중에 후몽을 만난 것이었다.
장청은 후몽·나전과 인사를 한 다음, 사람을 보내 진안무와 송선봉에게 보고하였다. 진관과 송강은 장수들을 거느리고 성을 나와 영접하였다. 후몽 등은 칙서를 받들고 성으로 들어가, 용정(龍亭)과 향안(香案)을 배열하였다. 진안무와 송강 이하 여러 장수들은 질서정연하게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절을 올렸다. 후몽은 남면하여 용정 왼편에 서서 조서를 낭독하였다.
짐이 하늘을 공경하고 선조를 본받아 기업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오로지 탁월한 고굉지신(股肱之臣)들이 대업을 돕고 있는 덕분이다. 그런데 근래에 변경에 위급한 일이 많이 생겨 국운이 평안하지 못하였는데, 선봉사 송강 등이 산을 넘고 물을 건너 난관을 뛰어넘어 먼저 오랑캐를 평정한 공을 세우고 다음에 또 역적을 토벌하는 업적을 이루었다. 짐은 참으로 기쁘고 그대들을 믿는다. 이제 특별히 참모 후몽에게 조서를 들려 보내며 안무 진관과 송강·노준의 등에게 금은·비단·명마·갑옷·어주 등을 하사하여 그 공을 표창하노라.
이번에 또 역적 왕경이 회서에서 반란을 일으켜, 우리 성을 뒤집어엎고 인민들을 살육하며 변경을 위협하고 서경(西京)을 흔들고 있다. 이에 조칙을 내려 진관을 안무에, 송강을 평서도선봉(平西都先鋒)에, 노준의를 평서부선봉에, 후몽을 행군참모에 임명하니, 조서가 당도하는 날 즉시 군마를 거느리고 완주로 달려가 구원하도록 하라.
그대 장병들이 협력하고 충성을 다하여 역적을 평정한 공을 아뢰면, 관작을 봉하고 상을 내릴 것이다. 삼군이 내리는 상이 부족하거든, 진관은 하북의 풍요한 고을 창고에서 재물을 꺼내 더 지급하고 장부를 만들어 아뢰도록 하라. 그대들은 칙명을 받들어 행하도록 하라!
선화 5년 4월 모일.
후몽이 조서를 낭독하고 나자, 진관과 송강 등은 만세를 세 번 부르고 재배하면서 천자의 은혜에 감사하였다. 후몽은 금은과 비단 등을 장병들에게 차례로 나누어주었다. 진안무와 송강·노준의에게는 각각 황금 5백 냥, 비단 옷감 10벌, 비단 전포 한 벌, 명마 한 필, 어주 2병이 하사되었다. 오용 등 34명에게는 각각 백금 2백 냥, 비단 옷감 4벌, 어주 1병이 하사되었고, 주무 등 72명에게는 각각 백금 1백 냥, 어주 1병이 하사되었다. 나머지 장병들에게도 금은이 하사되었다. 진안무는 여러 고을에서 재물을 모아 장병들에게 충분히 지급하였다.
송강은 다시 명을 내려, 장청·경영·섭청으로 하여금 전호·전표·전표를 경성으로 압송해 가게 하였다. 공손승이 아뢰었다.
“형님! 오룡산 용신묘의 용상(龍象) 5개를 수리해 주십시오.”
송강은 허락하고 장인을 보내 용상을 수리하게 하였다.
송강은 대종과 마령을 여러 고을로 보내, 성을 지키는 장수들은 신관이 당도하는 대로 교대하여 병력을 이끌고 왕경을 토벌하러 오라는 명을 전하게 하였다. 송강이 군무를 처리하는 며칠 동안, 각처에 신관이 모두 당도하여 장수들이 군병을 거느리고 속속 도착하였다. 송강은 장병들에게 상을 나누어주고, 소양과 김대견에게 전호를 토벌한 공적비를 만들어 세우게 하였다.
5월 5일 천중절(天中節; 단오)이 되었다. 송강은 송청을 시켜 연회를 크게 열고 태평을 경하하였다. 진안무를 청하여 상좌에 앉히고, 신임태수와 후몽·나전 그리고 위승주의 관원들을 그 다음 자리에 앉혔다. 도성으로 올라간 장청을 제외한 송강 이하의 107명 두령과 하북의 항장 교도청·손안·변상 등 17명의 장수들이 질서정연하게 양쪽으로 나열하여 앉았다.
연석에서 진관·후몽·나전은 송강 등의 공훈을 칭찬하였다. 송강과 오용 등은 세 사람이 자신들을 알아준 것에 감격하였다. 혹은 조정의 일을 논하기도 하고, 혹은 마음속의 충정을 토로하면서 술잔을 주고받았다. 등촉을 휘황하게 밝혀놓고서 밤늦게까지 즐기다가 헤어졌다.
다음 날, 송강은 오용과 의논하여 병마를 점검하고 위승을 떠났다. 진관 등도 함께 남쪽을 향하여 출발했다. 지나는 지방마다 추호도 백성을 범하지 않았으며, 백성들은 길에 나와 향화와 등촉을 밝히고 송강 등이 역적을 쳐부수고 백성들이 다시 밝은 하늘을 볼 수 있게 해준 은덕에 감사하였다.
한편, 몰우전 장청은 경영·섭청과 함께 전호 등을 함거에 싣고 압송하여 동경에 도착하였다. 먼저 송강의 서신과 예물을 숙태위에게 바쳤다. 숙태위가 천자께 아뢰자, 천자는 경영 모녀의 정절과 효성을 가상히 여겨 경영의 모친 송씨에게 ‘개휴정절현군(介休貞節縣君)’을 추증하고 개휴현의 관원들로 하여금 사당을 짓고 그 정절을 표창하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내게 하였다.
또 경영을 정효의인(貞孝宜人)에 봉하고, 섭청은 정배군(正排軍)으로 봉하여 백은 50냥을 하사하여 그 의기를 표창하였다. 장청은 원래의 직무로 복귀하게 하고, 세 사람이 송강을 도와 회서를 토벌하는 공을 세우면 벼슬을 높여주고 상을 내리기로 하였다.
도군황제는 칙명을 내려 반적 전호·전표·전표를 저자거리에서 능지처참에 처하게 하였다. 경영은 부모의 초상을 들고 가서, 사형 집행관에게 알리고 부친 구신과 모친 송씨의 초상을 사형장에 걸어놓고 그 앞에 탁자를 차려놓았다. 오시(午時) 삼각(三刻)이 되어 전호가 능지처참을 당하자, 경영은 전호의 수급을 탁자 위에 얹어놓고 부모에게 제사를 지내며 방성대곡(放聲大哭)하였다.
이때 경영의 지난일이 동경에 널리 알려져, 그날 구경하러 온 사람이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경영이 비통하게 곡하는 것을 보고, 감읍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경영은 제사가 끝나자, 장청·섭청과 함께 궁궐을 향하여 절하며 천자의 은혜에 감사하였다. 세 사람은 송강을 도와 왕경을 토벌하기 위해 동경을 떠나 완주를 향해 출발하였다.
* 계속 216회 ~~
첫댓글 방랍의 난"과 "금나라"는 언제 나오나.
북송은 딱하다.동서남북에서 반란이일어나고,
요나라를 격파할 금나라가 동북에서 일어나는데,
악비,한세충 진회 채유들이 다음 세대를
이루는도다.
아 카톡 영화가 그리워지네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