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쉬레,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 행복(시1:1-3)
비오는 날 작은 우산을 두 사람이 같이 쓰고 걸어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같이 우산을 쓰고 가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아마 대부분은 가족 쪽으로 우산이 더 많이 가도록 배려하려고 할 것입니다.
얼마 전에 비 오는 날 아버지가 우산의 천이 있는 쪽은 아들에게, 살대만 있는 쪽은 아버지에게 향하게 해서 우산 쓰고 있는 그림을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그림을 바라보면서, 이것이 부모의 마음이고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상적인 부모들은 누구나 자녀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하나님 아버지도 그와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말씀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행복 지침서와도 같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에는 특별히 시편 1편 말씀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참된 행복을 누리는 길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편은 150편 말씀들의 서론이자 결론과도 같은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 아쉬레,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행복(시1:1)
.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이 말씀에서 가장 먼저 주목할 표현은 “복”이라는 단어입니다(1절). 이 단어는 ‘행복’ 또는 ‘지복(至福, 더 없는 행복)’이라는 뜻을 가진 “아쉬레(רשֶׁאֲ)”라는 단어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복(福)이라는 단어는 두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라크(창1:28)와 아쉐레(시1:1)입니다. 바라크는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송하는 존재라는 의미가 있고, 오늘 본문인 시편 1편 1절에 쓰인 복(아쉐레)는 실제로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누리는 내적인 행복을 뜻하는데 즉 내적인 깨달음, 위로, 용기, 감동, 안정감, 세상이 줄 수 없는 주님의 평안-요14:27 등.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들은 바라크(예배하는 존재)가 되었다는 사실로만 만족하지 말고, 실제 우리의 모든 삶 속에 늘 하나님을 예배하고, 깊이 만나는 아쉬레의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에 기록된 다윗의 고백들이나 요셉, 다니엘, 선지자 하바국 등의 고백은 우리들이 본받아야 할 대표적인 아쉬레의 복을 누리는 성도의 모습입니다.
이 시간 잠시 하바국의 고백에 우리의 간절한 마음을 실어서 읽어 봅시다.
“17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18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19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합 3:17-19)
2. 묵상, ‘아쉬레’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방법(시1:1-3)
본문 시편 1편 1절,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복을 누리며 살기 원하는 모든 성도들이 의지적으로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시1:1)
여기에 사용된 “악인(惡人,레샤임)”이라는 말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무리들을 뜻합니다(이단, 사이비 집단, 악한집단, 범죄 모의, 덕스럽지 못한 조직가담 등). 죄인(罪人, 하타임)”은 우발적으로 죄를 짓는 사람이 아니라, 습관적으로 일부러 죄를 짓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처럼 일부러 또는 습관적으로 죄짓는 사람을 지속적으로 가까이 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것에 물들고, 자신도 죄의 수렁이 빠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성도들의 모임이나 예배 또는 교회의 행사들(소풍, 선교여행, 각종 예배, 구역, 봉사활동 등)에 열심을 내는 것은 복된 사람이 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오만한 자(傲慢, 레침)”란 하나님의 가르침을 거부하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만한 사람을 뜻한다. 교만한 자의 특징은 조언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2-3절 말씀을 주목하여 보면. 우리들이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단지 악인이나 죄인이나 오만한 자를 가까이 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인 것을 말씀합니다. 다같이 2-3절 말씀을 함께 읽자.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2-3)
이 말씀처럼 우리들이 정말 복된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악에서 떠날 뿐만 아니라, 더 적극적으로 항상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고 힘쓰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화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복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묵상한다(히브리어, 하가)는 말은 ‘생각한다’, ‘성찰한다’, ‘작음 소리로 읊조린다’, ‘으르렁 거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개를 키워 보신 분은 알 것 같은데 개가 뼈다귀 하나를 주면 그것을 물고 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먹으면서 무언가 얼쩡거리는 것을 보면 으르렁 거리는 것, 오직 뼈를 뜯어 먹는 일에만 열중하는 것, 이것이 묵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으르렁 거린다’는 말 속에는 맹수가 먹잇감을 물고 그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도 있고, 하나님께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그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성도들을 놓치지 않고, 뺏기지도 않고 끝까지 보호하신다는 의미도 있습니다(사41:4). 우리들이 이와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말고 굳게 붙잡아야 합니다.
작은 소리를 읊조린다는 말은 입으로 계속해서 암송하면서 기억을 되살리는 것입니다. 옛날 조선시대 서당에서 학생들에게 외우게 하는 방법이 원시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것이 잊지 않게 하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이렇게 암송하면서 늘 말씀을 되새겨야 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2차 대전이 끝난 후 미군 유해발굴단이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있었던 지역에서 전사자들의 유골들을 발굴할 때 있었던 일입니다. 발굴단은 전사자들의 유해들을 찾던 중에 유독 어느 특정 지역에 형형색색의 온갖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것을 보았다. 그 원인이 어느 미군병사의 군복 속에 있던 꽃씨들 때문이었습니다. 그 미군병사는 전쟁이 끝나면 고향에 심을 생각으로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꽃씨들을 모아서 군복 주머니에 넣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그 병사의 군복 속에 있던 씨앗들이 퍼져서 그 일대가 아름다운 꽃밭이 된 것입니다. 군인은 죽었지만 꽃씨는 남아서 아름다움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이 병사의 모습처럼 무엇을 품느냐에 따라 피는 꽃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마음 밭에 악을 품으면 불행의 꽃이 피고, 말씀을 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아쉬레)의 꽃이 피우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행복은 선택이라 할수있습니다. 행복한 사람이란, 소극적으로는 악한 일이나 악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아무리 분주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방해꺼리들이 많을 지라도, 마치 맹수가 으르렁 거리면서까지 먹잇감을 놓치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을 품고 읊조리며, 뺏기지 않으려는 힘쓰는 사람이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모든 성도 여러분들이여,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아쉬레의 참된 행복을 준비하시고, 우리들이 그것을 품고 행복한 사람들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선지자 하바국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늘 나를 성찰하고, 그 말씀을 나의 생활 속에서 적용시켜 나가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이 되면 이 땅에 그리스도의 통치가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우리가 품은 그 말씀이 우리 안에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과 평안을 줄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하나님이 주시는 내적인 아쉬레의 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며. 주님과 동행하는 성도인 것입니다.우리 모두 이 축복의 주인공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김상수목사(안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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