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렐루야!!
오늘은 눅15장에 있는 집나간 둘째 아들, 소위 말하는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쥐엄열매에 대하여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특별히 작은 아들이 먹은 쥐엄 열매에 대해 알아보고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특히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비밀이 있는데, 아무리 큰 죄를 범하였다 할지라도 깨닫고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아버지는 우리의 모든 죄를 묻지 않으시고 받아 주신다는 것과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가 램브란트의 돌아온 탕자의 그림을 보면 부성과 모성을 같이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들을 안아주고 있는 아버지의 손입니다. 왼손은 가늘고 긴데. 반면 오른손은 넓적하고 더 큽입니다. 이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무조건 사랑과 아버지 큰사랑을 말하는 듯 하고 또 다른 의미로는 아버지손은 율법이고 어머니의 손은 복음입니다. 형을 보면 확실합니다.
다음으로 집 나갔던 작은 아들의 형, 그 집 장남이 있습니다.
아버지를 향한 장남의 불평이 나오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 해 아버지를 섬겨 명을 어김이 없거늘 내게는 염소 새끼라도 주어 즐기게 하신 일이 없더니 아버지 살림을 창녀들과 함께 삼켜 버린 아들이 돌아오매 이를 위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나이다”.
이글은 누가만이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이 유명한 이야기의 전통적 이해에 따르면, 유대교 이스라엘과 이방인 사이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에 유대인들의 사고방식인데, 이방인은 어차피 내쳐진 종자들인데 그들을 구원하신다 하니 가당치 않은 일이라는 것이 유대인들의 입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늘 예수님의 가르침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바로 장자의 말속에 전통 유대인의 율법이고 탕자는 이방인이고 복음입니다. 그것을 지적하는 비유인 셈인 것입니다.
또 하나 집 나가서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병들어 거지가 되어 돌아온 아들은 죄인이고 집에 있는 아들은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아버지 입장에서 볼 때 집에 있는 아들도 역시 많은 죄를 범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 안에 있는 자나 교회밖에 있는 그들이나 동일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탕자'는 둘째 아들이 아닌 첫째 아들이고, 그 첫째 아들은 바로 '종교가 되어버린 교회'에서 두려움과 이기심으로 율법에 순종하며 '자기 의'를 자랑함으로써 '스스로 하나님 노릇' 하려는 바리새인, 즉 나 자신임을 깨닫게 합니다.
첫째 아들이 원한 것도 동생, 즉 '탕자'로 불리는 그와 다를 것 없이 결국 아버지 자체가 아닌 '아버지의 재물'이었기 때문이며. 동생 못지 않게 반감을 품은 것도, 아버지의 권위를 못마땅해하며 거기서 벗어나려 한 것도, 아버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위치에 서고자 했던 것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하나는 아주 못되게 굴었고 다른 하나는 지극히 착하게 굴었을 뿐, 둘 다 아버지의 마음을 멀리 떠난 잃어버린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 전체의 이야기와 인류의 이야기를 잃어버린 두 아들의 비유에 멋지게 압축하셨습니다. 그 분은 우리 생애의 줄거리가 그 분 안에서만, 즉 그 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해서만 행복한 결말의 대단원에 이를 수 있음을 보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무모한 은혜야말로 우리의 가장 큰 소망이요,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이며, 이 책의 주제도 바로 그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 자신을 돌이켜 보고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회개치 않고 있는 탕자인지, 또는 큰아들처럼 교회 안에서 자만하고 교만하여 아버지로부터 책망받을 일은 없는지를 한번 돌이켜 보기를 바라면서 말씀속으로 들어가겠습니다.
1. 쥐엄열매란
(1) 쥐엄열매 '케라티온'은 작은 뿔이라고 하며 또는 염소뿔이라고 하는 나무의 열매입니다.
집을 떠난 아들이 타국에 가서 방탕한 생활로 가진 돈을 모두 허비하였는데 흉년이 들자 민심이 흉흉해졌습니다. 돈이 많았을 땐 좋았던 친구들이 돈 떨어지자 돌변해서 찾아오는 것도 귀찮아하고 문전박대를 하는 것입니다. 그는 살기 위해 돼지 농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혹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라도 얻어 먹기위해 그러나 그것도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참으로 돌아보면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비참하였을 것입니다.
그가 먹고자 했던 쥐엄열매(husks)는 위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작은 뿔처럼 생겼고, 길이가 15~25cm, 너비가 2.5~3.7cm고, 잘 익으면 알갱이가 즙을 함유하며, 영양가 있는 사료나 음식으로 쓰입니다. 쥐엄나무는 지중해 연안의 거의 모든 나라에 서식하고 있으며, 아메리카에도 도입됐습니다. 이 나무는 키가 약 10m까지 자라는 상록수이며. 나무의 줄기는 옹이가 많아 울퉁불퉁하고, 꼭대기에는 가지들이 촘촘하게 나서 구형을 이루고, 잎들은 달걀 모양으로 두 쌍 또는 네 쌍으로 갈라진 전체가 소엽을 이루고, 꽃은 단성화로 수꽃과 암꽃이 서로 다른 나무에 피며, 늙고 두꺼운 가지들 위에 짧은 수상화서로 떨기 지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삭 모양으로 뭉쳐 있는 꽃은 초록 또는 붉은 색을 띠며 가을에 피지만. 그러나 열매는 다음 해 여름이 되어서야 완전히 익으며. 열매는 수분이 없고 살은 많으며, 다 익으면 갈색의 꼬투리로 되어 있고, 그 속에는 5~10개의 씨들이 길게 열 지어 들어 있으며, 완전히 익으면 떨어집니다. 쥐엄나무는 묘목이 자라서 열매를 맺고 수확을 할 때까지 20~30년이 걸리고, 일단 다 자란 나무가 되면 한 그루에 200kg 이상의 열매가 열립니다.
(2) 쥐엄열매는 주로 돼지나 소, 닭, 등의 짐승들이 먹는 사료로 쓰입니다
여기서 부잣집 아들이 거지가 되어 짐승들, 돼지가 먹는 것을 먹으려 하였다는 것은 완전한 타락을 말합니다. 돼지를 부정한 동물로 여긴 유다인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을뿐만 아니라 그 주검을 만지지도 않는 관습(레 11: 7-8)이 있습니다. 그런데 돼지를 친다는 것 자체가 매우 수치스러운 일이고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라도 먹겠다고 생각한 것은 그의 상황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아마도 탕자는 세상의 인심이 이처럼 각박한 것도 처음 알았을 것이며 먹고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렵다는 것도 처음 알았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돼지를 불결한 짐승으로 여겼기 때문에 돼지를 기르지도 않고 또 돼지고기를 먹는 것은 율법으로 금기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로마의 통치를 받든 시대이므로 로마 사람들이 돼지를 기르고 또 돼지고기를 즐겨 먹으므로, 아마도 탕자는 유대인의 규례나 관습은 무시하고 살기위해 로마 사람의 돼지 농장에 가서 먹을 것을 구하였는데 이것이 사람의 본능입니다
(3) 쥐엄열매는 짐승이 주로 먹었지만 그러나 가난한 사람들도 먹었습니다.
쥐엄나무 열매는 소, 말, 돼지, 닭 등 가축들의 훌륭한 사료가 됩니다. 그러나 옛날에는 쥐엄나무 열매를 가난한 사람들 식량으로 사용했습니다. 지금도 가난한 원주민들은 쥐엄나무 열매를 식량으로 사용합니다. 또한 구약 시대에는 적의 포위로 성안 사람들이 굶주릴 때 비상식량으로 많이 먹었다고 전해집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탈무드에 보면 랍비 시몬 바르요하이는 로마인들에게 붙잡히는 것을 두려워해 그의 아들과 함께 갈릴리아 동굴에 숨어있는 동안 쥐엄나무 열매로 12년 동안 지냈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쥐엄나무 열매는 갖가지 가축들의 훌륭한 사료로 사용했지만 때로는 쥐엄나무 열매를 가난한 사람들 식량으로 사용하기도 했다는것. 아직도 가난한 원주민들은 쥐엄나무 열매를 식량으로 사용합니다. 또한 쥐엄나무는 이스라엘 곳곳에서 쉽게 볼 수 있고 숲을 이루고 있으며 예루살렘 거리 가로수도 쥐엄나무가 많습니다.
창1:28-29절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 그리고 창9:1-3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물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것들은 너희의 손에 붙였음이니라 모든 산 동물은 너희의 먹을 것이 될지라 채소 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그리고 신8:3, 마4:4절 말씀에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날마다 시간마다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말씀만을 먹으면서 살고 있습니까? 아니면 육이 살기위한 쥐염 열매를 찾아 먹고 있는지.. 사람에게 있어서 깨달음도 매우 중요하지만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으면 그것을 고치기 위해 노력하는 실천이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의 탕자는 자신의 잘못된 모든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깨닫는 것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실천에 옮겼습니다. 이것은 바로 행함의 믿음입니다. 믿음의 열매입니다.
탕자는 자기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은 여기가 아니고 바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지했을 때 자신의 있어야 할 위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분연히 일어나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결심하고 일어섰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깨달았으면 빨리 일어나 그곳을 떠나야 합니다. 일어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어나기만 하면 다음에 무슨 동작이든지 취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겔33:11절“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성도 여러분! 알았다면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하나님이 인도해 주시고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아 멘!>
탕자가 아버지의 품을 떠났을 때는 실패하였으나 아버지께로 돌아왔을 때는 모든 것이 정상적으로 회복이 되었습니다.
같은 이치로 오늘의 우리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내 맘대로 내 뜻대로 아버지를 떠나면 결국 탕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아버지께로 돌아오면 인자하시고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사랑과 긍휼이 풍성하신 우리 하나님은 회개하는 사람을 영접하여 주시고 전에 주셨던 모든 축복과 은혜와 은사를 다시 회복시켜 주십니다. 믿으시면 아멘,
그러므로 우리는 개인적으로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야 합니다. 가정적으로도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환난이 왔습니까? 시험이 왔습니까? 가정의 문제가 풀리지 않습니까?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면서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채찍입니다. 이 나라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 깨닫고 돌아오는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55:7)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호6:1-2)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아멘.
오늘의 말씀을 정리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을 떠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지금 혹시라도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의 말씀을 먹지 못하고 세상이 주는 쥐엄열매를 먹고 있다면 빨리 깨닫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내가 아버지께로 돌아가리라”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다시 이 나라 이민족 위에 은혜와 축복을 풍성케 부어 주실 줄로 믿습니다.<아 멘!> 이제는 주님만 위해 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아 멘>
하늘산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