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 계 을 읽었다. 영화로 먼저 본 소설 《색, 계》(色,戒)를 포함한 중국 작가 장아이링(張愛玲, Eileen Chang)의 중편소설집이다. 소설 《색·계》는 영화보다 훨씬 짧고 압축적이지만 영화로는 보여줄 수없는 것을 알게되어 좋았다. 남주가 마작모임중 여주만 없는 다이어몬드 반지를 사주는데 현금이 아닌 금괴 11개로 주고 정산하는 장면이 그렇다. 사실 전시여서 물가폭등이고 금의 거래나 소지도 불법이었기에 괴뢰정부의 정보부 책임자로서는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영화를 보는 동안은 알 수없었다. 장아이링은 이 소설을 1979년에 발표했는데 전남편인 친일파 중국인에게 들었던 실화에 근거한다. 배경은 1930~40년대 일본 점령기의 상하이고 여주는 왕자즈(王佳芝), 남주는 이선생(易先生)이며 항일 지하조직에 참여한 젊은 여성이 친일파 고위 인물을 암살하기 위해 접근하면서 벌어지는 심리적 관계를 다룬 것이다.
영화 색, 계는 이 짧은 소설을 상당히 확대해서 영화화한 것이고 지금은 한국 영화감독의 부인이자 아기엄마가 된 탕웨이의 미모가 소설과 비슷했을 뿐 소설과 영화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 소설은 영화보다 훨씬 짧고 건조하며, 왕자즈와 이선생의 관계도 영화와는 다르게 인간의 욕망, 자기기만, 배신과 연민이 뒤섞인 심리에 초점이 있다. 아무리 애국대학생이라고 해도 몸을 바쳐 이적행위자를 죽이는 작전에 참여하고 그 작전에 성공하기 위해 혐오하는 남자에게 순결을 주고 자주 몸을 섞었다는 것은 지금도 이해하기 어렵다. 국가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8
붉은 장미와 흰 장미(红玫瑰与白玫瑰)은 1944년에 발표된 중편소설로, 남녀 관계와 욕망, 결혼, 그리고 인간의 이중적인 심리를 매우 날카롭게 다룬다. 핵심은 ‘두 종류의 여성’이라는 상징으로 남주 퉁전바오(佟振保)에게 두 여성이 등장한다.
붉은 장미 → 뜨거운 욕망, 관능, 위험한 사랑 흰 장미 → 순수, 안정, 결혼, 이상적인 아내
그런데 장아이링이 보여주는 인간의 심리는 상당히 냉소적이다. 붉은 장미를 얻으면 흰 장미가 생각나고, 흰 장미를 얻으면 붉은 장미가 생각난다. 즉, 가지지 못한 것을 이상화하는 인간의 욕망을 말합니다.
작품에서는 이런 식의 비유가 나온다. 붉은 장미는 결혼하고 나면→ 옷에 묻은 한 점의 모기 피처럼 느껴지고, 흰 장미는 결혼하고 나면→ 창문 앞의 밝은 달빛처럼 느껴진다는 식이다.
반대로 흰 장미를 얻은 남자는 다시 붉은 장미의 열정을 그리워한다. 결국 장아이링이 말하는 것은 단순히 “어떤 여자가 더 좋은가”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욕망하고, 손에 넣는 순간 그 가치가 달라져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압축하면:
“욕망은 대상보다 결핍에 더 강하게 반응한다.” 장아이링의 작품답게 사랑을 아름답게 이상화하기보다는, 사랑과 결혼 뒤에 숨어 있는 욕망·소유욕·허영·자기기만을 상당히 냉정하게 바라본다.
붉은장미는 싱폴의 중국계로 오직 시집을 보내기위해 런던에 유학보냈지만 남편감을 조신하게 찾기보다 남친들과 즐기다가 소문이 나빠져서 잡은 것인 상하이 중국인의 부인이었다. 그리고 남주는 남친의 집에 셋방을 살면서 친구의 부인과 정열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어머니에게 효도하기위해 평범한 여자와 결혼하지만 만족하지 못하고 외도를 일삼고 세월이 지나 재회하게 된 붉은장미는 이제는 늙어서 뱃살녀가 된 상태였다. 120
봉쇄(封锁, 封鎖)는 장아이링(張愛玲)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가운데 하나로 중국어 제목은《封锁》이고, 1943년에 발표되었다. 배경은 전쟁 중 상하이다. 어느 날 상하이의 전차 운행이 갑자기 중단되면서 도시가 일시적으로 봉쇄된 것처럼 고립된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전차 안에 있던 두 남녀가 만나고, 평소라면 쉽게 하지 못했을 행동과 대화를 나누게 된다. 핵심은 '봉쇄'가 단순한 도시의 봉쇄가 아니라는 것이다. 전차가 멈추면서 사람들은 일상의 사회적 규칙에서 잠시 벗어난다. 평소에는 직업 → 가족 → 신분 → 체면 → 사회적 역할이라는 틀 안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이,
봉쇄된 짧은 시간 동안에는 그런 역할에서 조금 벗어나 전혀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을 경험한다. 그래서 이 작품에서 봉쇄는 오히려 역설적이다. 도시가 봉쇄되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은 잠시 자유로워진다.
전차 안에서 만나는 남녀는 서로에게 일종의 일상에서 벗어난 환상을 경험한다. 그 짧은 만남에서는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봉쇄가 풀리고 전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면 현실이 돌아온다. 그리고 두 사람도 다시 자신의 원래 삶과 사회적 위치로 돌아간다.
이것이 장아이링 특유의 냉정한 시선이다. 사랑이 없어서가 아니라, 현실의 구조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사랑이 지속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장아이링의 사랑 이야기는 단순한 로맨스라기보다, “인간은 왜 현실에서 행복해지기 어려운가?”를 탐구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봉쇄》에서 재미있는 것은 ‘몇 시간의 봉쇄가 사람의 삶 전체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바꾸지 못했다’는 역설이다. 작가는 친일파 난징정부의 고위관료가 이 소설을 읽고 접근하여 24세에 결혼했지만 2년후에 이혼했다. 186
증오의 굴레의 여주는 젊은 자인이다. 상하이에서 어렵게 살아가던 자인은 부유한 사업가 샤쭝위의 집에서 가정교사로 일하게 됩니다. 샤쭝위에게는 어린 딸이 있고, 아내는 건강 문제로 집을 떠나 있는 상황이다. 자인은 아이를 돌보는 과정에서 샤쭝위와 가까워지고, 두 사람 사이에는 사랑과 욕망이 싹튼다. 그런데 이 관계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등장한다. 바로 자인의 아버지다. 그는 딸과 샤쭝위의 관계를 알아차리고 이를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려 한다.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녀의 작품에서는 당연하지만 단순한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다. 자인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오래된 원망과 증오가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벗어나고 싶었던 아버지의 존재가 자신의 사랑과 삶에 계속 개입한다.
즉, 가족에게 받은 상처 → 증오 → 벗어나려는 욕망 → 그러나 다시 가족관계에 얽힘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그래서 ‘증오의 굴레’라는 제목은 단순히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뜻보다, 가족이라는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다음 세대의 삶과 사랑까지 붙잡아 놓는 상황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에서 사랑은 순수한 탈출구가 되지 못한다. 자인은 가난과 가족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샤쭝위와의 관계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보지만 그 관계 역시 경제적 격차와 결혼제도, 가족관계, 사회적 신분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장아이링의 시선은 상당히 냉정하다. 사랑한다고 해서 과거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상하이의 몰락해가는 명문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 어머니가 고모와 유학을 가고 가부장적이고 무능한 아버지와 이혼하면서 계모와 갈등을 경험했던 그녀의 주변인물이 많이 등장한다. 187
개인적으로 가장 공감이 높았던 작품이 증오의굴레다. 아비도 아비다와야 아비라고 할 수있는데 여주의 못난 아비는 조강지처의 가슴에 칼을 꽂은 것은 물론 고향을 떠나 홀로 살아보겠다고 발버둥치는 그녀에게 달라붙어 모은 저축을 털어가고 수시로 삥을 띁고 결국은 사랑하는 사람까지 떠나게 만든다. 여주는 아비와의 관계를 끊기위해 그녀의 많은 소설에 나오는 설정대로 어미가 원하지만 좋아하지 않은 남자에게 시집가기로 한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여주가 정말 불쌍하게 느꼈던 것은 저자의 경험이 가장 많이 반영된 사실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의 아버지도 여주의 아버지와 비슷했고 저자도 이혼을 두번하고 해외로 떠나 결국은 홀로 죽어서 일주일 후에 시체가 발견되었다. 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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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 계 7
정처 없는 발길 49
붉은 장미 흰 장미 93
봉쇄 167
증오의 굴레 187
작품 해설 281; 작가 연보 2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