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 《사기》
여섯 가지 불치의 병이 있다.
교만하여 도리를 논하지 않는 것이
첫 번째 불치병이고,
몸을 가벼이 여기고 재물을 중하게 여기는 것이
두 번째 불치병이다.
의식(衣食)을 적절히 하지 않는 것이
세 번째 불치병이며,
음(陰)과 양(陽)이 오장(五臟)에 함께 있어
기(氣)가 안정되지 않는 것이
네 번째 불치병이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약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다섯 번째 불치병이며,
무당의 말을 믿고 의원을 믿지 않는 것이
여섯 번째 불치병이다.
〈편작 창공 열전〉 _695쪽
두만(頭曼) 선우(單于)에게
태자가 있었는데 이름이 묵돌(冒頓)이다.
그러나 뒤에 총애하는 연지(閼氏)에게서
다시 작은아들을 보고서는
묵돌을 폐하고 작은아들을 태자로 세우려고 하였다.
그래서 선우는 묵돌을 월지에 볼모로 보냈다.
묵돌이 월지에 인질로 가 있을 때,
두만은 갑자기 월지를 공격하였다.
월지는 선우의 예상대로 묵돌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묵돌은 준마를 훔쳐 타고 본국으로 도망쳐 왔다.
두만은 일이 어긋나기는 하였으나
묵돌의 용기를 장하게 여겨
묵돌을 만 명의 기병 장군으로 임명하였다.
그러자 묵돌은 명적(鳴鏑)을 만들어서
부하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것으로 말 타고 활 쏘는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그는 이런 명령을 내렸다.
“내가 명적을 쏘거든 다 같이 그곳을 쏘아라.
쏘지 않는 자는 죽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냥을 나갔을 때,
묵돌은 자신의 명적을 쏜 곳에 쏘지 않은 자는
가차없이 죽였다.
그 뒤 묵돌이 또한 명적을 자기의 애마에게 날렸다.
그러자 좌우에서 차마 쏘지 못하는 자가 있었다.
묵돌은 당장에 그들을 죽였다.
얼마 후에 그는 또 명적을 자기의 애처에게 날렸다.
좌우에서 겁이 난 나머지 감히 쏘지 못하는 자가 있자
묵돌은 그들 역시 사정없이 죽여 버렸다.
또 얼마 뒤에 묵돌은 사냥에 참가해서
명적을 선우가 타고 있는 말에 날렸다.
그러자 부하들은 모두 일제히 거기에 쏘았다.
그제서야 묵돌은 비로소 부하 전원이
자기의 명령을 따른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리고 그 다음 사냥에
그의 아버지 두만 선우를 따라 나갔을 때,
명적을 아버지 두만에게 날렸다.
과연 그의 부하들은 일제히 화살을 날려 두만
선우를 죽였다.
묵돌은 잇따라 그의 계모와 이복동생 그리고
자기를 따르지 않는 대신들을 모조리 죽이고
스스로 선우가 되었다.
묵돌이 선우에 올랐을 때
당시 동호의 세력이 강했는데,
묵돌이 아비를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는 것을 듣자
묵돌에게 사자를 보내 두만이 가지고 있던
천리마를 얻고 싶다고 청했다.
이에 묵돌이 신하들의 의견을 묻자,
신하들은 모두 이렇게 말했다.
“천리마는 흉노의 보배입니다.
그들에게 주지 마십시오.”
그러나 묵돌은 이렇게 말했다.
“서로 나라를 이웃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말 한 마리를 아낄 수 있겠는가?”
그리하여 결국 천리마를 동호에 보내 주었다.
얼마 뒤에 묵돌이 자기들을
무서워하고 있는 줄로 안 동호가 다시 사자를 보내,
선우의 연지 중에 한 사람을 얻고 싶다고 청했다.
묵돌이 또 좌우에게 물었다.
좌우는 모두 성을 내며 말했다.
“동호는 무례합니다.
그러기에 연지를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출병해서 그들을 공격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때도 묵돌은 이렇게 말했다.
“남의 나라와 이웃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여자 하나를 아낄 수 있겠는가?”
그리고 드디어 사랑하는 연지 한 사람을 골라
동호에 보내 주었다.
이로써 동호는 더욱 교만해져서 서쪽으로 침략해 왔다.
당시 동호와 흉노 사이에는 1,000여 리에 걸쳐
아무도 살고 있지 않은 황무지가 버려져 있었다.
쌍방은 각각 자기들의 변경의 지형에 따라서
수비 초소를 세워 놓고 있었다.
동호는 사자를 보내 묵돌에게 이렇게 전했다.
“흉노와 우리가 경계하고 있는
수비 초소 이외의 황무지는
흉노로서는 어차피 쓸모가 없으니
우리가 차지하였으면 좋겠소.”
묵돌이 이 문제를 대신들에게 묻자
몇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
“이건 버려진 땅입니다.
주어도 좋고 안 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자 묵돌이 크게 화를 내며 말했다.
“땅은 나라의 근본이다.
어떻게 그들에게 줄 수 있다는 말이냐?”
그러고는 주어도 좋다고 한 자들을 모조리 참수한 다음
말에 오르며 전국에 명령을 내렸다.
“이번 출전에서 후퇴하는 자는 즉시 죽이겠다.”
그리고 마침내 동쪽으로 동호를 습격했다.
동호는 처음에 묵돌을 업신여겨 흉노에 대한
방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묵돌이 군사를 이끌고 습격하여
순식간에 동호를 대파하였고,
그 왕을 죽였으며
백성을 사로잡고 가축을 빼앗았다.
〈흉노 열전〉 _802쪽~804쪽
한나라 사신으로,
“흉노의 풍습에서는 노인을 천대하고 있다.”
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중항렬(한나라 사람으로 흉노에 투항함)은
그 사신에게 모질게 따졌다.
“당신들 한나라 풍속에도
누군가가 주둔군의 수비를 위해서
군대로 떠나게 될 때에는,
그 늙은 양친이 자기들의 두껍고 따뜻한 옷을 벗어 주고
살지고 맛있는 음식을
군대에 나가는 사람에게 주지 않는가?”
“그렇소.”
중항렬이 또 말했다.
“흉노는 다 잘 알다시피 싸움을 큰일로 알고 있다.
늙고 약한 사람은 싸울 수가 없다.
그러기에 자기들이 먹을 살지고 맛있는 음식을
건장한 사람들에게 먹이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그것을 가지고 어떻게 흉노가 노인을
가볍게 여긴다고 할 수 있겠는가?”
한나라 사신이 또 말했다.
“그러나 흉노는 부자(父子)가 같은 천막 속에 살며,
아비가 죽으면 자식이 그 계모를 아내로 하고,
형제가 죽으면 남아 있는 형이나 동생이
그의 아내를 맞아 자기 아내로 해 버린다.
옷, 관, 허리띠도 없고,
조정에서의 의식과 예절도 없다.”
그러자 중항렬이 말했다.
“흉노의 풍습에서는 사람은 고기를 먹고
그 젖을 마시며 그 털가죽으로 옷을 해 입는다.
가축은 풀을 먹고 물을 마시며 철에 따라 이동을 한다.
그러므로 싸울 때에는
사람들이 말 타고 활 쏘는 법을 익히고,
평상시에는 일 없는 것을 즐긴다.
그들의 약속은 간편하여 실행하기가 쉽다.
임금과 신하의 관계는 간단하고 쉬워서
한 나라의 정치는 마치 한 집안의 일과 같다.
부자형제가 죽으면 남은 사람이 그의 아내를 맞아
자기 아내로 하는 것은 대가 끊어지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흉노는 어지럽기는 하지만
종족만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중국의 경우,
외면상으로 아비나 형의 아내와 장가드는 일은 없지만,
친족 관계가 거리가 멀어지게 되면
서로 죽이기까지 한다.
혁명이 일어나 제왕의 성이 바뀌는 것도 다 그런 예이다.
그리고 예의를 말하더라도
충성이나 믿음의 마음도 없이 예의를 강요하기 때문에
위아래가 서로 원한으로 맺어져 있고,
궁실의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노력을
그곳에 다 써 버리고 만다.
대개 밭갈이하고 누에를 길러 먹고 입는 것을 구하고,
성을 쌓아 방비를 하기 때문에,
한나라 백성들은 전시에는 싸움을 익히지 못하고,
평시에는 생업에 지치고 만다.
슬프다! 흙집에 살고 있는 한나라 사람이여!
겉만 화려하고 실속은 없는데,
관을 써 보았자 무슨 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흉노 열전〉 _813쪽~814쪽
공의휴(公儀休)는 노(魯)나라의 박사(博士)였다. ……
어떤 빈객이 재상인 공의휴에게 생선을 선물하였는데,
재상이 받지 않았다. 그러자 빈객이 말했다.
“소문에 재상께서 생선을 좋아하신다고 하기에
생선을 보낸 것인데 왜 받지 않으십니까?”
재상이 말했다.
“생선을 좋아하기 때문에 받지 않았소.
지금 나는 재상 자리에 있기 때문에 충분히
생선을 살 수 있소.
지금 생선을 받다가 파면되면 누가 다시 나에게
생선을 주겠소?
나는 이 때문에 받지 않는 것이오.”
어느 날 재상이 채소를 먹어 보니 그 맛이 아주 좋았다.
그래서 그는 자기 밭에 있는 채소를 뽑아 폐기했다.
또 자기 집에서 짜는 베가 질이 좋은 것을 보고,
그 베를 짜는 여자를 쫓아 보내고 베틀을 불태웠다.
그러면서 말했다.
“농부와 베 짜는 여자는
어디에 그 물건들을 팔아야 한다는 말인가?”
_ 〈순리(循吏) 열전〉 990쪽~991쪽
司馬遷(史記列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