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소초등학교 사진이다.
이전경은 1970년대에 찍은 사진으로
금두산에서 줌을 사용해 찍은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1980년로 보임)
사진을 보면 교사 뒷건물이 약5층 정도로 보이고
앞 건물은 4층 정도로 보인다.
우측을 보면 솔밭이 있는 데 원래의 솔밭이 아닌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어릴적에 이곳에는 소나무가 많았는데
이곳에 소나무를 베고서 이곳에 2층 건물을 세워
교실로 이용하기도 했으며
덕소에 중학교가 개교 했는 데
교사가 없어 이곳을 임시로 중학교 교실로 사용한 때가 있있다.
그 첫해 입학생이 우리의 2년 후배인 45회다.
이후 다시 교사를 해체 했는 데
이사진이 교사를 해체 후 찍은 사진으로 보인다.
이교사는 우리가 군대를 제대한 후 철거 되었으니
사진은 1980년대 중반이 맞는 것으로 보인다.
학교 뒤산에 나무들이 없고 황토흙이 보이는 데
그당시 빌라가 한창 유행이라
건축을 하려고 터를 닦아둔 것 같다.
학교 뒷쪽 산에 서현석 선배의 집이 흐미하게 보인다.
그곳이 석실(율석리) 가는 길목 왼쪽에 있었다.
덕소 초등학교 그 역사는 올해들어
약 98년의 역사가 되었을 것으로 생각해 본다.
이곳은 옛날 현령 자리였다는 말도 있는 데
풍수지리상으로 보더라도
그터는 좋은 터라고 할 수 있다.
뒤에는 천마산이요 앞에는 한강이다.
좌청용 우백호는 없지만
조그마한 청용과 백호가 있다.
흔히 말하는 산의기와 강의 기는 서로 마주보고 있느니
기를 서로 견재하는 곳이라 하겠다.
우리 당시에는 1층 건물들로 벽
은 나무에 검정을 바른 교사 였는 데
지금은 이처럼 앞에는 3층 건물
뒤에는 5층 건물이 들어서 있다.
지금은 1980년에는 교실이 모자라 몇부제의 교육을 했으며
그도 모자라 옥상에 가건물,
운동장 한 구석에 콘테이너를 설치하여
아이들을 교육시킨 적도 있었는 데
그게 바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 후반 기 까지인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사진은 27회 졸업 기념 사진이다.
지붕을 보면 볓집이 보인다.
초가를 엊어놓은 지붕이다.
이것을 보면 우리들 세대는 참 좋은 교실에서
공부를 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겨울에 공부를 하려면 조개탄이 부족해
솔방울을 한말씩 따와야 했고
그래도 발이 시렵고 손이 시려워
애를 먹었던 우리의 어린시절
6,25동란으로 피난을 가느라 공부도 못하고
졸업도 못했던 세대도 있었으니
우린 그래도 행복했던 세대라 하겠다.
이 향나무는 우리가 입학 할때도 있었고
지금도 이렇게 있다.
알아보니 우리 아버지 세대때도 있었다 한다.
그러니 이 나무의 수령은
약 85년 이상으로 보면 될 것이다.
덕소초등학교 역사와 더불어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을 찿아보면
읍사무소, 우체국, 덕소역, 지소, 덕
소교회, 덕소반점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리가 어릴적에 이곳의 책임자는
덕소의 유지라 할 수 있었다. (덕소반점은 제외)
졸업식때나, 운동회때 이 유지들은
꼭 참석을 하여 축사나 상을 전달 하기도 했다.
덕소반점 즉 중국집이 들어가니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 하겠지만
지금까지 덕소에서 식당을 한자리에서
유지하고 있는 곳이 없다.
덕소반점만이 한곳에서 60년 이상을 영업하고 있으니
덕소의 명소라고 해도 이상이 없으리라 본다.
교사와 교사사이
우리가 5학년때 그때는 앞에 있던 건물인데
봄에 환경미화수업시간때 개울서
돌을 가져와서 화단을 정리하는 데
교실밑에서 구렁이가 나와 놀란 적이 있었는 데
이를 당시 김동수 선생님이 손으로 직접 잡었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이처럼 잘 정리가 되어 뱀이 다닐틈도 없다.
솔밭에서 2층 교사로 다시 해체하고 다시 실내체육관을 지었다.
아쉬움이 있다면 이 실내 체육관은 학교 뒤에다 짓고
그리고 지하에는 수영장 지상에는 실내 체육관으로 했으면
참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자리에는 다시 솔밭을 만들어 놓았으면
많은 학생들이 이곳에서 쉬기도 하고 많은 추억도 만들어 냈을 것이다.
우리가 어릴적에는 운동장에 헬리콥터가 내리면
신기해서 학교로 달려왔고 그 바람이 너무 쎄기에
소나무를 꼭 잡아 있었던 기억도 있다.
운동회때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었던 기억도 있다.
이곳에는 아카시아 나무들이 많았던 곳이다.
미류나무도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아담한 장소로 만들어 놓았다.
길을 쭉 따라가면
그곳은 교장 선생님 관사가 있었던 곳
지금도 관사가 있으니
길의 끝 외쪽에 아담하게 보인다.
이곳 관사의 추억이 있으니
옛날 총각 교장선생님이 부임하시면
다음날은 생을 달리 하셨다 하니
원한많은 처녀 귀신이 나와서
총각 교장선생님에게
원한을 풀어 달라고 요청을 하려 나타나면
총각 교장 선생님은 그만 졸도 하고
그후로는 일어나지를
못했다는 전설이다.
그러니 이러한 전설도
알지 못하고 이곳에 부임하여
관사에 몇년을 머물었던 분들이 계시니
이걸 지금 알고 있다면 얼마나 등골이 오싹할까.
그 당시 처녀 귀신이 원한을 못풀어
이 관사에 살던 사람을 찾고 있다고 하는 데
어떻게 해야 하는 지 모르겠다.
왼쪽에는 당시 우리가 가을이면
퇴비를 해서 이곳에 쌓아 두었던 기억도 난다.
낫질이 서툴러 나는 왼쪽 발등을
낫에 베인 적도 있는 데
지금도 그 흉터가 있다.
학교 동쪽이다 지금은
이렇게 잘 정비되어 있지만
우리가 어릴때에는
이곳은 도랑이 있고 그리고 언덕이었다.
이곳을 올라가야 하는데
고사리 같은 손으로 이곳을 올라 가려면
힘이 들어 돌아 가기도 했다.
선생님들은 이곳으로 오지 말고
정문을 이용하라고 했지만
돌아가려니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
이곳을 이용 했던 추억이 있다.
덕소초 병설 유치원이 있다.
저 놀이터가 그들을 위한 것이다.
그전에는 원물분교, 팔당분교가 있었는 데
우리 위에는 같이 졸업을 했지만
우리때부터는 각자 학교에서 졸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기수는 인원이 적은 편이다.
세상 좋아졌다.
운동장에 조명시설을 해 두어 야간에도
지역사람들이 운동을 할 수있게 해 두었다.
시예산으로 인조잔디를 설치 하려 했는 데
그만 학교에서 반대헤서 이것은 못했는 데
아쉬움이 있다.
요즘은 달밤에 체조하는 것이 아니다.
불키고 축구한다.
학교 정문
참 많이도 바뀐다.
저 모습은 그래도 오래가고 있으니
전통이 되었으면 한다.
한때는 교문 안쪽에다가
화단을 만들고 비석도 세우고 헸었는 데
결국은 철거해 버렸다.
학교 정문에서 왼쪽이다.
저기 농협자리가 옛날 상복이네 집터였다.
우리가 다닐 때에는 강남부동산자리부터
정문 까지는 아무것도 없었다.
학교 정문 앞
있지못할 장소다.
상하이 튀위스트를 추던 곳이 아니다.
순희미용실자리가 그 옛날 만화가계자리다.
그리고 그 왼쪽으로 뽑기도 있었고
문방구 , 가계도 있었다.
그 아래는 후배집이고 그아래는 종진네 집이 있었다.
만화방아저씨 다리를 절었고
그 어머니는 당시 할머니 옛다.
기억난다.
우리가 학교 다닐때 가방이 없어
보자기에 책을 싸고 어깨에 메던 시절
비가 오면 보자기를 옷 속으로 집어넣고 뛰어서
집으로 가던 시절
배가고파 무나 가지를 뽑아 먹으면
속이 쓰려 힘들었던 어린 시절
학교에서 기성회비인가
하여간
돈 내라면 선생님도 무서웠지만
이게 더 무서웠다.
도시락대신 학교에서
강냉이죽을 주어 먹었던 시절
겨울이면 솔방울을 해 와야 했고
봄이면 개울가서 돌맹이를 주어다가
환경미화를 했고
가을이면 퇴비를 했고
친구들 머리에는 하얀 이가 있었고
석회라는 것도 있었고
누런 코를 좀 딱고 다니지
코를 흘리며 다니던 친구도 있었다.
그래도 가을이면 운동회
그때가 좋았지
어려웠지만
이게 다 학교라는 교육기관, 공동체가
있어서 오늘날 이렇게 발전이 되었다 볼수 있다.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고 친구도 있고
지역사회를 이끌어주고 만들어준 학교
덕소초등학교는 덕소의 제일가는 명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