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매 낙찰가 500원에 팔린 건물을 1만 2천원에 매입해서 조계사 대웅전을 지은 이야기
증산교의 교조 강일순은 제자인 차경석에게 예언같은 말을 하였다.
너는 집을 크게 짓지마라.그러면 네가 죽게 된다.
운명을 거스리듯 차경석은 1925년 1월부터 보천교의 중심 궁전인 십일전을 짓기 시작했다.진사년에 성인이 출현한다는 정감록의 예언에 따라 새로 지은 궁전에서 천자로 등극할 계획이었다.
1919년 당시 보천교의 간부진만 해도 557.500명 이었다고 하니 교세를 짐작할수 있다.
정읍에 세워진 십일전은 당시 조선에서 가장 큰 건물이었다.1만여평의 부지에 보천교의 성전인 궁궐을 짓고 정전인 십일전은 근정전의 두배나 크고 화려하였다.
목재는 백두산 근처에서 베어왔고 조선 팔도의 석재를 모아왔다.십일은 흙토土자.를 파자한 것이니 이 땅의 주인이 머문다는 뜻이다.
5년간의 역사끝에 십일전 성전이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을 세상에 드러내었다.일제는 십일전 건축이 완성되자 순사들을 출동시켜 출입을 봉쇄시켰다.
보천교와 관련된 인사는 수시로 체포하였다.보천교의 자금흐름과 독립단체 지원을 문제삼았다.
관제언론은 보천교를 믿는 민중을 시대에 뒤떨어진 무지한 민중으로 몰아갔고 사교집단으로 매도했다.
일제의 이간책은 결국 성공했다.핵심인원을 매수하여 내분을 일으키게 하였다.한편으로는 차경석에대한 암살도 시도 되었다.
근대 우리 독재정권들이 독립투사들과 민주인사들을 탄압하고 반대세력을 무력화 시키는 방법은 일제에게 배운것이다.
보천교 교주이며 새시대의 천자를 꿈꾸었던 차경석은 공들여 지은 십일전에 들어가 보지도 못한채 홧병으로 죽는다.
1936년 3월 10일 57세이다.차경석의 아들은 빨치산 토벌대장으로 유명한 차일혁 총경이며 손자는 구명시식으로 유명한 차길진 법사이다.
그는 할아버지 차경석의 영혼을 몸주로 모신다고 하였다.
일제는 보천교 재산처리위원회라는 유령단체를 만들어 재산 포기각서를 받아 낸뒤에 십일전에 대한 경매에 들어갔다.
어느 누구도 경매에 응하지 않아 경매가는 500원에 낙찰되었다.그당시 십일전 건축비용은 150만원이 들어갔다.이렇게 경매로 넘어간 보천교 십일전이 제 삼자를 통하여 불교계로 들어 오니 이때가 1937년이었다.
불교계는 1937년 3월 십일전 건물을 답사하고 경매 낙찰자 에도 초오지로오 와의 매입계약을 체결하여 대금으로 12000원을 지불하였다.
십일전 건물은 오백원에 경매됐다가 불교계에서 12000원에 다시 매입한 것이다.
이어 두 달간 건물 해체공사를 마친 후에 정읍에서 서울로 운반하였다.1938년 7월 27일에 기공하여 그해 10월 12일에 상량식을 올리고 11월 26일 해체이전공사를 완료하였다.
그리고 1938년 10월 25일 대웅전 낙성 봉불식을 거행하였다.
대한불교 조계종 총본산 조계사 대웅전은 이같은 역사를 품고 있다.
조계사 문살장엄조각이나 단청을 보면 일반사찰하고는 다른것도 그 때문이다.
조계사 참배할때는 우리 근대 역사도 함께 보기를 바란다
사진 1번.현재 조계사 대웅전이다.
사진 2번 정읍에 있던 보천교 십일전 건물이다.
사진 3번 십일전 건물을 해체하여 조계사 대웅전을 올리는 모습이다.
/석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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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사 대웅전 문살장엄조각과 단청이 다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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