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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예언연구회 원문보기 글쓴이: 박용진
이글은 저희 개혁운동IMS 00 교회 허선희님의 글을
저가 대신 이곳에 올리는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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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재림신자와 안식일 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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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우리 조선족 사람들에게 알바천국이다. 더우기 빚진사람에게는 도피성이며 가난에 쪼들리는 사람들에게는 빈궁을 해결하는 구원의 방주이다. 기회가 없었거나 능력이 부족하여 학력을 따지 못했거나 취직을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또는 평생 농사만 해온 사람이였을 지라도 의지가 있고 부지런하기만 하면 젊은이든지 늙은이든지 연령에 따라 어떤 일거리든지 찾을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 알바를 해서 얻는 수입이 대학교교수나 병원수술의사나 국가 공무원이나 소자본투자운영자들 못지 않아서 굉장히 자부심을 얻게 되는 곳이다. 서빙이나 배달, 현장일만 해도 10여년 지나면 한국에 아담한 전세집하나 챙겨놓고 중국에 근사한 아파트 두채 사놓고 자녀를 좋은 대학 공부시킨다. 그래서 중국에 좋은 직장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한국에 와서 돈을 벌고 있다. 머리 좋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밑천을 마련하고 무역이나 부동산투기를 해서 떼돈을 벌기도 했다.
나는 남편을 따라 2년전에 한국에 왔다. 친정집과 시집편사람들만도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 수십명��� 되였다. 모두들 열심히 일을 하고 있었으며 서로 만나고 싶어도 시간이 없었다. 중화요리음식점을 한다 맛사지샵을 한다 옷가게를 한다 정신없이 보냈다. 고생스러워 하면서도 돈을 벌었다는 것 때문에 보람을 느끼고 있었다.
마침 내 동생집이 비여있어서 우리 부부는 잠시 거기서 살게 되였다. 남편은 아침 일찍 근처에 있는 인력 회사에 나가서 일자리 얻어 일하고는 저녁 늦게 들어오면서 일당을 벌어들였다. 30만 정도 모아지면 저금을 하였는데 흐뭇해 하였다. 집에 올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연양갱이나 과일따위를 사들고 들어왔다. 동생도 나에게 용돈도 주고 필요한 것을 갖다주었다. 내가 벌어서 다른 사람을 먹여주고 도와주고 할때엔 편하고 뿌듯했으나 다른 사람의 것을 받아 먹으면서 산다는 것이 불안하고 미안스러웠다. 나도 빨리 이 생소한 환경을 극복하고 일자리를 얻어서 내몫을 해야 했다.
누군가가 귀띰해주어서 나는 남편보고 벼룩시장 신문을 갖다달라고 했다. 남편은 한아름 갖다 주었다. 구직정보가 꽉 차 있었다. 나는 내 취향과 힘에 알맞은 일자리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전화를 해보았더니 한국에 온지 얼마되였는가 묻기에 나는 곧이곧대로 얼마되지 않았다고 했는데 6개월 후에 보자 하거나 2년후에 보자고 했다. 기다릴수는 없는 일이여서 다시 벼룩시장을 열심히 훑어보았다. 집근체에 있는 직업소개소를 하나 발견했다. 전화를 해서 찾아갔더니 인상이 좋으신 선배님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교포들의 요람이었다. 이름을 올리고 회비를 내면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그곳을 통하여 우리 교포언니들이 매일 일하여 7만원벌어서는 5천원은 소개소에 납부하고 나머지는 챙기면서 즐겁게 일을 하고 있었다. 경험이 많은 소장언니는 체력이 약한 나에게 작은 음식점인 “본죽”집주방도우미로 소개해주었다. 나는 우선 토요일에 쉬고 일요일에 일할수 있는가고 물어보았다. 사장과 연락하더니 수락하는 것이였다. 나는 기쁜 심정으로 이튿날부터 “본죽”집에서 일을 하게 되였다. 그런데 금요일이 문제였다. 저녁10시에 퇴근인데 안식일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셋째천사의 기별을 받아서 지금까지 예비일의무에 충실해온터다. 금요일에는 애도 학교에서 한시간 보지 말고 집에 오도록 했다. 애와 함께 일몰예배를 꼭 드려왔다. 나는 사장에게 사연을 말하면서 금요일 일찍 퇴근시켜달라고 했는데 제일 손님이 많은 주말에 그렇게 할수 없다고 했다. 나는 할 수 없이 그 음식점을 나오고 말았다. 이튿날 직업소개소에 찾아갔더니 소장은 여전히 다른 직업을 나에게 소개해 주면서 가서 사장과 토요일 문제를 의논하라고 했다. 갔더니 양말에 상표를 붙이는 일을 하는 공장이였다.
일은 너무 맘에 들었으나 거기는 토요일에 일하고 일요일에 휴식하는 곳이었다. 그래서 이틀 일하고 나오고 말았다. 나는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이 지혜가 아님을 느꼈다. 내가 가지 말아야 할 곳을 찾아갔으므로 오히려 상대방에게 시끄러움을 끼치고 있었다. 나는 나의 무지를 하나님께 사과하고 어리석게 처신하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본죽”집 사장은 나를 잊지 않고 일요일 알바로 자주 불러주었다. 나에게 우호적이였던 젊은 부부가 고맙기만 하다.
격일제로 일하는 어떤 노인요양병원에 취직하게 되였다. 소개소의 소장은 교포환영이라면서 잘 대해주었다. 토요일 휴식을 요구했더니 짝궁과 의논하라고 했다. 나는 주 7일에서 3��을 내가 하고 4일은 짝궁이 하도록 하고 그대신 금,토는 짝궁이 감당하는것으로 의논했다. 짝궁은 쾌히 승낙했다. 그래서 나는 이 요양병원에서 안식일을 잘 지키며 걱정없이 일하게 되였다. 또 일에 익숙해 지자 대근도 할수 있어서 주 4일 일할때가 많았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양원 운영경험을 미리 주신 것이 너무 감사했다.
나는 노인들을 잘 대해 줄수 있었고 하루 수차 똥오줌을 받아내는 일을 감당할수가 있었다. 한번은 어떤 할머니가 변비에 걸려 크게 신음을 했다. 이불을 열고보니 땅땅 굳은 대변이 항문에 나오려 하다가 들어가기를 반복했다. 변이 너무 굳어 있었고 할머니는 또 힘이 없었다. 나는 하나, 둘, 셋하며 구령을 부르면서 할머니가 힘쓰도록 했다. 몇번 시도했으나 안되였다. 급해난 나는 할머니 귀가에 “하나님께 기도합시다. 저를 따라 하세요” 하면서 “아버지 하나님, 변을 볼수 있는 힘을 주세요”했더니 할머니가 나를 따라서 “하나님이시여, 내게 힘을 주세요”하는 것이였다. 좀 있다가 한무더기 쾌변이 풀어졌다. 할머니는 연신 고맙다고 했다.
솔직이 사치했던 나에게 이런 일을 감당할수 있도록 마음에 능력을 주신 하나님께 크게 감사한다. 이 일을 하는 가운데서 20명되는 간병들과 내가 맡아보는 할머니들과 대화를 하면서 한국말 표달을 조금 배우게 되였다. 일본에 가면 일본말 배워야 하고 미국에 가면 영어를 배워야 하듯이 교포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말 표달을 배우는 것은 기본이다. 한국말표현은 참으로 아름답다. 한국여인들의 청아한 목소리, 부드럽고 친절한 억양, 유창하고 세련되고 재주있는 표현력은 부러운 것이였다.
2개월후에 재림교단에서 운영하는 어떤 요양원에서 조리사를 급구 하는 바람에 나는 교우였던 한 자매의 추천으로 그곳에 취직하게 되였다. 메뉴는 내가 익숙한 것이였고 식재와 설비는 중국보다 훨씬 우월했다. 한국은 참으로 축복받은 나라였다. 나는 그렇게 좋은 환경에서 또 내가 사랑했던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된것으로 인하여 영광을 느꼈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하셨구나 할 정도였다. 원장님과 과장님은 교포인 나를 배려해 주었고 일을 잘할수 있도록 격려해 주었다. 신나게 일을 하던 중 깜짝! 글쎄 함께 일하는 한 분이 내가 하는 일을 하고 싶어했다. 어떻게 할가? 나는 난감했으나 주저하지 않았다.
나는 내가 한국인에게 경쟁대상이 되여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교포로서 한국이 필요하는 일을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처럼 경쟁하고 싸우고 해서는 절대 안된다고 생각한다. 성경에 이삭이 우물을 네번 판 이야기는 얼마나 감동적이였던가! 그리스도인은 바로 그처럼 양보하는 정신, 너그러운 마음을 소유해야 한다고 나는 자신을 단속해 왔었다. 나는 과장을 찾아가서 퇴사를 제출했다. 새 사람이 오기를 기다려서 나는 체면도 서고 수입도 괜찮았던 일을 그만 두었다. 그래도 몇 달동안 얻은 수입은 딸애의 학비와 생활비로 충분했었다. 그후 그곳에 일이 바쁠때엔 알바로 불리워 다녔다. 건강요리를 배워서 그동안 교회에서 봉사했던 것이 필요할 때 직업이 되게 해 주신 하나님께 또 한번 감사드린다.
얼마후에 마을에 작은 물류센터가 섰는데 일군모집을 했다. 너무 좋았던 것은 토요일에 휴식하는 곳이였고 평소에도 일찍 일이 끝났으므로 금요일안식일을 준비하는데 방애가 없었다. 이력서 들고 취직하러 갔더니 나를 포함해서 3명이 합격했다. 상추와 시금치를 포장해서 마트에 넘기는 센터였다. 일이 쉽고 깨끗해서 좋았다,. 열심히 일을 해가던 중 어느 금요일 퇴근무렵 ,갑자기 상사가 와서 물량이 많아져서 잔업 3시간 해야 한다고 했다. 사무실 직원들도 퇴근못하고 모두 나와서 긴장하게 포장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속이 달았다.
돌아가서 안식일을 준비해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가? 그러나 사람의 손이 그렇게 필요한 찰나에 일관성없이 안식일지키러 가겠다는 말을 차마 할수 없었다. 안식일 범하면서 나는 일을 했다. 3시간 동안 나의 마음은 너무 기분이 없었다. 입사시엔 잔업이 없다고 했는데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 앞날이 빤히 보였다. 이 저녁과 마찬가지로 명절때마다 물량이 많아지면 금요일에 잔업하기 마련이였다. 토요일에 휴식하는 회사였으니 말이다. 집에 돌아온 나의 마음은 서글펐다. 사람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하나님을 멀리하다니? 마음속 깊은 데서 반성이 나왔다. 나는 하나님앞에 양심없는 짓을 더는 할수 없었다. 그래서 그 회사를 버리고 나왔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일이 였지만.
그래도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꼭 알맞은 일거리를 줄것이라고 확신하며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다. 기도를 하다가 밖에 나와서 소풍을 하던 중에 뒤집에 사는 한 아줌마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집에서 부업을 하는 분이셨는데 도자기로 된 찬기에 꽃무늬를 붙이는 일을 하고 있었다. 뜻밖에 나를 보더니 가르쳐 줄 테니 같이 하자고 했다. 나는 어정쩡해하다가 따라서 해보았다. 할만했다. 그것이 나의 직업이 되고 말았다. 공장에서 도자기를 집에 갖다주면 작업을 하고 다음 공장에서 실어갔다.
수입이 요양원보다 훨씬 줄어든 일이였으나 안식일을 잘 지킬수 있��� 급한 일이 있으면 손을 놓을수도 있었다. 아무런 부담이 없는 이 일을 나는 감사하게 여기며 열심히 했다. 참 희한했다. 하얀 찬기를 받아서 우선 찌그러진 것, 깨진것, 금이 난 것, 볼록 바늘점, 오목바늘점, 까만점박이, 얼룩진것을 선별해낸 다음 깨끗하고 균형진 그릇에 이쁜 디자인으로 된 전산지를 붙이면 품위가 있는 도자기가 되였다. 꼭 마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실물교훈이였다. 죄가 용서된 마음에 성령이 들어와서 아름답고 순결하고 거룩한 품성이 형성되듯이. 나는 감사한 맘으로 즐겁게 일을 해갔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안식일을 편히 지킬수 있었고 개혁운동을 받아들이게 되였고 모든 집회에 참석했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녹음을 들으면서 일할수 있었는데 “시대의 소망”과 “각 시대의 대쟁투”등 예언의 신들을 들으면서 다시 공부하게 되였다. 그러는 중에 나는 첫째, 둘째, 셋째천사의 기별과의 관계를 드디어 깨닫게 되였다. 과거 우리는 셋째천사의 기별을 깨닫고 지성소에 들어가라를 외쳤지만 들어가는 방법을 몰랐었다. 개혁운동의 진리는 첫째와 둘째천사의 경험을 한 사람만이 셋째천사의 경험을 할수 있다고 가르친다. 즉 지성소에 들어갈수 있다고 한다.
재림선구자들이 윌리암 밀러의 재림기별을 들고 회개하고 거듭나는 경험과 기별을 무시한 교회에서 나오는 경험을 하고 지성소에 계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믿음으로 그곳에 들어갔던 것처럼 오늘날 셋째 천사의 기별로 재림하시는 예수님을 영접하려는 사람들은 거듭나는 경험, 바벨론에서 나오는 경험을 해야 만이 자신을 살펴 회개하고 생각으로도 죄를 짖지 않는 대속죄일의 경험에 동참할수 있었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혼인 문제의 엄숙성을 새삼스레 알게 되였다.. 이 문제에서 투쟁과 아픔을 겪기도 했고 어떤 세절에 대해선 아직 이해를 잘 못하고 있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표준을 높이고 계시며 혼인문제에서 세상과 구별되여야 함을 강조하고 계심을 알게 되였다.
이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절약하는 좋은 습관도 익히게 되였다. 적은 돈이였지만 그것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고 번 돈이였고 십일금과 헌금 어김없이 바친 돈이였다. 나는 나의 헌신이 비록 수자는 적지만 안식일을 범하고 드린 돈보다 하나님께서 더 가치있게 평가하신다고 확신한다. 마치 과부의 동전 두잎을 칭찬하셨던 것처럼.
도자기회사가 경기가 좋지 못했으므로 나는 그 일을 할수 없게 되였다. 또 일자리를 찾아서 인력사무실을 찾아갔다. 큰 물류센터에서 사람을 대량 모집하고 있었다.
나는 금,토는 빼달다고 부탁드리고 안내하는 대로 물류센터에 가서 알바를하게 되였다. 채소와 과일을 저울에 달아 포장해서 이마트에 넘기는 규모가 있고 조건이 우월한 곳이였다. 한국사람뿐아니라 베트남 사람, 몽골사람, 중국사람, 연변사람 다 있었다. 한국은 참으로 표용력이 있는 국가이다. 이 센터는 어떤 사람이든지 차별이 없이 잘 불러 주었다. 그런데 일이 많을 때는 다 불리워 오지만 일이 없을 때는 다 휴식하게 되였다. 공백시간이 문제가 되여서 나는 규칙적으로 일할수 있는 일자리를 찾아 보았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치킨 무김치”만드는 공장에서 알바를 구했다. 작업시간이 아침 8시부터 저녁7시까지 였다 그래서 금, 토는 빼고 알바하면 안되는가고 물었더니 일요일엔 휴식함으로 월,화,수,목 4일 알바하라고 했다. 나는 너무 기뻤다. 안식일을 지키면서 일할수 있으면 그것은 참으로 좋은 직업이니깐. 일요일엔 다른곳에 가서 알바하면 꽤나 규칙적으로 일할 것 같았다.
아,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지금까지 해왔던 일중에서 가장 강도가 센 일이였다. 일자체는 하기 쉬웠으나 1초도 쉬지 않고 돌아가는 기대앞에서 쉼없이 두손을 놀려야 했다. 집에 오니 완전 녹초가 되여 버렸다. 맥없이 저녁예배를 드리는데 마침 년말기도주간이라 간신히 기도문을 읽고 기도한 다음 초저녁부터 잠에 곯아 떨어졌다가 밤중에 깼다. 다시 잠이 오지 않았다. 마음이 쓸쓸해 났다.
언제까지 이렇게 동분서주하며 살아야 하는가?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를 했다. 울상이 되어 나의 의무는 도대체 무엇인가고 시뿌둥해서 하나님께 물었다. 기도를 하는 중에 앗! 나는 자신의 태도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성령께서는 내 마음을 인도하여 너무 놀라운 도리를 깨닫게 하셨다. 글쎄 1차, 2차 세계대전때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투쟁하였던 사람들이 머리에 확 떠 올랐다,. 이어서 왈덴스, 알비젠스 사람들이 참 안식일을 지키기 위하여 산과 계곡에서 고생하며 살았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그러면서 전쟁때의 사람들이나 왈덴스, 알비젠스인들이나 당년에 부딪쳤던 일이 오늘날 내가 안식일 때문에 취직하지 못하고 알바하는 일과 성질이 똑같은 일이라고 마음에 인각되였다. 내 마음은 밝아졌고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금방 이해할수 있었다.
어찌보면 우리는 전쟁과 기근과 온역을 만나지 않고 평화와 번영중에서 영원한 운명을 결정지을수 있다. 성경은 “노아의 때”와 같다고 했고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때에 멸망이 홀연히 임”한다고 했다. 우리가 이 번영하는 시대에서 호의호식 하는 중에 하나님의 인은 어떤이에게는 쳐지고 어떤이에게는 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이 예언의 말씀이 우리들의 주위에서 성취될것이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주님의 안식일을 양심적으로 지키는 자들에게 쳐진다.”* ― 7BC, 980(1897).
“여섯째 날에 안식일을 위해 준비하기를 게을리 하는 사람들과 안식일에 요리하는 자들은 넷째 계명을 범하는 자들이며 이들은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자들이다. “ 영적선물 3권 253페지
돈 때문에 금요일에 직장에 머물러 있거나 안식일에 일하는 재림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인이 쳐질가? 그럴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인을 받기를 원하는 자는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해 투쟁을 해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일요일 휴업령이 내리면 자신은 안식일 교인이므로 반드시 원칙대로 행할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을 받은 자들만이 그때에 참 안식일을 지킬수 있음을 개혁운동의 진리는 가르치고 있다. 얼마나 엄숙한 일인가? 영생의 면류관을 사모하지만 면류관 먼저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얻을수 없다.
한국은 우리 조선족 재림신자들에게 유혹을 주는 나라이다. 취직만 하면 세상적 욕망은 쉽게 성취된다. 그러나 안식일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손해를 입게 되고 헐레벌떡 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안식일을 부분적으로 지키면서도 하나님의 인을 받을수 있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 이것은 스스로 속고 있는 것이다.
나는 우리 조선족 교우들 한테서 슬픈 일을 볼때가 많다. 어떤이는 누구누��는 한국에서 돈벌어서 집 몇채 사고 여차여차 했다고 부러워 한다. 나는 그런 말을 들을 때면 속으로 그것은 안식일을 범하고 번 돈이므로 부러워할것도 칭찬할바도 못된다고 생각되였다. 많은 교우들이 돈을 벌기 위해 안식일에 결석하거나 아예 포기하거나 한다. 금요일은 아예 일하는 날이 되여버렸다.
금요일 의무를 알고 있는 교우들은 비자를 만들기 위해 어쩔수 없었다고 하기도 하며 사장이 자신을 너무 잘 봐준다거다 자신이 그 자리에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이므로 나올수 없었노라고 변명을 한다. 어떤 이유든지 그것은 자신의 계획과 탐욕을 포기하지 못한것이고 하나님을 양심적으로 섬기지 못하고 있는 표현이다. 안식일을 범할지경으로 자신을 부인하지 못하는 사람이 거듭날수 있을가? 거듭남이란 자아에 대한 철저한 부정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어찌 이런 사람을 용서할수 있을가? 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인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주제넘을 것이다.
우리 대열 곧 개혁운동교회안에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될것이다. 개혁운동신자는 우선 안식일문제부터 개혁해야 자격이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개혁운동은 그리스도의 의의 기별을 회복할것을 호소하면서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의가 아니라고 견책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안식일을 범하면서, 자신이 개혁을 하지 않으면서 어찌 개혁을 주장할수 있겠는가? 평화시대에 안식일을 지키지 못하면서 누구는 전쟁때에도 안식일을 지켰노라고 말할수 있을가? 다른 모든 문제에서 개혁을 했을지라도 안식일 문제에서 철저한 개혁을 하지 못했다면 부족함이 있을 것이다. 즉 하나님의 인을 맞을수 없을 것이다.
어떤 교회에 있는가가 중요하긴 하지만 받은 빛에 어떻게 순종하는가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진리는 참으로 사람들에게 엄숙한 문제를 제시하고 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기도를 해야 하며 자신의 연약성을 극복하기 위해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능력이 필요한가!
그토록 말썽이 많았던 시골생활에 관한 빛은 참으로 바른 빛이였음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생업에서 시험을 받을 줄 아시고 피할길을 마련해 주었건만 우리는 그 빛을 의심하고 싫어하고 거절함으로 스스로 환난을 초래하고 말았다
“온 하늘이 네째 계명의 요구를 인정하며, 안식일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안식일에 지켜보고 있는 것이 내게 제시되었다. 천사들은 이 거룩한 제도에 대한 그들의 관심과 큰 존경심을 기록하고 있었다. 철저히 헌신적인 마음으로 주 하나님을 그들의 마음 속에 거룩하게 모신 자들과, 안식일을 최선껏 지킴으로 거룩한 시간을 이용하고자 노력하고 안식일을 즐거운 날이라 칭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자들을 천사들은 특별히 빛과 건강으로 축복하고 있었으며, 특별한 능력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한편,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날의 신성성을 깨닫지 못한 자들에게서 돌아서고 있었으며, 그들의 빛과 힘을 그들에게서 거두고 있었다. 나는 그들이 구름과 실망의 그늘 아래 처하며 자주 슬픔을 당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성령의 결핍을 느꼈다. “ 증언보감 1권 292페지
그렇다. 안식일은 축복의 날이다.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만이 오늘날 우리에게 그토록 소중한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킬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될것이며 우리가 한없이 사모하는 그리스도의 의를 받게 될것이다..
“과거의 경험이 어떠하든지, 그리고 현재의 환경이 아무리 절망��이라 할지라도 연약하고 속절없고 낙담한 현 상태 그대로 예수께 나가면, 우리의 자비하신 구주께서는 멀리서부터 우리를 맞아 당신의 사랑의 팔과 의의 두루마기로 감싸 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품성을 그대로 나타내는 흰 두루마기를 입혀 아버지께 소개시키신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간구하신다. 내가 대신 저 죄인의 자리에 앉았습니다.
제 고집대로 하는 이 자녀를 보지 마시고 나를 보아 주십시오. 사단이 죄를 들추며 우리의 영혼을 크게 대적하고 우리를 자기의 것으로 주장하는 데 반해, 그리스도의 보혈은 더욱 강력하게 호소한다.” 산상보훈 9페지
새벽에 도우시는 하나님께서는 나의 현재의 의무가 힘들게 알바를 할지라도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란 것을 깨닫게 해주셨고 안식일이냐 일요일이냐 하는 그 엄숙한 날에 올바로 설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계심이 느껴졌다. 주님께서는 한국땅에서 나에게 시련을 허락하심으로 믿음을 시험하고 연단하고 계신다고 생각된다.
극기와 희생을 하면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는 것이 주님께 영광된다는 것이 분명히 이해되였다. 나의 마음은 홀가분해 졌다.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가벼워 졌고 주님께서 나를 받아주시고 격려해 주신다는 확신이 갔다. 년말기도주간을 통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주신 것을 감사드린다. 다음의 성경절을 감명깊게 이해하기는 처음이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하박국3:17,18)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자들에게 있어서 현재는 일요일 휴업령이 이르기전에 혹은 잠들기 전에 하나님의 인을 맞느냐 않느냐가 가장 엄숙한 일임이 알려진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하나님의 인은 안식일을 양심적으로 준수한 자들에게, 품성이 그리스도와 같은 자들에게 쳐지게 되며 그들은 십사만사천인에 가입하게 된다. 이 영광스러운 대열에 참가하는 모두가 되자!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합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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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끝
첫댓글 각자마다 경험과 훈련받는 과정이 서로 다르겠지만 ,,,
다시한번 자신을 살펴보게하는 좋은 간증의 글입니다
올려주신 허선희 집사님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