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문학 제24집 수록분(대한기독문인회 2024.10월 21일 발행 인쇄 (주)대한출판)
양계(養鷄) 뒷이야기
시골집 마당에서 닭을 기르고 있다.
이른 봄에 이웃집에서 청계란을 구하고 겸해서 전기부화기까지 빌려다가 병아리를 깠다.
부화기에 청란 40개를 넣고 스물한 날을 보내는 동안, 관리가 서툴러서 절반만 부화(孵化)되었다.
작은 유리창 너머로 알을 깨고 나오는 병아리의 모습을 지켜보며 하나씩 꺼내놓는다.
새생명의 탄생이란 신비감과 기쁨을 동시에 안겨준다.
삐약삐약 노래하는 병아리들을 위해 우선 과일상자에 모이통과 물통을 넣어주고 돌봐주었다.
양계에 무슨 묘미가 있을까마는 재색의 청계 몇 마리를 키우면서 나만의 묘한 재미를 느낀다.
철물점에서 그물망을 사고, 인삼밭에서 철거한 막대를 얻어다가 얼기설기 넓은 닭장을 지었다.
어느새 붉은 벼슬이 제법 번듯한 몇 마리 수탉들의 주도권 쟁탈전이 벌어진다.
매일 후다닥거리며 싸우는 게 눈에 거슬려 수탉을 한 마리만 남겼다.
이젠 능소화 그늘의 닭장에는 수탉 한 마리에 암탉 일곱 마리가 교대로 산란하며 노닐고 있다.
닭장 속 아우성
이쪽 집 수탉이 한 소리 하네
꼬끼오~ 꼬끼오! 나는야
시골 농촌의 홍보대사라네
저쪽 집 수탉이 한마디 받아치네
꼬끼오~ 꼬끼오! 우리는
때와 시간의 전령사라네
암탉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네
꼬꼬댁 꼬꼬 꼬꼬꼬! 우리는
영양 식재료 공급원이라네 -觀-
청주 석교동에서 미영사진관을 운영할 때였다.
동종업자인 김mk는 가까운 이웃으로 이사 와서 사진관을 신장개업, 경쟁자이기도 했다.
그는 사진업으로는 앞날이 밝지 않다고 판단하고 다른 직종을 찾아 나섰다.
당시에 뜨는 일자리로 이민이 가능한 병아리감별사라는 직종이 있었다.
그는 양계장에서 폐기되는 수평아리에 암평아리를 몇 마리 섞어서 한 상자씩 가져온다.
그중에서 암평아리 고르는 연습을 계속하고, 수명이 다할 때쯤이면
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헐값으로 아이들의 코묻은 돈과 바꿨다.
물론 아이들은 살아있는 병아리 인형을 들고, 나는 듯이 집으로 달려갔던 것이다.
결국 병아리감별사 자격을 취득하고 취업이민으로 가족이 모두 미국으로 날아갔다.
손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교문 앞에서 노랑 병아리 몇 마리를 사다가 아파트 베란다에서 키윘다.
점점 자라면서 관리가 어렵게 되니 시골에 있는 내게로 다섯 마리가 입양되었다.
울타리 없이 산비탈에 비를 필할 정도의 잠자리만 만들어 줬어도 곧잘 커서 중닭이 되었다.
말하자면 방목을 했는데,자유롭게 노니는 닭의 모습을 보는 것도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어느날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까치 두 마리가 뒤뜰에서 깍깍거리며 펄쩍펄쩍 뛰는 모습을 보았다.
그 까치발 밑에서는 중닭 한 마리가 힘을 잃고 있었다. 그 후로 까치가 길조라던 생각은 사라져 버렸고,
까치도 닭의 천적이라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무녀도에서 살던 때, 군산 대야 장날에 아내가 배를 타고 나가서 병아리 30마리를 사 왔다.
사택 옆에 닭장을 짓고 잡초나 사료를 먹여 키웠다. 병아리들은 눈에 띄게 무럭무럭 잘 자랐다.
여름철이면 섬을 찾는 귀한 손님들에게 대접할 수 있는 훌륭한 메뉴로 한두 마리씩 제물이 되었다.
때가 되니 닭장 구석에서 암탉들이 알을 품고, 또 때가 되니 노랑 병아리들이 튀어나와 삐약거리며 재롱을 부린다.
‘물 한모금 마시고 하늘 한번 쳐다보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인사 올리고’ 이런 건 항상 실제상황이었다.
병아리들은 어린이들에게 선물이나 상품으로 주면 팔짝팔짝 뛰며 좋아하는 살아있는 인형이었다.
노화를 늦추거나 인지능력 저하를 예방하려면 몸운동과 뇌운동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방법의 하나로 양계(養鷄)를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
닭을 키우면서 느끼는 건 닭들도 먹이를 주거나 정을 주는 이를 알아본다는 거다.
주인의 헛기침 소리에도 반응하는 건 빛의 속도다. 심지어 외출했다 돌아오면 쉬지 않고 꼬꼬 거리면서 반긴다.
정서적으로 외로움을 타는 이들에게도 유익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이나 모이를 챙겨주는 일, 닭장 청소나 잡초를 뜯어다 먹이는 일이 모두 몸운동 머리운동이 되는 일이다.
잡식성인 닭에게는 버리는 음식물도 있을 수 없다. 매일 닭장에서 청계란을 챙겨오는 즐거움을 나만 아는 건 아니겠지?
양계(養鷄)를 통해서 건강도 챙기고 달걀도 챙기게 되니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고’ 아닌가! -觀-
첫댓글 저도 청천에 들어와서 처음 한 소일거리가 토종닭을 기르던 것이 기억나네요.
네 마리고 시작했는데 셀 수 있는 숫자로도 저절로 150마리가 넘도록 늘어나더니.... 어느날 부터 족제비와 와서 점점 줄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