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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역사정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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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스크랩 문제는 화력이다.
신으로 추천 0 조회 308 14.08.09 05: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http://todayhumor.com/?humorbest_928288





우리들의 영원한 스타이신 성웅 이순신 장군의 극적인 대첩, 명량 해전이 영화화되어 극장가에 돌풍을 불어일으키고 있지요? 
전 조금 실망했답니다. 정말 고증에 충실한 묘사였다면 일본 수군은  대장선 하나에 뚜들겨 맞는 먼치킨적인 싸움이 되었을테니까요. 
하지만 영화에서는 극적인 요소를 넣기 위하여 백병전을 집어넣은 듯 한데, 이게 너무 과했다고 봅니다. 
물론 그 상황에서 일본 수군 함선이 안달라붙을 리가 없었겠지만, 
판옥선보다 작은 일본 수군 함선이 접현을 시도하여 건너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인데다, 
설령 달라붙는다 치더라도 튼튼한 판옥선에 빈약한 일본 수군 배는 찌그러지거나, 
올라타는 도중 조선 수군이 쏘아대는 화살과 휘두르는 장병겸, 낙석 세례가 퍼부어지기 때문에 공략은 매우 힘들지요. 
영화에서도 백병전을 차라리 이런 묘사로 했다면 정말 좋지 않았을까 합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조선 수군은 눈부신 활약을 보여주었는데, 
조선 수군은 근대 해군들처럼 튼튼한 선박과 함포를 바탕으로 한 전술로 일본 수군을 압도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점이 있습니다. 바로 함포입니다. 왜 함포가 문제가 되느냐고요?




동양이든 서양이든 이러한 네모난 상자모양 형식의 포가에 대포를 올려놓고 쏘았다는 것이 공통점이라면 공통점입니다. 
그리고 또다른 두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명중률과 포탄이지요.
 
지금처럼 대포 쏠 때 컴퓨터가 탄도를 계산해주고 레이더로 적을 포착하는게 아닌, 오로지 인력 즉 사람의 힘에 의존해야했습니다. 
육안으로 적을 식별하고 대충 각도 계산해서 쏴야했지요. 그런데 이게 아무리 계산한다고 해도 대포가 다 맞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같은 컴퓨터 시대에도 오류가 나고 편차가 나는데 옛날에는 더했겠지요? 
그래서 육상이든 해상이든 포대는 일제사격보단 순차 사격으로 일정한 탄착군을 확인해가며 
포탄을 어떻게 쏘면 목표에 잘 도달하겠구나라며 각도를 계산하고 짐작하며 명중률을 높이는 방식을 썼습니다.
 
그나마 육상에서는 포대가 지면에 고정이 되어있다지만 해상은 그렇지 않아도 흔들리는 바다 위에서 지랄맞는 명중률을 자랑하는 
대포로 적을 제압해야하니 그 명중률은 극악이었겠지요? 
때문에 어느정도 근접 거리를 확보하여 함포를 쏴대며 명중률을 높이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함포의 사격법도 어느 정도 차이가 존재하였는데, 함포를 실은 현수가 바다 쪽을 향할 때에 사격하는 방법 아니면 
파도에 의해 현수가 치켜 올랐을 때 사격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전자는 확실하게 적선을 난타하는 것으로 세계를 재패하던 영국 해군이 주로 쓰던 방법이고, 
후자는 적의 돛대나 돛, 상부 갑판쪽을 노려 제압하여 함선을 무력화시키는 방식으로 프랑스 해군이 주로 쓰던 방법이었습니다. 
어느 쪽이던 간에 명중률과 제압효과를 높이기 위해 창안된 방법이었지요. 
조선 수군 같은 경우 어떤 방식을 썼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역시 효율적인 방법을 구사했겠지요?
 
또한 포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두 쇳덩이나 돌덩이를 쏘아 날려보내는 방식이었습니다. 
근대 말에 이르러 충격신관을 이용한 작렬탄이 도입되기 전까지, 동서양 대포에는 쇳덩이나 돌덩이가 포탄으로 사용되었고, 
이 쇳덩이와 돌덩이들은 육상과 해상을 막론하고 목표를 때려부수곤 했습니다. 
때문에 얼마나 더 무거운 쇳덩이와 돌덩이가 쓰이느냐, 얼마나 더 많이 이 쇳덩이와 돌덩이를 퍼붓느냐가 문제였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들 중 하나인 마스터 앤드 커맨더는 이런 근대 해전 즉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해전을 묘사한 소설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잭 오브리 함장은 소설에서 해군 본부가 신형함 인수 및 운용을 명령하자 조금 고민을 하게 됩니다. 
신형함은 기존 해군의 주력포 대신 단거리 32파운드 포를 써서 사거리가 매우 짧아 교전시 불리 하지 않을 까 고민한 것이지요. 
물론 명중률이 지극히 낮았다던 당시 함포라지만 그래도 숙련된 포수가 목표를 향해 탄착군을 잘 형성하고 쏘아대면 
그냥 얻어맞는 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잭 오브리는 역시 남자였던 지라 사거리보단 화력을 선택합니다. 
기존 주력포는 사거리는 우위에 있었으나 같은 함포 수로 비교하더라도 단거리 32 파운드 포가 훨씬 더 많은 화력, 
즉 무겁고 위력적인 쇳덩이를 날려보낼 수 있으니까요.
 
같은 포문 수라고 하더라도 24파운드 X 30문이면 720 파운드, 32파운드 X 30문이면 960파운드, 무려 240파운드나 차이가 나게 되지요. 
더 무겁고 위력적인 쇳덩이를 적선에 퍼부어 침몰시킬 수 있으니 잭 오브리는 화력으로 승부를 보겠다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물론 사거리에서 차이가 나니 유효 사거리에 접근할 때까지는 오로지 함장과 장교들의 기량으로 배를 잘 지휘하여 
피해를 최소화 시키면서 적선을 향해 접근해야겠지만요.
 
이런 쇳덩이를 날려보내는 대포들은 이제 충격신관이 도입된 작렬탄이 등장하면서 그 화력이 매우 화려해집니다만, 
이 함포들을 실은 배들은.....


이렇게 선체에 철갑을 두른 철갑선이었던지라 오히려 화포로 때려부수기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 옵니다. 

화포를 쏴도 배가 격침되지가 않아!!!

 
그래서 제독과 함장들은 적선을 때려부수기 위한 수단으로 충각 전술을 시도하게 되죠!!! 뭐?!?!?!
 
오스트리아 제국과 이탈리아 왕국 간에 벌어졌던 리사 해전에서, 양측 모두 철갑선을 가지고 있었고 이 철갑선들은 언급했다시피 
함포를 죽어라 쏴대도 격침되지 않았기에 오스트리아 해군은 말 그대로 이탈리아 해군 함선을 들이받아 제압하는 수단을 씁니다....... 
더 골 때리는 것은 이 전술이 어느 정도 효과적이었다는 것과, 이 전술을 사용한 오스트리아 해군이 승리했다는 점...... 
그리고 세계 각국 해군은 이걸 보고 진지하게 충각 전술을 고민하고 연구했다는 것이지요. (그만해 이 미친놈들아....)

어떻게든 적선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기 위하여 등장한 무기들과 전술.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보여준 조선수군의 눈부신 활약상은 나름대로 조선 수군이 왜구들과 싸워오며 쌓은 전술감각과 노하우가 
그 정수를 이루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구축되었기에 가능한게 아니었나 싶습니다.



글 잼있게 잘 읽었습니다.
요새 명량 덕분에 해전에 관한 글들이 많은데...
저는 요런게 궁금하더라구요.

1. 척당 돌덩이나 쇳덩이를 도대체 얼마나 싣고 다녀야 했을까..
명중률이 좋지 않으니, 그냥 바다로 빠져버리는 탄의 양이 많았을 텐데...
만약 다 써버린다면, 그 다음 계책은? 재보급?

2. 육전에서 현대식 포탄, 일정시간 후에 터지는,이 사용되었다는 글을 보았는데요.
왜놈들이 일반 쇳덩인 줄 알고 가지고 놀다가 터져서 많은 살상이 있었다는..
해전에는 요걸 사용하지 않았을까요?
첨언을 하나 해보자면 조선 시대 수군 훈련 규정을 담은 수조규식에 따르자면 보통 우리가 총통이라 하는 대, 중 총통의 최초 사격거리는 200보, 조총은 100보, 활은 90보입니다, 실제 육상의 사거리의 1/5~1/10에 해당될 정도로 매우 짧게 잡은 교전거리인데 이는 해상 사격시 롤링, 피칭 등 선체 동요 현상에 따른 것으로 동요 현상에 따른 오차 범위의 증가로 사거리는 비약적으로 짧아질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론적으로 조총의 유효 사거리 50m 밖을 유지하며 전투를 지속적으로 펼칠수 있다면 매우 이상적인 상황이겠습니다만 피차 서로 이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그 것은 불가능한게 현실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총통의 사각 제한으로 인한 세키부네 등 적선의 접현 내지 접급시에 발생하는 화력의 공백도 무시할수 없겠지요.

즉 조선 수군의 전투라는 것이 비단 화력전에 기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조선 수군이 직사 사격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앞서 언급한 수조규식에 나와있듯 '타수가 배를 조종해 주위를 돌며 선회하여 각 장소에 설치된 화약무기로 적을 향해 일제 사격한다'는 말 처럼 재장전에 매우 긴 시간이 소요될수 밖에 없는 조선군의 대형 화기의 약점을 보완하여 연속사격이 가능하도록 한 그러니까 경우에 따라 배를 선회하면서 현측을 개방해 집중사격을 가하도록한 전술이 존재합니다,

즉 전투가 시작된 초반에는 진형을 유지하면서 선수 포문으로 사격하며 전진하고 중반 이후부터는 진형에 큰 구애를 받지 않고 선회하면서 선수, 선미 양 측현의 네 방향에서 포격을 가한다는 말인데, 대개의 전투가 이러한 이상적인 상황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라는게 문제이지요.

여타의 기록에서 확인할수 있지만 대개의 해전에서는 그러한 포격으로만 전투가 그치는게 아니라 십중팔구 접현한 적과 부딪혀야 했습니다.
11// 언급하신대로 화포가 모든걸 결정하는 것은 아니기에 여러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겁니다. 그에 대비해서 백병전용 무기들을 장비했을 것이며, 또한 접현한 적에게 승선을 허용하여 판옥선을 빼앗기기도 했으니까요. 노량해전에서 진린 제독 휘하의 장수 등자룡이 판옥선을 타고 전투를 치루다 승선을 허용하는 바람에 전멸하는 일도 있었으니....

근대 해전에서 많은 전투를 치루었던 영국 해군 역시 적선과 교전하여 화력을 투사하기도 하지만 접현하여 승선 뒤 백병전을 벌여 배를 탈취하기도 하였으니까요. 영국 해군 뿐만 아니라 타국 해군도 그러한 과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111// 아마 어느정도의 포탄은 적재하고 있었겠으나, 모두 다 써버리면 항구로 가서 다시 재보급을 하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은 없었으리라 봅니다. 적절한 화력 투사 이후 접현하여 백병전을 통해 승선하여 적선을 나포하는 방식도 쓰였겠지요.

해전에서, 임진왜란 당시의 해전에서도 언급하신 터지는 포탄 즉 비격진천뢰가 쓰였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 비격진천뢰라는 물건이 상당히 비싼데다가 제조도 어렵고 불안정한 무기입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국가들도 이러한 형식의 포탄을 쓰기는 하였는데 이런 포탄은 심지에 불을 붙인 뒤 대포로 쏴서 날려보냈지요. 그래서 심지 조절을 잘못하면 그냥 주옥되는 수가 있어서 꺼려하기도 했답니다.

프랑스 해군 같은 경우 배나 요새 안에 용광로를 두어 포탄을 달군 뒤 대포에 장전하고 쏘아서 피해를 극대화시키는 방법을 쓰기도 했답니다.
Noble6 님.. 사례로 드신 영국 해군이나 근대의 여타 다른 해군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사실상 접현 상태 아니 근접한 상황에서 직사 사격을 할만한 동일한 높이의 함선이 드물었기에 다분히 개인의 화력을 중시할수 밖에 없었던 점이겠지요, 물론 화포의 하향 사격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문제이고 말입니다.

혹여나 오해의 소지가 있어 덧붙이자면 그래서 근대 해군의 개인 화력이 천시되었다 그런 말은 아닙니다.; 다만 접현하여 벌이는 백병전이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가의 여부에서 차이가 있다는 말입니다.
참고

조선 수군의 판옥선은 쇠못 없이 나무를 짜맞춰 건조했기 때문에 내구성이 좋아 대포를 무리 없이 쓸 수 있었습니다.
그에 반해 쇠못을 사용해 녹이 슬면 내구성이 떨어지던 일본 수군은 대포 사용이 제한적이었죠.
남해바다 가보면 수많은 섬이 미로처럼 있어서

지키는 쪽이 절대유리
뭐.........영화상의 극적효과를 위해 백병전을 집어넣었지만 실상은.....백병전은 없었을거라는게 정설이죠.

그 근거로 명량대첩을 직접 지휘한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에 보면 명량대첩으로 인한 아군의 피해는 사망자가 1명밖에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백병전에서 사망자 1....말이 안되죠.
12대 200배 숫자는 전투병의 숫자차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백병전은 없었을겁니다.

배 숫자가 정확하지 않더라도 큰 숫자 차이가 있었다고 하니, 이유를 불문하고 백병전이 벌어졌으면 졌을겁니다. 지속적인 전투는 불가능하니까요.
1 있었습니다 거제현령의 배가 왜선들에 둘러쌓여 백병전으로 다굴당하니 대장선이 돌격하여 구출했다는 기록이 버젓이 있습니다 이때 대장선은 백병전까진 아니더라도 최소한 초 근접전을 벌였을 거라고 유추할 수 있습니다
아는대로 써보자면
일본에서 해전의 개념은 배끼리 만나게 한다음에 상대방 배에 올라타서 칼싸움하는거 였음
그리고 사무라이들이 칼싸움도 잘하기때문에 조선입장에서는 배에 올라타서 싸우는건 피해야 했음

1. 유리한 지형으로 유인한다
2. 기다리고 있다가 포로 다굴
3. 일본 배보다는 튼튼한 판옥선or거북선 이용하여 일본 배에 박치기
4. 바다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는애들, 배 돌려서 도망가는애들 활로쏘면서 마무리

물론 일본쪽이 숫적으로 한참 우위라서 한두척은 가까이 와서 원하는대로 전투를 했을지는 모르겠는데
정말 쟤네입장에선 망한거죠.
가까이 가서 싸우고 싶어서 따라갔더니 여긴어딘지도 모르겠고 어디 멀리서 배가 대포쏴서 배에 난리나고
영문도 모르고 계속 쳐맞다가 갑자기 박치기당함
이쯤되면 칠천량해전에서 왜 질수 있었는지가 더 궁금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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