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신가요, 여러분?
이번 달도 슬슬 끝이 보이네요. 제가 기자로 활동하는 간행물의 취재 시기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우씨, 3월호 끝낸 지가 문자 그대로 엊그제인데, 벌써부터 4월 원고 마감을 쳐야 하는 때가 코앞이라니!
참고로 어제부터 기안을 쓰는 데 매달리고 있습니다. 요컨대 소재 발굴이죠.
이게 아주 미치는 작업인데, 분명 오늘 하루도 죄다 인터넷 검색과 문서 작성으로 보낼 게 뻔합니다.
조만간 바빠질 테니, 얼른 감상문을 하나 올리려고 합니다.
도서명: 별이 되다 전 10권
저자: 바람꽃잎
* 이 작품은 넓은마을 동호회의 장르문학을 즐기는 모임에서 읽은 책입니다. 그 동호회는 규칙적으로 감상이나 게시글 등으로 활동해야 하는 곳입니다. 작품 파일의 유출을 금하는 모임입니다.
PS. 현재 2021년 시점에서 시각장애인 재활 웹사이트 아이프리 전자도서관에 4권까지 데이지도서로 제작된 상황입니다. 독서에 참고하시길.
* 소개글 서평
이 책을 다운받은 건 업무에서 탈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였다. 집에서 교정을 봐야 하는 잔업 현실에 지쳤고, 토요일과 일요일을 반납해도 이따금 위에서 내려오는 독촉 전화가 싫었고, 다른 업무는 고려하지 않는 것 같은 상사의 무심한 말에 속이 상하는 내가 한심해 보이던 때, 열이 받아서 화낌에, 또 바쁘니까 겸사겸사 야근을 하는 스스로가 기가 막히던..... 한마디로 그냥 ‘힐링’할 읽을거리가 필요한 시기였던 거다.
사실 ‘별이 되다’라는 제목에서 ‘별’이라는 단어가 유난히도 귀에 콕 박혔던 것 같다. 심리 테스트에서 ‘엄마, 별, 노래’ 등의 단어를 고르는 걸로 현재의 심리 상태를 진단하는 내용이 있었는데, 거기서 별은 외로움이나 우울함을 나타낸다고 나왔었다. 내 심리 상태가 어떤지 알 만하다. ‘별’ 하나에 홀려서 곧장 다운받았기 때문에 ‘별이 되다’가 연예계 소설이라는 것도 파일을 열고 나서야 알았다. 덧붙여 이런 연예계 관련 작품 독서는 이게 처음이다.
“이래서 내가 그렇게나 연예인이 되고 싶어 했나?”
일단 프롤로그는 다소 식상한 면이 없지 않다. 초월자 신이 등장하고, 그의 아들 예술을 관장하는 신이 나온다. 그러나 성서에서 인간을 못마땅하게 여겨 타락한 천사처럼 예술의 신도 인간을 보는 시선이 호의적이지 않다. 결국 무식한 그들에게 예술은 분에 넘치는 것이라 항변해 아버지의 노여움을 샀고, 1000번이라는 생을 거듭하며 깨우치라는 벌을 받는다. 여기까지만 보고 판타지 소설인가 했었다. 그 왜 있지 않은가. 주인공 혼자 시원하게 다 아작내고 나가는 류의 그런 소설 말이다. 그것도 다른 차원이나 세계 같은 데서.
하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은 현대 지구에서 펼쳐진다. 그 주인공은 23살 청년 채우진, 그는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정말 갑자기 ‘예인’으로 살았던 999번의 전생을 자각한다.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머리를 어디에 세게 부딪혔거나, 감전 같은 거 당하지도 않았다. 그냥 자고 일어났더니 그렇게 되었다. 여기서 예인이라 함은 모든 예술 분야 직업인을 의미한다. 작가, 음악가, 화가, 가수, 소리꾼, 안무가 등. 그리고 예인으로서의 전생을 깨닫고 인생의 전환점을 맞은 채우진은 뜻밖에 주어진 재능을 살려서 연기자의 길에 도전하게 된다. 원래 아이돌 연습생이었지만 회사와 트러블이 생겨 그만뒀던 그는 제대하기 전, 휴가 나와서 무작정 본 오디션에 통과한 일을 계기로 영화에 뛰어들게 되고, 자신의 특별한 기량(?)을 적극 어필해 고작 2신 나온 단역에서 영화 주인공보다 더 주인공스러운 ‘이름없는 그분’으로 부상하게 된다.
자타공인 국민 미남도 평범하게 만드는 외모, 조연이지만 주연 아닌가 의심하게 되는 뛰어난 연기력, 각종 예능 분야에서 못하는 것이 없는 엄친아. 그는 과연 어떤 스타가 될까?
“우리의 옆에서, 우리와 함께 걸어가는 이 아름답고 찬란한 별의 존재를.”
이 소설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대사를 발췌한 것이다. 이것만 봐도 결판은 났다. 떡하니 결론부터 내놓아서 그렇기는 하지만, 자고로 작품에서 중요한 건 과정인 법이다. 주인공이 성공했다는 마침표는 누구나 안다. 문제는 어떻게 어떤 과정을 거쳐서 해피앤딩을 마지했느냐가 아니겠는가.
배경이 현대지만 판타지 소설답게 주인공은 역시 주인공이었다. 어지간한 위기로는 꿈쩍도 안 한다. 이런 점에서 캐릭터가 온갖 수난과 고난을 겪으며 성장하는 국면을 좋아하는 독자에게는 감점 요인이 될 수 있다. 솔직히 999번의 생을 기억하고 있으니 다른 평범한 사람들보다 경험이 풍부할 수밖에 없다. 나름대로 주인공의 활약을 뒷받침하는 개연성 확보인 셈이다. 또 이 소설의 매력은 따로 있다.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의 감상 포인트를 ‘패키지’라고 부른다. 한 작품 속에 여러 개의 작품이 녹아들어 있기 때문에 지은 별칭이다. 본격적으로 주인공이 전생의 이점을 살려 연기를 시작하면서부터 ‘별이 되다’의 감상 포인트가 열린다. 사회파 서스펜스 영화 ‘Death hill’, 킬러가 등장하는 드라마 ‘그림자의 도시’, 잡지 화보 모델, 피아노가 등장하는 커피 광고 CF, 사극 영화 ‘붉을 적’, 게임 요소가 잔뜩 들어가서 연기하는 배우가 민망할 것 같은 통신사 광고, 판타지에 약간의 공포 요소가 가미된 영화 ‘백의 고백’, 노래 경연 TV 프로그램 ‘가면의 가왕’ 등. 소설 한 작품 읽었을 뿐인데, 다양한 장르의 작품까지 덩달아 감상이 가능하다. 글로 영화와 드라마를 보는 셈이라 더욱 이해가 잘 되었다. 이 부분에서 소설 ‘별이 되다’를 읽으며 수지맞은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스크린이나 TV로 시청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영상 매체가 영 시큰둥하다. 무엇보다 안 보는 버릇하니 이해 감도가 떨어져서 말이다.
특히 연기를 위해 배역을 분석하고 고찰하는 대목이 제법 흥미로웠다. 사채업자 A가 왜 이런 행동을 했는가, 찌질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차현승 캐릭터를 어떻게 매력적으로 표현하면서 작품의 퀄리티를 높일 것인가, 킬러 루이는 어떤 심리 상태를 보여야 하는가 등등. 가장 인상적이었던 대목은 채우진이 명환 대군을 연기할 때의 작면이었다.
여기서 잠시 고백 타임을 갖자면, 나는 ‘명환 대군’이 실존 인물인가, 아니면 가상 인물인가 아리송했다. 궁금해서 인터넷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딱히 검색에 걸리는 게 없다. 조선 시대에 ‘몽유도원도’와 얽힌 안평 대군 이야기만 나왔다. 그러고 보면 둘 다 예술에 몰두한 면이 비슷하다.
여하튼 지금까지도 ‘명환 대군’이 실존 인물인지, 작가가 모티브를 얻어 만든 캐릭터인지 모른다는 거. 그저 인터넷 검색해도 안 뜨니 창작 인물이겠거니 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태종태세문단세 외우기도 바쁜데 내가 대군까지 어떻게 알아. 무엇보다 소설 감상하는 데 별반 중요하지도 않다. 그냥 넘어가자.
어쨌든 이 소설에서는 그 명환 대군이 주인공의 전생 중 하나라는 설정이다. 때문에 채우진은 그 배역을 맡는 것을 꺼린다. 그도 그럴 게 과거의 자신인 명환 대군은 ‘뛰어난 예인’이라는 평가와는 다르게 실제 약간 중2병 스타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이 소설에서는 그렇게 설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주인공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소위 말하는 흑역사인 셈이다. 그러나 시나리오가 너무 잘 빠졌고, 어딘가 끌리기도 해서, 결국은 도전하기로 한다. 그리고 첫 장면부터 NG를 낸다. 허망하게 웃어야 하는 대목인데도 무의식 중에 울고 말았던 것. 영문을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우진에게 윤 감독은 이렇게 말한다.
“느끼는 것과 별개로 보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채우진은 붉을 적에 명환 대군 이후를 연기하면서 과거 자기 자신, 전생의 명환 대군인 이후를 안타까워했던 것이다. 머나먼 시간에서 예술의 신이었던 그는 기본적으로 ‘사랑’이 부족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예술을 사랑하지, 그 예술을 만드는 인간을 애정하지 않는다. 동시에 타인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오직 예외라고 한다면 자신뿐일 것이다. 일종의 자기애가 강하다고 할 수 있겠다. 연기를 위해 심도 있게 분석한 캐릭터도 마찬가지, 그저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했을 따름이다. 그런 일면은 자신의 전생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해는 사랑의 조건 중 하나일 뿐, 이해한다고 해서 사랑하게 되지는 않는다. 만약 누군가에게 애정을 갖게 되었다면, 그 까닭은 아마 그에게 공감했기 때문일 것이다. 애정은, 그리고 사랑은 공감에서 태어난다. 따지자면 비록 전생이라고는 하지만,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동정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동정은 곧 안타까움이고, 그것의 기반은 바로 애정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주인공은 ‘사람’을, 누군가의 ‘삶’을 따뜻하게 보는 시선을 체득하지 않았나 싶다.
또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가 밝고 묘사도 섬세한 편이라 부드럽게 읽힌다. 더불어 군데군데 유머러스한 부분도 적지 않다. 기억에 남는 건 우진이 친구 현민과 함께 전공 과제를 위해 장사를 하는 대목이다. 일정 수익을 남겨야 하지만 인기 절정인 배우기 때문에 얼굴을 보이면 공정성에 위반된다. 때문에 우진은 곰인형 옷을 차려입고 영업을 한다. 그러다 너무 덥고 힘들어서 인형옷을 벗어보겠다고 비누 판매에서 포토북 제작으로 전략을 바꿨으나, 결국에는 인형옷으로 귀결되는 내용이다. 학점에 목숨 걸고 대학 레포트를 하던 때가 떠올라 공감 150%였다.
단지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일종의 ‘팬심’은 좀 과하게 표현된 것 같다. 사실 연예계에 관심이 없어서 특정 대상에게 열광하며 추종하는 마음을 잘 모르겠다. 혹은 내가 아직 그럴 만한 대상을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좌우간 이해의 영역을 벗어났다. 그 가수의 노래가 좋으면 들으면 되지, 왜 굳이 소속사 앞에서 죽치고 기다려야 한단 말인가? 그 배우가 좋으면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되지, 굳이 촬영장을 찾을 이유가 있나? 아무래도 나는 감성을 뛰어넘어 영혼의 뿌리에서부터 팬심 기능 같은 게 탑재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별이 되다’는 그런 대목 빼고는 읽기에 괜찮은 작품이었다. 연예계, 연기를 다루는 소설, 이런 게 싫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도 이 작품을 재미있게 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