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아들(막 15:39)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천천히 죽어가고 계셨습니다. 제삼 시(9시)에 못박히신 예수님이 제구 시(15시)에 죽으셨습니다. 제육 시(12시)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였습니다(33절).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해 오자 세상은 어둠으로 덮혔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예수가 참혹한 고통으로 죽어가는 장면을 차마 눈뜨고 보지 못할 것 같은 하나님의 마음처럼 세상의 빛을 감춘 듯한 침울한 장면이었습니다. 인류의 죄와 심판, 그리고 인류의 구속을 위한 우주적 종말론적 사건임을 상징하는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준비하는 초자연적 현상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구 시에 크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소리 지르셨습니다(34절). 예수님은 죽음의 큰 고통과 하나님의 통치에서 버려지는 듯한 비통함에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가장 숭고한 장면 가운데 하나입니다. 어떤 죽음도 멸시되거나 조롱의 대상이 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을 모함하며 조롱하던 이들(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죽음 앞에서도 인간의 잔인함과 무례함의 민낯을 드러냈습니다. 예수님의 외침을 ‘엘리야를 부른다(35절)’고 조롱하면서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고 비아냥거렸습니다.
예수님이 마침내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셨습니다(37절). 예수님은 인류의 모든 죄악을 방관하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엄중한 죄악의 심판을 담당하시고 죽음의 고통과 참혹함을 당당히 맞이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임박해지며 세상이 어두워졌던 사건과 더불어 또 하나의 사건이 성소에서 일어났습니다. 성소의 지성소를 가리던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38절). 지성소는 언약궤가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의미하던 성스러운 장소이자 일 년에 한 번 하나님과 대제사장이 만나는 공간이었습니다.
천주교의 신부가 고해성사를 받고 성도를 위해서 기도하듯이 구약에서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제사장에게 위임했어야 합니다. 성소의 휘장은 거룩한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위임의 필연적인 단계였습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졌다는 사건은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분리된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상징하며,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이제는 누구나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렸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구약의 제사 제도와 율법의 완성을 의미하며, 새로운 언약 아래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비로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습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선출된 국가 지도자들이 국민을 섬기겠다, 국민이 우선이다고 힘내어 목소리를 내보지만 현실은 거짓과 속임으로 권력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지도자들의 공허한 약속에 실망하고 분을 참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세상을 사랑하시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예수님의 목적은 십자가 위에서 이윽고 현실이 되었습니다. 죄가 없지만, 거짓과 선동의 모함 가운데 예수님은 기꺼이 십자가의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이를 본 이방인 백부장은 이 사람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39절)’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1:1)’로 시작하면서 이방인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으로 마무리하면서 예수님의 신성을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방인이었던 백부장이 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렀을까요? 백부장이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이유는, 그가 예수님의 비범한 죽음, 자연의 초자연적 징조, 그리고 그 순간에 함께한 성령의 역사 등을 통해 예수님이 단순한 인간이 아니라 신적인 존재임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예수님의 신성을 확증하며, 예수님의 죽음이 우주적, 구속적 사건임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이천 년 전 유대 청년의 작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모든 인류의 불순종과 죄악을 담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었습니다. 비록 이방인의 고백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의 역사는 단절이 되고,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께 당당히 나설 수 있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독생자(요 3:16) 예수를 믿음으로 죽음의 멸망으로부터 자유하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생의 은혜로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