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동안 KBS ‘전국노래자랑’ 진행을 맡아오며 최장수 무대공연 기네스북 기록을 갖고 있는 ‘국민MC’ 송해(89)씨. 불교 관련 행사에 재능을 기부하며 자비 나눔을 실천해온 그는 불교계에서도 널리 알려져 있는 신심 깊은 불자다. 그는 올해 초부터 공연기획사 미디어코드(대표 노창현)와 함께 자신의 인생역정을 악극으로 만든 ‘송해 빅쇼-영원한 유랑청춘’ 전국투어에 나서 화제가 되고 있다. 올해 89세로 구순을 앞둔 고령에도 매 공연마다 노래와 구수한 입담으로 혼신을 다해 ‘원조 딴따라’의 진수를 보여줘 관람객들로부터 극찬을 받고 있다. 불기 2559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송해 씨의 방송인으로서 불자로서 소회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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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깊은 불자방송인 송해 씨가 구순을 앞두고 올해 초부터 악극 ‘송해 빅쇼-영원한 유랑청춘’으로 전국투어에 나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난 6일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을 찾아가 리허설을 본후 대기실에서 인생역정을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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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노래자랑 30여 년 진행하며
대중사랑 한몸에 받은 ‘국민MC’
90세 앞두고 자신의 인생이야기
유랑극 ‘송해 빅쇼’ 전국투어
한국전쟁 때 피란 온 실향민으로
황해도서 방송 진행이 마지막 꿈
지난 6일 ‘송해 빅쇼’가 열린 서울 노원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 송해 씨는 오후 공연을 앞두고 대공연장 무대에서는 악단, 연출자, 안무가 등 공연 관계자들과 함께 리허설이 한창이다. 이미 수차례 같은 무대에 섰던 그였지만, 리허설이라고 해서 허투루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음향, 조명, 무대, 객석 등을 스텝들과 함께 꼼꼼히 챙기는 등 본 공연과 다름없이 준비하는 그의 모습에서 수십 년간 무대를 누빈 원로 방송인의 열정이 느껴진다. 이어 리허설을 마치고 출연자 대기실에서 만난 그는 다시 친근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불교와의 인연이 얼마나 됐느냐”는 질문에 1990년대 초 불교방송 개국을 도왔던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당시는 불교계 숙원사업이었던 불교방송 설립을 위해 전국 사찰과 불자들이 힘을 보탰던 시절이었죠. 나 역시 가수 송춘희 등 불자 연예인들과 함께 국내외 사찰을 돌며 모연 공연을 했었습니다. 한 번은 경주 기림사에서 공연을 마치고 오다 폭우가 쏟아지는 국도에서 산사태를 맞을 뻔 했죠. 사고를 당했다면 지금의 ‘전국노래자랑 송해’도 없었을 텐데…. 그 때 받은 부처님 가피로 이렇게 건강하게 오래살고 있습니다. 하하하.”
희극인답게 죽을 고비를 넘긴 경험조차도 ‘유머코드’로 승화시키는 송해 씨는 90세를 앞두고 전국을 돌며 새로운 도전에 나서며 그 누구보다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가 선보이는 유랑극 ‘송해 빅쇼’는 방송인 허참, 이상벽, 개그맨 엄용수, 최병서 등 우정 출연자들의 노래와 코미디로 꾸민 1960~70년대 극장쇼와 함께 송해 개인의 삶을 담은 뮤지컬 토크쇼로 구성됐다. 지난 2011년과 2012년 각각 1차례씩 선보여 큰 호응을 얻었고, 이번에 구순을 앞두고 마지막이 될지 모를 전국투어에 나서게 됐다.
“나이로 보면 전국을 다니는 공연은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죠. 그래서 더욱 최선을 다하고 싶네요. 특히 이번 공연에서는 무엇보다 시대별로 다양한 노래들을 통해 옛 시절을 관객들과 함께 추억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돌아보니 인생이란 살 만하다는 것을 느껴서 제가 살아온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들려줄 수 있어 나 역시 행복합니다.”
100분으로 기획된 공연이지만 매회 앙코르가 이어지면서 대부분 2시간 이상 공연이 펼쳐진다. 한 번 무대에 오를 때마다 20여 곡의 노래를 열창하며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 관객들은 박수갈채로 화답한다. 매주 전국노래자랑 녹화를 하는 가운데 이러한 공연이 전국 각지에서 일주일에 두 차례 이상 잡혀있다. 최근에는 지방을 돌다 보름 만에 집에 들어가는 등 웬만한 청년들에게도 힘든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다.
‘송해 빅쇼-영원한 유랑청춘’ 홍보포스터. |
“고령으로 건강이 걱정된다”는 우려에 송해 씨는 “나는 역마살 낀 딴따라”라며 아직까지 끄떡없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송해 씨는 1986년부터 30여 년간 KBS에서 전국노래자랑을 진행해 왔다. 매주 일요일 점심 때가 되면 집집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부산 중구에는 그의 이름을 딴 거리도 생겼다. 그는 “현재의 나를 있게 한 전국노래자랑이야 말로 내 건강의 비결”이라며 “방송을 하면서 일반인들의 기를 가져와 나만의 신바람을 담아 다시 돌려주면서 큰 행복을 느낀다. 그것이 나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을 주는 것 같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이러한 방송경험으로 전국 각지 수많은 사람들과 좋은 인연을 쌓아 온 것이 가장 큰 재산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최고 재벌 기업인으로부터 ‘제일 부자’로 인정받았던 일화를 소개했다.
“친분이 있었던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저만 보면 ‘세상에서 제일 부자가 왔다’고 말해 제가 한번은 발끈했어요. 정 회장이 그렇게 자동차를 많이 만들고 집을 지어 올려도 저한테 하나 준 것도 없는데 왜 부자로 부르느냐고 그랬죠. 그랬더니 정 회장이 오해하지 말라면서 ‘사람 많이 아는 사람이 제일 부자인데 송 선생처럼 많이 아는 이가 있느냐’고 하더라고요. 하하하.”
이렇듯 구수한 입담으로 항상 주위 남녀노소를 즐겁게 하는 ‘희극인 송해’지만 한국전쟁 당시 피난 온 실향민으로 북녘 땅 고향에 대한 향수 앞에서는 그만 눈시울을 적셨다. 1927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그는 1·4 후퇴 때 남한으로 내려왔다.
본명은 ‘송복희’였으나, 배를 타고 남으로 피란 오면서 ‘인생이 망망대해 위에 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에 예명을 ‘송해’로 붙였다고 한다.
“1·4 후퇴를 다룬 영화 ‘국제시장’을 보면서 혼자 정말 정신없이 울었던 것 같아요. 한참 울다보니 어느새 제 손에 손수건이 5장이나 있더군요. 영화관에서 함께 보던 분들이 안타까웠는지 한 장씩 준 것도 모르고 넋을 놓고 울었나 봐요.”
한국전쟁 때는 통신병으로 복무했고, 전역 이후 1955년 악극단 가수가 되면서 올해로 데뷔 60주년을 맞이했다. 더욱이 올해는 광복 70주년이자 분단 70주년이 되는 만큼 그에게 있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송해 씨는 “전국노래자랑으로 전국을 안 가본 곳이 없지만, 고향 땅은 밟아 보지 못했다”면서 “황해도에서 ‘전국~노래자랑!’이라고 외쳐 보는 것이 나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0일 고양사암연합회가 주최하는 봉축행사에 출연해 흥겨운 노래로 축제분위기를 한껏 북돋은 그는 “불교계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힘닿는 데까지 돕고 싶다”며 불자예능인으로서 남다른 포부도 밝혔다.
■ 불자 방송인 송해는 …
60년 동안 극단, 라디오, TV, 무대를 넘나든 그는 한국대중문화 역사의 산증인이다. 1927년 4월 황해도 재령에서 태어나 해주예술학교에서 성악을 전공했다. 1955년 창공악극단 가수로 데뷔한 이래 1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하고 악극단 배우, 코미디언, MC는 물론 ‘송해송 나팔꽃 인생’ 등 음반을 발표해 가수로 활동한 만능 엔터테이너다.
특히 그의 대표 프로그램인 ‘전국노래자랑’을 1700회 이상 진행, 3만여 명의 출연자를 만나며 최장수 진행자로 기네스북에 등재됐다. 이러한 공로로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원로연예인상록회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최근 대중문화인으로는 이례적으로 평전 <나는 딴따라다>를 출간, 발행 1주일 만에 초판이 모두 팔리며 불교계 안팎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불교신문3108호/2015년5월23일자]
첫댓글 송해님의 만수무강을 발원합니다. _()_
대단한 노익장을 보이시는데 지금도 전철을 타고 다니시더군요. 먼 발치에서 몇 번 뵌 적이 있습니다. _()_
불보살님의 가피로 만수무강하시기를 합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