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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9일
장마철이지만 비는 오지 않고 구름이 끼어 날씨가 선선하다.
매년 이맘때는 늘 가는곳인데, 삼락공원에 연꽃이 한창일 것 같아 올해도 찍사들 모여 사진을 찍으러 출동했다.
늘 하던 대로 구포전철역에 내려 126번 버스를 타고 감전야생화단지로 먼저 갔다.
야생화단지에는 꽃구경하는 사람들은 없었지만 4,5십 명의 사람들이 모여 풀을 뽑고 있었다.
별로 안뽑아도 괜찮을 것 같은데..
길가에는 무궁화가 활짝 피어 있었고 부용화도 많이 심어 놓았는데 한창 피고 있었지만 7월말이 되어야 만개가 될 것 같았다.
늘 보는 풍경이지만 옆에 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낚시를 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는데 다른 날에 비하여 숫자가 적었지만 텐트 쳐놓고 낚시를 즐기고 있었다.
입구부터 천천히 걸어 한 바퀴 돌면서 사진을 찍고 연꽃이 있는 삼락생태공원으로 갔다.
삼락생태공원의 연꽃은 작년에 비하여 상태가 별로여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진 꽃도 있었지만 아직 덜피어서 그런 것 같았다.
대강 찍고 르네시떼로가서 점심먹고 귀가했다.
구운몽 하
그 다음날 두 공주가 승상께 술을 권하다가 영양공주가 시비를 불러 진씨를 청하니 승사이 그 소리를 듣고 마음이 자연 감동하여 갑자기 생각하였다.
‘내 일찍이 정소저와 거문고 한 곡조를 의논할 때, 그 소리와 얼굴을 익히 듣고 보았는데 오늘 영양공주를 보니 얼굴과 말소리가 매우 같구나. 나는 두 공주와 함께 즐겨하는데 슬프다, 정소저의 외로운 혼은 어디에 가 의탁하였을까?’
영양공주를 거듭 보고 눈물을 머금고 말하지 아니하자 영양공주가 잔을 놓고 물어 말하였다.
“승상이 무슨 일로 마음을 슬퍼하십니까?”
승상이 말하였다.
“내 일찍이 정사도 여자를 보았는데 공주의 얼굴과 소리가 매우 같아 자연 감동하여 그러합니다.”
영양공주가 말을 듣고 낯빛이 변하고 일어나 안으로 들어가자 승상이 부끄럽고 열적어 난양공주께 고하였다
“영양은 내 말을 그릇되다 여깁니까?”
난양이 말하였다.
“영양공주는 태후의 딸이요, 천자의 누이입니다. 뜻이 교만하고 건방져 한번 그릇되게 여기면 마음을 좇지 아니하니 정가 여자가 비록 아름다우나 여염 처녀요, 또 ??[원본에 없음]어 백골이 다 진토되었는데 어찌 그런 데 비하십니까?
승상이 즉시 진씨를 불러 영양공주께 사죄하여 말하였다.
“마침 술을 과히 먹고 망발을 하였으니, 원컨대 공주는 허물치 마십시오.”
진씨가 즉시 돌아와 승상께 고하였다.
“공주가 하시는 말씀이 있었지만 첩이 차마 아뢰지 못하겠습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공주의 말씀이 비록 과하나 진씨의 죄가 아니니 전해보라.”
진씨가 말하였다.
“공주가 막 화를 내시며 이르시되, ‘나는 황태후의 딸이요, 정녀는 여염집 천인입니다. 제 얼굴만 자랑하고 평생 보지 못하던 상공과 반나절을 함께 거문고를 의논하고 수작하니 행실이 아름답지 못하고, 또 혼인이 시기를 놓쳐 이루어지지 못하게 된 것에 심술이 나서 청춘에 죽었으니 복도 좋지 못한 사람입니다. 옛날 추호(秋胡)라는 사람이 뽕 따는 계집과 희롱할 때 그 아내가 듣고 말하기를, ’내 아무리 어질지 못하나 나를 생각한다면 어찌 상중(桑中) 유녀(遊女)와 희롱하겠는가.‘ 하고 물에 빠져 죽었으니 내들 무슨 면목으로 상공을 대면하겠습니까. 나를 죽은 정씨에게 비하고 행실 없는 사람을 생각 하니 내 그런 사람 섬기기를 원치 않습니다. 난양은 성질이 양순하고 인정이 많으니 승상을 모셔 백년 해로하십시오.’ 하였습니다.”
승상이 이 말을 듣고 크게 화를 내어 말하였다.
“천하의 형세만 믿고 가장을 업수이 여기기는 영양공주 같은 사람이 없다. 옛부터 부마 되기를 싫어한 것은 이렇기 때문이다.”
하고, 난양공주에게 말하였다.
“과연 정소저를 만나본 것에 곡절이 있습니다. 영양이 행실 없는 사람으로 책망하니 어찌 애닯지 아니하겠습니까?”
난양이 말하였다.
“첩이 청컨대 들어가 알아듣도록 잘 타이르겠습니다.”
하고, 즉시 돌아가 날이 저물도록 나오지 아니하고 시비를 시켜 승상께 전갈하여 말하였다.
“백 번 알아듣도록 잘 타일렀지만 도무지 듣지 아니합니다. 첩은 영양과 사생고락(死生苦樂)을 함께 하기로 했습니다. 영양이 깊은 방에서 혼자 늙기를 결단하니 첩도 상공을 모시지 못하겠습니다. 바라건대 진씨와 함께 백년을 해로하십시오.”
승상이 이 말을 듣고 분을 이기지 못하여 빈방에 촛불만 대하고 앉았는데, 진씨가 금으로 만든 화로에 향을 피우고 승상께 고하여 말하였다.
“첩은 군자를 곁에서 모시지 못하기에 첩도 들어가니 승상은 평안히 쉬십시오.”
하고, 나가자 승상이 더욱 분하여 잠을 이루지 못하고 생각하되,
‘저희가 작당하고 가장을 이토록 조롱하니 세상에 이런 고약한 일이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정사도 집 화원에서 낮이면 정십삼과 술이나 먹고, 밤이면 춘운과 희롱함만 같지 못하다. 부마된 삼일 만에 이토록 곤핍하니 어찌 분하지 아니한가?’
하고, 사창(紗窓)을 여니, 이때 달빛은 뜰에 가득하고 은하수가 비껴 있었다. 잠깐 얼어나 신을 신고 배회하는데, 문득 바라보니 영양공주의 방에 등촉이 휘황하고 웃음 소리가 자자하기에 승상이 생각하되,
“밤이 깊었는데 어떤 궁인이 이제까지 아니 자는가? 영양이 나에게 화가 나서 들어가더니 침실에 있는가?”
하여, 가만히 들어가 창 밖에서 엿들으니 두 공주가 쌍륙(雙六) 치는 소리가 역력히 들리거늘, 승상이 창틀로 보니 진씨가 한 여자와 함께 두 공주 앞에서 쌍륙을 치는데 자세히 보니 춘운이었다.
대개 춘운이 공주를 위하여 관광(觀光)하고 궁중에 머물렀지만, 종적을 감추어 보이지 않은 까닭에 승상이 알지 못하였다. 승상이 춘운을 보자 마음에 이상히 여겨 ‘어찌 왔을까?’ 하는데, 문득 진씨가 쌍륙을 다시 벌이고 말하였다.
“춘랑과 내키코자 하오.”
춘운이 말하였다.
“첩은 본디 가난하여 내기하면 술 한 잔뿐이거니와, 진숙인(秦淑人)은 귀한 공주를 모셔 명주 비단을 흔한 삼베 같이 여기고 팔진미를 변변치 못한 음식처럼 여기니 무엇을 내기코자 하십니까?”
진씨가 말하였다.
“내가 지면 보패(寶貝)를 끌러 춘랑을 주고 춘랑이 지면 내가 청하는 일을 하거라.”
춘운이 말하였다.
“무슨 일을 청하십니까?”
진씨가 말하였다.
“내 잠깐 말씀을 들으니 춘랑이 ‘신선도 되고 귀신도 된다.’ 하니, 그 말을 자세히 듣고자 하오.”
춘운이 쌍륙판을 밀치고 영양공주를 향하여 말하였다.
“소저가 평소 저를 사랑하시면서 어찌 이런 말씀을 공주께 하십니까? 진숙인이 들었으니 궁중에 귀 있는 사람이 누가 아니 들었겠습니까?”
진씨가 말하였다.
“춘랑이 어찌 우리 공주께 소저라 하는가? 공주는 대승상 위국공 부인이시오. 비록 나이는 어리나 작위가 이미 높으신데 어찌 춘랑자의 소저이겠는가?”
춘운이 웃으며 말하였다.
“십 년 넘게 부르던 입을 고치기 어렵습니다. 꽃을 다투어 희롱하던 일이 어제인 듯해서 그러했습니다.”
하고, 서로 웃음 소리가 낭랑하였다.
“춘랑의 말을 다 듣지 못하였지만 승상이 과연 춘랑에게 그토록 속았습니까?”
영양이 말하였다.
“승상이 겁내는 거동을 보고자 하였는데 승상이 사리에 어둡고 완고하여 귀신을 꺼릴 줄 알지 못하니, 옛부터 색(色)을 좋아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을 색중아귀(色中餓鬼)라더니 과연 승상 같은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고, 모두 크게 웃었다.
승상이 비로소 영양공주가 정소저인 줄을 알고 한편으로 반가워 문을 열고 급히 보고자 하다가, 갑자기 생각하되 ‘제가 나를 속이니 나도 또한 속이리라.’ 하고 가만히 진씨의 방으로 돌아와 누웠는데 하늘이 이미 새었다.
진씨가 나와 시녀에게 물어 말하였다.
“승상께서 일어나셨느냐?”
시녀가 말하였다.
“아직 일어나지 아니하셧습니다.”
진씨가 창 밖에 서서 일어나기를 기다리는데, 승상이 신음하는 소리가 때때로 들리거늘 진씨가 들어가 물어 말하였다.
“승상께서 기체 평안치 않으십니까?”
승상이 대답하지 아니하고 눈을 바로 떠 보며 헛소리를 무수히 하자 진씨가 물어 말하였다.
“승상은 무슨 헛소리를 이리 하십니까?”
승상이 두 손을 내어 두르며 말하였다.
“너는 어떤 사람이냐?”
진씨가 말하였다.
“첩을 알지 못하십니까? 첩은 진숙인입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진숙인이 어떤 사람이냐?”
진씨가 놀래어 나아가 머리를 만져보니 심히 더웠다.
진씨가 말하였다.
“승상 병환이 하룻밤 사이에 어찌 이토록 중하십니까?”
승상이 말하였다.
“내 꿈에 정씨와 함께 밤새도록 말했더니 내 기운이 이러하다.”
진씨가 다시 물으나 승상이 대답지 아니하고 몸을 돌이켜 눕자, 진씨가 민망하여 시녀를 명하여 두 공주께 보고하였다.
“승상의 병환이 중하니 빨리 나와 보십시오.”
영양이 말하였다.
“어제 술을 먹은 사람이 무슨 병이겠는가. 우리를 나오게 함일 뿐이다.:”
진씨가 바삐 들어가 태후께 고하였다.
“승상의 병환이 중하니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니 황상께 아뢰어 의원을 불러 치료하게 하십시오.”
태후가 이 말을 듣고 두 공주를 불러 꾸짖어 말하였다.
“너희는 부질없이 승상을 과히 희롱했구나. 병이 중타하면 어찌 빨리 나가 보지 아니하느냐? 급히 나가 병이 중하거든 의원을 불러 치료하게 하라.”
두 공주가 마지 못하여 승상의 침소에 나와 영양은 밖에 서고 난양과 진씨가 먼저 들어가니, 승상이 난양을 보고 두 손을 내어 두르며 눈을 굴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목 안으로 소리쳐 말하엿다.
“내 명이 다하여 영양과 영결하고자 하는데 영양은 어디에 가고 아니 오는가?”
난양이 말하였다.
“승상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승상이 말하였다.
“오늘밤 정씨가 와 나에게 이로되, ‘상공은 어찌 약속을 저버리십니까?’ 하며 술을 주어 먹었더니 말을 못하겠고 눈을 감으면 내 품에 눕고 눈을 뜨면 내 앞에 서니, 정씨가 나를 원망함이 깊은 모양인데 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하고, 벽을 향하여 헛소리를 무수히 하고 기절하는 듯하자, 난양이 병을 보고 크게 겁내어 나와서 영양에게 말하였다.
“승상이 저저(姐姐)를 보고자 하여 병이 되었으니 저저가 아니면 구하지 못할 것입니다. 저저는 급히 들어가 보십시오.”
영양이 오히려 의심하였지만, 난양이 영양의 손을 잡아 함께 들어가니 승상이 헛소리를 하는데 모두 정씨에 대한 말이었다.
난양이 크게 소리하여 말하였다.
“영양이 왔으니 눈을 들어 보십시오”
승상이 잠깐 머리를 들어 손을 내어 일어나고자 하자, 진씨가 나아가 몸을 붙들어 일으켜 앉히니 승상이 두 공주에게 말하였다.
“내 두 공주와 백년해로하려 하였는데 지금 나를 잡아가려 하는 사람이 있으니, 나는 세상에 오래 머물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영양이 말하였다.
“상공은 어떤 재상이시기에 저런 허황된 말씀을 하십니까? 정씨가 비록 남은 혼이 있다한들 궁중이 깊숙하고 그윽하며 천만 귀신이 지키고 보호하는데 어찌 감히 들어오겠습니까.”
승상이 말하였다.
“정씨가 지금 내 앞에 앉았는데 어찌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십니까?”
난양이 말하였다.
“옛 사람이 술잔의 활 그림자를 보고 병이 들어 죽었다더니 승상이 또 그러하십니다.”
승상이 대답하지 아니하고 두 손만 내어 두르자, 영양이 병세가 흄함을 보고 다시 속이지 못하여 나아가 앉아 말하였다.
“승상이 죽은 정씨를 이렇듯 생각하니 산 정씨를 보면 어떠하시겠습니까? 첩이 과연 정씨입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부인은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정씨의 혼이 지금 내 앞에 앉아 나를 황천에 데려가 전생의 연분을 맺자 하고 잠시도 머물지 못하게 하니 산 정씨가 어디에 있겠소, 불과 내 병을 위로코자 하여 산 정씨라 하지만 진실로 허망합니다.”
난양이 나가 앉아 말하였다.
“승상은 의심치 마십시오. 과연 태후 낭랑이 정씨를 양녀로 삼아 영양공주를 봉하여 첩과 함께 상서를 섬기게 하였으니, 오늘의 영양공주는 전일 거문고 희롱하던 정소저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어찌 얼굴과 말소리가 심히 같겠습니까?”
승상이 대답하지 아니하고 가만히 소리내어 말하였다.
“내가 정가(鄭家)에 있을 때 정소저에게 시비 춘운이 있었는데, 한 말을 묻고자 합니다.”
난양이 말하였다.
“춘운이 영양을 뵈러 궁중에 왔다가 승상의 기후(氣候)가 평안치 아니 하심을 보고 밖에 대령하였습니다.”
하고, 즉시 춘운을 부르니 춘운이 들어와 앉으며 말하였다.
“승상께서는 기체 어떠하십니까?”
승상이 말하였다.
“춘운 혼자만 있고 다른 사람은 다 나가시오.”
두 공주와 진숙인이 나와 난간에 나와 앉았는데, 승상이 즉시 일어나 세수하고 의관을 정제해 춘운으로 하여금 ‘데려오라.’ 하니 춘운이 웃음을 머금고 또 나와 전하자 다 들어갔다. 승상이 화양건(華陽巾)을 쓰고, 궁금포(宮錦袍)를 입고, 백옥선(白玉扇)을 들고, 안석(案席)에 비스듬히 앉았으니 기상이 봄바람 같이 호탕하고 정신이 가을달 같이 맑아 병들었던 것 같지 아니하였다.
“가까이 앉으시오.”
영양이 들어온 줄을 알고 웃음을 머금고 머리를 숙이고 앉았다.
난양이 말하였다.
“상공께서 기체 지금 어떠하십니까?”
승상이 정색하고 말하였다.
“요새는 풍속이 좋지 못하여 부인이 작당하고 가장을 조롱하니, 내가 비록 어질지 못하나 대신의 위치에 있어 문란해진 풍속을 바로잡을 일을 생각하여 병이 들었는데 이제는 나았으니 염려마십시오.”
영양이 말하였다.
“그 일은 첩들이 알지 못하거니와 승상의 병환이 쾌치 못하면 태후께 여쭈어 명의를 불러 치병(治病)코자 합니다.”
승상이 아무리 웃음을 참고자 하였지만, 실상 ‘정소저가 죽었는가?’ 하였는데, 이날 밤에 소저가 살아 있는 줄을 알고 비록 속였으나 그리워하던 심사를 참지 못하고 생각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크게 웃어 말하였다.
“이제 부인을 지하에 가 상봉할까 하였더니 오늘 일은 진실로 꿈 속입니다.”
하며, 옥수를 잡고 희롱하니 원앙새가 초목 사이의 푸른 물을 만난 듯, 나비가 붉은 꽃을 본 듯 그 사랑함을 이루 헤아리지 못할 바였다.
영양이 일어나 재배하고 말하였다.
“이는 태후께서 어지시기 때문이며 황상 폐하의 성덕과 난양공주의 인후(仁厚) 하신 덕이오니 그 은덕은 백골이 진토되어도 갚지 못할까 합니다. 입으로 다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까?”
하고, 전후의 사연을 다 베푸니 만고에 듣지 못한 일이었다.
난양이 웃으며 말하였다.
“영양은 심덕(心德)이 아름다워서 하늘이 감동하신 것이니 첩이 무슨 관계가 있겠습니까?”
이때 태후가 이 말을 듣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내가 또한 속였다.”
하고, 즉시 불러 보시니, 두 공주가 태후를 모셔 있었다.
태후가 물어 말하였다.
“승상이 죽은 정씨와 함께 끊어진 연분을 다시 맺으니 어떠하신가?”
승상이 땅에 엎드려 말하였다.
“성은이 망극한데 만분지일이나 다 갚지 못하올까 합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나의 희롱함이 무슨 은혜라 하겠는가?”
이날 상이 군신 조회를 받을 때, 군신이 아뢰어 말하였다.
“요사이 경성(景星)이 나오고, 황하수도 맑아졌으며, 풍년이 들었고, 토번이 살던 땅이 다 항복하니 진실로 태평성대인가 합니다.”
상이 겸양하였다.
하루는 승상이 대부인을 모시고자 하여 상소를 할 때, 말씀이 지극하고 간절하여 상이 보고,
“양소유는 극진한 효자이다.”
하고, 황금 일천 근과, 비단 팔백 필과, 백옥으로 꾸민 가마를 주며 말하였다.
“즉시 가 대부인을 위하여 잔치하고 모셔오라.”
승상이 황태후께 하질할 때, 태후가 비단으로 장식된 신을 주었다. 승상이 물러나와 두 공주와 진씨, 춘랑을 이별하고 발행하여 낙양에 다다르니, 계섬월과 적경홍이 벌써 객관에 와 기다리고 있었다.
승상이 웃으며 말하였다.
“내 이 길은 황명이 아니요, 사사로운 용무로 가는데 두 낭자는 어찌 알고 왔는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대승상 위국공이자 부마도위(駙馬都尉)의 행차를 깊은 산골이라도 다 아는데, 첩들이 아무리 산림에 숨었은들 어찌 모르겠습니까. 또한 승상의 부귀는 천하의 의뜸이라 첩들도 즐겁거니와 소문에 두 공주를 부인 삼으셨다 하니 알지 못하겠습니다. 첩들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승상이 말하였다.
“한 분은 황상 폐하의 누이요, 또 한 분은 정사도의 소저이다. 황태후가 양녀를 삼아 영양공주를 봉하였으니 계랑이 정한 바이다. 무슨 투기(妬忌)가 있겠는가. 두 공주가 다 유한(幽閑)한 덕이 있으니 두 낭자의 복이다.”
섬월과 경홍이 크게 기뻐하였다.
승상이 발행하여 고향에 갔다.
각설이라.
승상이 십육세에 모친께 이별하고 과거에 갔다가 다시 사 년 사이에 대승상 위국공이 된 위의를 갖추고 대부인께 돌아가 뵈니, 부인 유씨가 손을 잡고 등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네가 진실로 내 아들 양소유냐? 근근히 너를 기를 때 이리 될 줄 어찌 알았겠느냐?”
하고, 반가운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여 손을 잡고서 눈물을 흘렸다.
승상이 조상의 무덤을 깨끗이 한 후 제사지내고 임금께 받은 금과 비단으로 대부인을 위하여 친구와 일가 친척을 다 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대부인을 모셔 경성으로 올라 갈 때, 각도(各道)의 수령이며 여러 고을의 태수(太守)들이 뉘 아니 모셔 따라오지 않았겠는가?
황성에 이르러 대부인을 모셔 승상부에 모시고 들어가 황제와 태후께 입조하니 황제가 불러 만나보고 금과 비단을 많이 상사(賞賜)하거늘, 택일하여 임금께서 내려준 새 집에 모시고 두 공주와 진숙인, 가유인을 다 예로써 알현(謁見)하고 만조 백관을 청하여 삼 일을 잔치할 때, 궁실 거처의 휘황함과 풍악 음식의 찬란함은 세상에 비할 데 없었다.
한참 후에 문지기가 고하였다.
“문 밖에서 두 여자가 승상과 대부인 뵙기를 청합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분명 계섬월과 적경홍이다.”
하고, 대부인께 고하고 부르자, 섬월과 경홍이 머리를 숙여 계단 아래에 서 뵈니 진실로 절대 가인이어서 모든 손님들이 다 칭찬해 마지 않았다. 진숙인이 섬월과 옛정이 있기에 서로 만나 슬픔과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영양공주가 섬월을 불러 술 한 잔을 주어 말하였다.
“이것으로 나를 천거한 공을 사례한다.”
대부인이 말했다.
“너희는 섬월에게만 사례하고 두련사의 공은 생각지 아니하느냐?”
승상이 말하였다.
“오늘날 이렇게 즐기는 것은 다 두련사의 덕이다.”
하고, 즉시 사람을 자청관(紫淸觀)에 보내어 청하니 두련사는 촉나라에 들어가고 없었다.
이로부터 승상부 창기(娼妓) 팔백인을 동부와 서부를 만들어, 동부 사백은 섬월이 가르치고 서부 사백 인은 경홍이 가르치니 가무가 날로 새로워, 비록 이원(梨園)의 배우들이라도 미치지 못할 정도였다.
하루는 공주와 여러 낭자가 대부인을 모셔 앉았는데, 승상이 한 편지를 들고 들어와 난양을 주어 말하였다.
“이는 월왕의 편지니 보십시오.”
난양이 펴보니 다음과 같았다.
“지난번 국가에 일이 많아 낙유원(樂遊原)에 말을 머물게 하는 좋은 기회와 곤명지(昆明池)에서 배 타고 노는 즐거운 일을 이제껏 못하였는데, 지금 황상의 넓으신 덕과 승상의 공명을 힘입어 천하태평하였으니, 원컨대 승상과 함께 봄빛을 구경코자 합니다.”
난양이 승상께 말하였다.
“월왕의 뜻을 아시겠습니까?”
승상이 말하였다.
“봄빛을 희롱코자 하는 것에 불과한 것 아닙니까?”
난양이 말하였다.
“월왕의 뜻이 본디 풍류를 좋아하여 무창(武昌)의 명기(名妓) 만옥연을 얻어두고, 승상 궁중에서 보았던 미인들과 한번 다투어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승상이 웃으며 말하였다.
“과연 그렇소이다.”
영양공주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아무리 노는 일이라도 어찌 남에게 질 수야 있겠습니까.”
하고, 계섬월과 적경홍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군병을 십 년 가르치기는 한번 싸움의 승패를 위한 것이니, 이날 승부는 다 두 낭자에게 있다. 부디 힘써 하라.”
섬월이 말하였다.
“월궁의 풍류는 일국의 으뜸이요, 만옥연은 천하의 절색입니다. 첩의 얼굴과 음율이 다 부족하니 누를 끼치게 될까 두렵습니다.”
경홍이 이 말을 듣고 큰 소리로 말하였다.
“섬랑, 우리 두 사람이 관동 칠십 여 주를 돌아다녔지만 당할 사람이 없었는데 만옥연 한 사람을 두려워 하는가?”
섬월이 말하였다.
“홍랑은 어찌 이처럼 자신하는가?”
하고, 승상께 고하였다.
“‘교만한 사람과 하는 일은 반드시 잘못된다.’고 하는데, 홍랑의 말이 과하니 패배할 것 같습니다. 또 홍랑의 얼굴이 아리따우면 승상이 어찌 남자로 속으셨겠습니까?”
영양이 말하였다.
“홍랑의 얼굴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승상의 눈이 밝지 못한 것이지요.”
승상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부인도 눈이 있으면 어이 남자인 줄을 모르셨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이럭저럭 월왕과 모이는 날이 되자, 승상이 의복과 안장 얹은 말을 각별히 가다듬어 모양을 내고 계섬월과 적경홍 등 팔백 창기를 거느려 좌우에 모시게 하니 진실로 춘삼월 복숭아 꽃 속이었다. 월왕이 또한 풍류를 성대히 갖추고 승상을 맞아 서로 자리를 정한 후에, 승상과 월왕이 말도 자랑하고 활 쏘는 법도 시험하여 서로 칭찬하는데 문득 심부름하는 사람이 고하였다.
“어린 내시가 어명을 모셔 왔습니다.”
월왕과 승상이 놀라 일어나 맞이하니, 어린 내시가 임금이 내려준 황봉주(黃封酒)를 부어 권하며 말하였다.
“글제를 받들어 글을 지으라 하셨습니다.”
월왕과 승상이 머리를 조아려 재배하고 각각 사운(四韻) 시를 지어 보냈다.
이때 여러 빈객은 차례대로 쭉 벌여 앉았고 좋은 술과 맛난 안주를 한꺼번에 올리니, 위의가 찬란하고 음식이 난만하였다. 각각 풍류와 온갖 노래는 서왕모(西王母)의 요지연(瑤池宴)과 한무제(漢武帝)의 백량대(柏粱臺)라도 미치지 못하였다.
월왕이 승상에게 말하였다.
“승상께 조그마한 정성을 아뢰고자 하니 소첩 등을 불러 가무(歌舞)하여 승상을 즐겁게 하고자 합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제가 감히 대왕의 궁인과 상대하겠습니까? 저 또한 시첩(侍妾)을 시켜 재주를 아뢰어 대왕의 흥을 돕고자 합니다.”
이에 계섬월과 적경홍과 월궁의 네 미인이 나와 뵈니 승상이 말하였다.
“옛날 현종(玄宗) 황제 시절에 궁중에 한 미인이 있었는데 이름은 부운이요, 얼굴은 일색이었습니다. 이태백이 그 미인을 보고자 황제께 청하였지만 겨우 말소리만 듣고 얼굴을 보지 못하였는데, 저는 대왕의 네 선녀를 보니 천상 선인(仙人)인가 하거니와 저 미인의 이름은 무엇이라 합니까?”
월왕이 말하였다.
“저 미인은 금릉(金陵)의 두운선(杜雲仙)이요, 진류(陣留)의 소채아(少蔡兒)요, 무창(武昌)의 만옥연(萬玉燕)이요, 장안(長安)의 호영영(胡英英)입니다.”
승상이 말하였다.
“만옥연의 이름을 들은 지 오래되었는데, 그 얼굴을 보니 과연 소문과 같습니다.”
월왕이 또 섬월의 성명을 들은 바 있어 물어 말하였다.
“이 양랑자를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승상이 말하였다.
“제가 과거 보러 오는 날에 마침 낙양 땅에서 섬월은 제 스스로 좇아왔고, 경홍은 연나라를 치러갈 때 한단(邯鄲) 땅에서 스스로 좇아왔습니다.”
월왕이 손벽치고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이 한림을 띠고 황금인을 차고 도적을 쳐 승전하고 돌아오니 적낭자가 알아보기는 쉬웠겠지만, 계낭자는 승상이 곤궁할 때 부귀할 줄을 알았으니 기특하구나.”
하고, 술을 가득 부어 섬월에게 상으로 주었다.
승상과 월왕이 장막 밖의 무사들이 활 쏘고 말 달리는 것을 보고 있다가 월왕이 말하였다.
“미인이 말타는 재주를 봄직 하기에 궁녀 수십 인을 가르쳤는데 승상 부중(府中)에도 또한 있습니까? 원컨대 함께 활 쏴 사냥하며 한 즐거움을 ??[원문에 없음]지이다.”
승상이 크게 기뻐하여 즉시 수십 인을 뽑아 월궁녀와 승부를 다툴 때, 경홍이 고하여 말하였다.
“비록 활을 잡아보지는 아니하였으나 남이 활 쏘는 것을 익히 보았으니 잠깐 시험코자 합니다.”
승상이 기뻐해 즉시 찬 활을 끌러 주었다.
경홍이 여러 미인에게 말하였다.
“비록 마치지 못하여도 웃지 말라.”
하고, 말에 올라 채찍질을 하는데 마침 꿩이 날자 쏴 말 아래 떨어뜨리니, 승상과 월왕이 다 놀라고 월궁 미인이 모두 탄복하며 말하였다.
“우리는 십 년 헛공부를 하였다.”
계섬월과 적경홍이, ‘우리 두 사람이 월왕의 미인들에게 첫 자리를 사양 하는 것은 아니지만 외로워 안타깝구나.’라고 생각하며,
문득 바라보니 두 미인이 수레를 타고 장막 밖에 와 고하였다.
“양승상의 소실(小室)입니다.”
하고, 수레에서 내리거늘 보니 하나는 심요연이요, 또 하나는 완연히 꿈 속에서 보던 동정 용녀였다. 승상께 절하며 알현하니 승상이 월왕을 가리켜 말하였다.
“이 분은 월왕 전하시다.”
두 사람이 예로써 알현하였다.
두 사람이 계섬월, 적경홍과 함께 앉아 있는데 승상이 월왕에게 말하였다.
“저 두 사람은 내가 토번을 정발할 때 얻었지만 미처 데려오지 못하였는데, 오늘 이 성대한 모임을 듣고 온 듯합니다.”
왕이 그 두 사람을 보니 자색이 섬월과 같았지만 고고한 태도와 뛰어난 기운은 더하였다. 왕이 기이히 여기고 월궁의 미인들도 다 안색이 바뀌었다.
왕이 물어 말하였다.
“두 낭자는 어디 사람이며 성명은 누구냐?”
하나가 말하였다.
“첩은 심요연입니다.”
하고, 또 하나는 말하였다.
“백능파 입니다.”
왕이 말하였다.
“두 낭자에게 무슨 재주가 있느냐?”
요연이 말하였다.
“변방 밖 사람이라 사죽(絲竹) 소리를 듣지 못하였으니 대왕께서 즐기실 바는 없지만 다만 허랑한 검술을 배워 용진(龍陳)은 압니다.”
월왕이 크게 기뻐하여 승상에게 말하였다.
“현종조에 공손대랑(公孫大娘)이 검무로 유명하였지만 후세에 전해지지 않아 항상 두보의 글만을 읊고 쾌히 보지 못함을 한탄하였는데, 낭자가 능히 하면 쾌할 일이다.”
하고, 승상과 각각 찬 칼을 끌러 주었다. 요연이 한 곡조를 추니 자유자재로 변화하여 신통 기이한 법이 많아 왕이 놀라 정신을 잃었다가 한참 후에 말하였다.
“세상 사람이야 어찌 저럴 수 있겠는가, 낭자는 진실로 신선이구나.”
하고 또 능파에게 물으니 대답하여 말하였다.
“첩은 상강(湘江) 가에 살기에 항상 비파 타는 노래를 때때로 익혔으나 귀한 분께서 들음직은 할 듯합니다.”
왕이 말하였다.
“상비(湘妃)의 비파 소리를 옛사람의 시구(詩句)를 통해서나 알 수 있었을 뿐이다. 낭자가 능히 하면 쾌할 일이다. 어서 타라.”
능파가 한 곡조를 타니 맑은 노래와 신통한 술법(術法)이 사람을 슬프게 하고 조화를 아는 듯하였다.
왕이 기이히 여겨 말하였다.
“진실로 인간의 곡조 아니다. 정말로 선녀구나.”
날이 저물어 잔치를 파하니 가무에 상으로 내린 금과 비단이 헤아리지 못할 정도였다. 승상과 월왕이 각각 풍류를 여러 가지로 갖추어 성문에 들어오니 장안 사람이 뉘 아니 구경하며 백 세 노인도 혹 감탄하며 말하였다.
“현종 황제가 화청궁(華淸宮)에 거동하실 때 위엄이 이와 같았는데 오늘 또 다시 보는구나.”
이때 두 공주가 진가(秦家)의 두 낭자를 데리고 대부인을 모셔 승상이 돌아오기를 밤낮으로 기다렸다.
각설.
이때 승상이 당에 오르자 좌우가 다 놀랐다. 심요연과 백능파 두 사람을 대부인과 두 공주께 뵈니 부인이 말하였다.
“전일 승상이 두 낭자의 공로를 칭찬하여 일찍 보고자 하였는데 어찌 이리 늦었느냐?”
연파가 말하였다.
“첩 등은 먼 지방의 천인입니다. 비록 승상의 한번 돌아보신 은혜를 입었으나 두 부인께서 한 자리 땅을 허락하지 않으실까 두려워 감히 오지 못하였습니다. 서울에 들어와 두 공주께서 관저(關雎)와 규목(樛木)의 덕이 있으심을 듣고 이제야 나아와 뵙고자 했는데, 마침 승상께서 성대히 노신다는 것을 듣고 외람되게 참예하고 돌아오니 첩 등의 영광스러운 행운인가 합니다.”
공주가 웃으며 말하였다.
“우리 궁중에 춘색(春色)이 난만한 것은 다 우리 형제의 공이니 승상은 아십니까?”
승상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저 두 사람이 새로 와 공주의 위풍이 두려워 아첨하는 말을 공주는 공을 삼고자 합니까?”
모두가 크게 웃었다.
진가의 두 낭자가 섬월에게 물어 말하였다.
“오늘 승부는 어떠했는가?”
경홍이 말하였다.
“섬랑이 내 큰소리를 비웃었는데 내 한마디로 월궁 미인들의 기운을 꺽었으니 섬랑에게 물으시면 아실 것입니다.”
섬랑이 말하였다.
“홍랑의 말 타고 활 쏘는 재주는 절묘하다 할 것이지만, 저 월궁 미인의 기운을 꺽은 것은 다 새로 온 두 낭자의 자색과 재주 때문입니다.”
그 이튿날 승상이 황상께 입조할 때, 태후가 승상과 월왕을 보니 두 공주는 벌써 들어가 모시고 있었다.
태후가 월왕에게 말하였다.
“어제 승상과 춘색을 다투었다 하더니 승부는 어떠했는가?”
월왕이 말하였다.
“승상의 복은 보통 사람과 같을 바가 아닙니다. 다만 공주에게도 복이 되겠습니까? 원컨대 낭랑은 이 말씀으로 승상을 심문하십시오.”
승상이 말하였다.
“월왕이 신에게 졌단 말은 이태백이 최호(崔顥)의 시를 겁내는 것과 같습니다. 공주에게 복이 되고 아니됨은 공주에게 물으십시오.”
공주가 대답하여 말하였다.
“부부는 한몸이니 영욕고락(榮辱苦樂)이 어찌 다르겠습니까?”
월왕이 말하였다.
“누이의 말이 비록 좋으나 자고로 부마 중에 누가 승상같이 방탕하였겠습니까? 청컨대 승상을 벌하십시오.”
태후가 크게 웃고 술 한 잔으로 벌하였다. 승상이 크게 취하여 돌아올 때, 두 공주도 함께 왔다.
대부인이 물어 말하였다.
“전에도 선온(宣醞)의 명이 있었지만 이처럼 취하지 아니하였는데, 어찌 오늘은 과히 취하였는가?”
승상이 말하였다.
“공주의 오라비인 월왕이 태후께 고자질하여 소자의 죄를 지어내었는데 마침 말씀을 잘 드려 한 말 술로 벌을 받았습니다. 소자가 만일 주량이 약했으면 거의 죽을 뻔하였으니, 대개 월왕이야 낙원(樂原)에서 진 일을 설욕하려 한 일이겠지만 난양도 내가 희첩(姬妾)이 많음을 시기하여 그 오라비와 함께 나를 모해하였으니, 모친은 한 잔 술로 난양을 벌하여 소자를 설욕하여 주십시오.”
유부인이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공주가 비록 술을 먹지 못하나 취객을 위하여 마다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고, 승상을 속여 설탕물 한 잔으로 벌하였다.
이때 두 부인이 육낭자와 서로 즐기는 뜻이 고기가 물에서 놀고 새가 구름에서 나는 것 같아서 서로 은정을 잊지 못하니, 비록 두 부인 현덕(賢德)에 감화 받아서였지만 대개 남악산에서 발원(發願)한 때문이었다.
하루는 두 공주가 서로 의논하여 말하였다.
“옛 사람이 자매형제가 혹 남의 아내도 되고 혹 남의 첩도 되었는데, 우리 이처육첩(二妻六妾)은 의가 골육 같고 정이 형제 같으니 어찌 천명(天命)이 아니겠는가. 타고난 성이 한 가지가 아니고 지위의 높고 낮음이 같지 않음은 족히 거리낄 일이 아니다. 마땅히 결의형제(結義兄弟)하여 일생을 지내는 것이 어떠한가?”
육 낭자가 다 겸손히 사양하고 춘운과 섬월이 더욱 응치 아니하자 정부인이 말하였다.
“유비,관우,장비 세 사람은 군신 사이였지만 형제의 의가 있었고, 세존의 처와 등가여자(登伽女子)는 높고 낮음이 현격히 차이가 났지만 함께 제자가 되었으니, 당초 미천함이 앞날을 성취하는데 무엇이 관계하겠는가?”
두 공주가 이에 육 낭자를 데리고 관음화상 앞에 나아가 분향 재배한 후, 형제 맺은 맹세를 하고 글을 지어, ‘각각 자매로 스스로 처신하라.’ 하였지만, 육 낭자가 오히려 명분을 지키어 말이 공순하나 정의(情誼)는 더 각별하였다.
팔 선녀가 각각 자녀를 두었다. 양부인, 춘운, 섬월, 요연, 경홍은 아들을 낳았고, 채봉, 능파는 딸을 낳았는데, 낳고 기르는데 괴로움이 없었다.
이때 천하가 아주 태평하여 승상이 나면 현명한 임금을 모셔 후원에서 사냥하고, 들면 대부인을 모셔 북당(北堂)에서 잔치하니 이럭저럭 세월이 물 흐르는 듯 하였다. 승상이 장상(將相)이 되어 권세를 잡은 지 이미 수십 년이었다. 유부인이 천수(天壽)를 다하고 별세하자 승상이 슬퍼 야윔이 과도하였다. 임금과 왕비가 중사(中使)를 보내 위로하고 왕후예(王后禮)로 장사 지내게 하였으며, 정사도 부처가 또 상수(上壽)하니 승상이 서러워 하기를 정부인과 같이 하였다.
승상에게 육남 이녀가 있었다. 맏아들은 대경(大卿)이니 정부인의 소생으로 이부상서(吏部尙書)를 하고, 둘째는 차경(次卿)이니 적씨의 소생으로 경조윤(京兆尹)을 하고, 셋째는 순경(舜卿)이니 가씨의 소생으로 어사중승(御史中丞)을 하고, 넷째는 계경(季卿)이니 난양의 소생으로 병부시랑(兵府侍郞)을 하고, 다섯째는 오경(五卿)이니 계씨의 소생으로 한림학사(翰林學士)를 하고, 여섯째는 치경(致卿)이니 심씨의 소생으로 나이 열 다섯에 용력이 절륜하여 금오상장군(金吾上將軍)이 되었다. 맏딸의 이름은 전단(傳丹)이니 진씨의 소생으로 월왕의 며느리가 되었고, 차녀의 이름은 영락(永樂)이니 백씨의 소생으로 황태자의 첩여(婕妤)가 되었다.
승상이 일개 서생으로 환란을 평정하고 태평을 이루어 공명 부귀가 곽분양(郭汾陽)과 명성을 나란히 하였지만, 곽분양은 육십에 상장(上將)이 되였는데 상은 이십에 장상(將相)이 되어 위로 임금의 마음을 얻고 아래로는 인망이 있어 부디 복을 누리기는 천고에 없는 일이었다.
승상이 나라의 큰 명령 아래에 있기 어렵기에 상소하여 '물너가고자 합니다.'라고 하였지만, 상이 친필로 답장을 써 고집스럽게 만류하였다. 그후 또 상소하여 뜻을 간절히 하자, 상이 친필로 답장을 써 말하였다.
"경의 높은 절개를 이루어 주고자 하지만, 황태후께서 승하하신 후에 어찌 차마 두 공주를 멀리 떠나보낼 수 있겠는가? 성남 사십 리에 별궁이 있으니 이름은 취미궁(翠微宮)이다. 이 궁이 한적하니 경이 은거함이 마땅하다."
하고, 승상을 위국공(魏國公)을 더 봉하고 오천 호를 더 상사하며 아주 승상의 인수(印綬)를 거두었다. 승상이 큰 은혜에 더욱 감격하여 즉시 취미궁으로 가니, 이 궁은 종남산(終南山) 가운데 있어 누대(樓臺)가 장려하며 경치가 아주 빼어나 진실로 봉래(蓬萊) 선경(仙景)이었다.
승상이 그 정전(正殿)을 비워 나라의 조지(詔旨)와 임금이 지은 시문(詩文)을 받들어 모시고 그 남은 누각과 정자는 두 공주와 여러 양자가 나누어 거처케 하였다.
승상이 두 부인과 육 낭자를 데리고 물에 다달아 달을 희롱하고 산에 들어가 매화를 찾아, 혹 시도 화답하며 거문고도 타니 만년의 조용한 복을 뉘 아니 칭찬하겠는가? 팔월 보름날은 승상의 생일이어서 모든 자녀들이 다 헌수(獻壽)하여 잔치하니, 그 번화한 모습은 비할 데 없었다.
이럭저럭 구월이 당하니 국화가 만발하여 구경하기 좋은 때였다. 취미궁 서편에 한 높은 누각이 있으니 올라보면 팔백 리 진천(秦川)이 손바닥 펼 친 모양으로 훤히 보였다. 승상이 부인과 낭자를 데리고 올라가 가을 경치를 희롱하는데, 어느덧 석양은 기울어지고 구름은 나즉히 깔려 가을 빛이 찬란하니 마치 그림 속 같았다.
승상이 옥퉁소를 내어 한 곡조를 부니 그 소리가 처량하여 형경(荊卿)이 역수(易水)를 건널 때 고점리(高漸離)가 비파를 켜고, 초패왕(楚覇王)이 해하(垓下)에서 삼경에 우미인(虞美人)을 이별하는 노래 같았다. 모든 미인이 다 슬픔을 이기지 못하니 두 부인이 물어 말하였다.
"승상이 일찍이 공명을 이루고 오래 부귀를 누려 오늘날 좋은 풍경을 당하였는데, 퉁소 소리가 처량하여 전일과 다르니 어찌된 일입니까?"
승상이 옥퉁소를 던지고 난간에 기대어 밝은 달을 가리키며 말하였다.
"동쪽을 바라보니 진시황(秦始皇)의 아방궁(阿房宮)이 풀 속에 외롭게 서 있고, 서쪽을 바라보니 한무제(漢武帝)의 무릉(茂陵)이 가을 풀 속에 쓸쓸하며, 북쪽을 바라보니 당명황(唐明皇)의 화청궁(華淸宮)에 빈 달빛뿐이라오. 이 세 임금은 천고의 영웅이어서 사해(四海)로 집을 삼고 억조창생(億兆蒼生)으로 신첩(臣妾)을 삼아 해와 달과 별을 돌이켜 천세를 지내고자 하였지만 이제 어디 있는가? 소유는 하동(河東)의 한 베옷 입은 선비로 다행히 현명하신 임금을 만나 벼슬이 장상(將相)에 이르고 또 여러 낭자와 함께 서로 만나 정이 두텁고 심정이 늙도록 더 긴밀하니, 전생 연분이 아니 면 어찌 그러하겠소? 연분이 있어 모이고 연분이 다하면 흩어지기는 천리 (天理)의 떳떳한 일이오. 우리 한번 돌아가면 높은 누각과 굽은 연못과 노래하던 궁전과 춤추던 정자들이 거친 풀과 쓸쓸한 연기로 적막한 가운데 나무하는 아이와 풀 뜯어 마소 치는 아이들이 손가락질 하여 이르되, '양승 상이 낭자와 함께 놀던 곳이다.' 하리니 어찌 슬프지 아니하겠소. 천하에 세 가지 도가 있으니 유도(儒道)․선도(仙道)․불도(彿道)라오. 유도는 윤리와 기강을 밝히고 사업을 귀하게 여겨 이름을 죽은 후에 전할 따름이요, 선도는 허망하니 족히 구할 것 아닌데, 오직 불도는 내 근래에 꿈을 꾸면 항상 부들 방석 위에서 참선하는 것이 불가에 반드시 인연이 있는 것 같소. 내 장차 장자방(張子房)이 적송자(赤松子)를 좇은 것같이 하여 남해를 건너 관음(觀音)께 뵈고, 의대(義臺)에 올라 문수보살(文殊菩薩)에 예불하여, 불생 불멸의 도를 얻고자 하나, 다만 그대들과 함께 반평생을 서로 따르다가 장차 멀리 이별하려 하니 자연 비창한 마음이 퉁소 소리에 나타났던 것이오."
여러 낭자도 다 남악 선녀로서 세속의 인연이 장차 다한 가운데 승상의 말씀을 들으니 어찌 감동치 아니하겠는가?
다 말하였다.
"상공이 번화한 중에 이 마음이 있으니 분명 하늘의 뜻입니다. 첩 등 여덟 사람이 마땅히 아침저녁으로 예불하여 상공을 기다릴 것이니, 상공은 밝은 스승을 얻어 큰 도를 깨달은 후에 첩 등을 가르치십시오."
승상이 크게 기뻐하며 말하였다.
"우리 아홉 사람의 마음이 서로 맞으니 무슨 근심이 있겠소."
여러 낭자가 술을 내어와 작별하려 할 때, 문득 지팡막대 끄는 소리가 난간 밖에서 나 여러 사람이 다 의심하였다. 한참 후에 한 노승이 나타났는데 눈썹은 한 자나 길고 눈은 물결 같아 얼굴과 동정(動靜)이 보통의 중은 아니었다.
대(臺) 위에 올라 승상과 자리를 맞대고 앉아 말하였다.
"산야(山野)의 사람이 대승상께 뵙니다."
승상이 일어나 답례하여 말하였다.
"사부(師父)는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은 평생 사귀던 오랜 벗을 모르십니까?"
승상이 한참 보다가 깨닫고 여러 낭자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내 토번을 치러갔을 때 꿈에 동정호에 갔다가 남악산에 올라 늙은 화상이 제자를 데리고 강론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사부가 바로 그분이십니까?"
노승이 박장대소하며 말하였다.
"옳소! 옳소! 그러나 승상은 꿈 속에서 한번 본 것만 기억하고, 십 년을 같이 산 일은 생각하지 못하십니까?"
승상이 멍한 채로 말하였다.
"십육 세 이전은 부모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십육 세 후는 벼슬하여 임금을 섬겨 분주하여 겨를이 없었는데, 어느 때 사부를 좇아 십 년을 놀았겠습니까?"
노승이 웃으며 말하였다.
"승상이 오히려 꿈을 깨닫지 못하였소."
승상이 말하였다.
"사부께서 저를 깨닫게 하시겠습니까?"
노승이 말하였다.
"이 어렵지 않다."
하고, 막대기를 들어 난간을 치니, 문득 흰 구름이 일어나 사면에 두루 껴 지척을 분간치 못하였다.
승상이 크게 불러 말하였다.
"사부는 바른 도리로 가르치지 아니하시고 어찌 환술(幻術)로 희롱하십니까?"
말을 마치지 못하여 구름이 걷히며 노승과 두 부인 육 낭자는 간 데 없었다. 승상이 크게 놀라 자세히 보니 누대 궁궐은 간 데 없고, 몸은 홀로 작은 암자 가운데 앉아 있었다. 손으로 머리를 만지니 새로 깎은 흔적이 송송하고 백팔염주가 목에 걸려 있으니 다시는 대승상 위의는 없고 불과 연화 도장의 성진 소화상(小和尙)이었다.
다시 생각하되,
'당초 일념 그르침을 사부(師傅)가 경계하려 하여 인간 세상에 나가 부귀 영화와 남녀 정욕을 한번 알게 하신 게구나.'
하고, 즉시 새암에 가 세수한 후, 장삼(長衫)을 바로 입고 고깔을 뚜렷이 쓰고 방장(房丈)에 들어가니 모든 제자들이 다 모여 있었다.
대사가 큰 소리로 말하였다.
"성진아, 인간 세상의 재미가 어떠하더냐?"
성진이 머리를 땅에 두드리며 눈물을 흘려 말하였다.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성진이 함부로 굴어 도심(道心)이 바르지 못하니 마땅히 괴로운 세계에 있어 길이 앙화(殃禍)를 받을 것을 사부께서 한 꿈을 불러 일으켜 성진의 마음을 깨닫게 하시니, 사부의 은덕은 천만 년이라도 갚지 못하겠습니다."
대사가 말하였다.
"네 흥을 띠어 갔다가 흥이 다하여 왔으니 내가 무슨 간섭하겠느냐? 또 네가 세상과 꿈을 다르게 아니, 네 꿈을 오히려 깨지 못하였구나."
성진이 두 번 절해 사죄하고, 설법(說法)하여 꿈 깸을 청하였다.
이때 팔 선녀가 들어와 사례하며 말하였다.
"제자 등이 위부인을 모셔 배운 것이 없기에 정욕을 금치 못해 중한 책망을 입었는데, 사부께서 구제하심을 입어 한 꿈을 깨었으니, 원컨대 제자되어 길이 같기를 바랍니다."
대사가 크게 웃으며 말하였다.
"너히들이 진실로 꿈을 알았으니 다시는 망령된 생각을 하지 말라"
하고, 즉시 대경법(大經法)을 베풀어 성진과 팔 선녀를 가르치니 인간 세 상의 모든 변화는 다 꿈 밖의 꿈이요, 한 마음으로 불법에 나아가니 극락 세계의 만만세 무궁한 즐거움이었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