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홍성의 연암산(440.8m)과 삼준산(압휘봉.489.9m)
(2010년 6월 30일, 부부산행)
남부터미널에서 해미(한서대학)까지 가는 첫차(6시30분)로 한서대학 입구에 내리니 08.00시다 (운임.7200원)
길건너(4차선)해장국집에서 얼큰한 소내장탕으로 (5.000원)아침식사를 하고 연암산을 오르는 원터마을 구판장에서
상세한 안내를 받아 오른다.
아침 출발 할때는 비가 왔으나 해미 9km지점에 오니 비가 그쳤는데 임도를 따라 오르는데 또 가랑비가 조금 내리더니 곧 그친다.
세멘으로 포장된 임도는 초록리 7km 이정표를 지나면 곧 사방댐도 지나게된다.
댐에서 10여분 오르면 왼쪽으로 길이 보이며 리번들이 걸려있다,
마루금엔 좋은길이 기다리나 조금 오르면 위험하지 않은 바위길이 있으며 전망이 좋아 보이나 날씨로 생략한다.
내용도 안내도 없는 비녀바위란다. 앞에는 평상도 있어 쉬기좋게 해 두었다.
또 조금 오르면 만든지 얼마되지 않는 정자가 있어 웃옷을 벗고 쉬는데 비가와서 억지로 30여분 쉬어 간다.
비는 곧 그쳤지만 얼마 안가 바지는 젖고 신발에도 조금 스며드는 느낌이다.
이쪽저쪽 모두 전망은 좋은곳이나 보이는것이 없다,
望望大海가 아닌 望望雲海다. 그러니 차소리만 양쪽에서 들려온다.
약간의 기존 성터가 남아있는 무너진 성터,
성에대한 안내가 없어 좀 갑갑 하기도 했지만.....
연암산 정상이다.
산불감시 무인 시스템과 정상목이 있었다.
산행 시작한지 2시간 만에 도착했다.
정상에서 500m 아래에 있는 天藏寺.
전통사찰 제 42호이고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에 있는 절이다.
연암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은 천장사는 대한불교 조계종단 소속의 사찰로 법당에는 관음보살을 봉안 하였다.
창건연대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담화선사가 수도하기 위해 창건한 사찰로
조선말기 고종 순종때는 고승 경허선사(1849~1912)가 수도 하였고 또한 그의 제자 송만공 선사가 득도 하는등
승려들의 수도장으로 널리 알려진 사찰이다.
1988년 6월 18일 전통사찰로 지정 되었다.
天藏寺 七層 石塔, (문화재 자료 제 202호)
633년 백제의 담화선사가 창건하고 조선말에는 경허선사가 수도하고 만공대사가 도를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탑은 석가모니의 사리를 안치하기위해 세운 건조물이다.
현재 4층 지붕돌과 마지막층 탑신부 사이의 돌은 제 위치가 아니며 상륜부에 올려있는
석탑 부재들도 아래층의 지붕돌과는 균형이 맞지 않는다.
절에갔다가 다시 올라오는길 (200여m지점)에 있는 전망 좋은곳의 바위.
잠깐씩 고속도로와 그 주변을 보여주기도 했다.
다시 연암산으로 올랐다가 새로만든 스텐 난간길을 한참 내려오면 만나는 무너미 고개이다.
45번국도 해미 터널에서 올라오는 길이기도 하며 두산의 중간 안부이기도 하다.
평상 맞은편 소나무 아래엔 고북산악회(1996, 1, 17 창설)기념비가 있기도 하다.
바위사이를 비집고 통과하는 벽장바위를 지나 도착한 삼준산
정상은 (홍성 310 91 재설) 삼각점과 정상석이 있었고 날씨가 좋다면 정말 좋았을것 같았다.
1시 30분이라 조금 아래 전망지 소나무 아래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돌아 내려오다 화계사길로 하산했다.
삼준산 압휘봉이란 정상석이다.
올라올때는 산수저수지를 보고 삼준산에서는 가곡저수지와 대사저수지도 보고 내려올때는
고복저수지도 내려다 보면서 왔다.
삼준산 9부 능선에는 용바위라는 절벽이 있는데 그 아래엔 절터가 있으며 그 흔적으로 지금도
망가진 돌탑과 기와파편이 주변에 널려있다.
화계사 임도를 내려오다 바라본 연암산,
화계사도 보고 오려고 올라갔으나 절은 가정집식으로 지어 들어가지는 않고 돌아 내려왔다.
밭 치고는 이렇게 붉은 황토밭 보기 힘 들것이다.
삼준산과 함께 찍어본 것이다. 삼준산에서 내려오는 길은 아주 급경사였으며 상당히 미끄럽기도 했다.
장요리 고요마을을 지나 고북면에서 택시로 해미까지 가려고 했으나 태워주는 차가 있어
고속도로 육교를 지나 해미읍성까지 잘 왔다,
이곳이 고향인데 다니러 왔다가 서울 가는 길이라며 고속도로 톨게이트 가는길에 일부러 성 앞에 내려주고 가셨다.
고마우신 분 감사드립니다,
진남문
해미 읍성의 정문으로 화강암 홍예문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단층문루.
성문 내측의 인방석에는 "皇明弘治四年辛亥造"라는 각자가 크게 새겨져 있어
성종 22년 (1491)에 대대적으로 중수가 있었던 것을 알수있다.
해미읍성 회화나무(기념물 제 172호) 수령 300년 이상으로 추정
1790~1880년대 이곳 옥사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가지에 철사줄로 매달아 고문 하였으며
지금은 1969년 6월 26일 태풍으로 부러진 가지를 외과수술로 보호 관리하고 있다.
海美邑城,(사적 제 116호)
충남 서산시 해미면 읍내리 32-2 에 있고 성 길이 는 1.800m이며 5m높이에 약 20만㎡
성길 한바퀴 도는데 20여분 걸리고 이곳저곳 모두 돌아 보는데 총 1시간 걸렸다.
이 성은 조선시대 왜구를 방어하기위해 당시 덕산에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옮겨 쌓은것이다.
조선 세번째 임금인 태종 16년(1416)에 쌓았으며 본래 이름은 해미내상성이라 했단다.
밖에서 본 읍성.
성을 덮고있는 넝쿨이 너무 아름 다우며 진남문과 깃발이 너무 조화로웠으나
성안길엔 사료용 수입목초인 레드크로바와 개망초가 덮고 있어
이왕 관리하는 김에 우리 잔디로 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봤다.
여름의 시작인 6월도 오늘로써 그 모습을 감추고 성숙한 여인처럼 요염하게 찾아온 7월의 숲을 기대하며 서울 근교를 조금 벗어난 충남으로 발길을 잡았다.
세월이 간다 해서 아쉬운 건 하나도 없다.
아픈 만큼 성숙하고 달군 만큼 단단해질 무쇠를 생각하며 닥아 오는 세월을 즐겁게 맞이할 것이다.
오늘도 우리 부부는 우리들만의 공간인 산을 찾아 자연과 함께하기 위해 일찍부터 채비를 했다.
첫차를(6시30분 남부터미널) 타기위해 막내 집에서 잤다.
다들 생업에 바쁘게 움직이는데 하릴없는 이 몸은 산간다고 부산을 떠니 자식들 보기가 좀 민망하기도 하다.
그러나 어쩌랴!
산이 부르니 가야만 할 것이고 산에만 가면 자유요 행복이며 간섭받지 않는 자연으로 돌아온 고향 같은 따뜻함을 느끼니 말이다.
물소리에 잠들고 새소리에 잠이 깨는 그런 사춘기적 꿈은 이미 물 건너간 세월이지만 아직도 내 몸과 마음엔 정열이 남아있고 꿈이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해 보이고 싶은 심정이다.
그렇다고 청춘을 욕심내는 것은 아니다.
욕심이라는 것은 어떤 것이던 간에 그 대가를 지불하게 되어 있는 것이다.
화려했던 과거 보다는 닥아 오는 미래가 더 중요한 것이다.
월드컵 16강의 열기가 아직도 우리 몸엔 남아있다.
우리민족의 저력을 세계에 떨친 그런 6월 이었다.
서해바다와 가야산(677.6m) 용봉산(381m)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496.2m)이 한눈에 들어 온다는 전망 좋기로 소문난 산이다.
연암산은 서산시 고북면과 해미면계에 있는 산이고 삼준산은 고북면과 홍성군 갈산면계에 있는 산이며 높지는 않지만 넓은 평원에 우뚝 솟아있는 산이라 전망이 좋고 아름답지만 주변의 유명산에 가려 덜 알려진 산이라 조용해서 좋았고 산봉우리들은 약간의 바위들도 있어 웅장하기도 했었지만 산길이 비교적 부드러워 가족단위 산행에 적합하고 천수만과 간월호등 쭉쭉 뻗은 서해안 고속도로가 시원스레 보일 것 같았지만 운해에 막힌 세상이라 짐작만으로 만족하는 아쉬움속의 산행 이었지만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감동은 예술작품 이상으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게 하며 사람도 자연의 일부임을 다시 한 번 느끼게 하는 하루였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비옷을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는 것이고 충분한 여유와 대리만족으로 마지막 날의 6월을 보내는데 휘나레를 장식한 것 같았다.
하산 후엔 해미읍성까지 둘러보는 여유로움은 두 사람만의 산행 이었기에 의견조율이 쉬워 약간 먼 곳이긴 해도 대중교통으로 즐길 수 있는 교통문화에 감사하며 나의 1,139회 산행으로 남기려 한다.
아름다운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