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세공의 거장, 조지 젠슨(Georg Jensen)
덴마크의 은과 탁월한 공예술을 대표하는 조지 젠슨은 은제품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이름이다. 그는 1904년 코펜하겐 Bredgade가(街)에 작은 은공방을 차린 이래 화려함보다는 수수함으로, 유행에 휩쓸리기보다는 현재에 충실한 디자인으로 은을 예술품의 경지에 올린 인물이다. 독특한 망치질, 무광 회색 처리, 은을 의도적으로 산화시키는 등 참신한 기법으로 스칸디나비아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을 거듭해 어느덧 11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그는 타고난 세공사이자 크리에이터였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그의 디자인에 담긴 절제되고 소박한 스타일은 덴마크의 기질과 더없이 잘 맞았다. 주얼리뿐 아니라 은식기류에서도 재능을 발휘하여 1935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할로우 웨어(hollowware: 속이 깊은 그릇류)와 커트러리(cutlery: 나이프, 숟가락, 포크)를 선보였다.
또한 그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재 발탁과 양성에도 힘쓴 훌륭한 용인(用人)이었다. 오늘날 제품마다 디자이너의 이름을 밝혀 예술가의 사기 진작과 전문성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함께 팀을 이룬 첫 번째 인물인 요한 로데(Johan Rohde)는 장식을 최소화하는 간결한 작업 방식으로 공방에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그와 더불어 견습생으로 시작해 디렉터와 아티스틱 컨설턴트까지 오른 하랄드 닐센(Harald Nielsen)은 ‘불필요한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작업으로 조지 젠슨이 추구하는 군더더기 없는 스타일을 이어갔다.
1930년대에는 스웨덴 왕자 시그바르드 베르나도테(Sigvard Bernadotte)와의 협업으로 기능주의에서 영향을 받은 현대적인 디자인을 선보이는데, 장식을 좁은 밴드와 선으로만 제한하여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에 새 역사를 열었다는 평을 받는다.
해닝 코펠(Henning Koppel)에도 주목해야 한다. 임신한 오리의 매끄럽고 풍성한 곡선미를 모티프로 만든 코펠의 ‘The Pregnant Duck’ 주전자는 덴마크 디자인의 정수를 담고 있다. 그는 추상적 스타일을 바탕으로 자유로운 선을 사용한 주얼리 제작으로 브랜드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나나와 예르겐 디첼(Nanna & Jørgen Ditzel)의 주얼리 역시 명료한 실루엣을 살린 조지 젠슨만의 스타일이다. 1961년 예르겐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나나는 지금까지 공방에 남아서 영속성 있는 주얼리를 만드는 중이다.
또한 조지 젠슨의 막내 아들인 쇠렌 조지 젠슨(Søren Georg Jensen)은 할로우 웨어와 주얼리 작품 양쪽에서 조각 실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작품을 선보였다. 게다가 1967년에는 세계적인 금세공사 비비아나 토룬 뷔로브-휘베(Vivianna Torun Bulow-Hube)까지 합류하여 디자인사에 큰 획을 그은 뱅글 시계 ‘비비아나(Vivianna)’를 탄생시킨다.
신선하고 진취적인 디자이너들은 계속 합류하고 있다. 킴 벅(Kim Buck)은 현대적이면서 동시에 고전적인 디자인의 반지들을 만들어 왔으며, 화합의 정신을 표현한 니나 코펠(Nina Koppel)의 ‘Fusion 컬렉션’은 베스트 셀러로 자리매김했다.
이 시리즈는 화이트, 옐로, 레드 골드와 파베 세팅된 다이아몬드를 사용한 세 개의 독창적인 피스로 이뤄졌는데, 합쳐지면 완벽한 퍼즐을 이루어 개성과 스타일대로 연출할 수 있다. 많은 제자들이 스승인 조지 젠슨의 철학을 계승하되 자신들의 특징을 살려 실용성과 예술성을 겸비한 금속 디자인의 본질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은세공사로 시작하여 시간의 흐름을 초월하는 디자인과 뛰어난 장인정신 그리고 독보적인 품질로 금속 세공업의 명가가 된 조지 젠슨. 그 이름은 어느덧 스칸디나비아의 럭셔리 라이프스타일과 동의어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의 럭셔리는 ‘모셔야’ 되는 화려함이 아닌 수수함과 단순함 속에 녹아있는 생활 그 자체라는 데 중요한 의의가 있다.
출처 : 주얼리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