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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우(海隅)의 백합국어사랑방(신문사설&칼럼) 원문보기 글쓴이: 해우(海隅)
2011년 4월 20일 수요일,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칼럼
* 일러두기 : 이 자료는 교육용으로 쓰기 위해 편집한 것이며 상업적 목적은 일절 없습니다. 선정된 사설의 정치적 성향은 본인의 성향과는 무관함을 알려 드립니다.
* 오늘의 주요 신문사설
[한국일보 사설-20110420수] 고리 1호기, 가장 급한 건 철저한 안전점검
전원공급 계통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된 고리 원전 1호기의 조속한 재가동에 제동이 걸렸다. 문제가 된 전기계통의 스위치 교체로 고장 원인이 제거됐다고 본 한국수력원자력과 달리 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차제에 전기계통뿐만 아니라 격납장치와 냉각장치 등 모든 장치의 정밀 점검이 필요하다고 밝힌 때문이다.
KINS에 따르면 고리 원전 1호기의 고장은 냉각펌프와 급수펌프 등에 전원을 공급하는 스위치 내부의 스프링 장력이 부족해 과부하를 견디지 못하고 불탄 때문이다. 또 고장 난 스위치가 녹아 눌어붙는 바람에 정상적으로 전류가 흐르는 듯한 상태로 오인된 것으로 밝혀졌다. 다행히 비상용 디젤발전기는 정상적으로 작동해 발전에 필요한 전기계통은 살아 있었다.
언뜻 간단한 고장처럼 들리고, 직접적 안전위협을 제기한 것도 아니지만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거대지진과 해일이 냉각계통에 비상전원을 공급하는 전기계통 고장에서 시작됐다는 점에서 적잖은 우려를 하게 한다. 사고 바로 다음날 KINS와의 협의도 없이 서둘러 '15일 06시'로 재가동 일정을 밝힌 한수원의 경솔한 자세와는 별도로 KINS의 안전 지킴이 역할을 확인한 게 그나마 위안이다.
이번 사고와 재가동 선언, 보류 등 일련의 과정에서 조속한 재가동 의욕을 앞세운 듯한 한수원의 자세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무엇보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협'을 똑똑히 보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배움을 보여주지 못했다. 원전 안전성에 대한 전문가들의 자신감과는 달리 많은 국민이 여전히 불안을 느끼는 것은 안전 고려에 최우선 관심을 두어야 할 운영기관의 미덥지 못한 태도 탓이기도 했다.
당장 2007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 점검과 사회적 논의를 거쳐 10년 연장 가동을 결정한 고리 1호기의 즉각 폐쇄 주장이 새삼스럽게 불거지고, 연장 가동에 조건부로 찬성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흔들고 있다. 운전재개를 서두르는 대신 철저한 안전점검으로 사회적 자본인 신뢰 회복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 급선무다.
[한겨레신문 사설-20110420수] 이승만 복권에 목매는 친일·독재 후손의 저의
51년 전 이 땅을 뒤흔들던 아우성은 올해도 여지없이 핏빛 선연한 진달래꽃으로 피어나 다시 산하를 붉게 물들였다. 그날 민주의 제단에 피를 뿌린 영령들 앞에 부끄런 마음으로 머리를 조아린다. 여전히 도도한 반민주 반인권의 탁류 앞에서 조아린 머리 다시 들기 힘들다.
해를 거듭할수록 낯설어지던 4·19 민주혁명의 풍경은 올해 들어 더욱 낯설다. 이승만 박사 기념사업회가 뜬금없이 4·19 영령과 그 유족에게 사과하겠으니 받으라고 떼를 쓰는 진풍경이 벌어진다. 또 이들의 사과를 받아들여, 이른바 건국세력과 4·19 민주세력이 화해하라고 반민주 언론들이 강짜를 부린다. 역사적 죄과에 대한 눈곱만큼의 성찰과 반성도 보이질 않으니, 그 저의를 의심하는 건 당연하다.
기념사업회는 유족이 아니라 보도진을 불러 성명 발표를 예고한 뒤, 4·19 민주묘지에서 성명을 낭독하려다 유족들에 의해 쫓겨났다. 사죄를 선심 쓰듯이 발표하려 했으니 유족의 상처를 덧낼 의도였다고밖에 볼 수 없다. 더 가관은 기념사업회를 앞세워 입 발린 사과와 화해 그리고 친일·독재 부역세력의 복권을 추진하는 일부 언론의 작태다. 이들은 이 정부 들어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는 등 집요하게 이승만 일파를 건국세력으로 추앙하려 했다. 여의치 않자 이번엔 이른바 건국세력과 민주세력의 화해를 강권한 것이다. 등을 떠민다고 될 화해도 아니려니와,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추증하는 일에 누가 동의나 할까.
헌법 전문이 명시했듯이, 건국의 기초는 상하이임시정부였다. 이승만은 임정 대통령 시절, 직무유기는 물론 공금유용 혐의 등으로 탄핵당했다. 그는 임정에 도움보다는 혼란을 안겨줬다. 해방 후엔, 진정한 건국의 아버지라 할 임정 요인들을 철저히 배척하고 탄압했다. 반민특위를 강제로 해체하고 대신 일제 앞잡이들과 손잡았다. 민주공화정에 기반을 둔 자주·독립국가를 세우려던 민족의 염원은 여지없이 깨졌다. 정부 수립 뒤에도 헌정과 인권을 제멋대로 유린했다. 이를 통해 이들은 ‘이승만 왕조’를 건립하려 했다.(박정희도 그 전철을 밟았다.) 이에 맞서 학생 시민이 일체가 되어 역사의 제단을 피로 물들이며 항거한 것이 바로 4·19 혁명이었다. 도대체 누구를 두고 건국세력 운운하는지 가소로울 따름이다.
아마도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비록 권력과 부를 틀어쥐고 있지만, 그들은 친일과 독재의 적자라는 낙인을 지우지 못했다. 정통성에서 치명적 결함을 안고 있다 보니 부와 권력의 기반이 항상 불안하다. 이 문제를 일거에 풀어줄 열쇠가 바로 이승만 복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눈 밝은 국민이 그런 현혹에 넘어갈 리 없다. 부질없이 역사와 국민을 능멸하는 짓을 당장 중단하기 바란다.
[조선일보 사설-20110420수] 중수부 수사 기능 폐지와 대법관 증원은 정답 아니다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 산하 검찰 소위원회 여·야 의원들은 대검 중앙수사부의 수사 기능을 없애고 수사 기획·지도만 담당하게 하자는 데 합의했다. 법원 소위원회도 대법관 숫자를 현재 14명에서 2014년까지 20명으로 늘리기로 했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총장이 지시하는 중요 사건을 수사하는 총장 직할 기구다. 대검에 다른 나라 검찰에는 드문 중수부를 설치해 수사를 맡도록 한 것은 수사 검사가 외부 압력에 굴(屈)하지 않고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과 고위 공직자·기업인들을 소신껏 수사해 처벌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는 으레 정권이 바뀐 뒤에야 전(前) 정권 비리에 칼을 대거나, 어쩌다 현 정권 비리를 수사할 때도 정권의 힘이 빠질 대로 빠진 대통령 임기 막바지에 여론에 떠밀려 하는 바람에 본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는 비판을 들어왔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논쟁이 불거질 때마다 중수부는 그 중심에 서 있었다. 중수부 폐지론자들은 검찰이 '정권의 칼' 노릇을 못 하게 하려면 중수부의 수사 기능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중수부가 없어진다고 검찰의 정치 중립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중수부의 수사 기능이 없어지면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중수부 역할을 해야 한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가 권력형 비리 수사를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특수부를 총괄 지휘하는 서울중앙지검장이 지금의 자리가 마지막 자리라는 각오를 갖고 정치권의 외압을 막아내야 한다. 최고위직에 올라 퇴직을 눈앞에 둔 검찰총장마저 이런 자세를 갖추기 쉽지 않은 현실에서 더 높은 자리로의 승진을 바라보고 있을 서울중앙지검장에게 그걸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런 형편에서 중수부 수사 기능을 없애면 검찰이 그나마 해온 권력형 비리 수사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중수부의 수사 기능을 없애기보다는 미국의 배심제 같은 내부 통제 장치를 둬 검찰이 권력형 비리에 연루된 정치인·고위공직자·기업인의 기소 여부를 정치적 고려에 따라 임의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현재 대법원은 대법관 14명 중 대법원장과 법원행정처장을 뺀 12명의 대법관이 한 해 1인당 2696건의 재판을 맡고 있다. 대법관이 20명으로 늘면 2009년 사건 수를 기준으로 하면 대법관 1인당 1797건으로 줄어들긴 한다. 이 정도 줄어든다고 상고심 재판이 훨씬 빨라지지는 않는다. 상고 사건 수가 지난 5년처럼 연평균 11%씩 늘어나는 추세가 계속된다면 6년쯤 뒤에는 대법관 1인당 사건 수가 다시 현재 수준으로 늘어난다. 대법관이 증원된다고 해서 업무 부담을 줄여 재판을 충실히 하게 하는 효과를 거두기는 힘들다.
독일은 민형사·노동·행정 등 5개 분야별로 대법원을 설치해 총 324명의 대법관이 1·2심과 똑같이 유·무죄를 따지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법원은 1·2심처럼 유·무죄를 따지는 곳이 아니라 법률의 통일적인 해석을 통해 사회가 따라야 할 기준을 제시하는 곳이다. 우리나라 재판에서 상고 건수가 많은 것은 국민이 1·2심의 판결을 흔쾌히 받아들일 만큼 법원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사법체계를 독일식으로 바꾸지 않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1·2심 재판을 꾸준히 강화해 국민의 신뢰를 높여나가는 점진적 개선책밖에 없다. 대법관 증원은 정답(正答)이 아니다.
[경향신문 사설-20110420수] 일 총리의 원전 증설 동결 시사와 한국의 선택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원자력 발전소의 증설계획 동결을 시사했다. 엊그제 열린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원전의) 안전성을 확실히 하지 않고는 향후 원전의 증설계획을 이대로 계속할 수는 없다”고 밝힌 것이다. 그의 발언은 공식적인 원전 증설 포기 선언은 아니었지만 원전의 안전 신화가 무참하게 깨진 시점에서 원전정책의 중대한 수정을 언급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일본으로서 이는 당연히 취해야 할 방향이다. 일본은 대표적인 원전 의존 국가다. 현재 보유 원전이 54기인 일본은 2030년까지 원전을 14기 이상 증설해 현재 30%인 원전 비율을 40%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체르노빌급 원전 재앙이 진행 중인 마당에 이 같은 계획은 전면 철회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본다. 간 총리는 이날 이 문제를 백지 상태에서 검증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우리는 일본이 더욱 적극적으로 ‘원전 출구(出口) 전략’을 세워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 여론도 그쪽으로 급속히 옮겨가고 있다.
한국은 일본의 이런 움직임이 던지는 메시지를 잘 읽어야 한다. 한국의 원전 의존도 역시 일본 못지않게 높다. 한국의 원전 수 21기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에 이어 5위다. 정부는 지난해 이를 35기로 늘려 23%인 원전 비중을 48.5%로 높이는 5차 전력수급기본계획(2010~2024)을 확정했다. 앞서 2008년 나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서는 2030년까지 이 비중을 59%까지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이 계획을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할 분명하고 충분한 이유를 제공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국형 원전이 안전성과 효율성 면에서 최고”라고 강조하지만 이런 낙관론이 곧 안전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일본이 그 실증적 사례다. 마침 지난주 발생한 고리 원전 1호기 가동중단 사고는 경미한 것이란 한국수력원자력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여러 문제점을 드러냈다. 한수원은 야당의 안전성 심사 자료 제출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가정집 두꺼비집 고장 정도의 가벼운 사건이라고 했지만 언제 정상화할지 알 수 없는 상태다.
경향신문은 체르노빌 참사 25주년에 즈음해 현지 취재를 했다. 사고 당시 현장 수습에 투입됐던 50대 기술자는 기자에게 “후쿠시마를 봤다면 학자들과 정부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한국은 똑똑한 나라니까 그 방법을 현명하게 생각해 낼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옳은 판단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원전 정책은 일개 정권의 차원을 넘어서는 국가 중대사란 사실이다.
[서울신문 사설-20110420수] 원전1호 수명연장 앞서 안전불안 해소 먼저다
고리 원전 1호기가 전력 차단기의 고장으로 가동이 중단된 게 오늘로 9일째다. 한국수력원자력 측은 가정에서 두꺼비집이 고장난 정도라고 하더니 이제 와서 부품 품질 조사에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그제 허남식 부산시장과 부산시청 관계자들이 현장을 방문한 결과 안전에 문제가 없도록 모든 부품을 교체했다는 설명도 허위로 드러났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민감해진 국민들은 더욱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1호기 수명을 연장하는 문제는 국민 불안을 해소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리 원전 1호기는 1978년 국내 원자력 발전의 신기원을 열었지만 국내 원전의 사고 및 고장 중 19.8%를 차지할 정도로 노후됐다. 2007년 설계수명 30년을 넘기고 10년 기한으로 수명 연장을 한 이후 이번에 다시 고장났다. 현대중공업이 공급한 전력 차단기의 부품 품질에 하자가 생긴 게 원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지난 2월 안전 검사 때는 그 하자를 찾아내지 못했다. 정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두 차례나 안전 점검을 실시했지만 안전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안전시스템에 심각한 구멍이 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부산·울산·경남지역 주민들이 폐쇄를 주장해도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정부가 원전 불안을 키웠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식품만 해도 유통 기한을 넘겼지만 먹을 만한 게 있다. 그렇지만 먹어선 안 되고, 이를 어기면 정부는 처벌까지 한다. 하물며 유통 기한이 지난 원전은 오죽하겠는가. 버리기 아깝고 쓸 만하다는 이유로, 또 대체하려면 많은 돈이 든다는 이유로 수명을 늘리려고 해서는 안 될 일이다. 후쿠시마 1호기는 설계 수명 40년을 넘기고 재사용했다가 치유 불능의 사태를 맞았다. 고리 원전 1호기도 안전 기준을 몇배, 몇십배 강화하는 게 필요하다. 그런 뒤 모든 부품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 그 기준을 통과하지 못하면 폐쇄하는 게 옳다.
[한국경제신문 사설-20110420수] 미국내 정치 긴장감 높여놓은 S&P의 도전
미국의 신용 평가회사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기축통화국을 상대로 한 유례없는 조치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해결하려는 미 정부의 의지가 불확실하다는 게 S&P의 진단이다. S&P가 세계 최대 경제국에 자명종(wake-up call)을 울렸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영국은 심각한 경기침체에도 긴축재정을 강행하고 있고 프랑스도 재정건전화 정책을 추진하는 데 반해 민주 공화 양당은 정쟁에 빠져 재정 건전화 해결에 대한 합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S&P의 설명이다. 미국의 올해 재정적자 규모는 1조5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부채 역시 바로 다음달인 5월이면 상한선인 14조3000억달러가 뚫릴 것으로 전망된다. 6000억달러를 푼 2차 양적완화정책이 끝나는 시점인 6월에는 세계 경제가 한 차례 요동을 칠 것이라는 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미국 경제가 당장 다급한 적신호를 보이는 긴급상황은 아니라는 점에서 S&P의 이번 조치에는 나름의 정치적 배경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적지 않다. 보수 성향의 출판사 맥그로 힐을 대주주로 하는 S&P가 차기 대통령 선거에 대비, 오바마 정권에 압박을 가하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일부의 지적도 있다. 실제로 미 공화당은 미 행정부가 지출 삭감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고 줄곧 비난해왔다.
미국 신용의 강등은 세계의 모든 채권국들에도 재앙이다. 바로 이점이 미국경제가 갖는 특수성이다. 어떻든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결코 좋은 소식이 될 수 없다. 글로벌 경제가 균형을 맞춰 간다는 소위 불변의 셈법(inexorable arithmetic)은 엄연히 존재한다. 미국의 적자가 축소되면 다른 국가들의 흑자도 축소된다. 그동안 글로벌 불균형으로 인한 반사적 이익을 우리나라나 중국 일본 등이 받아왔다. 미국이 이번 조치에 자극 받아 당장 긴축 모드로 돌아서는 것은 모든 국가들에 좋지 않다. 환율 변동성에 취약한 원화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 미국내 정세에 주목할 때다. 오바마 재선 출마 공식 선언 이후 정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고 이는 우리에게도 여파를 미칠 것이다.
[서울경제신문 사설-20110420수] '재팬 리스크' 최소화 노력 강화할 때
정부가 부품소재 분야의 산업구조 재편을 통해 일본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를 낮추기로 한 것은 불가피하고 시의적절한 정책전환으로 평가된다. 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태의 여파가 예상 외로 장기화할 가능성이 높아져 기존의 부품 및 소재 조달체계를 유지할 경우 생산차질 등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일본 원전 사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도쿄전력은 원전 안정화에 6~9개월 소요된다고 밝혔으나 전문가들은 장기화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부품조달 차질이 불가피하고 결과적으로 자동차ㆍ반도체ㆍ조선 등 주력산업의 피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부품조달 체계를 근본적으로 개선하는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 대지진 사태 이후 중소기업 등 일부 기업이 부품소재 조달 및 수출 등의 피해를 입었지만 아직까지는 큰 피해가 없다는 분석이다. '국내 산업구조 대응전략 태스크포스(TF)' 가동 등으로 피해를 최소화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전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이 같은 임시방편으로는 한계가 있다. 대지진 이후 전자부품ㆍ전기기계ㆍ정밀기기ㆍ수송기계 등을 중심으로 일본의 산업기반이 큰 타격을 입었을 뿐 아니라 부품이 제대로 생산되지 못해 전세계로 영향이 파급되고 있다. 이 같은 일본발 불확실성에 대응하기 위한 근본대책이 필요하다. 부품소재 산업 재편으로 국내 생산능력을 키우고 수입선 다변화 등을 통해 일본 의존도를 줄여나가야 한다.
부품소재 산업 육성은 만성적인 대일적자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지난해 일본과의 역조는 갈수록 늘어 지난해의 경우 243억달러에 달했다. 부품소재 수입의 25.2%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과도한 의존은 국내 산업이 '재팬 리스크'에 그만큼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전사고와 관련한 일본의 허술한 대응으로 전세계적으로 일본의 이미지와 신뢰도에 상당한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번 일을 일본의 그늘에서 벗어나 기술과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활용해야 한다.
* 오늘의 주요 칼럼 읽기
[동아일보 칼럼-홍찬식 칼럼/홍찬식(수석논설위원)-20110420수] 다문화시대라 더 값진 國樂이거늘
프랑스가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가운데 일부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정부가 반환하기로 약속한 일본 궁내청 소장 한국 도서가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지만 시간문제일 뿐 조만간 반환될 것이다. 해외에 유출됐던 문화재가 한국에 귀환한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우리는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온 문화재들이 귀환 이후에 잘 관리되고 있는지, 활용은 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 하다.
* 청중 무관심으로 소멸 위기
해외 유출 문화재의 귀환을 간절히 원했던 마음이 우리 전통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온 것이라면 처음부터 이 땅에 자리 잡고 있던 우리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세심한 보호와 전승이 이뤄져야 정상이다. 하지만 현실은 딴 판이다. 전통 문화는 낡고 뒤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면서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한지 오래다. 한국인의 정신적 유산이 농축돼 있는 고서(古書) 등 옛 문헌 가운데 현대 한국어로 번역이 꼭 필요한 것은 8000여 책에 이른다. 이 중에서 80% 이상이 아직 미번역 상태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 선인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 우리의 정체성은 무엇인지 그대로 묻혀져 버릴지 모른다. 특히 우리 전통 문화에서 큰 축을 형성해온 국악은 소멸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주 국립극장에서는 의미 있는 연주회가 열렸다. ‘어부사시사’를 쓴 조선의 문인 고산 윤선도는 거문고 연주를 즐겨했다. 국립국악관현악단은 ‘어부사시사’를 국악칸타타로 만들어 공연을 가졌다. 이날 연주회에는 전남 해남의 윤선도 고택(古宅)에 소장되어온 옛 거문고가 극장 로비에 선을 보였다. 윤선도가 손수 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거문고다. 연주회는 이 거문고를 무대 위에 올려놓고 진행됐다. 국악칸타타 ‘어부사시사’를 윤선도에게 헌정(獻呈)한다는 의미였다.
조선시대 왕실에서 왕손들의 태교를 위해 국악을 활용했다는 옛 문헌을 근거로 ‘조선왕실 태교 콘서트’도 지난 주 마련됐다. 숙명가야금연주단이 임신한 부부를 대상으로 가야금 연주를 들려주는 공연이었다.
국악계가 여러 아이디어를 짜내며 부활을 모색하고 있으나 국악의 미래는 밝지 않다. 젊은 세대는 국악에 무관심하다. 매일 저녁 수많은 공연이 전국의 무대에 올려지고 있으나 관객 모으기가 가장 힘든 분야가 국악이다. 가장 인기 있던 판소리는 2003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에 선정된 뒤 아이러니컬하게도 더 침체에 빠진 느낌이다. 해마다 예술계 대학 졸업생이 3만 명 이상 배출되고 있으나 국악 분야는 800여명에 불과하다. 그 마저도 자꾸 줄어드는 추세다. 10년, 20년 뒤 국악이 이 땅에 존속하고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 문화적 정체성 위해 전통 진작해야
우리 전통을 이해하려면 국악을 알아야 한다. 조선조 왕들은 음악을 정치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바른 정치를 위해 예(禮)와 악(樂)이 중시됐다. 예는 도덕과 규범 등을 말하며 악은 음악을 뜻한다. 예는 천지(天地)의 질서를 이루게 하며 악은 천지의 화합을 이끌어낸다고 봤다. 즉 나라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도덕 이외에 음악을 통해 화합과 조화를 이뤄내야 한다는 인식이었다. 음악은 교육 수단으로도 활용됐다. 음악은 인간의 성정(性情)을 변화시켜 인격을 완성한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선비의 방에는 거문고와 같은 악기가 반드시 갖춰져 있었다.
시대가 바뀌고 새로운 문화 장르들이 유입되면서 국악의 설 자리는 좁아졌다. 그러나 외래문화의 공세가 거셀수록 전통 문화의 가치가 더 돋보이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일본은 가부키 스모 기모노 등 전통 문화를 해외에 적극 알리면서 국가이미지를 높였다. 중국은 뒤늦게 공자와 같은 전통 문화를 되살리는데 발 벗고 나서고 있다. 중국이 ‘동북공정’과 함께 진행해온 ‘탐원(探源)공정’은 기원전 3000년경의 오제(五帝) 시대까지 중국 역사를 끌어올리려는 작업이다.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 있는 모든 민족이 중화 문명의 일부였다고 강조해 중국의 내부 단속을 강화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한국에서는 다문화를 강조하는 흐름이 두드러지는 반면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전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 자체가 시대와 맞지 않는 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다문화 사회를 인정하고 대비하는 것과 전통 문화의 전승은 별개의 일이다. 한국이 하나의 국가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전통 문화를 지키고 확산시키는 일에 힘을 쏟아야 한다.
정조는 세종에 이어 국악을 진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군주로 꼽힌다. 그는 “누가 국악이 무너져서 흥기시킬 수 없다고 하였는가. 진작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흥기하지 않는 것이니, 흥기하는 것은 진작시키는데 달려 있다”고 말했다. 국악의 소멸을 막기 위해 지금도 유효한 명언이 아닐 수 없다.
[중앙일보 칼럼-경제 view &/조셉 마일링거(한국지멘스 사장)-20110420수] 이대로 가면 14년 뒤 30억 명이 ‘물 쇼크’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지구 면적의 4분의 3이 물이지만, 그중 마실 수 있는 물은 1%에 불과하다. 유엔은 2025년이 되면 약 30억 명 이상이 식수난에 직면할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10억 명 이상의 인구가 하루 5L 이하의 물로 살아가고 있다. 5L는 화장실 변기 물을 한 번 내리는 양에 불과하다.
산업적인 차원에서 보면, 차 한 대를 제조하기 위해서는 약 15만L의 물이 필요하다. 이처럼 물에 의존하지 않는 산업이나 인프라는 존재하지 않는다. 지금과 같이 물을 계속 낭비하다가는 상상을 초월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수도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물론 이러한 물의 위기를 예측하는 목소리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물 부족에 대한 심각성과 수자원 보존에 대한 인식은 걸음마 수준이다. 더욱이 물 부족 현상을 막을 수 있는 수준의 대안을 개인·기업·정부 차원에서 실천에 옮기는 모습은 더욱 찾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지금이라도 ‘물’에 대해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때다.
우선 개개인의 인식 변화와 노력은 필수적이다. 일상생활에서 물을 절약하는 데 동참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1992년 유엔은 3월 22일을 ‘세계 물의 날’로 정하고, 전 세계인이 물 부족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천 가능한 대안을 내놓도록 격려하고 있다. 지멘스도 지난해 물 절약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을 높이기 위해 페이스북에 ‘개인 물 사용 계산기(Personal Water Calculator)’ 애플리케이션을 소개하기도 했다. 자신의 물 사용량을 입력해 총합을 확인하고, 물 사용을 줄일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는 앱이다.
기업 차원에서의 노력도 중요하다. 회사의 물 사용 패턴을 면밀히 검토하고, 물을 귀중한 자원으로 인식하며, 재사용하는 양을 최대한 늘리는 동시에 폐기물을 줄이고, 에너지와 물의 상호관계를 고려하면 산업용수량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기술의 발달로 거의 모든 상황과 개별 기업의 필요에 맞춘 솔루션이 제공되고 있다. 외부 전문가에 의뢰해 현재의 상황을 점검해 본다면 혜택을 극대화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수자원 활용에 대한 맞춤형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한 음료회사는 병 세척을 위해 사용하는 물을 회수하는 새로운 방안을 도입함으로써 하루 9만5000L라는 엄청난 양의 물을 절약할 수 있었다. 어떤 제약회사는 폐기물 흐름을 분석하고 관련 용수를 재사용해 연간 2억L 가까운 물을 절약할 수 있었다. 아울러 수처리 작업이 에너지 소모와도 직결된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물 사용을 줄이면 에너지를 아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점에 유념한다면 물 절약이 보다 수월해진다.
정부 차원에서도 폐수 재사용을 통해 수자원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움직임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물이 부족한 싱가포르의 경우, 창이(Changi) 정수장을 신설해 1차 및 2차 폐수 처리와 미생물을 활용한 멤브레인 시스템 등을 도입해 전체 폐수의 50% 이상을 처리해 재사용한다. 이를 통해 싱가포르 물 수요의 30%를 충족시키고 있으며, 공급 부족으로 외부에서 수입하는 물의 양을 전체 소비의 40% 선으로 끌어내리는 데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자원을 보다 똑똑하게 활용하기 위한 기술과 노력에 대한 투자는 아직 미흡한 수준이다. 미국의 청정에너지 기술 전문 리서치 회사인 클린테크그룹에 따르면, 현재 글로벌 벤처 자본의 2%만이 이른바 ‘스마트 워터’ 연구에 투자되고 있다. 사회 전 구성원의 행복과 삶의 질에 물이 미치는 영향을 고려했을 때 이는 놀라울 정도로 낮은 수준이다. 정책 입안자들과 기업·시민, 그 외 수많은 경제활동 구성원 모두가 물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고민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실천해야 할 때다.
[경향신문 칼럼-여적/김태관(논설위원)-20110420수] 눈꽃, 벚꽃
강원도 산간에 4월의 폭설이 내렸다. 차량이 거북이걸음을 하는 한계령 고갯길에는 눈꽃이 만발했다. 봄꽃처럼 흐드러진 눈꽃이다. 오대산 월정사의 설경 사진을 보니 눈인지 꽃인지 분간이 안 간다. 저 분분한 풍경에 마음이 산란하기는 설악산 백담사의 만해 스님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지난 겨울 내린 눈이 꽃과 같더니(昨冬雪如花)/ 이 봄에 핀 꽃은 도리어 눈 같구나(今春花如雪)/ 눈도 꽃도 참이 아니거늘(雪花共非眞)/ 어째서 내 마음은 찢어지려고 하는고(如何心欲裂).” ‘벚꽃을 보고(見櫻花有感)’라는 한시다. 눈도 꽃도 헛것이건만, 눈보라처럼 날리는 벚꽃은 마음을 뒤흔든다. 지는 꽃잎에 가슴이 시린 것은 승(僧)과 속(俗)이 다를 리 없다.
벚꽃이 지고 있다. 필 때도 제 맘대로 피더니, 질 때도 제 맘대로 지고 있다. 저홀로 피었다 저홀로 지건만 바라보는 이들은 왜 마음이 찢어지는가. 돌아보면 한바탕 꿈과 같다. 필 때는 온 세상을 덮을 듯하더니 질 때는 저리도 속절없다. 꿈결처럼 스쳐가는 저 벚꽃은 어쩌면 피면서부터 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밤에 핀 벚꽃, 오늘 또한 옛날이 되어버렸네.” 많은 이들이 애송하는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1763~1827)의 하이쿠다. 벚꽃은 한순간이다. 아침에 핀 꽃이 저녁이면 시든다. 오늘 만발한 꽃은 내일이면 벌써 옛날이 된다. 아니, 지금 이 순간 바라본 꽃도 돌아서면 이미 추억이 되어 버린다. 밤에 핀 벚꽃은 그래서 더욱 애틋하다.
봄날은 짧고 벚꽃은 더욱 짧다. 그러나 잠깐인 벚꽃에도 어엿한 한 생(生)이 담겨 있다. “두 사람의 운명이여. 그 사이에 핀 벚꽃이런가.” 하이쿠의 거장 마쓰오 바쇼(松尾芭焦·1644~94)의 작품이다. 아마도 두 사람은 정인(情人)일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불꽃 같은 사랑을 나누고 운명처럼 헤어졌을 것이다. 둘 사이에 핀 벚꽃에는 인생 같은 긴 사연이 담겨 있다. “우리는 심연에서 와서 심연으로 간다. 이 두 심연 사이를 인생이라고 부른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짧은 시를 연상시키는 마쓰오 바쇼의 절창이다.
법정 스님은 “매화는 반개, 벚꽃은 만개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했다. 눈도 꽃도 아름다움은 참으로 순식간이다. 더 늦기 전에 저 흐드러진 벚꽃을 가슴에 담아보자. 오늘의 벚꽃은 눈 녹듯 사라져도, 추억의 벚꽃은 늘 그 자리에 있을 터이니.
[매일경제신문 칼럼-매경춘추/송시영(연세대 의과대학 내과교수)-20110420수] 작은 배려들
초등학생들이 소리치며 식당을 종횡무진 뛰어다녀도 부모는 보고만 있다. 사랑스러운 자녀들의 즐겁게 노는 모습이 대견하기만한 듯 다른 사람들의 불편은 생각조차 없는 듯하다. 한참을 지나 부모도 이제는 한계를 넘어섰다고 생각했는지 갑작스러운 폭발적 꾸지람이 이어진다. 아이들의 언어로 조용한 설득을 기대했지만…. 저 아이들이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게 될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고등학생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전화를 받는다. 지금 꼭 받아야 할 급한 내용이 아님이 분명하다. 그러나 걸려온 전화를 받는 것이 내 권리임을 인식시키듯 목소리는 점점 커지며 통화는 계속된다.
대학생이 무거운 출입문을 밀고 앞서서 통과한다. 자신이 통과할 만큼 빠끔히 문을 열고 그 틈새로 곡예하듯 빠져나간다. 분명 학생의 잘못이라고 탓할 수도 없지만 뒤따라가는 사람은 무언가 씁쓸하기만 하다.
젊은 직장인이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으로 무언가 하고 있다. 노인이 힘들게 서 있는 모습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오직 스마트폰과 자신의 즐거움만이 있을 뿐이다.
식당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의 성장 과정일지도 모른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곧 자신의 행복이며, 세상과의 연결고리라는 것까지 법으로 가르칠 수는 없다. 자신에게는 무한히 관대하지만 남의 잘못은 조금도 용서하지 못하는 어른으로 점차 변모해 가는 과정까지 법으로 막을 수는 없다.
많은 특급호텔 장애인 주차공간이 발레파킹을 위한 공간으로 변모해 버린 지 오래다. 누구 하나 항변하는 사람도 없다. 간간이 장애인 단체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만 있을 뿐이다. 벌금으로도 약자를 위한 최소한의 배려가 지켜지지 않는 것은, 법 이전의 마음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다문화 가족 30만명, 외국인 노동자 90만명 거주. `민족` 대신 `국민`이란 표현을 써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의 미래는 다문화 가족과의 동질화 여부에 달려 있다. 2009년 장애인 수는 다문화 가족의 8배인 242만명이다.
배우지 못했던 배려를, 배우긴 했어도 실천하지 못했던 배려를 정착시켜야 한다. 사회 저변의 지속적인 교육을 통해 우리 마음속 깊이 배려, 사랑, 화합이란 단어가 각인되지 않으면 결코 넘기 어려운 장벽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