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이야기
서 영 복
입주자 작품전시회를 한단다. 이곳 빌리지에서 미술동호회와 서예동호회원들이 그동안 틈틈이 해온 작품들을 전시하는 연말 행사이다. 방석을 마련해줄 테니 편하게 앉아보라는 거다.
그림을 좀 그린다고 하는 사람들은 개인전을 몇 차례씩 열면서 나름의 실력도 쌓아가고 성취감을 만끽하며 작가 생활을 해나간다. 하지만 나처럼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에겐 동호회 전시회가 그나마 자기 성장의 좋은 기회가 된다.
현직에 있을 때, 그림을 취미로 하는 몇몇 동료들과 방과 후에 모여 수년 동안 전공 작가를 모시고 그림을 배웠었다. 연필 소묘. 유화. 수채화에 취미가 붙으면서 또 다른 세상에 빠져드는 나를 발견했다. 아이들 교육도 한창 신경 써야 하는 때였지만 나는 바람이라도 난 것처럼 작가의 화실에 자주 들랑거리며 고가의 미술도구들을 장만하기 시작했다. 뭐든 한곳에 꽂히면 다른데 눈을 돌리지 않는 습성 때문에 한동안 퇴근 시간을 넘겨 밖이 어두워지도록 그림 그리기를 즐기고 있었다. 그 덕분에 처음으로 교육청에서 열어준 교원전시회에 작품을 내어보고 좋은 평가도 받았다. 하지만 이건 25년 전의 이야기이다. 은퇴하면서 다른 나라 여행에 빠져 자연스레 그림과 멀어지고 창고 속에서 잠자던 물감들이 말라가는 게 아까웠다. 그래서 내가 활동하던 장애인 단체 소속의 여성화가 K가 개인전을 열고 있을 때 그녀에게 내가 아끼던 미술도구 일체를 기부하였다. 그리고 이제 더는 그림붓을 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때부터였다.
몇 년 전 칠순기념으로 하와이에서 한 달 살이를 지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와이키키해변에 앉아 바닷바람을 맛보며 사람 구경을 하던 우리에게 다가와 그림 한 장을 내밀던 청년 때문이다. 그는 어디선가 우리를 보고 있다가 자기가 볼펜으로 그린 손바닥만 한 그림을 내밀고는 멋쩍은 듯이 달아났다.
그는 영어가 아닌 다른 말을 하였고 나는 어설픈 영어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 순간 불현듯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다. “어반스케치”를 배우고 싶었다. 마침 좋은 기회가 되어 작년에 몇 사람이 M 갤러리에서 어반스케치를 배웠고 서툴렀지만, 시내의 H 카페에서 수강생들끼리 전시회를 했다.
그런데 무얼 좀 알아가나 싶었는데 이제는 갈수록 그림이 어렵게 느껴졌다. 나이가 든 탓일까? 욕심만 앞서지 작품이라고 내어놓을 만한 게 없고 똑같은 그림을 여러 장 그려보았는데 점점 갈수록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되어갔다. 나이 좀 들어간다고 미술 감각이 무뎌지는 걸까?
동호회장은 이달 말 안으로 전시회에 출품할 작품의 제목과 크기를 알려줘야 전시공간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고 재촉하였다.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래 앉아서 걱정만 하고 있으면 뭘 하나 언젠가부터 자작나무를 그려보고 싶었으니 자작나무를 만나러 떠나볼까? 마침 작은 공부 모임의 젊은 친구들이 가을 여행을 가잔다. 자작나무숲이 있는 강원도 인제읍 쪽이다. 별바라기 숲까지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왕복 6.5킬로의 거리였다.
그 곳에서 나는 입이 딱 벌어지는 자작나무 숲을 만났다.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보았던 자작나무가 무색할 지경이었다. 수없이 많은 사진을 찍어대었다. 내가 찍은 사진도 그럴싸했다. 때로는 실제로 보는 풍경보다 사진으로 작품화하여 감상하는 쪽이 더 큰 감동을 주기도 한다. 프로 사진작가들의 사진이 그렇다. 남모를 노력의 대가라고 여긴다. 그나저나 자작나무 숲을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름답던 자작나무숲은 내 화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였다.
아니다. 그들은 나를 비웃으며 달아났다. 호락호락 나 같은 조무래기에게 우리를 그려주쇼 하지 않는 도도한 자존심 같은 게 있었다. 나는 자작나무숲을 그리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아니 그전에 이미 자격심사에서 탈락이었다. 어차피 작은 크기의 수채 화지를 선택하였으니 소박한 어반 스케치 작품을 해야 했다. 일상이나 여행 중에 내가 보고 느낀 것을 화지에 옮겨보는 작업은 사진과는 또 다른 감성이 작동하는 나만의 세계다. 그것은 사진을 찍은 것처럼 똑같이 그릴 수도 없지만 그렇게 그리지 않는다. 공기와 바람과 날아가던 새들의 노래뿐 아니라 그 여행지에서 느꼈던 내 감정까지도 그려 넣을 수 있다. 훗날에 그림 앞에 서면 그때의 장소로 다시 여행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는 강원도 인제읍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보러 가는 길에 만났던 작은 시골 마을을 그렸다. 저 멀리 나지막한 산밑에 옹기종기 시골집 몇 채가 보이고 어렴풋이 교회당도 보였다. 어느 집에선 시래기 된장국을 끓이고 있을 듯하였다. 마을 어귀에 자작나무 몇 그루가 그다지 세지 않는 바람으로 예쁘게 물들어가는 나뭇잎들을 떨구어 내고 서 있다.
성급히 떠나려는 가을을 붙잡아 보려는 걸까. 아니다. 소곤대는 소리가 들린다. 가을은 붙잡는다고 길게 머물 수 없다고. 그러니 그냥 겨울을 맞이하라고…. 그런 이야기들을 내 작은 화지에 수채물감으로 그려 넣었다. 수수하게, 그리고 나답게…. (202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