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부머 세대의 노후자산 관리와 금융기관의 역할
강창희 미래에셋 소장
베이비부머세대의 은퇴 후 자산관리문제가 우리사회의 큰 화두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이 현역시절에 모아둔 금융자산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베이비부머 세대 자신들의 노후생활은 물론 우리나라 경제 활성화 여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보유 금융자산을 효율적으로 운용하여 행복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데에는 무엇보다도 금융기관의 자산관리 컨설팅 기능이 중요하다. 그런데 이 기능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 나라가 바로 이웃나라 일본이다. 일본은 방대한 가계금융자산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금융기관이 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 은퇴자들의 노후자산관리에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일본경제의 활성화에도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가계금융자산은,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약 2경(京)원 정도(2011년 3월말 현재 1476조엔)로 미국에 이어 세계 2번째의 규모이다. 이 방대한 가계금융자산의 70% 정도를 60세 이상의 고령세대가 보유하고 있다. 일본의 고령세대는 금융자산 부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일본의 고령세대들은 리스크가 따르는 투자형 금융상품에 운용을 해 본 경험이 없을 뿐 아니라 금융기관의 자산운용 컨설팅 기능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금융자산을 연리 0.02%정도의 정기예금에 넣어두고 있거나, 내용도 모르는 투자상품에 무모하게 투자했다가 원금까지 크게 손해를 보는 등 양극단의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일년 만기 정기예금 금리가 제로퍼센트에 가까운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가계금융자산의 절반이상을 예금이 차지하고 있다. 투자상품의 비중은 25%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1990년대 이후 일본의 금융시장이 매우 불안했다는 점, 대부분의 가계금융자산을 고령 세대가 보유하고 있다는 점 등이 큰 이유라고 할 수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일본의 사회 풍조라고 할까, 잘못된 경제교육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과거 60년 넘게 일본의 정책당국은 국민들에게 열심히 일해서 돈이 생기면 무조건 은행이나 우체국에 맡기고 열심히 일만 하라고 교육했다. 심지어 사회적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을 이상하게 보는 풍조도 있었다. 어찌 보면 건전한 교육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이것이 지금 일본 경제가 활기를 되찾는 데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한 경제학자는 “60년 넘게 일본인들에게 리스크가 없는 저축만 하라고 세뇌시켜온 결과 일본인에게는 리스크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DNA가 없어졌다. 이것이 일본의 비극이다.”라고 한탄할 정도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한 일본 정책 당국이 수년 전부터 투자교육을 강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지만 만족할 만한 성과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금리가 제로에 가까운 예금에 가계금융자산의 대부분을 넣어두고 있으니 운용수익을 거의 얻을 수 없다. 게다가 100세 까지 장수하는 게 걱정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일본의 고령세대들은 돈을 쓰질 않는다. 돈 가진 세대가 소비를 안 하니 경제 또한 활성화 되지 않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일본의 고령세대들이 현역시절에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았거나, 금융기관이 제 역할을 하여 가계금융자산을 연 5%정도로만 운용할 수있도록 도와준다면 연간 1,000조원 규모의 운용수익이 창출될 수 있다. 이 정도의 운용수익이면 일본의 고령세대를 행복하게 해줄 뿐 아니라 일본경제의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데 그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이런 우려에서 자유롭지 않다. 우리나라 가계금융자산의 규모는 작년 9월말 현재 2,220조원 정도이다. 미국, 일본에 비하면 그다지 큰 규모라고 할 수 없겠지만 세계에서 10위~15위권의 규모이다. 이 중에서 60세 이상의 고령세대가 보유하고 있는 가계금융자산의 비율이 아직은 20% 정도 밖에 안되지만, 700만 베이비부머 세대가 고령세대로 편입되는 시점이 되면, 이 비율이 50~60%로 높아질 가능성이 있다. 그때까지 베이비부머 세대가 투자형 상품에 장기∙분산투자하는 교육을 받지 못하고, 금융기관의 고령자 대상 자산관리 비즈니스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지금 일본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일본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하루 빨리 고령세대 대상 자산관리 컨설팅 비즈니스의 노하우를 쌓아서, 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