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5일 성탄절. 한국의 탄생화와 부부 사랑 / 포인세티아, 꽃기린
♧ 12월 25일. 오늘의 역사와 기념일.
* 성탄절 (크리스마스)
* 336년 - 예수 탄생을 기념하는 크리스마스 기념일 지정.
♧ 12월 25일. 한국의 탄생화
* 크리스마스 플라워라는 별명의 포인세티아와 예수님의 꽃으로 불리는 꽃기린 : 대극과 대극속 8종
* 대표탄생화 : 포인세티아 (크리스마스 플라워)
* 주요탄생화 : 꽃기린 (예수님의 꽃)
※ 12월 25일 세계의 탄생화
서양호랑가시나무 (Holly) → 10월 21일 한국의 탄생화
성탄절 아침입니다. 예수님을 주님으로, 아빠, 아버지로, 스승으로, 벗으로 생각하시는 모든 분들에게 성탄의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하늘에는 영광이 땅에는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도드립니다.
성탄절의 한국의 탄생화는 대극과의 [포인세티아]와 [꽃기린]입니다. 성탄절과 예수님에 관련된 꽃들을 선정하였습니다.
[포인세티아]는 [Christmas Flower]라는별명답게 크리스마스 장식 등에 많이 사용되는 관엽식물입니다. 종모양을 닮은 붉은 꽃포 속에 노랗고 작은 꽃이 피어납니다, `성스러운 밤의 꽃`이라 부르며, 서양 사람들은 포인세티아가 베들레헴의 별을 닮았다고 여긴답니다. 멕시코가 원산지인데 포인세티아의 이름은 초대 멕시코 미국대사인 `조엘 로버트 포인세트`에서 나온 말입니다. 이 양반이 식물학자기도 했거든요. 멕시코 꽃을 미국에 소개하면서 자기 이름을 붙인 것이지요. 저도 제 이름의 꽃이 하나 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포인세티아의 꽃말은 [축복], [나의 마음은 불 타고 있습니다]입니다. 성탄을 축하하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을 표현한 꽃말로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대극과의 [꽃기린] 또한 오늘의 탄생화입니다. 다육식물로 작은 열대성 나무이며 줄기는 다육질이고, 전체에 가시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수난을 받을실 때 썼던 가시관이 이 꽃기린의 줄기였다고 하지요. 그래서 [면류관의 꽃], [예수꽃]이란 별명이 있답니다. 의미만을 생각하자면 부활 전 금요일(성금요일)의 꽃으로 정해야 하지만, 부활절의 날자가 유대력에 따라 매년 바뀌기 때문에 날자를 특정할 수 없어 오늘 성탄절의 탄생화로 정했습니다. 꽃말은 [고난의 깊이를 간직하다], [예수님의 꽃]입니다. 보통 붉은색 꽃이 많고 흰색과 노란색의 꽃도 있는데 붉은색은 예수님의 보혈, 노란색은 예수님의 영광, 흰꽃은 예수님의 성결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성탄절 특집 철학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는데요, 오늘의 주제는 [높음과 넓음] 그 첫번째 이야기입니다. 교회에서는 하느님을 표현할 때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으로 표현합니다. 저는 지극히 넓으신 하느님으로 표현한답니다. 왜 그럴까요?
높다는 것의 뜻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어떤 기준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을 `높다`라고 표현합니다. 과학적으로는 중력과 연관 된 듯합니다. 중력 기준에서 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더 높은 것입니다. 백두산이 한라산보다 더 높지요. 태양이 달 보다 더 높다고 할 수 있겠지요. 지구면을 기준했을 때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북극성이 태양보다 더 높이 있는 것일까요?
사회통념적으로는 지위가 더 위에 있는 것을 높다라고 합니다. 내가 과장이면 부장, 사장은 나 보다 높은 것이고, 대리, 주임은 나보다 낮은 것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권력의 위치에 따라 계급 또는 등급이 나뉘어져 있습니다. 나라에서는 대통령이 가장 높은 것으로 되어 있답니다. 지금의 촛불 대통령은 그리 보이진 않지요? 나라를 말아 먹고 쫒겨난 대통령에겐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불러 주던 대로 받아 쓰던 언론사 기자들이 지금 대통령에겐 물고 뜯고 대들며 엉기는 모습이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승이 제자보다 높고, 부모가 자녀보다 높습니다. 우리는 당연히 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칼 세이건의 창백한 푸른 점' 이야기 할 때도 말씀드렸듯이 우주에서 보면 지구와 그 안의 인류는 그냥 하나의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티끌의 이곳 저곳에서 내가 더 높으니, 내가 얼마나 더 가졌느니 혹은 내가 얼마를 더 살았느니 하는 것은 정말 하등의 하찮은 일이겠지요. 우주의 눈으로 본 것이 하느님의 눈이 될 것입니다.
높고 낮음은 중력과 인간의 편견이 가지는 오류입니다. 우주의 눈에는 높음과 낮음이 아니라 넓음과 좁음으로 구분합니다. 인간의 권력 또한 그리 되어야 할 것입니다. 권력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권한의 넓음과 좁음으로 세상이 진화할 때 인류의 구원, 예수님께서 주창하시는 하느님의 나라가 비로소 도래할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권력 중심 사회에서 역할 분담 사회로의 전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저의 철학이야기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4차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인류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진보이기도 합니다. 자본과 권력 중심의 세상을 타파하지 못한 4차 산업혁명은 서민들에게는 헬조선이라 표현되는 지옥의 그것일 것입니다.
어느덧 2018년의 마지막 일요일입니다. 다음 일요일은 2019년이라는 꼬리표가 달려있을 것입니다. 세월 참 빠르지요? 성탄절부터 말일까지 일곱날이 매년 그 해의 마지막 요일이 됩니다. 성탄절. 높이 계시던 하느님의 아들이 낮은 인간으로 그것도 평민의 아들로 내려왔을까에 대한 철학적 의미를 생각해 보시는 하루가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일이 성탄절이듯이 모든 생명의 탄생은 성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