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의 첫번째 일요일인 오늘 12/6일.
아침부터 햇살이 환하고 날씨도 포근하니 마치 봄날 같다.
제주의 겨울에 이런 날 며칠이나 될까.
그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걷기에 나섰다.
이런 날은 바닷물빛이 예쁘니, 숲길 보다는 바닷길을 걷는 게 제격.
집앞에서 버스를 타고 간 곳은 제주섬의 북쪽 중앙인 제주시에서 동쪽으로 위치한 조천읍 함덕리.
오늘은 올레길 19 코스를 걸어보리라.
19코스는 제주섬의 가장 북쪽에 위치한(육지와 가장 가까운) 김녕의 서포구에서 시작해, 조천의 만세동산에서 마치는 약 19km의 구간이지만 그간 조천에서 함덕해수욕장까진 수시로 걸었던바, 오늘은 함덕에서 시작해 김녕까지 역방향으로 약 15km를 걷기로 한다.
19코스는 지도에서 보듯이 바다와 숲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길로 바닷길 2/3, 임도를 포함한 숲길이 1/3 정도로 이어진다.
함덕해수욕장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제주도는 외지인에 의한 감염은 종종 있으나 아직까진 지역내 n차 감염이 없는, 코로나로부터 비교적 안전지대.
맑은 날씨 덕분에 바닷물빛이 예상대로 정말 파랗고 예쁘다. 함덕해변의 상징인 서우봉의 모습.
고려시대, 원나라에 끝까지 항전하던 삼별초를 멸하기 위해 여몽연합군이 이 곳으로 상륙한다.
서우봉을 넘어 조천읍 북촌리를 걸어가자니 무인도인 다려도가 한눈에 들어온다.
북촌리는 4.3의 슬픔이 짙게 배인 마을. 토벌군인 군경에 의해 순식간에 400여채의 가옥이 불타고, 약 300명의 마을주민이 사살된 곳.
이러한 내용은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 에 잘 나타난다.
사진은 일제시대 때 특공대의 기습 공격을 위해 해안가에 만든 인공 동굴의 모습.
이 아름다운 곳에 어째 그런 슬픈 역사가. 그야말로 현대사의 크나큰 비극이 아닐 수 없다.
바닷가엔 이렇게 용천수가 솟아 마을주민의 음료수와 생활용수로 쓰였는데 지금은 난개발과 중산간에서 지하수를 뿜어올려 안타깝게도 이렇게 물길이 끊긴 곳이 많다.
나름대로 멋을 내어 지은 집이 인상깊어 사진으로 담아본다.
서우봉을 주로 함덕해수욕장 쪽에서만 바라보다 이렇게 뒷편에서 보자니 또 새로운 풍경이 된다.
북촌리 환해장성의 모습.
환해장성은 처음엔 고려군이 삼별초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제주를 삼별초가 장악해선 여몽연합군을 막아내기 위해 해안선을 따라 축조했다.
지금의 등대와 같은 제주의 도대. 이 곳에 불을 밝혀 고기잡이 배들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했단다.
북촌마을의 본향당인 구짓머리당.
제주의 본향당(本鄕堂)은 바다에 의지하며 살던 제주인들의 안녕과 복을 빌었던 곳이다.
북촌포구의 정겨운 모습.
제주섬의 일주도로에 차가 다니기 시작한 건 1960년대 들어와서다. 그 전엔 배를 타고 다녔으니 마을마다 조성된 이런 포구는 지금의 버스정류장과도 같은 곳.
북촌을 지나면 길은 바닷길에서 벗어나 일주도로를 건너 한라산 쪽으로 올라간다.
사진은 구좌읍 동복리 마을운동장의 모습인데 널찍한 잔디가 참 시원스럽다.
하지만 바로 인근엔 이렇게 높고 큰 쓰레기 소각장이 들어섰다. 요즘 급속한 개발과 변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제주의 현실을 보는 듯 씁쓰레하다.
길은 '벌러진동산' 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숲길로 이어진다.
호젓한 임도와
좁은 숲길의 반복. 여름에 오면 시원한 그늘로 정말 좋을 듯.
구좌읍과 김녕 일대엔 바람이 세서 이렇게 풍력발전단지를 이루고 있다.
숲으로 이어지던 길은 다시 바다를 향한다.
제주의 대표적인 당산목(堂山木)인 폭낭. 당산목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나무를 일컫는다.
스프링클러가 돌고 있는 너른 밭엔 구좌읍의 대표적 농산물인 당근이 심어져 있다.
멀리 바다가 보이는 길엔 이제 막 노릇노릇 유채꽃이 피어나고.
싱그런 초록의 밭. 무엇일까 가까이 가서 봤더니 다름아닌 마늘이더라는.
마늘은 서쪽에만 많이 심나 했는데 동쪽에도 이렇게 대규모 마늘밭이 있을 줄이야.
이 길을 따라 걸으면 19코스의 종점인 김녕서포구가 나온다.
나는 제주시로 돌아오는 버스를 타기 위해 바로 직전인 백련사에서 오늘의 걷기를 마친다.
시간은 14:40분, 걷기 시작한 지 3시간 40분만에 약 15km를 걸었다.
화창하고 바람마저 없는 날씨에 느긋함과 여유로움으로 제주 올레길 걸으며, 제주의 다양한 모습을 즐겼으니 부족함 없는 하루가 되었다.
첫댓글 저도 이 올레길따라 걸어보고 싶네요~^^
얼른 코로나가 끝나서 모두들 맘 편히 자유롭게 여행 다녔으면 좋겠네요.
핏가이님, 건강하게 잘 지내시죠? ^^
가시기 전에 한 번 뵙고 싶었는데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끝내 연락을 드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고
훈장님께서 소개하시는 제주에는 언제나 느림의 미학과 세세함을 더할 수 있어 참 좋습니다.
코로나 땜에 모든 게 정상이 아닌 요즘이네요.
모두 건강하셔서 다시 맘 편히 만날 날 오길 기대합니다.^^
내년 봄에 다시 제주를 갈수 있을까 모르겠네요.
코로나확산세로 볼 때 내년 상반기까지 어렵겠지요.
훈장님 사진을 보니 산책길이 적당한 숲길과 연못이 있는
동백동산을 세번이나 갔던 기억이 되살아납니다.
아뭏든 트레킹 즐기며 건강관리 잘하시길^^
선흘리 동백동산, 아직 원시의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 정말 좋지요.
저나 또 제주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 뿐, 우리 모두의 바람, 코로나가 제발 끝났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