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칼럼(28)
閻羅包老 염라대왕 포청천
연전에 ‘포청천(包青天)’이라는 연속극이 중국에서 많은 인기를 끌면서 방영되었다. 이 연속극은 지금도 유튜브에 들어 가보면 언제든지 볼 수 있다. 그런데 사실 포청천은 포증(包拯)이라는 사람의 별명이다. 송(宋) 인종(仁宗)때의 명신(名臣)이다.
그는 1062년 7월에 죽었는데 속자치통감에서는 그가 죽었다는 기록과 함께 그의 일생을 짧게 평론해 두었다.
“경오일(23일)에 추밀부사‧급사중인 포증(包拯, 999~1062)이 죽었는데, 예부상서를 증직하고 시호를 효숙(孝肅)이라 하였다. 포증의 성품은 분명하고 곧아서 조정에 서게 되면 굳세고 과감하니 사람들은 그를 비웃으며 황하청(黃河淸)이라고 하였다. 지개봉부(知開封府) 시절에 경사(京師)에서는 그가 한 정사(政事)를 두고 “관절(關節)에 가지 못하는 것은 염라포로(閻羅包老)가 있어서이다.” 라고 말하였다.
이처럼 그에게 붙은 별명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포씨(包氏)의 황하청(黃河淸)이란 뜻의 포청천이고, 다른 하나는 관절부도(關節不倒)였다. 앞의 황하청은 조금은 그를 비웃은 의미가 있는 말이고, 뒤의 관절불도는 긍정정인 평가였다.
황하청이란 황하가 맑아진다는 말이다. 황하는 황토(黃土) 고원지대를 지나서 흘러 가다가 황해로 빠져 들어 하는데, 한반도의 두 배나 넓은 황토지대를 거쳐 오는 바람에 물이 항상 탁(濁)했다. 그래서 우리의 서해, 중국의 동해인 황해(黃海)는 말 그대로 바닷물이 황토로 누렇게 변해 버린 것이다. 이런 황하의 물이 맑아지는 것을 두고 황하청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일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 상상해 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다른 말로 우리도 익숙하게 쓰는 백년하청(百年河淸)이라 말이 있다. 황하의 탁한 물이 백년을 간들 맑아지겠느냐는 것이다.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의미이다.
그런데 포증에게 황하청이라고 별명을 붙였으니 그의 행적을 비록 황하의 물에 비유한 것이지만 당시의 혼탁한 정세(政勢)를 빗댄 말이다. ‘포증 선생! 당신이 아무리 부정부패를 척결한다고 그 야단을 쳐도 그 혼탁한 정세가 맑아지겠는가?’라고 비웃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가 혼탁한 시대를 깨끗하게 하려고 노력했다는 것만을 틀림없는 것일 듯하다. 다른 의미로 보면 황하의 물이 맑아지면 현군(賢君)이 나서 세상을 깨끗하게 할 것이라는 속설(俗說)에 따른 기대이기도 할 것이다.
다음으로 그에게 붙인 관절부도(關節不倒)라는 말은 뒷문에 가지 못한다는 말이다. 관절(關節)이란 여기서는 뒷문이란 뜻이고 이 말은 바로 정정당당하지 못하게 다른 사람의 눈에 띠지 않게 뒷문으로 찾아 가는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세력 있는 사람의 뒷배일 수도 있고, 돈으로 부정한 청탁을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관절부도라고 하였으니 포증이 북송시절의 도읍인 개봉의 수장(首長)으로 있는 동안 사람들은 뒷문으로 가는 일이 없어졌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정정당당하지 못한 부탁이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으니 뒷문으로 갈 일도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청렴한 개봉부(開封府)가 되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어서 그가 죽은 다음에 그에 대한 평가도 속자치통감에 실려 있다.
“그가 상주(上奏)하여 논의하는 것에는 공평하고 윤당(允當)하였지만 속(俗)된 관리들은 항상 가혹(苛酷)하고 각박(刻薄)한 것을 미워하였다. 하지만 그는 힘써 돈독하고 넉넉하도록 하였는데, 비록 병이 들어 심하여도 아직 일찍이 충성스러움과 용서함으로 미루어 나갔다. 평시에는 사사로운 편지를 주고받은 일이 없었다. 옛날 친구 가운데 가까이하는 무리가 간청(干請, 청탁)한 일이 있었지만 하나 같이 모두 이를 거절하였다. 집에서는 검약하여 의복과 기물과 먹고 마시는 것은 비록 귀하게 되어도 포의(布衣, 평민) 시절과 같았다.”
이러한 평가를 보건대 부정부패할 가능성이 있는 속된 관리들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 대는 바람에 그들에게는 가혹할 정도의 징벌을 내려서 그를 원망하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넉넉하게 대하려고 애쓴 듯하다. 그리고 높은 관직을 가진 까닭에 혹 오해를 받을 수 있을까 염려하여 친구들을 사적(私的)으로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시에 비록 높은 관직을 가지고 있지만 평민들과 같이 검소하게 생활하였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항상 돌아보면서 누구에게도 흠 잡히지 않게 행동하였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그는 죽은 다음에 청렴하고 공정한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고, 그래서 포청천(包青天)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더 나아가서 백성들은 그를 신(神)으로 숭배하여 재판의 신(神)으로 받들어졌고 나아가서 지옥 염라대왕 가운데 한 명이라고 믿으면서 그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까지 있었다. 그래서 염라포로(閻羅包老)라고 한 것이다.
이 사람이 무슨 일을 했기에 이러한 평판이 돌았을까?
그가 감찰어사(監察御史)이라는 감찰업무, 특히 정사에 관하여 논평하는 언사관(言事官)이 되어 부당한 처사나 불법을 저지른 관료에 대하여 탄핵 업무를 담당하자 본격적으로 탐관오리(貪官汚吏)를 징치(懲治)하기 시작하였다. 황제인 인종(仁宗)에게 ‘부패한 관리를 임용하지 말아 달라<乞不用贓吏>’는 상소문을 올리면서 부패한 관리는 관리가 아니고 ‘백성들의 도적<民賊>’이라고 까지 말하였다.
그는 강서전운사(江西轉運使)인 왕규(王逵)라는 높은 관원을 일곱 차례나 탄핵하는 상소문을 올리면서 ‘그의 마음은 독사와 같다’고 표현하였다. 또 외척인 장요좌(張堯佐)를 세 차례나 탄핵하면서 ‘백주(白晝)에 나다니는 귀신’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모두 당대의 상당한 권력자이거나 황실과 끈끈하게 연결된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그의 행동은 가끔 조야(朝野)를 진동케 하였다.
우리의 사정(司正)기관에는 포청천 같은 추상같은 관원이 없을까? 사실 이러한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든 좌우를 돌아보지 않고 곧은 말을 하는 사람이란 있게 마련이다. 역사를 읽다보면 이러한 성격의 관원은 어느 시대나 있었다. 다만 그 시대의 최고 권력자인 황제나 제왕이 그러한 사람을 용납하여 수용하고 격려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혹여 무능하고 부패한 제왕을 만나면 이러한 사람은 여지없이 압박을 받고, 불행한 최후를 맞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러한 시대에 살던 곧은 관원은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포청천이 그리할 수 있었던 것은 적어도 송 인종은 이러한 언로(言路)를 살려 두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인종은 외척과 연결된 사람이 포증에게 탄핵을 받아도 포증을 좌천시키거나 수사(搜査)를 못하게 막은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러한 수사를 하면 할수록 승진시키는 아량을 보인 것이다. 그 때문에 오히려 포증보다 그를 용납한 인종이 더 빛났다고 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 우리 사회에는 권력형이라고 보이는 선거부정에서부터 권력자의 아빠찬스, 엄마찬스라는 말이 회자(膾炙)된다. 이것이 오탁(汚濁)한 부패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러한 비판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오해라든가, 불법이 아니라든가 하는 말로 변명을 하지만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리에 있는 사람은 ‘오이 밭에서 신발 끈을 고쳐 매지 않으며, 복숭아밭에서는 갓끈을 고쳐 매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도덕관이다.
이미 이렇게 벌써 몇 달째 이 관절(關節)에 해당하는 불공정 문제로 시끄러운 것은 시비를 거는 사람들의 잘 못이라기보다는 그 당사자가 ‘공직을 맡기에는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뿐만이 아니다. 송대의 인종이 자기 친인척이 탄핵을 받았을 때 어찌 그 친인척을 마음속으로 아끼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살붙이인 인척보다 더 중요한 것은 왕조의 안녕(安寧)이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그들을 잘라내며 그것을 밝힌 포증을 승진시켰다.
우리에게 이렇게 부정, 불공정의 의혹을 받는 그 자체만으로도 물러가야 할 사람들이 온갖 말도 안 되는 변명을 하는데도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을 보면 최고 권력자의 도덕관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러한 도덕성을 가지고는 정권의 안녕에도 도움이 안 될 터인데 말이다.
주역(周易)의 건괘(乾卦)는 우리 태극기의 4괘(卦) 가운데 하나이다. 건괘는 8괘(卦)로 보면 양효(陽爻)가 셋이지만, 64괘일 경우의 건괘는 양효가 여섯이다. 이 양효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용(龍)을 상징적으로 가리키고 있는데, 맨 아래 효는 초구(初九)라고 하는데, 이 효를 설명하는 효사(爻辭)는 잠룡물용(潛龍勿用)이라고 풀이하였다. 물속에 잠겨 있는 용은용이기는 하지만 아직은 쓰일 곳이 없다는 것이다. 좀 더 시간이 가서 물위로 머리를 들어내어 현룡(見龍)이 되기까지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일 것이다. 그러면 그 6효 가운데 맨 위에 있는 효인 상구(上九)는 용 가운데 제일 좋지 않을까? 그런데, 주역의 반전이 여기에 보인다. 상구는 항룡(亢龍), 즉 맨 꼭대기에 있는 용이라고 말하면서 이 항룡의 운명은 유회(有悔)라고 풀이 했다. 즉 ‘후회함이 있으리라’는 뜻이다.
최고로 올라갔을 때에는 떨어질 것만 남아 있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는 경구(警句)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늘 높은 줄 모르면 안 되는 것이다. 높이 올라가면 올라 갈수록 만인(萬人)이 다 쳐다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는 그냥 넘어 갈 수 있는 오점(汚點)도 다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지금도 어디엔가 있을 포청천 같은 사람이 이미 드러난 높은 사람들의 오점을 날선 칼로 제거하여 사회를 정화하는 맹활약을 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온 국민의 바람이 아닐까?
첫댓글 포증의 상세한 해설과 우리 시국을 비판하신 글이 역사가의 비중을 더욱 무겁게 하여 줌을 느낍니다. 좋은 역사평론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