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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아버지를 닮은 산과
어머니를 닮은 물을 찾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녘 또다시 봇따리를 챙기건만 오늘은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돌탑
오늘도 어김없이 신념이라는 만리장성을 쌓았다 허물기를 수없이 반복하는 팔랑귀가 여기 있건만,
누군가 정성들여 올린 작은 돌탑처럼
비, 바람에도 허물어지지 않은 신념으로 온전히 버틸 재간이 남아 있을지...
생강나무
이제 떨어질 운명은 어쩌지 못하고
가을바람 따사로운 햇살에
힘 없이 어미팔을 놓을 경우
형제들 모두가 그랬던 것처럼 제 몸도 떨어져야 다시 어미를 살리는 거름이 된다
사계절
화사한 봄과 신록의 여름은 산 아래로 찾아오고
형형색색의 가을, 그리고 하얀 겨울은 산 위에서 내려오고
오늘은 연악산(淵岳山) 혹은 기양산으로 부르는 곳으로 올라야 하니 구미시 선산읍 무을면 "연악산 수다사"를 지키는 수문장격인 은행나무를 잠시 보다 임도길로 오른다.
산림욕장으로 오르는 임도길로 잠시 걷다가 좌측의 희미한 계곡으로 이어진 산길로 무작정 오르면
길은 보이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어느 시점부터 길은 없다.
아무런 흔적도 없던 중턱에 사람의 흔적이 남겨져 있어 또 다른 흔적이 있나 주위를 살펴본다.
참나무 낙엽이 쌓인 경사진 산비탈을 이용해 무작정 오르다 보면 백두대간 국수봉에서 분기하는 감천 좌측의 기양지맥길 능선에 도착한다.
낙엽에 이리저리 미끄러져가며 겨우 능선에 서니 바람은 시원하고 몇몇 단풍이 초겨울임을 알리며 서있다
구미시와 상주시(市) 경계의 산으로
구미, 선산땅에서는 연악산으로 불리며
반대쪽 상주에서는 기양산(조양산)으로 불린다
산의 내력을 살펴보면 산아래 절집의 일주문을 찾아보면 될 것 같은데
신라 흥덕왕 때 진감국사 해소가 연악산 정상에 흰 연꽃이 피어있는 걸 보고 연화사로 지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김천 황악산 아래 직지사에 출가하셨던 사명대사와 묘향산의 서산대사께서 중창하신 후 수다사라 하였다는 설도 전한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만여명의 승군(僧軍)을 모아 호국법회(護國法會)를 열었던 호국사찰(寺刹)로써
서산대사와, 사명대사께서 잠시 머물렀던 곳이다
처음 절을 창건하신 진감(해소) 선사께서는 당나라에서 공부하셨으며 쑹산 소림사(少林寺)에서 구족계를 받았으며 지리산 쌍계사를 다시 중창하신 분이다
상주시 공성면에서 먼저 세운 기양산(岐陽山) 정상석
이후에 구미시 무을면에서 2009년에 연악산으로 세운 정상석이 그 옆에 나란히 있지만 때깔은 사뭇 다르다.
정상 주변으로 조망 확보 차원에서 등산로 작업하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상주산꾼 분이며
잠시 이야기 나누고 헤어진다
쪼그려 드는 단풍
초록잎일 때는 어린아이의 고운 손을 닮았더니
지금은 만지면 사그러지는 거친 닭발과 닮아있다
닭발을 생각하니 어미닭의 모성애(母性愛)가 생각나고 가시고기의 부성애(父性愛)가 생각난다.
인간이야 인륜(人倫)이 있으니 그렇다 치고
깊은 바다에서는 글을 안다는 문어가 있는데 마누라와 새끼를 벌어먹어 살려야 의무가 있음에도
격렬한 짝짓기 단 한 번으로 기진맥진 굶어 죽는 숫놈 문어가 있다
죽음을 무릅쓰고 짝짓기 하는 숫놈 문어가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문어가 말을 한다 "그래도 좋다"고.
이후에 짧게는 30일 길게는 6개월 가량 수많은 알을 돌보는 어미 문어의 사랑은 지극정성 차원을 넘어 초인적이라 할 만하다.
아비가 자식을 키우는 부성애 최강으로 가시고기를 따를 수 없다.
물고기 중 유일하게 수초를 이용해 둥지를 만들고 15일 가량 먹지도 않고 둥지를 지키다 결국 새끼들이 모두 부화할 무렵 지치거나 굶어 죽는데 새끼들은 죽은 아미의 살을 뜯어먹고 자란다.
자식들이야 이런 부모의 초인적이고 헌신적인 마음을 조금도 알지 못한 채 부모 곁을 떠나 지신의 생존을 위해 살아간다
날씨가 싸늘해지는 계절이니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께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쪼그라지는 단풍을 담아왔는데 생각이 많아지는 쓸쓸한 계절이다
수선산(修善山)
선산(善山)땅에는 착한 산들만 있을것 같고 착한 사람들로 붐빌것 같다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고려말 학자이신 길재 선생이 계셨고,
계유정난 사칠신중의 한분이신 하위지 선생이 선산땅 출신이다.
예전 연산군 시절에 생모였던 폐비 윤씨로 인한 연산의 폭정과 무오사화, 갑자사화 때 많은 선비들이 죽자 이를 피해 피신한 선비들이 깊은 골에 은둔하며 수행했다는 곳이 수선산이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가면 상주의 진산이자 명산인 조망 좋은 갑장산(甲長山)이 나오고
동쪽으로 산길 따라 발품 팔면 낙동강 구미보가 나온다.
김천땅을 오롯이 적시는 모래강인 감천은 직지사천(더럽고)과 아천(모래하천)그리고 대천이 대표적인데 대천 발원지는 이곳 수선산 남쪽 계곡이며 선산읍 무을면을 지나 선산읍 내고리에서 감천에 합류하는 18km의 비교적 깨끗한 하천이다.
하천길 196개 누적거리 1만 0,608km
수선산에서 남쪽으로 무작정 내려가며
한여름이라면 잡목으로 고생 좀 하겠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큰 고생은 안 해도 되는 걸음이다.
평탄하게 내려온던 계곡이 서서히 골로 바뀌고
아직 이렇다 할 물은 보이지 않는다.
고목나무 아래 물이 조금 보이고
물이 졸졸 나오는 모습
두 손으로 물을 받아 마셔보며
물맛은 물맛일 뿐이고
대천 발원지라 해도 되는 고목나무 아래
낙엽 쌓인 계곡으로 조심스럽게 내려가니
고라니 녀석들이 "여기 처음이지 어서 와" 라며 야단이다.
전국 어느 산이건 고라니는 가끔 보이는데 토끼(멧토끼)나 청설모는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거의 매주 산에 오르고 있지만
산에서 토선생을 본건 다섯손가락에 꼽고도 한 손가락 남을 정도니 아주 귀하디 귀한 몸이 되었다.
산토끼는 전국 어느 유치원이나 학교 초입만 다녀도 산토끼 토끼야 어디를 가느냐!라며 노래를 불렀고 지금도 국민 애창동요인 산토끼를 애타게 불렀는데
2018년도에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다람쥐를 닮은 청솔모 구경하기도 쉽지 않은데 모두 어디로 갔는지...
내려온곳으로
계곡이 이어지지만 물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고
마른 계곡이 한동안 이어진다.
내려온 곳으로
내려갈 곳
대부분의 단풍잎은 떨어졌거나 쪼그라졌는데
그나마 단풍이 조금 남아있는곳도 있고
내려온곳으로
이곳으로 물이 흘려야 했지만 흔적만 보이고
연악산 산림욕장으로 들어와
가을햇살이 좋은날
중년의 남자분들과 여자분들이 맨발 걷기하는 분들도 계시고
수다수 은행나무
가을이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뀌는 계절
이 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면
어디든 떠나 보시기 바라고...
산사의 가을 향기
절 입구를 지키는 수문장격인 250년된 은행나무
수다사는 작은 절집이건만
봄,여름,가을 그리고 겨울까지 모두 사랑하는듯하다
살랑살랑 바람이 불때마다 은행잎이 빗물 떨어지듯 떨어지는데
우연하게 하천길 왔다가 너무 아름다운 절집의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구미시 선산읍에는 이 곳 말고도 냉산 아래 아도화상이 창건한 신라 최초의 사찰이며 적멸보궁의 도리사가 있는데 그곳과 연계해서 찾아보면 아주 좋을듯 하다.
300년된 배롱나무
전국에는 대략 1만 5천그루의 보호수가 있으며
그 중에 경상북도에만 약 300그루의 보호수가 있다.
수다사를 지키다 힘겨웠나 한여름 100일간 꽃을 피웠던 나무는 초겨울이라 꽃은 모두지고 낙엽도 떨어지고
앙상함만 남아있어 은행나무를 찾는이와 대조적이다.
수다사 은행나무
찾는이들이 많은데 내년에 한번 찾아보시면 좋을듯 하다.
관음보살의 감로수가 넘쳐 흐르는 복된집이라는뜻의 수다사
대웅전에 들러 부처님께 절하고 밖으로 나와
목탁
주제료는 살구나무와 박달나무로 만드는데 가격은 천차만별이다
아름다운 절집에는 불교의 4대 악기가 있는데
목어는 물속의 물고기를 구원하기 위함이고
북은 네 발가진 짐승들을 구원하기 위함이고
범종은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하기 위함이고
운판(雲版)은 하늘을 나는 새들을 구원하기 위함이라...
기둥에 내걸린 목탁은 고요함과 정숙한 수행도량인 법당안 부처님 앞에 있었지만 지금은 어느 스님이 밖에다 걸어 두신것으로 보인다.
목조아미타 여래좌상이 모셔진 대웅전
대부분 나들이 객들은 은행나무에만 관심이 있고
법당앞 마당으로는 올라오지 않는듯하다.
계단을 오르면 부처가 살고 계시는 도솔천인데
계단을 오르지 못하니 ...
수다사 입구에는
인심좋고
마음씨의 넉넉한 아저씨를 닮은 포대화상이 커다란 배를 드러내고 웃고 계신다.
수다사 일주문 연악산 수다사
현판 글씨는 취은이 썼다고 하는데
누군지 알길 없다.
수다사 앞으로 물길 여행이 시작되고
쌍(雙)정자나무
정자나무 두 그루가 도로를 마주하고 서로 사랑하듯 서 있는데 이곳에서 사랑을 약속하면 이루어 진다나...
오고가는 길에 이곳에서 사랑 약속 해보시기 바라고
수다지
물은 이곳에서 숨 고르기 하고
시멘트 방수포 따라 아래로 흘러가는데
가을 들녘 논에는 추수가 끝나고 텅 비어 있다.
하천가 옆으로 커다란 왕버들 나무가
점잖게 서있고
무을면 안곡리에서 흘러온 대천 원발원지와 수선산 남쪽에서 흘러온 최장 발원지가 만나는 상송리 마을 앞 하천
멀리 기양산과 수선산 방향으로
무을 저수지에서 흘러온 대천 모습
갈수기여서 물은 많이 없고
잡목과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다
물이 깨끗하다
농번기가 끝나서 물이 깨끗한 이유도 있지만
선산읍에서는 시골집마다 흘러나오는 오, 폐수가 관로 따라
서산읍으로 모두 모여 한 곳에서 정화해서 흘려보낸다고 한다
선산읍 무을면을 지나며
작은 고을에 지나지 않았던 구미시가 왜 갑자기 커졌을까
일제강점기때 경부선이 놓이기 전까지 선산읍은 선산군(善山郡(이었고 구미는 구미면(龜尾面)이었는데
경부선과 이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구미는 급발전하면서 이후에 시(市)로 승격하였고 선산군은 구미시에 편입이 되었다
선산군 구미면... 이후에 구미시 선산읍으로
이곳도 인구 소멸지역이라 하천길을 걷는동안 사람구경 못하고 지난다
선산읍성
선산읍을 지키는 읍성(邑城)과 선산향교가 선산을 지키는데 참고로 조선시대때 향교 개수는 약 328개 정도였고
남한에만 234개 있었다고 한다.
이중환의 택리지에 살펴보면 선산은 산천이 상주보다 더욱 밝고 빼어나며 조선 인재 절반이 영남에서 나고
그중에 절반이 선산에서 난다고 했는데,임진왜란 때 명나라 지관이 이곳을 지나다가 인재가 많은 것을 꺼려 뒷산의 맥을 끊고
큰 대못을 박아 땅의 정기를 눌러 이후에 인재가 나오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뒷산은 아마도 비봉산(飛鳳山)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내려가야 할 곳으로 보이는 낙동강 건너 냉산
멀리 지나온 연악산 방향
멀리 움푹 파진 것처럼 보이는 곳은
지맥길 주아령고개 구미에서 의성이나 상주로 넘어가는 길 되겠다.
실개천이란 말이 떠 오를 정도로 전형적인 한국의 하천 모습이고
하천 위로 보이는 곳은 중부내륙 고속도로 선산 IC부근
야생화의 끝판왕이라는 쑥부쟁이
하천가의 제왕인 미루나무
미루나무가 하천가에 서있고
요즘은 하천길을 걸어도 미루나무기 잘 보이지 않는데
대부분 나무젓가락이나 이쑤시개 용도로 잘려나가는 현실이다
오늘 사용한 나무젓가락이 어느 하천가에 자라던 미루나무일수도 있다는 걸 아셨으며...
지나온 미루나무길
미루나무가 바람에 흔들릴 때 바람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뚝뚝 떨어지는 낙엽들
내려가야 할 곳으로
어느 분인가
용왕님께 쓰레기 택배를 보내시는 분이
저럴 거면 그냥 집 앞에 버리시던가 하시지
깔끔한 사람들
쓰레기와 먹을 수 있을 것 같은 무우도 버리고...
택리지에 조선 인물 반은 영남에서 나고 그중에 또 반은 선산에서 난다고 했는데
대천이 감천에 합류하는 지점에 도착
멀리 꺼먼재산과 그 뒤로 금오산이 가깝게 보이는데
세상의 모든 산들은 강을 사이에 두고 건너지 못하는 마음으로 바라만 볼뿐이다.
감천은 멀리 수도산 서봉에서 발원하여 김천과 구미를 지나 낙동강에 합류하는 맑은 모래 하천으로 길이는 약 78KM이다
조용한 수다사와 하천 풍경 그리고 미루나무가 반기는 대천길을 마치며
다음 하천은 고향 의성의 사행천으로 길을 찾아본다.
첫댓글 나를 부르는 아버지와 닮은 산, 가슴이 메어 옵니다.
아버지에게 산을 배웠지만 잊고 살았던 아버지.
살아 계시면 같이 오손도손 가보지 못한 산을 걸으며 산에 대해서 할 말도 많은 것 같은데;....
어릴 적 구성면 송죽휴게소 밑 감천에서 할아버지 산소를 찾아 뵙고 아버지와 함께 피리 줄낚시를
하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은 감천이 어데 갔는지 없고 그 물줄기에 골프장이 들어섰습니다.
방장님 덕에 또 눈물 찔끔 흘리며 추억에 잠겨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