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부흥이란 무엇일까? 교회가 커지는 것, 교인수가 늘어나는 것, 헌금이 많아지는 것, 예배당을 크고 화려하게 짓는 것, 예배를 열광적으로 드리는 것, 찬양을 뜨겁게 하는 것 등이 교회의 부흥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부흥의 의미를 오해한 채로 부흥을 구하고 있지는 않는가 되돌아 봅니다. 물론 이런 것들이 부흥의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일수는 있지만 그것이 부흥의 본질이거나 부흥의 목적은 아닌 것입니다.
“부흥”이란 단어는 성경 전체 중에서 유일하게 하박국에서만 사용되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하야”라고 하는데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고 능력을 얻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문으로는 復興(돌아올 부, 흥할 흥) 1) 쇠퇴하였던 것이 다시 일어남 2) 다시 활발히 일어나다 3) 다시 흥한다”는 의미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느 시대에나 좋았던 때, 아름다웠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가 언제였습니까, 하나님께서 천지를 처음 창조하셨던 에덴동산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던 에덴동산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죄로 말미암아 그 모든 것을 상실했습니다. 인간에게 있던 하나님의 형상이 훼손되어졌습니다. 자연도 아름다움을 상실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사람이 원수 사단에게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였던 것입니다. 부흥이란 무엇입니까? 에덴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신 그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그분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부흥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이러한 의미로 기도한 것입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 하박국 3장 2절 )
오늘은 “부흥”이란 노래를 기도의 제목으로 삼아...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구한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내에 부흥케 하옵소서'의 기도를 묵상하려고 합니다. 또한 하나님께 '부흥'의 찬양을 올려드립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들은 그 소문이 무엇이었길래 하박국 선지자는 그 소문을 듣고 놀랐습니까? 그 소문은 바로 하나님께서 유다(1:5-11)와 바벨론(2:2-20)을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간악”하고 “패역”하며 “겁탈과 강포”를 행하고 있었고 유다 가운데 “변론과 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악과 불의를 행하고 있었기에 하나님께 심판을 받을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께 악을 행하고 있었는가 하면 하박국 1장 4절을 보면,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하박국 시대의 유다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노력이 식어지지 않았는지요. 율법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런지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사회에서 공의를 행하지 않고 불의를 행하므로 공의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는데 이바지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하박국 시대 때 악인들이 의인들을 에워쌌듯이 지금 이 시대 이 사회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의인들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며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더 많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하박국 1장 5절에서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열국을 보고 또 보고 놀라고 또 놀랄찌어다 너희 생전에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 혹이 너희에게 고할찌라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리라”.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사납고 성급한 백성 곧 땅의 넓은 곳으로 다니며 자기의 소유 아닌 거할 곳들을 점령하는 “갈대아 사람”들(6절) 또는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켜(6절)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의 말씀을 들은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의 죄악을 경계(12절)하는 차원에서의 징벌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거룩하시어 이스라엘보다 더 악한 자들인 바벨론 사람들의 손으로 이스라엘을 아주 멸망하시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12절). 오히려 그는 만세 전부터 계신 영원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사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영원까지 돌아보실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박윤선)
그러므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가 주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란 이유는 하나님께서 장차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사람들을 통하여 징벌하실 것이기에 놀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존전에서 경험하는 경외감, 또는 하나님과 그 분의 신비로운 방식에 대한 경배와 찬양을 표현”한 것입니다 (로이드 존스)
그 하나님의 신비로운 방식은 하박국 2장에서 말씀하고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유대 민족을 징벌하신 후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바벨론을 심판하시는 것이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교만하며(2:3, 4), 자기 영혼에게 죄를 범하되(10절), 술취한 것 같이(5, 15절) 행동을 자제할 줄 모르고 영토 확장에 대한 야심으로 침략주의에 광분하여(5절) (박윤선) 여러 나라들을 노략하며 사람들의 피를 흘리며 강포를 행한(8절) 바벨론 나라를 심판하신다는 소식을 들었기에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경외심 속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라고 하나님께 노래고 간구한 것입니다. 여기서 “주의 일”이란 주님께서 바벨론을 심판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구원하시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 주님의 일을 이 수년내에 부흥케 하여 주시길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노래로 간구하였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지가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 찬양으로 간구하되,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케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3:2)라고 부르짖는 것이었습니다.
로이드 존스 목사님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그는 구원과 안락함을 구하지도 않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살려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으며, 갈대아 사람들과 전쟁하지 않게 해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또한 고난받지 않게 해 달라거나 예루살렘이 약탈당하지 않게 해 달라고, 또는 성전이 철저히 파괴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 달라고 구하지도 않았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있어야 하며 당해도 마땅한 일들이라는 사실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계획을 바꾸시기를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선지자의 단 한 가지 관심은 하나님의 일하심과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와 온 세상에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모든 일이 바르게 행해지기를 바랄 뿐이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할 수 있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나와 나의 민족이 어떤 고난을 받든지 주님의 일이 부흥되고 순결하게 행해진다면, 나는 그 고난에 대해 염려하지 않습니다. 그의 단 한 가지 청원은 하나님께서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로이드 존스)
하박국 선지지가 그리도 원했던 “부흥”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징벌인 바벨론의 침략으로 오는 모든 고난과 고통 속에서 모든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이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사는 것이 아닙니까?
히브리어로 “부흥”은 “보전하다” 또는 “살아 있게 하다”라는 의미가 있지만, 이러한 의미 외에도 “깨끗하게 하다, 교정하다, 모든 악을 제거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로이드 존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고 회개치 아니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켜 징벌하시므로 말미암아 이스라엘의 모든 악을 제거하며, 그들을 깨끗케 하시사 하나님의 순결한 백성으로 삼으시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한 죄대로 하나님께서 징벌하신다면 다 멸망 당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범죄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든 진노를 다 쏟아 부으시면 바벨론의 침략으로 인하여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하도 다 전멸당할 수 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 겸손히 간구하기를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한 것입니다. 이 간구의 뜻은 “죄대로 갚으면 유대 민족이 멸망받고 남을 것이 없을 것이나, 그 민족을 징벌하는 중에라도 불쌍히 여겨 다시 구원하여 달라는 것이다” (박윤선).
이 기도는 시편 85편2절 말씀처럼, 주의 모든 백성의 죄악을 사하시고 저희 모든 죄를 덮어 주시길 간구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 기도는 시편 85편 3절 말씀처럼 주의 모든 분노를 거두시며 주의 진노를 돌이켜 달라는 요청인 것입니다. 그는 지금 이렇게 하나님께 간구한 것입니다. “진노를 긍휼로 누그러뜨리소서. 우리는 주님께서 주님의 본성에 따라 행하고, 진노 가운데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기만을 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로이드 존스)
저는 개인적으로 “부흥”이란 복음성가를 부를 때에 그 찬양 가사가 마음에 다가옵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하늘의 하나님 긍휼을 베푸시는 주여” 라고 노래를 부를 때, 교회의 황무함을 보면서,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찾는 마음으로 찬양합니다. 하나님께 우리 교회의 죄악을 용서해 주시길 기원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 되어 교회의 무너진 기초를 다시 쌓는데 헌신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을 드립니다.
진리의 말씀이 우리 교회를 새롭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이 강물처럼 교회에 흐를 것이며, 성령님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 올 것입니다. 주님의 영광 가득한 새 날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이 땅의 황무함을 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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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푸른하늘의 살며 사랑하며 원문보기 글쓴이: 푸른하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