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주작가님께서주신글]
육영수 여사와 아카시아 꽃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배고픈 시절이 눈에 아른거린다.
육영수 여사 앞으로 한 아주머니가 편지를 보내왔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형편인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남편이 교통사고로 누워있습니다.
식구들은 그렇다 치고, 80이 넘은 시어머니가 굶고 있으니, 어찌해야 합니까?
육영수 여사는 이런 편지를 하루에도 수십 통씩 받아서, 가난한 사람들의 애환을 잘 알고 있다.
육영수 여사 지시로 쌀 한 가마니와 얼마간의 돈을 가지고, 그 집을 찾아 갔다.
성남은 신도시가 되었지만. 그때는 철거민들이 정착하던 단계라, 집 찾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수소문 끝에 집을 찾았는데, 다 쓰러져가는 움막이었다.
마침 가족이 빙 둘러앉아, 저녁을 먹고 있었다.
청와대에서 찾아왔다고 말하고, 어두컴컴한 방으로 들어갔다.
밥상 위에는 수북이 쌓인 흰 쌀밥과 간장 종지가 놓여 있었다.
하얀 노파가, 누가 왔는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밥을 먹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끼니를 굶고 있다고 하더니! 감자나 옥수수로 식량을 늘려 먹을 생각은 안 하고, 왠 쌀밥?
그러게 생각하면서 한참 앉아 있으려니까, 방안에서 희미한 물체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노파가 정신없이 먹던 것은 아카시아 꽃이었다.
그 순간 가슴이 미어졌다. 나도 저런 할머니가 계셨는데. 아무 말도 못하고 그 집을 나왔다.
그때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크던지, 세월이 흐른 뒤에도 잊을 수가 없다.
대통령께 그 이야기를 말씀 드렸더니, 영부인의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대통령께서도 처연한 표정이었다. 그리고 천정만 쳐다보고, 애꿎은 담배만 피워댔다.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세월이 흐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 보니. “굶주림만은 반드시 내 손으로 막겠다.” 이런 결심이었으리라.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면, 어린 시절 동무들과 함께 뛰어놀다가, 배가 고프면 아카시아 꽃을 따먹던 추억이 아른거린다.
그 할머니의 모습과 겹치면서
청와대 비서관 김두영
아카시아 꽃
쑥죽 먹고 짜는
남의 집 삯 베
울 어머니 어질머리.
토담집 골방
숯불 화로
어질머리.
수저로 건져도 건져도 쌀알은 없고
뻐꾸기 울음소리 핑그르르 빠지던
때깔 고운 사기대접에 퍼런 쑥죽 물.
꽃이라도 벼랑에
근심으로 허리 휘는
하얀 아카시아꽃
나태주
허주(虛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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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PK7QhQxTmc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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