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Cathédrale Notre-Dame de Paris)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가 시작된 세느 강 시테(Cite) 섬의 동쪽에 있는 고딕 양식의 성당으로,
프랑스의 종교적 중심일 뿐 만 아니라 문학과 예술의 요람입니다.
현재 노트르담 대성당이 자리한 곳은 옛날 켈트족이 종교의식을 행했고
고대 로마인들도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제단을 만들었던 성스러운 장소였습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루이 7세 때인 1163년 파리의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착공된 뒤 1345년경에 공사가 마무리됩니다.
화려하고 장엄한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창,
수호신 조각들과 괴물상들로 채워진 노트르담 대성당은
12세기 고딕 양식의 최고봉이라고 불릴 만합니다.
성당 내부와 외부에는 성경을 주제로 한 수많은 조각상들과
'장미의 창'으로 불리는 4가지 색상의 13m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로트르담의 백미로 꼽힙니다.
그리고 9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회당과 높이 69m에 이르는 두 개의 첨탑,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Notre Dame de Paris)'에 등장하는,
'에마누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무게 13톤의 종이 있습니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정면
노트르담 성당은 그 역사에 걸맞게 영광과 굴욕의 세월을 지나왔습니다.
1760년 국왕 루이 16세의 결혼식이 거행됨으로써 왕가의 대성당으로서의 지위를 굳히게 되지만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을 거치면서 노트르담은 성난 군중들의 파괴와 약탈의 운명에 처합니다.
프랑스 혁명은 군주와 교회의 권위에 대한 반감이 섞여 있었습니다.
혁명 동안 성당 안의 수많은 장식과 조각상들이 파괴되고, 성당은 음식물과 사료를 저장하는
헛간으로 사용되거나 기껏해야 집회 장소나 기념식의 장소로 격하되고 맙니다.
혁명의 시대에는 노트르담은 아무 의미도 없었고 사람들은 대성당을 파괴하는 것이
교회와 군주 정치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혁명 후 나폴레옹은 노트르담 대성당을 다시 교회에 돌려줍니다.
그리고 1804년 그의 황제 대관식을 이 성당에서 거행합니다.
나폴레옹의 황제 대관식이 열린 노트르담 대성당은 너무 형편없이 파괴되고 방치되어 있어서
대관식 때 커튼으로 벽면을 모두 가리고 행사를 거행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혁명의 회오리 바람이 걷힌 뒤 19세기 중반에 들어서면서
노트르담 대성당의 권위 회복에 대한 진지한 논의들이 시작됩니다.
과거의 문화와 문명에 대한 회고와 찬미의 시대로 되돌아간 것입니다.
이 때 등장한 젊은 작가 빅토르 위고가 있었습니다.
빅토르 위고는 28세 때인 1831년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를 발표합니다.
그의 소설은 과거 문명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노트르담 성당 복원 운동에 불을 지피게 됩니다. 노트르담의 종지기 꼽추 카지모도와
집시 처녀 에스메랄다의 불행한 사랑 이야기는 수세기 동안 프랑스인들이 보여주었던
노트르담에 대한 반감과 경멸을 숨김없이 고백하게 만들었습니다.
산업화라는 격동과 변화의 시기였던 1845년에서야 대중적 지지를 업고
노트르담의 복원사업이 시작됩니다.
"노트르담"은 "우리의 귀부인"이라는 뜻으로, 성모 마리아를 의미합니다.
노트르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성당은 프랑스 내 많이 있으므로 파리 시테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이라는 의미인 "노트르담 드 파리"가 정확한 이름입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최초로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공법을 사용한 건물이며,
나폴레옹과 그의 아내 조세핀의 대관식(1804), 파리 해방을 감사하는 국민예배(1944.8.26)
미테랑 전 대통령을 비롯한 유명인들의 장례식 거행 등 여러 역사적 사건의
무대가 된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 노트르담 대성당의 앞면 구성*
단순미와 장중미를 갖춘 정면은 수직과 수평이 3단계로 구성되었다.
1층- 종교의 심오한 세계로 인도하는 듯한 3개의 문이 있고, 문 바로 위에
28명의 유대 및 이스라엘 왕들이 열지어 서 있는 King`s Gallery
2층-중앙의 장미창 앞에는 어린 예수를 안은 마리아와 두 천사가 있고
좌우 창문 가운데 기둥에는 아담과 이브 像(윗 사진)이 서있다.
3층- 가늘게 늘어선 기둥들은, 좌우 웅장한 종탑 외양과
건축적인 연결성을 지니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다.
* 노트르담 대성당의 외부 구성*
노트르담 대성당의 옆면
13세기 중세시대 고딕 건축의 결정체인 노트르담 대성당의 옆면도
전체적으로 3단계 구조 양상으로 되어있는 , 지상으로 치솟아 있는 90m의 첨탑,
은은한 연회색 빛의 지붕, 날아갈 듯한 높은 벽을 받치고 있는 아치형 버팀 기둥으로
육중한 성당 건물의 무게를 허공에서 분산시키면서 외부 모습에
경쾌한 기분을 불러일으킨다.
대성당의 후면
노트르담 대성당이 목격한 역사적 사건들
1239년 성 루이가 예수의 가시면류관 등 성유물들을 여기에 임시 안치했음.
1302년 필립 4세가 최초의 삼부회를 개최함
1455년 잔다르크의 명예회복 재판이 열림.
1572년 후에 왕이 되는 앙리 4세와 마르그리트 왕녀의 종교내란 평정을 위한 정략결혼이 거행됨.
1804년 나폴레옹 황제 대관식이 열림.
* 정면(서쪽) 3개의 문 *
왼쪽-[성모 마리아의 문], 중앙-[최후 심판의 문], 오른쪽-[성녀 안나의 문]으로
3단계 구성으로 되어있고 당시 문맹자 신도들의 성서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성경 내용과 성자들의 전설이 부조와 조각으로 되어있다.
< 성모 마리아의 문 >
이 시기 성당 문의 커다란 특징은 천장 윗부분에 위치한
팀파눔(Tympanum 반원형 지붕)에 있었다. 이곳은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 반원 속에 그려지는 내용은 우주의 지배자로서 그리스도, 성모 마리아, 성자,
천사장 등을 권위적으로 표현하였다.
이 문의 부조는 중세 종교 예술의 가장 뛰어난 작품 중의 하나로 평가되는데,
윗부분은 성모 마리아의 대관 모습, 가운데 부분은 성모 마리아의 죽음,
아랫부분은 ‘언약의 궤’를 둘러싸고 있는 예언자들로 되어있다.
중앙 기둥은 성모 마리아가 어린 예수를 안고 있다.
왼쪽부터- 콘스탄틴 황제 / 천사 / 생 드니 신부/ 천사
파리가 로마에 정복 당해 있던 때, 파리 최초의 신부 생 드니 (Saint Denis)는
몽마르뜨 근처에서 로마군에 의해 참수 당했는데, 드니의 몸뚱이가 잘린 목을 집어 들고
6km 떨어진 생 드니까지 걸어갔다고 전한다. 그의 무덤 위에 성당이 세워졌고
역대 프랑스의 왕과 왕비, 왕족들이 그 성당에 묻혔다.
왼쪽부터-세례 요한/ 성 스테판(기독교 최초의 순교자)
성녀 쥬느뷔에브(파리의 수호 성녀)/ 교황 실베스터
'성모의 문' 과 '심판의 문' 사잇기둥에 있는 像
< 최후 심판의 문 >
중앙 기둥은 루이 15세 때 궁중 가마의 출입을 위해 철거시켰는데
현재의 예수상이 서 있는 기둥은 19세기에 복원된 것이다.
문의 좌우측 벽에는 12명의 사도가 12가지 善과 惡을 상징하는 부조물 위에 서 있다.
윗부분의 중앙에 최후 심판을 하는 예수의 모습,
가운데 부분은 천사장 성 미카엘에 의해 죄를 저울질하여 천당과 지옥으로 나뉘어지는 모습,
아랫부분은 죽어서 3일간 연옥에 있다가 심판대에 나가기 위해 천사들의 트럼펫 소리에
각기 지상에서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기록부를 가슴에 안고 깨어나고 있는 모습이다.
천사장 미카엘이 저울을 들고 심판을 진행하고 있고, 사탄이 함량 미달의 영혼들을
쇠사슬에 묶어 연행해 가고 있다. 사탄의 낄낄거리는 표정과 끌려가는
기사, 수녀, 왕 등의 질질 짜는 표정이 실감나게 표현되었다.
아치 위쪽에서 심판의 장면을 구경하는 천사들의 모습
오른쪽에서 각종 몬스터들이 잔뜩 겁에 질린채 심판을 바라보고 있다.
12사도들 발밑에서 말씀을 경청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다양하다.
제일 오른쪽 열쇠 들고 있는 사람이 베드로.
< 성녀 안나의 문 >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를 주제로 한 문
이 문의 윗부분 부조는 노트르담 대성당의 앞면 문공사가 완공되기 60년 이전에
간이문 장식에 사용된 부조를 재사용한 것으로,
윗부분은 성 안나가 아기 예수를 안고 왕좌에 앉아 있고, 양쪽의 천사가 향을 피우고 ,
루이 7세와 성당 건설의 창안자인 당시 빠리 주교였던 모리스 드 쉴리에게 둘려 싸여 있는 모습,
가운데 부분은 성모 마리아의 일생을 묘사하고
아랫부분은 성모 마리아의 부모인 요하임과 성녀 안나에게 바치는 부조물이다.
이 문의 중앙 기둥은 5세기 빠리 주교인 성 마르셀(Saint Marcel)이
괴물로부터 빠리를 구원하는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다.
'심판의 문' 과 '성녀 안나의 문' 사잇기둥에 있는 像
남쪽문
* 전망대에서*
프랑스 首都인 빠리(Paris)의 지리적, 역사적, 종교적 중심을 이루는 씨테(La Cite)섬은
세느(La Seine)江의 한가운데 위치한 빠리의 搖籃으로, 마치 커다란 배가
쎄느 강의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모습의 섬인데, 배처럼 생긴 씨테 섬의 동쪽 끝인
뱃머리에 자리하는 곳이 노트르담 대성당(Cathedrale Notre-Dame de Paris)으로
노트르담은 ‘성모 마리아’를 뜻한다.
역사적으로 노트르담 대성당의 위치는 2000년 전부터 대대로 神殿이 자리 잡고 있었던 곳으로
현재의 대성당이 건설되기 이전에는 골르族과 로마의 神殿이 있었고,
9c 노르망族의 침입 시 파괴된 바실리아 교회당, 그후 건립된 로마네스크樣式 교회당으로
빠리의 종교적인 심장부였다. 빠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프랑스의 역사 교과서'라고 불리며,
시테 섬에는 법원(Palais de Justice)과 부속감옥(Conciergerie), 빠리 경시청,
꽃시장 등이 자리하고 있는 빠리의 유수한 발자취가 깃든 곳이다.
지붕 위의 조각상이 이채롭다
건물 외벽 곳곳에는 괴물모양의 몰골들이 성당을 탈출하는 듯한 모습으로 새겨져 있다.
끔찍하지만 경이롭다. 바로 빗물을 받는 낙수받이(가고일Gargoyles)이다.
가고일Gargoyles은 건축물의 지붕 바로 밑부분에 사람이나
괴이한 동물 모양으로 돌출 조각된 낙수물받이를 말한다.
지붕으로부터 흘러내린 빗물을 내보내는 기능을 하며, 중세 고딕 건축물에
흔히 사용되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은 최초로 버팀벽 날개공법(Flying butteress)을 도입한 건물이다
플라잉 버틀레스란, 건물 내부에 지붕을 버티는 육중한 기둥을 세울 필요 없이
지붕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支柱를 건물 외부에 따로 세우고, 斜梁으로 연결하는 방법인데
구조 자체가 거부감을 주는 것보다 아름다운 장식으로 보인다.
고딕 양식의 건축
1137년 빠리 북쪽 교외에 위치한 쌩 드니(Saint Denis) 수도원을 개축할 때에
수도원장 쉬제르 신부는 그 당시 컴컴하여 무겁고, 두꺼운 벽으로 되어 낮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를
밝은 스테인드글라스 사용과 오지브를 사용하여 하늘을 치솟을 듯이 높은 고딕 양식으로 발전시켜
북 프랑스를 중심으로 고딕 양식이 발달되었다. 그러나 고딕 건축이 쉬제르 시대에 완성된 것은 아니다.
가장 어려웠던 점은 두꺼운 벽을 쌓아 올리지 않고 건물자체를 높이는데 있었는데,
그 때문에 쌩 드니 수도원은 창이 작고, 스테인드글라스도 신통치 않았다.
이러한 기술상 난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붕 무게를 지탱하기 위한 支柱를 건물 외부에 따로 세우고,
斜梁으로 연결하는 '플라잉 버트레스(Flying Buttress)'공법이 개발되었다. 이 구조공법은
중세 건축의 한계 높이를 바꾸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플라잉 버트레스는 건물 밖에서 본 건물을
지지하는 형태이나 그 구조 자체가 거부감을 주는 것보다 아름다움 장식으로 보여진다.
파리의 노트르담이나 사르트르 성당이 플라잉 버트레스 공법을 처음으로
채택한 후부터 천정을 높이고 넓은 창에다가 멋진 스테인드글라스를 낄 수 있었다.
* 종탑 (鐘塔) *
높이 69m에 달하는 이 종탑은 중앙 부분의 가늘고 긴 16m 높이의 2개의 창에 의해
장엄함을 주며 하늘을 향해 가볍게 날아오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남쪽 종탑에는 ‘에마누엘’이라 불리는 종이 설치되어 있는데 13톤에 달한다.
이 종을 제작한 17세기에는 많은 시민들이 청동 주물에 금은 보석을 던져
맑은 소리를 울릴 수 있게 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담의 꼽추"로 한층 유명해진 종이다.
원래 북탑 4개의 종은 하루 중 기도 시간을 알릴 때 쳤고, 남탑(南塔)에 있는 큰 종
'에마누엘' 은 크리스마스와 부활절, 그리고 교황이 죽거나 새로 뽑혔을 때 쳤다.
노트르담의 종들은 1789년 프랑스혁명 전까지 북탑에 8개, 남탑에 2개,
그리고 뾰족탑 안에 7개가 있었는데 혁명군은 북쪽 탑의 4개 종과 에마누엘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모두 녹여 무기로 만들었다.
* 노트르담 대성당의 내부 구성 *
성당 안에 들어서면 웅장함에 놀라게 되는데
길이129m, 폭44m, 높이35m의 성당 내부에 9천명을 수용할 수 있다.
중앙 홀을 중심으로 좌우로 늘어선 둥근 기둥들 사이로 5m 넓이의 이중 복도가 있고,
내부를 보다 밝게 하기 위해 3층에는 창문을 넓게 하고, 2층 연단 부분을 낮게 하였다.
노트르담 대성당 중에서 제일 먼저 완성되어 현존하는 성가대석 주위에는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성직자석 뒷면에 놓여진 나무 부조가 남아있다.
피에타 Pieta
피에타(Pieta)는 경건한 마음이나 경건한 동정(同情)이라는 뜻을 나타내는 이탈리아어로
죽은 예수를 어머니 마리아가 안고 슬퍼하는 모습을 표현한 그림이나 조각상을 말한다.
피에타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 있는 미켈란젤로의 조각상입니다 ('알아 두기' 참고)
파이프 오르간
성물실(聖物室)에서
가시 면류관의 일부 십자가의 못 보관함
성인 유골. 당시 성골 중 사슴뼈로 밝혀진 것도 있었다
가시 면류관 보관함 무덤 바위조각 보관함
* 장미창(Rose window)과 스테인드글라스 *
중세기의 장미는 막연한 아름다움의 상징이 아니라 지혜와 성모님의 상징이었으며
고딕 대성당의 둥근 창을 장미창이라고 부르는 까닭은 장미가 지혜의 꽃이며,
거룩하신 성모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성당 앞면 2층의 한가운데 위치한 장미창(Rose window)은
1220년부터 1225년에 걸쳐 완성 된 직경 9.6m로, 밖에서 장미창을 바라보면
두 천사들 가운데 어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찬란한 후광에 둘러싸인 것처럼 보인다.
성당 내부 중앙의 남쪽과 북쪽에 있는, 고딕 건축양식의 꽃이라 불리는
장미창 스테인드글라스는 직경이 13m나 된다.
북쪽 장미창
남쪽의 장미창은 세로로 된 그림이 8쌍(16개)이고
북쪽의 장미창은 9쌍(18개)이다.
북쪽 장미창은 신약성서 내용을 주제로 하였다.
중앙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의 모습이다.
남쪽 장미창
밖에서 본 남쪽 장미창
남쪽 장미창에서 빛이 들어오고 있다.
창미창은 밖에서 들어 오는 빛에 따라 색깔이 변한다.
남쪽 장미창은 구약성서 내용을 주제로 하며, 중앙은 천사에 둘러싸여
사도에게 축복을 내리는 예수님의 모습이다. 18세기에 보수되었으며
붉은 색조를 바탕으로 하여 마치 하나의 별이 눈부시게 빛을 발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제로(zero) 포인트
성당 앞에는 파리의 중심지임을 알리는
제로 포인트(Le Point du Zero de Paris)가 있다.
바로 이곳에서 파리의 구(區)가 시작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이 지점에서 노트르담 성당을 바라보았을 때 가장 멋있는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칼 대제 동상(The Statue of Charlemagne샤를마뉴 대제)
칼 대제 칼(샤를마뉴)의 사인
성당 앞 광장에 있는 동상은, 로마제국 멸망 이후 피레네 산맥을 넘어 북진하던
이슬람 세력을 막아 유럽대륙의 그리스도를 보호한 칼 대제이다.
그는 현재의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지역을 망라하는 거대 통일 제국인
프랑크 왕국을 세워 교황으로부터 황제의 관을 물려 받았다,(800년)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첫댓글 2002년에 갔었으니 딱 10년전이네요. 기억에 남는건 제로 포인트이고 사람들이 엄청많아서 여유롭게 즐기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선생님 덕에 옛기억을 되살리며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현지에 가서도 이렇듯 속속들이 보지 못했던 곳들을 자세하게 해설과 설명을 곁들여 주시니 크게 공부가 되었습니다. 사실 우연하게도 그곳을 찾았던 시간이 일요일 미사 시간이어서 1시간 미사드리고 나오니 기분이 날아갈만큼 좋았던 그때가 떠오릅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패키지 여행을 가면 대충 볼 때가 종종 있어요. 사람도 많고 다리도 아프고.....
정리하다보면, 그냥 지나친 것들 중에 "중요한 것이었구나!"하고 아쉬워 할 때가 많답니다.
조한금 선생님, 다리 튼튼하실 때 좋은 곳 많이 여행하십시요. 감사합니다.
며칠 전 '노트르담 드 파리'뮤지컬을 보고와서 더 꼼꼼히 읽었습니다. 상세하게 올려주셔서 대성당을 여행하고 온 듯 합니다.
꼼꼼하게 읽어 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프랑스 고딕 성당의 대표격인 노트르담과 사르트르, 아미앵 그리고 랭스 대성당을 되도록 자세하게
정리해 보기로 마음 먹게된 동기는, 우리 에세이스트에 '들녘에서 부르는 노래'를 연재하는
김 베로니카 님 때문입니다.
베로니카 님이 다니는 시골 성당 성도들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요.
정리하는 동안 저도 여러가지 공부가 되더이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시골 성당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조회수가 대단합니다.
만나면 노트르담 랭스 아미앵 베드로 이야기를 합니다.
신자들은 물론이고 사목회에서도, 신부님께서도....
모두모두 감사하다고 말씀 전해달랍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엄마 같으신 분 ㅋㅋ
계속 조사하고 보완하도록 힘을 실어 주시는 김 베로니카의 시골 성당 성도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사르트르 성당과 아미앵 성당의 정리도 일차 끝냈는데 조금 더 보완해서 빠른 시일내로 올리겠습니다.
노틀담 성당안에서 고해성사를 보던 일이 생각나네요... 1987년의 가을. 작달만한 불란서 신부는 '동양에서 온 신사의 나머지 여정이 무사히 끝날 수 있도록 축복드린다'라고 강복을 주시던군요~~ 참 장대한 실내였어요~~이민혜님의 정리는 사학자의 연구 수준임다~!! 감사함니다.
역시 김종길 선생님!!! 작품을 올리면 봐 주시고 댓글을 달아주시니 넘넘 감사합니다. 더구나 과분한 칭찬까지~~~
계속 보완하다 보니까 사진이 70장이 넘게 올라갔어요. 50장 이상은 안된다는 경고를 받으며 재치껏 올렸답니다.
와! 이 선생님, 이렇게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수집했나요.
올려주신 글을 대할때 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합니다.
항상 수고하시는 이민혜 선생님 화이팅~~~~
내가 찍은 사진 외에 보완할 사진 수집해서 크기와 명도 조절하고 설명에 필요한 자료 수집하고...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네요. 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의 스페인 여행기를 접하고 여기 가입했습니다.
여행기 읽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저도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을 본 터라 감동이 더해옵니다.
사진을 곁들인 선생님의 글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동심원 님, 에세이스트 카페 식구가 되셨다니 반갑습니다. 두 손들어 환영합니다.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고 계시다는데 저의 스페인여행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07년 성천 아카데미 여름방학 해외수업의 일환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의 하얀마을'을 다녀왔고, 다음 해에
북부지방을 여행하기로 했었는데 유로화가 오르는 바람에 북부지방 여행을 못해 지금도 아쉽답니다.
호텔보다 파라도르를 이용하십시요. 두 배의 추억을 위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