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열하일기속 연암의 발자취를 쫓아서
마.D +4Day (다섯째날)
8) 발해의 수도.상경용천부의 옛터...
동경성 성터
상경 용천부의 유지는 중국 흑룡강성(黑龍江省) 영안시(寧安市)에 있는 ‘동경성(東京城)’이라고 부르던 성터이며 현재는 보통 ‘상경성’으로 지칭하고 있다. 여기에는 아직까지 당시의 성벽, 궁전 자리, 문터, 절터, 우물터 등이 곳곳에 남아 있다. 『신당서(新唐書)』발해전에는 문왕이 756년(문왕 20) 홀한하(忽汗河) 동쪽의 이곳으로 천도했다고 되어 있다.
문왕이 상경으로 천도한 이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다.
거란족이 세운 요의 역사인 『요사(遼史)』에는 발해가 상경성에 도읍한 것이 남조, 즉 중국 당에 대한 방비에서 비롯되었음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 그렇다면 이 때 당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755년(문왕 19) 11월 안록산(安祿山)이 난을 일으키고 이듬해 정월에는 황제를 자칭하게 된다.
안록산은 난을 일으켰을 때 평로(平盧)·범양(范陽)·하동(河東) 절도사(節度使)를 겸하고 있었는데, 평로는 현재의 요녕성(遼寧省) 조양시(朝陽市), 범양은 현재의 북경(北京) 등으로 발해와 멀지 않은 지역이었다.
발해는 안록산이 서쪽에 대한 공격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하면 언젠가는 동쪽으로 공격해 올 것이라고 판단하여, 사전에 이를 대비할 목적으로 당나라에서 멀리 떨어진 상경으로 천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왕은 상경으로 천도한 뒤 문물·제도의 정비 작업을 가속화하여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지만,
천도 원인은 안록산의 난으로 인한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것이었다.
발해의 흔적은 간데없고 성터만 남아
발해의 고난에 찬 일대기를 보면 도전...탈취...확장...연합...정치력...이런것이 필요했던것은 아니었을까.....
확실히 비 오는 날 ...사진을 찍으면....멋져요.....
이 사진의 주인공은 공 형입니당....ㅋㅋ
이게 바로 원색의 힘입니다.... 참고 하세염..
졸릴듯 말듯....손 묶고 뭐하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