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가위에 대하여
우리 민족의 2대 명절의 하나인 음력 8월 15일로 가배(嘉俳), 추석(秋夕), 중추절(仲秋節), 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 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인데 즉 8월 15일은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이다.
한가위 유래
고려 인종 23년(1145)경 김 부식이 신라․고구려․백제 3국의 정치적인 흥망과 변천을 중심으로 편찬한 역사서(歷史書)인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AD 32년) 조(條)에 보면 왕이 6부(部)를 둘로 나누어 왕녀 두 사람으로 하여금 부내(部內)의 여자들을 통솔하여 무리를 만들고......, 한가위 한달 전부터 날마다 일찍 6부의 뜰에 모여서 길쌈을 하다가 밤늦게 파하게 하였다가 8월 보름에 이르러 한 달 동안에 적마(積麻)한 결과를 심사하여 진 편이 술과 음식을 마련하여 이긴 편에 주도록 하였으며 이 때 노래와 춤과 온갖 놀이가 벌어졌는데 이를 가배(嘉俳)라고 하였다.
이 때 진 편의 여자가 일어나 춤추며 ‘회소(會蘇)․회소’하면서 탄식하는 음조(音調 ; 소리의 가락)가 매우 슬프고 아름다웠으므로 후세 사람들이 그 소리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불렀다고 하는데 가사는 전하지 않고 삼국사기에 그 유래(由來)만 수록되어 있다.
이것이 곧 ‘회소곡’이 되었는데 ‘회소․회소'는 오늘날의‘아서라, 말아라’에 해당하는 말로서 ‘마소․마소’의 뜻이 아닌가 짐작이 된다.
고려시대부터 구전(口傳)되어 왔으며 월령체(月令體 ; 1년 12달을 차례대로 맞추어 나가며 읊은 시가형식의 노래)의 효시(嚆矢 : 일의 맨 처음)가 되는 노래로, 임을 여읜 여인의 애절한 정서를 각 달(月)의 풍속과 함께 드러내고 있는 고려가요의 하나인 ‘동동(動動)’에도 이 날을 가배라고 적은 것을 보면 이 명칭은 지속되었다고 하겠다.
노래의 형식은 全 13장으로 제 1장은 서사(序詞)이고, 남은 12장은 정월부터 12월까지 남녀의 사랑을 월령체로 엮었다.
동동(動動)
이 노래는 조선시대의 악학궤범에 한글로 가사가 실려 있는데 그 중 八月 것만 수록하였다.
고려속요 중에서 유일한, 우리 문학 최초의 월령체(달거리 노래)이다.
-원문- -해석-
八月(팔월) ㅅ 보로만 팔월 보름은
아으 嘉排(가배)나라마른 아아, 가윗날이지만
니믈 뫼셔 녀곤 님을 모시고 지내야만
오날날 嘉俳(가배)샷다. 오늘이 가윗날입니다.
아으 動東 다리(後斂句) (사랑하는 임이 없으면 하나도 즐거울 것이 없다는 뜻이다)
연모(戀慕)와 신세(身世)를 한탄(恨歎)하는 내용으로 ‘동동’은 북소리를 모방한 ‘둥둥’이며 ‘다리’는 악기 소리를 흉내한 것이다.
중추절이라는 것도 가을을 음력 7월의 初秋, 8월의 仲秋, 9월을 終秋의 3 달로 나누어 음력 8월이 중간에 들었으므로 붙은 이름이다.
이때는 천고마비(天高馬肥)의 계절에 오곡(五穀 : 쌀, 보리, 조, 콩, 기장)이 무르익어 넓은 들판이 황금빛으로 물들고, 햇과일이 풍성하기 때문에 다양한 음식이 시절에 맞추어 나오며, 마음이 넉넉해지는 계절이기 때문에 고대사회에서는 달의 고마움에 감사하였는데, 조선 순조 때 김 매순(金 邁淳, 17761840)이 지은 열양, 곧 한양의 연중행사를 기록한 책인 열양세시기(迾陽歲時記)에 보면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있고, 강원도 명주(溟洲)의 속담에는 ‘5월 농부, 8월 신선(神仙)’이라는 말(농부들은 5월과 6월의 더울 때는 일을 하느라 땀을 흘리지만 풍년이 드는 8월에는 누구도 부럽지 않다)도 여기서 나왔다고 할 수 있겠다.
또 다른 속담에는 ‘설에는 옷을 얻어 입고, 한가위에는 먹을 것을 얻어 먹는다’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한가위 때는 곡식과 과일 등이 풍성한 때이지만 나와 내 식구들의 기쁨으로만 끝나는 개인주의보다는 ‘보름달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보아야 더 커진다’라는 말을 마음에 새겨 이웃, 특히 어려운 이웃과 같이 따뜻한 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제대로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한가위 음식
우리 조상들은 떡을 만들어도 달떡을 만들었다.
중국에서는 만월(滿月)을 상징하는 월병(月餠)을 만들었지만 우리나라는 반월형(半月形)의 송편을 만든 것은 반월(半月)은 나날이 보름달로 발전하는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인데 이를 증명하는 것으로는 고대의 도성(都城) 이름에 半月城이 많은 것을 들 수 있다.
전하는 말에는 송편을 예쁘게 잘 빚어야 ‘시집을 잘 간다’,‘예쁜 아기를 낳는다’, ‘배우자가 될 사람의 얼굴도 그렇게 된다’는 말을 믿어 여성들은 예쁜 손자국을 내며 반월형의 송편에 꿀․밤․깨․콩․대추 등을 넣어 맛있게 쪄냈으며, 또 임신한 부인들은 송편에 솔잎 한 가닥을 가로로 넣어 쪘는데 찐 송편을 한쪽으로 베어 물어서 문 부분이 솔잎의 끝 쪽이면 아들이고, 잎 꼭지 쪽이면 딸이라고 했다.
이 때 솔잎을 깔아서 떡을 만든 것은 떡을 맛으로만 먹은 것이 아니고 후각적(嗅覺的)인 향기와 시각적(視覺的)인 멋도 즐겼다고 볼 수 있다.
솔잎에는 살균물질인 피톤치드(phytoncide)가 다른 식물보다 10배정도로 많이 포함되어 있어 유해성분의 섭취를 막아줄 뿐만 아니라 위장병, 고혈압, 중풍, 신경통, 천식등에 좋다고 한다.
더구나 송편을 먹으면 소나무처럼 사철 푸르러 건강해지는 끈기가 생기며 절개(節槪)와 정조(貞操)가 강해진다고 여겨왔다.
한가위 차례상(茶禮床)에서 또 하나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술이다.
한가위 때 마시는 술은‘백주(白酒)’라고 하는데 햅쌀로 빚었기 때문에 ‘신도주(新稻酒)’라고도 한다.
추석에 행해지는 세시풍속으로는 벌초(伐草), 성묘(省墓), 다례(茶禮), 올벼심미, 반보기, 강강수월래, 소(牛)놀이, 거북놀이, 원(員)놀이, 가마싸움, 밭고랑 기기, 씨름 등을 들 수 있다.
• 벌초(伐草)
조상 무덤의 잡초를 베어서 깨끗이 하는 것은 자손의 도리라고 여겨서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다.
• 차례와 성묘(省墓)
새 옷 입고 새 곡식으로 떡도 하고 술도 빚어 조상님께 감사하다는 차례를 지냈 으며 설날 차례가 떡국 차례라면 추석 차례는 송편 차례이다.
차례가 끝나면 음복(飮福)한 후 산소(山所)에 가서 제사를 지내는데 이 또한 조상 의 덕을 생각하여 제사에 정성을 다하고 자기가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추원보본(追遠報本)의 행사이다.
• 올벼심미(올게심니)
추석 무렵 감사하는 마음으로 잘 익은 곡식을 한줌 베어다가 안방이나 중방 또는 기둥에다 걸어놓고 다음 해의 풍년을 기원하는 것이다.
호남지방에서는 추석 전 그 해 난 올벼를 조상에게 천신(薦新 : 철따라 새로 난 과실이나 농산물을 먼저 신위(神位)에게 올리는 일)하는 제(祭)를 지내는데 이를 ‘올벼심리’라 한다.
영남지방에서도 ‘풋바심’이라 하여 채 익기 전의 벼를 미리 베어 훑어서 천신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 반보기(중로상봉(中路相逢)
농사일로 바쁘게 생활하던 일가친척들이 한가위 날에는 서로 만나 하루를 즐겼지 만 마음대로 친정 나들이를 할 수 없었던 시집간 딸과 친정의 어머니가 중간지점 에서 만나 장만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으면서 반나절을 함께 회포를 풀고 즐기는 것을 반보기 곧 중로상봉이라고 한다.
속담에 ‘근친(覲親 : 시집간 딸이 친정으로 와서 친정 어버이를 뵘)길이 으뜸이고 화전길(삼짇날 꽃놀이)이 버금(으뜸의 바로 아래)이다.’ 곧 ‘친정 가는 길이 제일이 고 두 번째가 봄나들이라는 말이다’라고 할 정도로 반보기가 아닌 온보기로 하루 동안 친정 나들이하는 것이 여인네들에게는 큰 기쁨이며 희망이었다.
(지금 여성들이 들으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친정으로 가지 않기 때문에 시댁의 가사(家事)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고 또한 친 정에 갈 때 가져가는 음식을 장만하지 않아도 되며 당일로 다녀올 수 있기 때문 에 매우 편리하게 이용되었다고 한다.
친정 길을 절반만 갔다고 해서 반보기이고, 친정 어미 외에 다른 가족은 볼 수가 없어서 반보기며, 눈물이 앞을 가려 엄마 얼굴이 절반만 보인다고 해서 반보기라 고 했다는데 짧은 반나절 반보기의 끝은 눈물의 이별이었다.
¤ ‘반보기’라는 구전민요(口傳民謠)
살아야 한데이 살아야 한데이/ 죽더라도 그 집 대문 안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말고/ 그 집 구신이 되어야 한데이/
출가외인(出嫁外人) 내 딸이야.
• 강강술래(강강수월래)
추석날 밤에 곱게 단장한 마을 부녀자와 처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둥근 달 아래에서 둥글게 원을 그리며 돌고 도는 한가위 놀이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명칭은 강강술래가 일반적이지만 시작할 때의 진양조(민속 음악에서 쓰는 판소리 및 산조 장단의 하나로 1장단이 24박으로 가장 느린 속도)로 느리게 부를 때는 강강수월래로 발음된다.
이 놀이는 중국 진(晉) 나라 때의 사학자인 진수(陳壽)의 삼국지(三國志) 위지(魏志) 동이전(東夷傳)에는 마한(馬韓)의 습속에서 파종을 끝낸 5월과 추수를 끝낸 10월에 여러 사람이 모여 술을 마셔가며 밤낮으로 춤추고 노래 부르며 즐겼다는 기록이 나온 것으로 보아 이미 원시 공동체 사회로부터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훨씬 후의 유래는 임진왜란 때 남자들은 모두 전장으로 나가고 마을에는 아낙네만 남아서 충무공은 아낙네들에게 남자 옷을 입히고 좌수영 동쪽에 있는 옥매산(玉埋山)에 올려보내 강강술래를 시켜 멀리 떨어져 있는 왜적에게 마치 수만(數萬)의 대군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의병술(疑兵術)에서 창안한 강강술래가 민속놀이화 되어 그 후 계속하여 전승되었다고 한다.
한자어로는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라고 표기하고, ‘강한 오랑캐가 물을 건너온다’라는 뜻이다.
그래서인지 강강수월래는 호남지방 중에서도 남해안 쪽에서 성행하며, 강강수월래는 둥글게만 돌지 않고 갖가지 놀이판으로 바뀌면서 민요를 곁들인다.
“하늘에는 별도 총총/강강술래, 동무 좋고 마당 좋네/강강술래, 솔밭에는 솔잎 총총/강강술래, 대밭에는 대도 총총/강강술래, 달 가운데 노송나무/강강술래”
앞소리꾼이 소리를 내면 모두가 받아서 강강술래로 메긴다.
새벽이 부옇게 움터올 때까지 강강술래는 거칠 줄을 모른다.
• 소(牛)놀이
마을 사람들로 구성된 농악대가 먼저 풍물을 울리면 두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 그 위에 멍석을 뒤집어쓰고 뒷사람은 큰 새끼줄로 꼬리를 달고 앞사람은 막대기 두 개로 뿔을 만들어 소의 시늉을 한다.
소를 끌고 농악대와 마을 사람들은 그 마을에서 가장 부농(富農) 집이나 그 해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을 찾아가 대문 앞에서 “소가 배가 고프고 구정물을 먹고 싶어 왔으니 달라”고 하면 주인이 나와서 일행을 맞이하여 술과 떡과 찬을 차려 일행을 대접한다.
소놀이를 할 때는 그 해에 농사를 가장 잘 지은 집 머슴을 상머슴으로 뽑아 큰 공을 위로하고 포상하는 뜻에서 소등에 태우고 마을을 돌며 시위하는 경우도 있는데 한번 상머슴으로 뽑히면 다음해 머슴 새경(농가에서 머슴에게 연말에 주는 보수)을 정할 때 우대를 받게 된다.
• 거북놀이
수수 잎을 따 거북이 등판 마냥 엮어 이것을 등에 메고 엉금엉금 기어 거북이 흉내를 내는 놀이이다.
이 거북이를 앞세우고“동해 용왕의 아드님 거북이 행차시오”라고 소리치며 풍물패와 함께 집집을 방문하여 대문에서 문 굿으로 시작하여 마당, 부엌, 장독대, 곡간, 마굿간, 뒷간 그리고 마지막에는 대들보 밑에서 城主풀이를 한다.
이렇게 집집을 돌 때 주인은 곡식이나 돈을 형편대로 내놓는데 이것을 잘 두었다가 마을의 공동기금으로 사용한다.
¤ 성주풀이
남부지방에서 많이 불려지는 민요의 하나로 성주굿의 내용을 담고 있어서 성주풀이라고 하는데 장단은 굿거리로 되어 있고, 선율의 토리는 경토리(한국의 경기민요가 지니고 있는 음악적 특징)에 가까우며, 장절형식(章節形式 ; 先소리를 메기고 뒷소리로 받는 형식)으로 되어 있는데 뒷소리는 “에라만수 에라대신이야 대활연으로 설설이 내리소서”라는 말로 되어 있다.
• 원(員)놀이
서당에서 공부하는 학동(學童)들이 학동들 중에서 공부를 많이 했고 재치 있는 학동을 원님으로 선발하고 나머지 학동들은 백성이 되어 원님께 소장(訴狀)을 내어 그 판결을 받는 놀이로 요즈음 대학에서 행해지는 모의재판(模擬裁判)과 비슷하다.
• 가마싸움
이웃 서당의 학동들끼리 가마를 부딪쳐서 대결하는 놀이로 가마를 끌고 넓은 마당에 나아가 달음질해서 가마끼리 부딪혀 부서지는 편이 지게 되는 놀이인데, 이긴 편에서 그 해의 과거시험에 급제(及第)한다는 믿음이 있었는데 경상북도 의성에서 시작되었다.
• 밭고랑 기기
전라남도 진도에서는 한가위 전날 저녁에 아이들이 밭에 가서 발가벗고 자기 나이대로 밭고랑을 긴다.
이렇게 하면 그 아이는 몸에 부스럼이 나지 않고 밭농사도 잘 된다고 믿었다.
※ 추석 차례의 순서
• 진설(進設 ; 음식을 갖추어 상을 차림)
북쪽에 병풍을 치고 병풍 앞에 신위(神位)를 모실 교의(交椅 : 神主나 혼백(魂 魄)을 모시는 의자)를 마련한 다음 식어도 괜찮은 음식부터 제물을 차린다.
제수(祭需)는 간소하게 하되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을 몇 가지 더 곁들이는 것이 좋다.
• 취신위(就神位 ; 신위(조상)를 모심)
진설이 다 되면 사진(寫眞)을 교의나 제사상에 모시고 혹은 미리 써둔 지방(紙榜)을 교의의 신위함이나 병풍 앞면에 붙인다.
• 분향강신(焚香降神 ; 향을 피워 신을 부르고 모사그릇에 강신주를 부어 백을 부른다)
제주(祭主)는 꿇어앉아 香을 살라 향로에 꽂고재배(再拜)한다.
제주가 항상 앞에 앉으면 오른쪽 집사(執事)가 술병을 들고 제주 오른 편에 꿇 어앉고, 왼쪽 집사는 잔과 잔대를 들고 제주 왼편에 꿇어앉는다.
왼쪽 집사가 제주에게 강신 잔을 주면 오른쪽 집사가 그 잔에 술을 가득하지 않게 따르고, 제주는 왼손에 잔대를 오른 손에 술잔을 잡고 모사(茅沙) 그릇에 세 번에 나누어 모두 부은 후에 빈 잔은 오른쪽 집사에게 건네주어 제자리에 놓 게 하고 제주는 일어나서 재배한다.
• 참신(參神 ; 조상께서 오셨기에 인사드리기)
제주와 참석자는 모두 재배한다.
절을 하는 것은 ‘어서 오십시오’라는 인사를 하는 것이다.
요즘은 여자도 재배를 하나 원래는 4배였다.
¤ 신이 오셔야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것이므로당연히 강신하고 신이 오신 후에야 참신을 할 수 있다.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나 오늘날처럼 지방을 모시고 제사를 지낼 때도 강신을 먼저 하고 참신을 뒤에 한다.
지방을 붙이고 향을 피우고 모사그릇에 술을 붓는 것은 신위를 모시는 일로 강 신이라 할 수 있다.
• 진찬(進饌 ; 漁, 肉, 국 떡 따위의 주식을 제상에 올리는 일)
주부가 설 차례에는 떡국을, 추석 차례에는 송편(혹은 메)을 제상에 올린다.
• 초헌(初獻 ; 첫 잔 올리기)
초헌은 수헌(首獻)이라고도 하는데 첫 번째 술잔을 올리는 절차로써 제주가 신 위 앞에 나아가 분향한 뒤 왼쪽 집사가 잔을 제주에게 건네주면 제주는 오른쪽 집사가 따른 술잔을 받아서 먼 조상, 남자 조상 순으로 올린 다음 제주는 재배 한다.
• 독축(讀祝 ; 축문 읽기)
제주 이하 모든 사람이 꿇어앉고 참사자 중에 한 사람이 제주의 왼쪽에서 祝을 읽고, 끝나면 제주는 재배한다.
• 아헌(亞獻 ; 두 번째 술잔 올리기)
종부(宗婦)가 올리는 것이 예(禮)이지만 어려울 때는 제주의 근친자(近親者; 8 촌이내의 일가붙이)나 장손(長孫)이 올리고 아헌을 한 사람이 재배를 한다.
아헌 때부터는 축이 없다.
• 종헌(終獻 ; 마지막 술잔 올리기)
제주의 형제 중에서 행하거나 장남이 할 수도 있다.
아헌자 다음가는 근친자가 올리며, 술잔은 다 채우지 않고 70%정도만 채운다.
종헌을 한 사람이 재배를 올린다.
• 삽시정저(揷匙正箸 또는 계반삽시(啓飯揷匙) ; 밥 그릇 뚜껑을 열고 수저 꽂기)
집사가 메(밥)그릇의 뚜껑을 열어 향로 주변의 제상(祭床) 밑에 놓고 숟가락을 메 그릇에 두 번은 가볍게 꽂았다 빼고 세 번째는 숟가락 바닥(움푹 파인 곳)이 제주의 오른쪽으로 가게 하여 꽂는다.
젓가락은 시접(제상에 수저를 담아놓는 놋그릇. 대접과 비슷하며 꼭지 달린 납 작한 뚜껑이 있다) 위에 가지런히 걸쳐놓으며, 젓가락의 손잡이는 왼쪽을 보게 놓는다.
흔히 젓가락을 세 번 굴리고 여기저기 제물 위에 올려놓기도 하지만 시접 위에 가지런히 놓는 것이 바람직하다.
• 첨작(添酌 ; 술 더 드리기)
오른쪽 집사가 새로운 술잔에 술을 조금 따라주면 제주가 받아서 왼쪽 집사에 게 주고 왼쪽 집사는 종헌 때 채우지 않고 올린 술잔에 세 번으로 나누어 가득 붓도록 첨작하고 제주는 재배한다.
• 합문(闔門 ; 문 닫기)
신위께서 음식을 드시는 동안(아홉 수저를 드시는 시간, 이것도 3을 3번 더한 뜻으로서 많이많이 잡수실 때까지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참석자들은 모두 방에 서 나가 문을 닫고 엎드려 생전의 조상을 생각한다.
제청(祭廳)이 대청(大廳)인 경우에는 뜰 아래로 내려가 조용히 3-4분을 기다린 다.
그러나 단칸방일 경우에는 병풍으로 祭床을 가리고 조용히 그 앞에 엎드 리고 몇 분 동안 조용히 기다린다.
• 계문(啓門 ; 합문 열기)
신위께서 메를 다 드실 만한 시간이지나면제주가 앞서서 기침을 세 번하고 난 후에 조용히 문을 열고 들어간다.
계문하면 참사자(參祀者)들이 제청으로 다시 들어간다.
제상 앞에 엎드렸을 때는 그 자리에서 일어선다.
• 헌다(獻茶 ; 숭늉 올리기)
숭늉을 갱(국)과 바꾸어 올리고 메를 조금씩 세 번 떠서 말아놓고(물에 말아서 더 드십시오 라는 뜻) 숭늉 그릇에 숟가락을 걸친 다음 참사자 일동은 잠시 읍 (揖)한 자세로 있다가 제주의 기침 소리에 따라서 고개를 든다.
• 철시복반(撤匙復盤 ; 수저를 거두고 밥뚜껑 덮기)
신위께서 제물을 다 잡수셨다고 생각하면숭늉그릇에 있는 숟가락을 거두어 젓 가락과 함께 시접에 담고 메 그릇의 뚜껑을 덮는다.
• 사신(辭神 ; 조상께 환송 인사드리기)
신을 보낸다는 뜻으로 참사자 일동이 재배를 올리고, 지방과 축문을 향로 위에 서 사른 뒤 숭늉은 담이나 깨끗한 곳에 붓는다.
• 철상(撤床 ; 제사 음식 물리기)
제상의 모든 제사 음식을 뒤쪽에서부터 다른 상으로 공손히 옮겨 물린다.
• 음복(飮福 ; 복된 음식 먹기)
옷을 입은 그대로 조상이 드시고 남은 제물을 참사자 모두가 나누어 먹는다.
※ 진설 방식
우리가 지방(紙榜)을 향해서 볼 때 신위를 모시는 방향을 북쪽, 왼쪽을 서쪽, 오 른쪽을 동쪽이라고 생각한다.
차례상은 차례자 위치로부터 과(果), 채(菜), 탕(湯), 적(炙), 반(飯)의 다섯 줄로 홀수이며, 줄별로 제물(과일․나물․탕․적)도 홀수로 한다.
첫째 줄은과(果)줄로 조율이시나 홍동백서로 진설한다.
둘째 줄은채(菜)줄로 좌포우혜로 하되 白김치는 東에, 삼색 나물(고사리, 도라지, 시금치)은 西에, 간장은 中央에 놓는다.
셋째 줄은탕(湯)줄로 삼탕(三湯)을 놓되 어동육서에 따라 東에는 생선탕, 西에 는 고기탕, 中央에는 소탕(素湯 ; 두부)을 놓는다.
넷째 줄은적(炙) 줄로 어적(魚炙), 육적(肉炙), 소적(素炙 ; 두부, 채소류 적)을 놓고 생선은 두동미서(頭東尾西)로 하되 신위 쪽으로 생선이 등지면 안 되고 배 쪽 이 향해야 한다.
다섯째 줄은반(飯)줄로 반서갱동(飯西粳東)으로 하되 중간에 술잔과 대를 놓고, 메 대신 에 송편만 올릴 경우는 송편은 東에, 술잔과 대는 西에 놓는다.
시접(수저)은 단위제(單位祭)는 왼쪽 위치에, 양위 합제(合祭)는 중간에 놓으며, 동쪽에 떡을 진설한다.
• 조율이시(棗栗梨柿) ; 왼쪽부터 대추, 밤, 배, 감의 차례로 차리는 격식
• 홍동백서(紅東白西) ; 붉은 색깔의 과실은 동쪽, 흰색의 과실은 서쪽으로 진설 함.
• 좌포우혜(左脯右醯) ; 포는 왼쪽, 식혜는 오른쪽
• 생동숙서(生動熟西) ; 나물(야채) 날 것(白김치)은 동쪽, 익힌 것은 서쪽
• 어동육서(魚東肉西) ; 어물은 동쪽, 육류는 서쪽
• 두동미서(頭東尾西) ; 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
• 반서갱동(飯西坑東) ; 메(밥)는 서쪽, 국은 동쪽
• 좌면우병(左麵右餠) ; 면류는 왼쪽, 떡은 오른쪽
• 건서습동(乾西濕東) ; 마른 것은 서쪽, 젖은 것은 동쪽
• 접동잔서(楪東盞西) ; 접시는 동쪽, 잔은 서쪽
• 남좌여우(男左女右) ; 제상의 왼쪽은 남자, 오른쪽은 여자
※고인이 생전에 좋아하시던 음식을 가까이 놓아 드리는 것이 좋다.
※조율이시(棗栗梨柿)의 상징(象徵)
조(棗 ; 대추)는 씨가 하나로, 왕(王) 또는 道人이나 聖賢이 될만한 후손이 나오 라는 뜻이다.
대추는 태양에 속해 있는 대은하계(大銀河系)의 모형을 나타낸 것이므로 진설상에 있어서 으뜸이다.
율(栗 ; 밤)은 알이 세 톨로 3정승이 나오라는 의미인데 가운데 있는 밤은 영의 정, 오른쪽에 있는 밤은 우의정, 쪽 에 있는 밤은 좌의정이라는 의미다. 밤송이에는 각기 기질을 가지는 五氣가 들어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성질을 나타낸다.
첫째 ; 가시는 내유외강(內柔外剛)의 성질(추진력)
둘째 ; 껍질은 단단하고 강한 기질(방어력)
셋째 ; 껍질 속의 털은 포근함을 나타낸다.(보호력)
넷째 ; 쏙 껍질의 떫은맛은 인생살이의 떫은맛을 나타낸다.(인내력)
다섯째 ; 속 알의 고소한 맛은 깨달음의 참 맛을 나타낸다.(깨달음)
시(柿 ; 감)는 씨가 여섯 개로 집안에 육조판서(六曹判書) 감이 나오는 것을 상징 하며, 천부경(天符經)의 육감세계(六感世界)를 나타낸 것으로 우리 몸의 물리적 작용 즉 오감세계(五感世界)를 벗어난 영적 의미를 말한다.
이(梨 ; 배)는 씨가 8개로 8도 관찰사를 상징하기 때문에 職位의 序列대로 놓아야 한다 면 ‘조율시이’가 맞다는 주장도 있다.
대추와 밤을 놓은 다음 감을 놓아야 하는지, 배를 놓아야 하는지 잘 몰 라서 항상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한다”라는 말이 생겼다.
다른 사람의 일에 쓸데없이 간섭하고 참견한다는 뜻이다.
※차례 음식에 사용하지 않는 것
고춧가루, 마늘, 복숭아, 붉은 팥(흰 고물을 쓴다),
‘치’자가 들어가는 생선(꽁치, 갈치, 삼치......),
비늘 있는 생선(잉어) 등.
* 참고 문헌
한국의 민속놀이
한국의 세시 풍속
두산백과사전
한국민속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