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오신 예수님(1)
마태복음 20장 20-28절 / 20그 때에 세베대의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무엇을 구하니 21예수께서 이르시되 무엇을 원하느냐 이르되 나의 이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 2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그들이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23이르시되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내가 주는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24열 제자가 듣고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기거늘 25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이르시되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그들을 임의로 주관하고 그 고관들이 그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26너희 중에는 그렇지 않아야 하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27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 28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말씀해 주시는 성경 구절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려주시는 말씀을 모두 네 번에 걸쳐서 하셨습니다. (1) 첫 번째는 마태복음 5장 17-18절입니다.“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이곳에서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하려고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2) 두 번째로 볼 수 있는 곳은 요한복음 6장 38-40절입니다.“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이곳에서는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이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섬겨 아버지의 일을 행하는 것이니, 곧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3) 세 번째로 볼 수 있는 곳은 마태복음 10장 34절입니다.“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이곳에서는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4) 네 번째로 볼 수 있는 곳이 본문인 마태복음 20장 28절입니다.“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러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혀 주시는 것에서
하나님이 정하신 구속 사역의 방식을 알려 주심
위에서 보는 성경 구절 네 곳은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진행되는 중에 예수님에 의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 주시는 것에 서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모두 예수께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세상에 왔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1)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율법이 지닌 뜻을 온전히 드러내시며, 그 율법이 지닌 뜻을 완전히 이루십니다. (2)그 일을 하시는 것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여 영생을 얻게 하십니다. (3)이 일로 예수님을 주로 받아 따르는 자와 예수님을 배척하여 대적하는 자 간의 분리에 의한 분쟁의 실체가 드러나기에 예수님은 세상에 검(은유적 표현으로 불화 또는 분열을 의미한다, 눅 12:51)을 주러 오신 분이 되십니다. (4)세상은 예수님을 반대하고 배척하여 죽이지만 이를 통해 예수님은 자신을 많은 사람을 그들의 죄로부터 구원하는 대속물로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하여 구속주의 사역을 행하십니다. 그러한 것에서 예수님이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을 밝히시는 구절로 마지막에 말씀하신 마태복음 20장 28절인“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는 그동안 밝혀 오신 작정된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어떤 방식으로 이루실 것인지를 드러내어 구체적으로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대속물로 주시는 것에서 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천국관
예수님이 이처럼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밝히게 된 것은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를 들면,
(1) 예수께서는 12제자를 사도로 임명하신지 얼마 후에 세례 요한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해 주면서“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큰 자”(마 11:11)인 것을 가르치셨고, 그 후에도 제자들이 천국에서는 누가 제일 큰 자인지를 예수께 물었을 때 어린 아이 하나를 불러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는 말씀하시기를“너희가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천국에서 큰 자이다.”(마 18:1-4)라고 가르치셨습니다.
(2) 그리고 또 한 번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 주실 것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올 때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은 어린아이들이 나아오는 것을 허락하고 금하지 말라고 하시면서“천국이 이런 자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9:13-15).
(3)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유대의 관원이요 부자인 한 청년이 예수께 나와 자기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어떤 선한 일을 하면 될지를 질문하였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을 지키고, 모든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고 그 자신은 주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여 따르라는 말씀을 듣고는 재물이 많으므로 근심하고 돌아갔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제자들은 놀라서“그러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을 향하여 예수께서는“구원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그러니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묻기를“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그러니 저희는 무엇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말함으로, 예수께서는 세상이 새롭게 되어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실 때 제자들도 열두 보좌에 앉을 것과(마 19:16-28), 제자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부모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마다 여러 배를 받고 또 영생을 상속할 것이라고 말씀해 주심으로(마 18:29),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름으로써 그들에게 있게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주지시키셨습니다.
(4) 그리고 본문에서 보는 일이 있었습니다. 세베대의 아들인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다음과 같이 구하였습니다.“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하여 주옵소서.”이는 여느 부모님들에게서도 보는 것으로, 자식을 사랑하고 잘되기를 바라는 것에서 예수께 나아와 자기 두 아들을 주의 나라의 좌, 우편에 앉게 해 달라는 청에 있은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통하여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을 것인 주께서 예고하신 죽음과 부활이 있을 것이면 주께서 주의 나라인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는 것에서(참조. 행 1:6) 주께서 다스리는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것으로 여겨, 그때가 이르면 주의 제자로서 주를 도와 마땅히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역할이 있을 것이 아니겠는가 생각하고 그렇게 주와 함께 주의 나라를 위해 일할 수 있기 위해서 주의 곁 가장 가까이에 있을 수 있도록 주의 보좌의 좌, 우편에 자기 두 아들이 각각 앉게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동행하면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가르침에 있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인 예수님이 예고하신 죽음과 부활이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비로소 깨닫게 됨은 예수께서 아버지와 함께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심으로 되어질 일이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예수님이 해 오신 말씀에서 하나님의 일을 내다보고 생각함에 있지를 못하고 예수님을 통해서 일어날 하나님의 일을 자신들이 생각하는 관점으로 이해하고 그에 따라 처신해 나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은 야고보와 요한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그와 함께 하는 동료인 모든 제자들도 갖고 있는 같은 생각이어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동료들 그 누구보다도 주님의 곁 가장 가까이서 섬길 수 있기를 갈망하였습니다. 따라서 야고보와 요한만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마 18:1-4; 20:24). 이는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모친을 모시고 예수께 나와 나눈 이야기를 들은 나머지 열 명의 제자가 그 두 형제에 대하여 분히 여긴 것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뿐만 아니라 다른 열 명의 제자 모두의 마음에는 주와 주의 나라를 위해 일한데 따른 보응에 대한 기대가 깔려 있었습니다. 제자들의 마음에 가진 이러한 갈망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높은 지위와 명성과 권세를 얻기를 갈망하는 것에 다름 아니니, 이러한 욕망은 육체의 죄성에 의한 정욕적인 것으로 육체가 탐하는 대로 이끌려 살고 눈에 보이는 즐거움을 기쁨으로 삼아 살고 지위가 있고 재산이 많아 부요하게 사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사는 것을 제자들도 같은 모습을 취함에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모두는 하늘의 아버지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오는 것이기에 세상과 함께 사라질 것입니다(요일 2:16-17).
예수님의 제자들이 천국과 관련하여 가진 그릇된 제자관
그러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하여 그들의 마음 깊이 차지하고 있는 본성이 표면에 드러나 실상을 보일 때마다 그들의 믿음이 주이신 예수님과 주의 나라에 대하여 바른 이해에 있어야 할 것이기에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이처럼 가르침을 주신 것은 예수님을 따라 함께 하는 제자 된 길을 감에는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서가 아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서여야 하는데(마 16:23), 제자들의 의식(意識)을 차지하고 있는 사고(思考)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함에 있지 않고 계속해서 여전히 사람의 일을 생각함에 있는 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제자들은 예수께서 말씀해 주시는 가르침을 들을 때 자신들의 상태를 확인시켜 주시고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깊은 사고(思考)에 있어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일을 해 나가시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과 함께 하는 것에서 예수님과의 동행에 있어 나가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하며 따름을 어떤 생각에서 가져나가야 할지를 온전히 이해하고 있지를 못했습니다. 그런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의 예고를 거듭 듣고 본문 바로 앞에서도 들었던 터라(마 16:21; 17:22-23; 20:17-19) 그들의 주께서 예루살렘에서 죽임을 당할 수 있을 것이란 걱정을 갖고서 그렇게 되시면서까지 주께서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생각하며(참조. 행 1:6),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은 자신들에게 그 나라에서 주를 위하여 섬길 자리로 주께서 무엇을 주실 것인지에 생각이 미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런 그들의 마음에 일어나는 욕망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자신들이 주의 양 옆에 있는 높은 자리에 앉아 가장 가까이에서 주님을 섬길 생각에 있었습니다. 이는 주 예수님을 섬김에 있는 자신들이 주께서 다스리는 나라가 세워지면 그 나라를 위하여 자신들이 힘을 보태며 도와 충성스럽게 섬길 것을 생각한 것입니다. 이것이 주의 제자된 자신들의 도리요 해야 할 삶이라고 여긴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주의 곁 가장 가까이에서 주를 위해 가장 충성스럽게 살고자 했으며, 그로 인해서 어떤 고생과 고통도 겪으며 죽음을 당하는 고난도 불사하는 기개를 가졌습니다. 그러한 그들의 생각에는 자기의 의인 사람의 의가 잠재해 있는 것이었습니다. 주와 주의 나라를 위하여 일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은 자기를 위하는 생각에서 그리하는 것입니다., 즉 자기를 위하는 생각에서 주와 주의 나라를 위하여 살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한 그들의 생각에는 자기의 의인 사람의 의가 잠재해 있습니다. 이는 공적(공로) 신앙에 의한 보응 심리가 깔려 있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진 이러한 욕망은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의 나라적인 것이 아닌 전적으로 세속적인 것이었으므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서가 아닌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것에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 세상의 기준과 가치에 근거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기 위해서 세상에 오신 예수님이심
이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하므로 소유할 하나님의 나라와 관련하여 가질 생각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알려 주시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을 두 가지 면에서 말씀하여 가르치셨습니다.
(1) 하나는, 제자들이 고난도 감수하며 주와 주의 나라를 위해서 충성하여 헌신하는 것은 그들이 주의 곁 양 옆에 앉고자 하는 자리와 무슨 관계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여러 차례 예고해 주신 죽음과 부활에 있으실 것에서 십자가의 구속 사역에 의한 피 흘리심에 있는 죄 사하시는 언약을 담고 있는 고난의 잔을 제자들이 마시게 될 것이나(마 26:28; 마 14:24), 누가 예수님이 앉으신 보좌 좌, 우편에 앉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그러니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있어 예수님이 당하시는 고난에 참여하면서 그것을 내세워 하나님의 나라에서 높은 자리의 큰 자가 될 것을 바람에 있을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마실 고난의 잔에 대한 이해에 있어 그 고난 받으시는 주님을 따름에 있어 자신들의 존재에 대한 인식을 올바르게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이었습니다.
(2) 또 하나는, 예수님이 마시는 고난의 잔이 어떤 것으로 있게 될 것인지를 말씀해 주시는 것인데, 예수님은 이를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려 주시는 것에서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사람들로부터 섬김을 받고 높은 지위와 명성과 권세를 누리는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온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러 왔고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고 온 것이라고 말씀하여서,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을 주심에서 섬김에 있으심을 실행하신 예수님을 따름에서 제자들 또한 자신들을 부르신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많은 사람들을 섬김에 있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말씀을 하신 것은 장차 제자들이 어찌 될 것인지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죄인들을 구원하시는 복음의 증거를 해 나갈 것에서 예수님이 마신 고난의 잔을 제자들도 마심에 있을 것인데, 예수께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하나님께 바친 그대로를 따라서 하나님께 자신의 몸을 바침에 있게 되는 헌신을 하게 될 것입니다.
(3) 여기에서 보는 예수님이 섬기기 위해서 오심은 예수님이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하나님께 바치는 것으로 있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이 마시는 고난의 잔으로 표현이 됩니다. 예수님이 섬기는 자로 오셨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예수님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께 바치는 것에서 알게 되며, 예수님이 대속물이 되심은 예수님이 마시는 고난의 잔과 같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섬기는 자로 오셨으며, 예수께서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하나님께 바치며, 예수께서 마시는 고난의 잔이 제자들에게 들려짐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살아갈 원리요 방식으로 주어집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심으로 함께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로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 섬김을 받음에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나라를 말씀해 주시는 것을 통해 사람들에게서 받는 것은 배척에 의한 박해를 받으므로 고난을 당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고난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가 마실 잔으로 그를 위해서 정하신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와 관련하여서 자신에게 주어질 것은 제자들이 구하는 것에서 보는 높고 영광스런 큰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마실 고난의 잔이라는 것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사람들에게서 섬김을 받음에 계시지 않고 고난의 잔을 마심에 있게 되는데, 이는 예수님을 미워하여 배척하는 자들을 도리어 섬기고 그들을 위해 자신의 몸을 대속물로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는 피 흘림으로 되어집니다.
예수님은 그 고난의 잔을 제자들이 마실 것으로 준비하셨기에 섬김에 의한 대속물로 자신의 목숨을 하나님께 바친 그대로를 따라 제자들 또한 하나님께 바침에 있는 헌신에 있게 하십니다. 예수님이 섬기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는 것은 도와주기 위해서 왔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해서 도와주는가 하면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어서입니다.‘대속물’이란 말은 (1)「대신」의 의미를 갖습니다. (2) 그리고 죄를 용서하기 위하여 지불하는 값을 나타내는 것에서「속전」(贖錢)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3) 그리고 이를「희생제물」을 통해서 하실 것이란 의미를 갖습니다. 이러한 대속물에서 가장 강조되고 중요한 뜻을 지니는 것이 속전입니다. 속전이란 노예를 해방하기 위하여 그를 대신하여 지불해 주는 돈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 위하여 그들 대신에 자기 몸을 속전으로 치렀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을 죄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을 제물로 바친 헌신과 죽음을 당한 희생을 겪으신 것은 많은 사람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목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많은 사람, 곧 이 세상에 있는 하나님이 택하신 모든 백성의 죄를 대신하여 죄인이 되셨고, 그들을 위하여 죽음의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자유롭게 하여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해 주셨고, 죄에서 용서받아 구원을 받음으로 영생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대속의 큰 일을 자기 영광을 구하기 위해서 하지 않았으며, 사람의 칭송을 받으며 섬김을 받기 위해서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자신을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의 뜻을 받들어 많은 사람을 대신하고 그들을 위한 속죄의 길을 걸으셨습니다. 이로 인해 그리스도로서 받을 고난을 순종으로 받으셨으니,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배로운 피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바르게 이해한 믿음에 있지 않고서는 주님의 참된 교회를 이룸에 있을 수가 없슴 :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바르게 이해한 믿음에 있으므로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받들어 섬겨 나가는 주님의 참된 교회로 든든히 서 나감에 있슴
예수님은 여러 차례에 걸쳐 여러 표현으로 자신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알리셨습니다. 그럼으로써 (1) 제자들이 자신들의 주이신 예수님이 세상에서 행하시는 구원 사역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올바르게 알 수 있게 하셨으며, (2) 주와 함께 하는 믿음에 있는 제자들이 가질 생각을 따라 제자들이 해 나가야 할 일을 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받든다, 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겠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과연 그래야합니다. 그래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받음에 있는 것이 무엇에 있는 것인지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품으신 영원한 작정에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생각에 따른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온전히 성취하시기까지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믿음에 있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생각을 품게 하고 하나님의 일을 일하게 하십니다. 세상 끝날의 마지막 날에 이르러 구원의 충만수가 차기까지 예수께서 지신 십자가의 흔적을 우리 육체에 지니고서 하나님의 생각을 말하며, 하나님의 일을 알려 하나님이 택하신 자들이 주께로 돌아오게 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온 성도가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으로 있어 한 믿음으로 주께로부터 받은 그 일의 사명을 받들어 수행하여 나감에 있게 자신을 하나님께 바침에 있는 교회로 든든하게 잘 서나가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드리신 희생의 헌신 사역을 언제나 자랑하여 말하면서 그 그리스도와 하나 된 몸인 자신의 몸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고난에 있지 않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를 잘 알고 있는 사도 바울은 누구든지 자신을 위해 살지 말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우리 몸을 하나님의 의로운 도구가 되게 하여서 의로운 일에 쓰이라고 하였으며(롬 6:13),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기업을 이을 상속자이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롬 8:17). 그리스도와 상관없으며, 주님의 교회와 상관없는 자는 이 권면이 귀에 들리지 않으며, 그 마음은 깨달음에 있지 않기에 마음에 담아 두지도 않으며 따르고자 하는 의욕도 없기에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와 상관있으며, 주님의 교회와 상관있는 자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에 귀 기울여 들으며 마음에 새기고 두고 두고 기억하고 떠올리며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일을 받듬에 있어 갑니다. 그리스도와 상관있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요, 참된 믿음의 참된 교회이면 분명히 그렇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