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황년에 술을 금하니 마을 소년이 모두 떡을 사가지고 꽃구경을 갔다.
오늘 따라 바람이 심하여 홀로 앉았자니 너무도 무료하므로 붓에 먹을 묻혀 창졸간에 썼는데
바람과 떡에만 치우치다[荒年禁酒 村少皆買餠看花去 今日風甚 獨坐無聊 泥筆率題 偏屬風餠]
2수
소년이란 본래가 닥치는 그대로라 / 少年元不費商量
비 오건 바람 불건 예사로 여기거든 / 雨雨風風大毋傷
떡을 사고 꽃을 보니 도리어 구족이라 / 買餠看花還具足
운문에 선 파하자 공양으로 또 가누나 / 雲門禪罷又公羊
늙은이는 바람 피해 문 밖을 못 나는데 / 老者避風不出門
저들은 하나 같이 의기가 등등하네 / 任渠村氣一騰騫
와당 같은 큰 떡에다 주머니 속 뿌듯하니 / 瓦當大餠囊無澀
꽃 앞에 둘러앉아 볼 메도록 삼켜대네 / 環坐花前滿口呑
[주D-001]운문 : 선문 오종(禪門五宗)의 하나인 운문종(雲門宗)을 가리킴.
김생 우민에게 주다[贈金生于民]
금선화가 활짝 피어 온 뜰이 향기론데 / 金萱花放一庭香
백설 새 소리 속에 흰 날이 기나 기네 / 百舌聲中白日長
연북의 읊는 노래 해맑게 들려 오니 / 硏北朗唫淸可聽
촌 가락 이로부터 천황을 깨뜨렸네 / 村腔從此破天荒
[주D-001]백설 : 새 이름. 백로(伯勞 : 때까치)의 일종으로 일명은 반설(反舌)인데 종달새를
말함.
[주D-002]천황을 깨뜨렸네 : 오랜 황폐를 깨뜨렸다는 뜻으로 초창을 말함.
백설조를 읊다[詠百舌鳥] 병서(竝序) 3수
최생이 살고 있는 남천(南川)의 냇가에는 백설조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그것을 구하게 하고 이 세 수의 시로써 매(媒)를 삼는 바다. 백설은 매양 하지가 되면 소리가 없다가 동지로부터 비로소 소리를 내니 이 역시 양조(陽鳥)이다. 한 음(陰)이 생긴 뒤로 소리가 없는 것은 마치 음양(陰陽)
과 더불어 서로 소식을 하는 것 같으니 보통 새로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전 사람이 백설을 두고 지은 것을 보면 이에 미친 일이 있지 않고 도리어 기롱만 하였기 때문에 나는 깊이 느끼는 바 있
어 백설을 위해 이 원사(寃詞)를 지어 써 풀어준다.
들판이라 백설은 기운 얻어 높이 뜨고 / 百舌野中得氣高
마을 꽃 터지련다 버들은 물결지네 / 村花欲萼柳將濤
작은 창살 밝은 해는 오히려 가경이니 / 小窓白日猶佳境
자고 먹고 날고 울고 부질없이 수고 마소 / 宿食飛鳴莫漫勞
꾀꼴 꾀꼴 제비 제비 소리도 가지각색 / 百種鶯鶯燕燕聲
소리마다 구족이라 구김없는 자연일레 / 聲聲具足自天成
늙은 사람 기심을 지닌 자가 아니지만 / 老人不是機心者
조롱의 봄바람이 무엇보다 정이 가네 / 雕笯春風最有情
심상한 온갖 새도 역시 와서 친하지만 / 尋常凡鳥亦來親
이건 꼭 천기대로 사람을 가까이 해 / 者個天機必近人
설상이 음양 소식 묘한 이치 참여한 듯 / 舌相似參消息妙
군자의 도 자라날 땔 영락없이 아는구려 / 聖知君子道長辰
[주D-001]기심 : 해물지심(害物之心)을 이름.
[주D-002]이건[者個] : 저개[這箇]와 같은 말임. 모황(毛晃)의 《운략(韻略)》에
"무릇 차개(此箇)를 칭하여 자개(者個)라 한다." 하였음.
[주D-003]군자의……땔 : 동지절(冬至節)을 말함. 《역(易)》 복전(復傳)에 "양은 군자의 도
이니 군자의 도가 소극(消極)했다가 다시 자라난다." 하였음.
청성장인관에 모란이 있어 길이가 열 길 되는 것은 대장군수라 부르고 다섯 길 되는 것은
소장군수라 불렀다. 지금 중홍정에 모란이 많아 흡사 청성과 더불어 서로 부합되므로 인해
이 시를 제하다[靑城丈人觀有牧丹 長十丈號大將軍樹 長五丈號小將軍樹 今中紅亭多牧丹
恰與靑城相符 仍題此詩]
삼월이라 강남땅 활짝 갠 고운 날에 / 三月江南媚景天
요황이라 위자가 아름다움 다투누나 / 姚黃魏紫共爭姸
어느 뉘라 알리오 열 길의 장군 나무 / 那知十丈將軍樹
도리어 청성관(靑城觀)의 고동 앞에 있다는 걸 / 却在靑城古洞前
[주D-001]요황이라 위자 : 모란의 이름임. 구양수(歐陽脩)의 모란기(牧丹記)에 "요황은
천엽황모란(千葉黃牧丹)인데 민간의 요씨의 집에서 나온 것이고, 위자는 천엽육홍화
(千葉肉紅花)인데 위상(魏相) 인보(仁溥)의 집에서 나온 것이다." 하였음.
풍납의 수중 운에 희보하다[戲步豐衲袖中韻]
용각이라 산주라 어렴풋한 그 사이에 / 依依龍角散珠間
풍륜을 뽑아 돌려 한 꿈에 돌아왔네 / 撥轉風輪一夢還
솔 아래 예 보던 책 탈 없이 잘 있는지 / 松下舊書無恙否
옛 구름 이제 비를 시험삼아 돌려 보게 / 古雲今雨試廻看
단양(端陽)
단오날 씨름 놀이 마을마다 장정이라 / 端陽角觝盡村魁
천자님 앞에서도 재간을 놀렸다네 / 天子之前亦弄才
이기건 지건 간에 모두가 기뻐하여 / 勝敗紛紛皆可喜
푸른 버들 그늘 속에 온 당이 들썩이네 / 綠楊陰裏哄堂來
토성의 촌거에 기제하다[寄題土成村居]
어촌 물색 희희락락 살기 좋은 세월이라 / 漁樂村媐快活年
보리 익을 시절에 분룡의 비 풍족하네 / 分龍雨足麥涼天
지방 풍속 어찌 저 강남처럼 좋은 건지 / 土風爭似江南好
바퀴 같은 붉은 게 돈을 아니 따지누나 / 紫蟹如輪不計錢
[주D-001]분룡 : 《피서잡록(避暑雜錄)》에 "오·월(吳越)의 풍속이 5월 20일을 분룡이라
한다." 하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