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과 교신하라!(렘33:1-3)
2023.12.10 김상수목사(안흥교회)
우리가 사는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다. 태양계는 은하계(Galaxy, 은하수) 우주의 끝부분에 위치하고 있고, 은하계의 중심에서는 약 3만3000광년 떨어져 있다. 은하계 안에만 해도 약 천억 개 이상의 별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우주에는 은하계보다 훨씬 큰 성운들이 최소한 천억 개 이상 존재한다. 쉽게 계산해도 하늘의 별은 천억×천억 개가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인 것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 모든 우주를 창조하셨고, 지금도 다스리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이시다. 그의 능력은 무궁하고, 그에게 불가능이란 없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처럼 천지를 지으시고 다스리시는 광대하신 하나님을 성경은 우리의 아버지라고 말씀한다는 사실이다(”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Our Father in heaven. 마6:9). 그리고 이 보다 더 놀랍고 충격적인 것은 광대하신 하나님께서 바닷가의 모레 한 알보다 보잘 것 없는 나 같은 사람까지도 당신의 자녀로 삼아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를 보내주셨고,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이다(우주 → 은하계 → 태양계 → 지구 → 한반도 → 서쪽 끝 → 나). 그래서 이 모든 것을 “은혜”라고 한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들과 날마다 대화하고, 더 풍성한 은혜를 주고 싶어 하신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우리와 대화하기 원하고, 더 풍성한 은혜들을 주고 싶어 하실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하나님과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가족이고,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모든 것을 주고 싶어 한다.
그러면 우리들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어떻게 대화할 수 있을까? 그래서 하나님이 이것을 위해 주신 영적인 방법이 있다. 그것이 바로 말씀과 기도이다.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이 주신 일종의 영적인 교신(交信) 방법이다. 우리는 기도로 나의 생각이나 뜻을 하나님께 알려드릴 수 있고(송신), 성경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 그리고 그분의 음성들을 우리는 들을 수 있다(수신). 그렇기에 우리는 말씀과 기도로 하나님께 교제하고, 그분 주시는 은혜들을 풍성히 누릴 수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하나님은 자신이 어떤 분인지를 말씀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렘33:2-3).
“2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2-3)
이 말씀을 자세히 보면, 우리들이 부르짖으면, 그때서야 응답해줄지 말지를 한 번 고민해 보겠다는 뜻으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기도하기 전에 이미 응답을 다 준비해 놓으셨다. 심지어 우리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것들까지도 다 준비해 놓으시고, 부르짖어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기에 우리들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응답은 둘째치고라도 기도한다는 그 자체가 곧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이신 것과 그의 능력과 권위를 인정하고 믿는다는 신앙고백이 되는 것이다. 만약 이처럼 광대하신 하나님,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고,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우리(나)에게 기도하라고 강하고 분명하게 말씀하신 것을 거절한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충격적인 일이 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지역에서 시내로 가는 길은 비좁고 구불구불한 구간이 많다. 어떤 때는 앞에 거북이처럼 가는 트럭이나 경운기 같은 것 때문에 답답할 때도 종종 있다. 맞은편에서 어떤 차가 갑자기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앞차를 추월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때 이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반대 차선에서 차가 오지 않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면 안심하고 추월할 수 있을 텐데.”
그런데 며칠 전 어느 신앙서적을 읽다가, 그 책 속에서 우리들과 유사한 상황을 목격한 어느 경비행기 조종사의 이야기를 접했다. 미국 오클라오마시(市)에 사는 어느 기독교인 사업가가 있었다. 그는 사업상 전국을 돌아다닐 때, 주로 경비행기를 직접 조종하면서 이동한다. 한번은 그의 경비행기가 어느 험난한 산악 지형 위를 지날 때였다. 눈 아래 좁고 구불구불한 길에서 어느 작은 승용차가 앞에 있는 대형 트럭을 앞지르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반대쪽에서 달려오는 차들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승용차는 여러 번 앞지르기를 시도하다가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그때 조종사는 공중에서 그 장면을 보면서 이렇게 생각했다. (좌측 사진은 본 이야기의 내용과는 관계없음)
“내가 만약 저 운전자와 교신을 할 수 있다면, 언제 추월하는 것이 안전하고, 언제가 위험한지를 알려줄 수 있을 텐데”
그러면서 그 조종사는 문득 자신이 공중에서 그 도로의 지형과 오고가는 차들의 모습을 다 보고, 도로 앞의 상황들을 알고 있듯이 하나님이 우리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구불구불한 인생길을 가는 동안 하루 동안에도 무슨 일을 만날는지 다 알지 못한다. 또한 만난다 할지라도 어떻게 대처해야할지도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주님은 위에서 우리가 가는 모든 인생길의 지형을 다 보시고,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주님은 자녀 된 우리들과 교신하며, 언제가 안전하고, 언제가 위험한지 또 어느 때 앞으로 나아가고 멈춰야 할지를 가르쳐 주고 싶어 하신다.
그래서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말씀을 가까이 하라고 말씀하신다. 말씀과 기도는 하나님과 교신하는 방법이다. 그러면서 그 경비행기 조종사는 그 이야기의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토록 은혜로운 하나님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사람인가?”
성경은 이처럼 하나님과의 정확한 송수신 방법이 무엇인지를 하나님이 친히 가르쳐 주신 책이다. 가만 생각해 보면, 지금 이 시간 여러분들이 설교 말씀을 듣는 것도, 사실은 하나님이 목사님이라는 스피커를 통해서 계속해서 영적인 전파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말씀을 듣는 중에, 나는 누구인지, 나의 삶의 방향은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 지금은 움직일 때인지 아니면 멈춰서야할 때인지 등에 대해서 직간접적으로 깨달아진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속에 말씀의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기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오늘 본문 말씀에서도 정확한 기도의 송신(送信) 방법을 말씀하셨다.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다시 보라.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누구인가? 분명히 “내게(하나님)”라고 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또한 신약성경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다 같이 읽어보자.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예수님)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요 14:13-14)
주님은 누구에게 구하라고 했는가? “내게”라고 했다. 어떻게 기도하라고 했는가? “내 이름으로” 구하라고 하셨다. 이렇게 기도하면, 누가 행한다고 했는가? 분명히 주님(“내가”)이 행하신다고 했다. 생각해 보라. 자신의 필요를 옆집 아저씨에게 구하는 사람은 좀 이상한 사람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아버지이신 창조자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게 기도해야한다.
창조물은 어떤 경우에도 기도의 대상이나 경배의 대상이 될 수 없다. 태양이나 달이나 기타 어떤 형태의 창조물이든지 창조물을 숭배하고 복을 빌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창조하신 분을 숭배하고, 그분에게 기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 면에서 볼 때, 우리 주변에서 활동하는 이단집단들이 그들의 교주를 ‘하나님’이나 ‘예수님처럼’ 숭배하는 것은 창조물을 숭배하는 것으로서 우상숭배가 분명하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지역 주민 여러분들이여,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온 우주를 창조하시고, 우리(나)의 생명을 이 땅에 내신 성삼위 하나님께만 경배하고, 늘 그분과 말씀과 기도로 영적인 교신(交信)을 하자. 그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이 주시는 영생의 기쁨과 모든 풍성한 은혜들을 더욱 누리면서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자.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지혜롭게 인생길을 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