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막을 올릴 국제빙상연맹(ISU) 피겨스케이팅 2021~2022 시즌엔 트랜스젠더 선수가 은반 위에 모습을 나타날 지 주목된다. ISU가 일정한 조건을 붙이기는 했지만, 트랜스젠더의 피겨스케이팅 대회 참가를 사실상 허락했기 때문이다.
여성으로 성 정체성을 바꾼 트랜스젠더가 여자 피겨 대회에 출전하면, 남자 선수들의 전유물로 알려진 4회전 점프를 쉽게 볼 수 있을 전망이다. 여자 피겨선수들 중에는 러시아의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등 몇몇이 4회전 점프를 시도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브조르뉴스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ISU은 13일 남녀별로 서로 다른 트랜스젠더의 피겨스케이팅 대회 출전 규칙을 마련, 공개했다. 여성이 남성으로 성 정체성을 바꿔(트랜스젠더) ISU 공식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는 성 정체성이 남성이라는 서면 진술서를 제출해야 한다. 일단 '남성 호르몬 요법'을 시작하면 여성 피겨 선수로는 영원히 출전할 수 없다. 금지약물 복용(도핑) 문제와 엮일 수도 있어 보인다.
ISU 트랜스젠더 정책 문건/캡처
ISU, 피겨스케이팅 대회 출전 트랜스젠더 선수 출전 규정 마련/얀덱스 캡처
남성이 여성 피겨선수로 참가하려면, 조건이 좀 더 까다롭다. 무엇보다 대회 출전 전 12개월 동안 전체 테스토스테론(남성의 성호르몬) 수치가 5나노mol/L 미만이어야 한다. 선수의 여성화 여부를 따지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보인다.
따라서 2021~2022 시즌에 트랜스젠더가 여자 피겨스케이팅 대회에 출전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제라도 출전 준비를 시작해 12개월간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규정에 맞게 낮춘다면, 2022~2023 시즌에는 트랜스젠더 선수의 등장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다.
여자 피겨스케이팅 대회에 출전한 트랜스젠더는 첫 출전 대회 후 4년이 지나면 남자부 대회에도 출전이 가능하다고 ISU측은 규정했다. 남자 대회 출전 여성 선수와는 완전히 다른 점이다.
사진 출처:https://obzornews.ru
ISU가 트랜스젠더의 출전 규칙을 확정한 것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난 8일 폐막한 도쿄올림픽에서는 트랜스젠더 선수들의 경기 출전이 이뤄졌고, 금메달 획득 선수까지 나왔다. 그동안 주요 국제대회에서 남자같은 여자 육상선수라는 시비는 없지 않았지만, 스스로 트랜스젠더로 커밍아웃한 뒤 공식 출전한 것은 도쿄올림픽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2020 도쿄올림픽에서 주목받은 트랜스젠더는 역도와 축구에서 나왔다. 2012년 여성으로 성 정체성을 바꾼 로렐 허바드(Laurell Hubbard)는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역도 선수다. 그러나 그녀는 첫 시도에서부터 실패하면서 도쿄올림픽 메달 도전은 허무하게 끝났다.
트랜스젠더의 금메달은 도쿄올림픽 여자 축구에서 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나왔다. 트랜스젠더 레베카 퀸(Rebecca Quinn)이 뛴 캐나다 여자 축구팀이 결승전에서 스웨덴을 꺾고 우승한 것. 그러나 그녀는 아직 생물학적 성전환 수술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도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캐나다 여자 축구 대표팀의 트랜스젠더 레베카 퀸(아래)과 경기 모습/인스타그램 캡처
빙판 위에서 여성과 남성의 서로 다른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피겨스케이팅 대회에서는 트랜스젠더 선수가 출전하거나, 출전에 따른 논란을 일으킨 적이 아직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