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전 평촌마라톤클럽 재문형님의 환갑을 축하하기 위해 옥스팜트레일워커 대회를 신청했지만 코로나 팬더믹으로 재작년에 이어 연거푸 대회가 연기되었다.
두번씩이나 밀려서 참가하게 된 이번 대회는 본의 아니게 내 환갑을 축하하는 자리가 되었다. 4년 전 지리산 대회 때 희종형님(58 개띠)의 환갑을 노고단에서 축하하면서 대회의 참가 의미를 더 했었다.
드림워커라는 팀명을 그대로 쓰고 선수를 한명도 교체하지 않은 채 희종형님, 재문형님, 헌용아우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인제로 향했다. 배번을 받고 막걸리 반주와 함께 저녁식사를 한 후 잠을 청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전날 구입한 전복죽을 배불리 먹고 6시 정각, 요란한 출발신호와 함께 4명이 동시에 달려 나갔다.
옥스팜 트레일워커는 말 그대로 걷는 대회이기 때문에 119개 팀이 참가했다고는 하지만 달리는 선수는 5~6개 팀밖에 되지 않는다. 어쩌면 우리만의 고독한 싸움이 될 것이다.
1cp를 향해 갈 때 젊은 선수들(목달클럽)이 앞서 나갔다. 그러나 cp를 얼마 남기지 않고 오르막을 만나며 우리는 그들을 추월했고, 그 후론 한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었다.
가파른 임도를 내달리면 울트라 런닝화가 발에 충격을 줄 수도 있다는 걱정은 기우였다. 트레일런화보다 가볍고 발에 아무런 부담이 없었다. 전체 누적고도가 3,557m에 달할 정도로 가팔랐지만 등산로가 아니라서 오르막에서만 걷고 내리막이나 평지는 무조건 달렸다. 14km까지 가파른 임도를 따라 올라간 후 17km 2cp까지는 한번도 쉬지 않고 달려 내려왔다. cp에서 바나나 한 개를 먹고 물병에 물을 채웠다. 다시 오르막이지만 큰 부담은 없었고 거의 10km 가까운 내리막을 내달려 32.2km 3cp를 지나 10시를 넘기자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바나나를 들고 왔으면 좋았겠다고 투덜대자, 헌용아우가 42km 근처에 워터존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아니나 다를까 40km를 넘어서자 행사차량이 부리나케 우리를 앞서 나갔다. 자봉팀이 우리를 따라잡지 못할 뻔 했다. 바나나를 두 개 먹고 넉넉하게 물도 챙겼다. 계속하여 내리막을 달려 4cp를 10km 남긴 지점, 평촌마라톤클럽에서 종신 갑장과 수자 누님이 우리를 응원해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준비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한잔 마시고 52.4km 4cp에 도착한 후 황태국에 넉넉한 점심을 나눴다.
출발한 지 6시간 20분이 경과한 12시 20분이라 점심식사 하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원래 4cp는 대부분의 선수들 저녁식사를 위해 준비했을 것이다. 가는 길 카메라맨이 우리를 가로막았다. 4명이 동시에 찍은 사진이 없다면서 포즈를 취하라고 한다. 5cp까지는 길이 평탄했지만, 2년동안 거의 운동을 하지 못했던 재문형님이 무척 힘들어했다. 지리산대회 때는 내가 힘들어 했었고 팀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함께 하는 의미가 더 크기때문에 서둘지 않았다. 길가에 늘어진 버찌를 따먹으며 재문형님과 보조를 맞췄다.
5cp에서는 행사장 정중앙 단상에 오로지 나를 위한 이벤트인 환갑 행사상(잔치라는 말을 거창하고)이 마련되어 있었다. 샴페인도 마시고 케잌은 자봉팀, 구경 온 동네주민들과 함께 했다. 나를 위해 이런 이벤트를 해주다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두고두고 갚아야할 은혜다.
이번 구간 가장 힘든 구간이 시작되지만 일단 도로를 따라 가기 때문에 초반에는 힘들지 않았다. 하염없이 걷다가 어느 순간 말고개 초입에 이르렀다. 터널공사가 한참 진행 중이지만 말고개는 별 5개 비포장으로 경사도가 무척 심한 구간이다. 재문형님은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헌용아우는 재문형님과 떨어지지 않고 가끔씩 밀어주고 있었고(4년전 나한테 했던 것처럼), 선두의 희종형님은 가시권에 있었다. 정상에 이를수록 찬 바람과 함께 가끔씩 흩뿌리는 빗방울은 온몸을 움츠리게 만들었다. 아마 밤이면 한겨울처럼 될 것이다. 재문형님과 헌용아우를 정상에서 만나 진열을 재정비했다. 이제 고통은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더 이상 오르막은 없다.
급경사는 걷다시피 했지만 거의 모든 길을 편하게 달려 내려왔다. 6cp에서는 우리가 아니었으면 자봉팀들도 일찍 나올 필요가 없었는데 하며, 미안하다는 인사말도 전했다. 의자에 네 명이 함께 앉아 방울토마토를 먹고 있는 모습이 재밌는지 자봉팀은 사진도 여러장 찍어주었다.
계속 내리막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가 포장도로를 만나며 익숙한 미시령 옛길로 진입했다. 3년전 미시령그란폰도 대회 때 자전거타고 올라갔던 길이다. 7cp 설악휴게소에서 황태해장국으로 저녁식사를 마치고 8cp로 향했다. 8cp는 95.4km 지점에 위치하여 체크만 하고 통과하면 되지만 시간이 넉넉하여 토마토에 홍삼 등을 먹고 자전거도로로 걸어 나왔다. 내 욕심 같아서는 14시간 안에 들어왔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미 순위는 결정된 것이고 몸 상태가 좋지 않은 선수를 배려해야 하기 때문에 13시간 대 완주는 포기했다.
14시간 8분 52초로 골인하며 전체 1등을 기록했다. 지리산 대회에 이어 두 번째 우승이다. 4개월 미리 앞당겨 치룬 환갑잔치도 대단히 의미 있는 이벤트였다. 큼지막한 상패를 받아들고 6명 모두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모두들 호탕하게 웃으며 1500cc 생맥주를 마시고 밖으로 나오자 2등 팀이 들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