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어느날이었습니다.
중저음의 보이스에 약간 허스키한 목소리를 가진
한 중년 여성분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거기 xx 무역인가요?' '예'
'꿀꿀씨?' '예??!!..누구세요?'
'안녕하세요? 김추자라고 합니다..'
'(갑자기 말문이 막히더군요. 최대한 차분히...) 안녕하세요?'
몇분의 통화를 하고 뵙기로 했습니다.
기뻐 미치는줄 알았죠...
그리고 약속날인 어제..
아침부터 너무 긴장되더군요.
선물을 드려야 할텐데 뭘 드리나라고 고민끝에 엘피판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나름대로 장르별로 한장씩-샤를르 아즈나브르, 엘비스, 알그린,
베니 굿맨, 씨씨알-허브뮤직 이사장님 추천으로 고르긴 했는데 원판은 오픈된
판만 있더군요.
그래도 엘피가 낫지 않을까하고 그것을 구입해서 챙긴 후-
아 후회됩니다. 씨디라도 새것을 드렸어야 하는데-
약속장소로 차를 몰았습니다.
퇴근시간이 걸렸는지 가까운 거리임에도 차가 엄청 막히더군요.
약속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했습니다.
안내를 받아 계신다는 3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걷는데 너무 긴장이 되어
가슴이 터지는줄 알았습니다.
박경수 교수님과 김추자님이 따뜻하게 맞아 주셨습니다.
인터넷으로만 뵈었던 박교수님은 근엄하고 약간은 무섭다는 편견 ^^; 을
가졌는데 굉장히 인자하시고 긴장해서 밥도 제대로 못먹는 저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계속 챙겨 주시는 자상함까지 갖추신 분이셨습니다.
약간 옅은 키위색 상의 (그 색을 키위색이라고 말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와 청바지를 입고 멋있게 생긴 팔찌를 차고 오신 김추자님은 약간 부우셨을 것이다라는
제 생각과는 달리 정말 보기 좋은 모습이셨고 노메이크업에 가까울 정도로 옅은 화장의
김추자님은 몇년전의 사진들의 모습보다 훨씬 젊어 보이셨습니다.
나긋나긋함과 내숭과는 전혀 거리가 먼 톤이 크고 씩씩한 목소리셨습니다.
'왜 꿀꿀이에요?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로 시작된 대화는
3시간 이상 계속되었습니다.
'아니 어쩌다가 제 노래를 좋아하게 되었어요?'
'무인도를 듣고 필이 꽂혔고 계속 찾아보게 되었거든요.'
'선생님 본인 노래 중 가장 좋아하시는 것이 첫사랑 눈물이에요?"
'아뇨. 무인도, 메모만 남기고, 저무는 바닷가에요'
'윽. 첫사랑 눈물이라고 방송까지 탔는데요...--; '
'메모만 남기고 그 곡 저도 무척 좋아해요.
그런데 그 노래가 왜 못떴는지 모르겠어요'
'글쎄요. 님은 먼곳에랑 같은 시기에 불러서 못떴나...'
'꿀님 이 노래 아세요?' 하시면서 어떤 곡을 한소절 불러 주셨고
늦기 전에의 마지막 부분인 찾을수 없어요~~를 약간 불러 주셨습니다.
와 김추자님의 노래를 바로 코앞에서 직접 듣게 될줄이야...
정말 엄청난 영광이었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번뜩이는 카리스마가 보였습니다.
'선생님 중학교때 수학여행 가셔서 이스탄불 부르셨어요?'
'(무척 반가와 하시며) 예예. 중 1때부터 중 3까지 제 주요 레퍼토리였죠.
그 당시에는 그런 곡이 템포가 빠른 곡이었거든요. 먼저 그 곡 부르고 앵콜
나오면 다른 곡 부르고...'
대화 도중에 서빙하시는 분이 끼어 들었습니다.
'혹시 가수 김추자씨 아니세요? 어디서 많이 뵌 분 같다고 생각했는데
무인도 이야기 나오고 하니 확실히 알겠어요..저희 어머니가 무척 팬이세요.'
음식이 계속 나오고 있는 가운데 박교수님은 저 분(꿀꿀이) 먼저 주시라고
절 먼저 챙겨 주시고 와인까지 따라 주시는 자상함을 보이셨습니다.
훨씬 어린 전 계속 송구스러웠죠.
'선생님 내일은 팔도강산에 출연하셨죠?'
'예 바람새에 올라왔나....바람새 만드신 분이 제 홈피도 만드셨거든요'
'업데이트가 잘 안되는 것 같아요.'
'옛 엘피는 작사, 작곡가가 틀린 경우가 종종 보이는것 같아요. 첫사랑 눈물이
안길웅 작사 작곡으로 되어 있어요'
'어? 아닌데...'
대화중에 김추자님은 부군이신 박경수 교수님을 교수님이라고 하시며
남편자랑을 여러모로 하셨고 우리애라 말씀하시는 따님인 혜원씨가
학교에서 장학생이라는 걸 빼먹지 않고 자랑하시는 보통의 가정주부다운
모습도 보이셨습니다. ^^
'전 포장마차, 나이트 같은곳에 한번도 못가봤어요'
'헉 정말요? 수퍼댄싱가수라 불리우시는데 나이틀 한번도 못가보시다뇨'
'언제 꿀님이랑 포장마차 한번 가죠'
짐 모리슨 얘기가 나왔습니다. 무척 좋아하신다고...
'선생님도 도어즈 노래 부르셨잖아요.'
'예 라이트 마이 파이어...(영국원어민 수준의 발음이었습니다.)'
'선생님이랑 만난거 인터넷에 올려도 되나요?'
'예 그럼요. 뭐 어때요..'
'(소개, 정보가 전혀 없어 평소 궁금하던 편집 리싸이틀 엘피 한장을 꺼내며)
선생님 이때가 언제죠?'
'(엘피 앞면을 자세히 보시며) 음 이때는 72년? 73년? 74, 75년 정도 되는것 같아요.'
'무인도 발표 후요?'
'무인도 발표 전 같은데요..'
'전 왜 아니올까는 별로 안좋아했거든요. 근데 이 판에 있는 왜 아니올까를 듣고
감격했습니다. 스튜디오 녹음때는 막대기 두드리는 소리 같은것 때문에 좀 거슬렸거든요'
'같은 곡이라도 악기 하나 바뀌면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거든요.'
'금요일날 음악 친구들 만나서 이 곡을 틀었는데 정말 대단했습니다. 김추자님을 그다지
듣지 않는 분들도 감탄을 했어요'
화기애애한 3시간의 시간은 금방 지나가고 어느덧 갈때가 되었습니다.
'선생님 사인해 주세요'
'예'
'오늘 보니 어때요? 많이 실망했죠?'
'아뇨. 홈피에 올려진 콘서트 사진보다 훨씬 보기 좋으신데요.'
'에이 그건 잘못 나온거에요. 그땐 너무 뚱뚱했지..'
'오늘 반가왔어요'
'선생님 정말 영광입니다.'
박교수님과 김추자님과 악수를 하고 10시가 다 되어 헤어졌습니다.
대화하면서 긴장이 조금씩 풀리긴 했지만 말실수도 좀 있었지 않았나
모르겠네요.
웬만한 스타들은 불리우지 못하는 수퍼스타라는 호칭을 갖고 계시는
그래서 조금은 거만하고 일반인들은 접근하기 힘들 것이라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셨습니다.
팬들의 사랑을 받고 사시는 스타 중의 스타지만 팬이라면 무조건 헤헤거리는
그런 분이 아닌 당당함과 자기 주체성을 확실히 갖고 계시며 동시에
굉장히 겸손하시고 순수하신 면도 있으셨습니다.
제가 워낙 숫기도 없고 말도 잘 못하고 게다가 김추자님 앞이라 주눅 들어
더 말을 못해 김추자님 말씀과 박경수 교수님 말씀을 계속 듣는 편이었는데
김추자님은 재미 없으셨을지도 모르겠네요..^^;
엘비스와 짐 모리슨, 씬 리지의 still in love with you를 좋아하시는 김추자님이
더 좋아졌습니다. ^^
첫댓글 아아 부럽습니다...씬리지까지 좋아하시다니 더 좋아지려고 합니다...
더 좋아하셔야죠...^^
정말 올해 최고의 잊을수 없는 사건중 하나였겠네요~~~ 글로 읽어도 얼마나 좋았는지 막 티나요~~~ ㅎㅎㅎ
거의 제가, 작은키에 유난히도 크신 신중현 선생님의 손을 잡은순간과 맞먹을거 같아요^^ 부러워요~^^
읽으면서 내내 긴장했는데... 혹시 내얘기는 안하십디까? ㄲㄲ 꿀님 혼자만 추자님 만나공~ 미워이~
ㅎㅎ
좋은 게시물이네요. 스크랩 해갈게요~^^
그참 묘하네..창꼬서 음악듣는데 어제 김추자님 생각이 찐~~하게 나길래 묘한 휠~~이드만 바로 그시각에 꿀꿀이님과 데이트를!! 카페 역사에 기록될만한 날이네욤. 좋으시겠쑤! 지성감천 케이슨데...나도 지금부터 그레이스슬릭에 집중해볼까나..꿀꿀이님 입이 귀에 걸렸으..ㅋㅋ 추카추카!
히히 고맙습니다..
짐 모리슨, 씬 리지의 still in love with you은 저두 좋아하는데...너바나나 라디오헤드도 좋아하실까요? 요즘은 어떤 밴드와 김추자님이 어울리실지 자꾸 상상해보게 되네요..
어떤 밴드와 김추자님이 어울리실지 자꾸 상상한다는 것 중요 체크입니다...정말로...
추자님의 친필 사인, 단순하면서 유니크한 터치의 '추' 가 팬들의 마음에 남을 듯...
추몽님도 사인을 '추'로 하시는건 어떨까요?
사진 찍었나요 ? 안찍었나요? 더욱 가까워지는 팬과 김추자님 사이가 되어지길.......^^
카메라를 갖고 가긴 했는데 결국 사진 한장 부탁 드립니다라는 말씀은 못드렸어요...응해 주시던 안해 주시던 전화통화할때 만났을때 촬영 여부를 말씀 드렸어야 하는데 언론노출을 안하시는 분께 즉석에서 사진 부탁 드립니다라는 말씀은 도저히 못드리겠더라구요...그 부분과 저의 소심함이 많이 아쉽습니다
세상에... 입이 안다물어 지네... 얼마나 좋았을까...
당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