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대로 이어진 끈 <좀생이별 이야기(플레이아데스)>F(x)3-1
최길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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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x)-2에선 유니버스우주와 코스모스우주를 얘기했다
유니버스우주는 하나의 그물망에 얽혀 출렁이는, 서로서로 관계로 얽힌 우주다.
코스모스우주는 코스모스꽃 속에 암술들이 다 별모양을 하고 있다. 이렇듯 하나하나 삼라만상이
질서 조화 하모니 오케스트라가 되는 우주다.
그날 밤엔 별 이야기도 하고,
별빛이 스민 소백산 골짜기골짜기
"그때를 아십니까?"도 이야기 했다.
F(x)-2에선 , 소백산 깡촌길에 자코메티라는 조각가의 <걷는 사람>도 동행시켰다.
자코메티의 <걷는 사람>이 소백산 깡촌길을 걸어와서 저렇다고 구라를 쳤다.
<걷는 사람>
이 지독한 비대칭,
미학과는 아주 거리가 먼 예술 작품에
세계 최고의 컬렉터들은 무엇을 보고 그렇게 달려들었을까?
미학과 경제적 감각이 뛰어난 그 사람들이...
1961년에 1174억!
왜 그렇게 열광했을까?
다시 한 번 그 작품을 보자.
이게 1961년에 1174억
도저히 이해가 안 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이것을 높이 평가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지금까지
기업을 하고 예술을 하고 사회를 리드한다.
나는 이 <걷는 사람> 모습에서
이 사람의 의지와 서사가 읽혀지기 때문이라고 가스라이팅 했다.
몸은 깡마르고, 발만 커다랗게 발달한 <걷는 사람>
그 <걷는 사람>이 첩첩산골에서 발덕으로 살던 우리들(자문위원)이고
그 힘의 원류는 ‘교육’이었다고 했다.
소백산 별빛이 스민 골짜기골짜기가 이 사람 <걷는 사람>를 만들었다
소백산은 그런 위대한 산이었다.
파장(波長이 아닌 波場)이란 물리용어가 있다.
옛날, 뭐 옛날도 아닌데 문명이 너무 급속히 변화하여 아득한 세월이 됐다.
‘상대적시간’이란 아인슈타인의 말을 실감케하는 물건이 있다.
<학교종>이다. 지금은 근대사 박물관에나 있을까?.
초롱꽃 송이 같이 생긴 학교종, 그것도 살 수 없는 가난한 산골분교에서는
엿장수가 거둬가던 6.25때 대포 탄피를 매달아 종으로 사용했다.
전쟁을 일으키고 생명을 앗아간 대포 껍떼기가 '학교종'이 되었다?
이런 모순과 반전이 어디있나? 호랑이 잡아다 집지키는 개로 키우기지.
폐허 위에 대충 뚝딱뚝딱 학교를 짓고 대포껍질로 '학교종'을 친 민족
그 종소리를 들으며 산골분교에서 공부한
헐벗었던 그 아이들이 지금 우리들이 아니냐고 얘기했다.
그게 오늘 대한민국을 만들었지 않았느냐? 했다.
그때 "학교종" 세대들이 지금 그 종을 본다면
수업 시작 종소리와 끝나는 종소리(치는 횟수가 다름)에 따라
우리 마음의 스펙트럼이 달라지던 그때가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마음도 색깔인 것이다.
당신도 마음의 색깔을 잘 쓰는 화가다.
그 종소리는 ‘전기벨’로 변한다.(지금은 어떤 신호인지 모르겠다. 아마 음악?)
‘전기벨’ 세대가 ‘학교종’을 보면 “조것이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퀴즈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물건이 된 것이다.
이런 기분의 느낌, 자율신경으로 느껴지는 것이 파장이다.
이 기분이 시공간에 미치는 마당의 크기가 필드 파장이다.
이 파장을 맥스웰이 아름답고 우아한 한국무용 같은 파동방정식으로 풀어냈다.
이 아름답고 우아한 춤에 수학 방정식이라고 하니 찬물 퍼붙는 기분이겠지?
그러나 파동방정식이 그리는 선율은 아름다운 미술이고 음악이다.
이게 이 세상을 열어가는 실체 정체성이다.
세상 속에 이 보이지 않는 파동 파장이 없다면 세상은 돌아갈 수가 없다. 아니 존재 자체가 없다.
컴퓨터에 윈도우다, 휴대폰 TV 각종 전산시스템 네비게이션 다 이것 가지고 움직인다.
빛도 색도 다 이것 때문에 태어난다. 펄츠로 변하는 내 마음도 호흡도 맥박도 이것이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질이 곧 공(空)이다.
파동과 파동에서 생기는 파장의 그림이다.
허공의 공간과 땅의 사방과 진행의 방향이 되는 시간이 융합된 것이다.
전파와 자기파는 파동처럼 행동한다는 것이다. 빛도 이 전자기파다.
풀섶에 깃든 풀벌레소리는 나와 동행하는 여정의 길동무다.
풀벌레가 되어 길동무를 해드린 것이다.
나는 왜 이렇게 엉뚱한 사유의 공간을 만들며 왔나?
나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2
이제 F(x)-3에선 나의 별 이야기를 하련다.
고대사를 해석하는 나만의 관점도,
나의 예술철학도 결국 내 가슴에 있는 별로 환원된다.
내 가슴에 있는 별은 빛으로 444년을 가야하는 444광년 밖의 별이다.
(네가 그렇게 넓어?)
(마음이다. 마음은 소유권이 있는 땅이 아니다.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우주다.
너나 나나 다 소우주니까. 현대과학은 그것이 싸이언스라고 말하니까)
나의 그 별은
3대째 이어지는 별이다. 그 별이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가족사를 누설한다.
아버지와 나 그리고 둘째 아들로 이어지는 별이야기다.
우리 3대에게 특별한 텔레파시를 주는 그 별의 이름은 <좀생이별>이다.
(하필이면 <좀생이별> 쫌생이?)
좀생이별은 5-7개만 보이지만 수천 개가 모인 준 은하성단이다.
앞 글(F(x)-2)에선 ‘유니버스우주’와 ‘코스모스우주’를 얘기하며
보이져 1호가 태양계 끝 명왕성 근처에서 뒤돌아 본 지구를 보여드렸다.
보이저 1호가 앞으로 1년을 더 가는 2026년 11월15일 경에
지구로부터 겨우 하루 빛 1광일(light day) 거리에 도달할 것이란다.
그러니까 1년 후에야
빛으로는 겨우 하루 거리를 갈 것이란 이야기가 된다.
그 좌표에서 고개를 돌려 바라 본 지구가 쌀알만 한데...
그런데 우리 3대로 이어진 <좀생이별>은 빛으로 444년을 가야 하는 곳에 있다.
1977년 9월 5일 출발시킨 그 보이저1호는
50년을 갔지만 빛으로 가면 하루에도 못 미친다.
그러면 빛으로 444년‘가야 하는 <좀생이별>은 얼마나 먼가?
그런데 그 별의 파장이 3대 째 이어지며 내 인생을 구성하는
사유와 철학이 되었으며 예술로 이어졌다.
그 먼 곳에 있는 별이 내 의식의 파장 안에 있다고?
444광년 거리 밖의 별이 어떻게 나를 움직이는가? 아니 시간으론 3대를 움직이는가?
말도 안 되는 구라같지만 이게 현대과학인 양자역학의 실체다. 가설이 아닌 증명된 이론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 마지막으로 조형언어라는
숙제를 앞에 놓고 있다. (계속)
첫댓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3대가 이어지는 좀생이별(?)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