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 12,1-3; 히브 10,11-14.18 마르 13,24-32
+ 오소서 성령님
그저께 구역별 연도대회가 잘 끝났습니다. 수고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교우들이 한데 모여 연도를 바치는 것이 큰 감동이었는데요, 우리가 같은 신앙을 믿고 살아가는 한 신앙 공동체라는 사실을, 그리고 연습하느라 모인 구역 식구들은, 내가 어려운 일을 겪을 때 함께 해 줄 가족들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또한 참가자 전체가 합송한 주님의 기도는, 우리가 구역별로 나뉘어 선의의 경쟁을 하더라도, 주님의 자녀로서 한 형제자매라는 사실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연대한 지상의 순례 교회는 연옥의 정화교회와 연대하고 있다는 것을, 돌아가신 분들과 우리의 연결은 끊어지지 않고, 이렇게 기도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 귀한 시간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소중한 기회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과 특히 위령봉사회원님들께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제8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입니다. 교황님께서는 8년 전, 연중 제33주일을 ‘세계 가난한 이의 날’로 정하셨습니다. 올해에 교황님은 1300여 명의 가난한 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실 예정입니다. 정치인들은 이런 행사를 요식 행위로 하고는 합니다만, 예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과의 식사를 소중하게 생각하셨던 것처럼, 교황님은 이를 통해 당신의 교황직 수행 방향이 무엇인지를 전 세계에 말씀하고 계십니다.
올해 교황님은 집회서에서 인용하신 “가난한 이들의 기도는 하느님께 올라갑니다.”(집회 21,5 참조)라는 제목의 담화문을 발표하셨습니다. 교황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냥 기도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우리가 매일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얼굴과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에서 이 말씀을 읽어내도록 합시다. 그럴 때 기도는 가난한 사람들과의 친교의 길이 되고, 그분들의 고통을 나누는 길이 될 수 있습니다.”
교황님의 담화문을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우리 모두가 사실은 가난한 사람들이며, 구걸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시지 않으셨다면 존재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우리가 삶의 주인인 것처럼, 혹은 삶을 정복해야 할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전쟁에 의한 폭력은 스스로를 강자라고 여기는 자들의 오만함을 명백히 드러냅니다. 무기를 생산하는 이러한 나쁜 정치가 가난한 이들과 무고한 희생자들을 얼마나 더 많이 만들어 내고 있습니까! 주님의 제자들은, 이 ‘작은 이들’이 하느님의 아들의 얼굴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우리의 연대와 그리스도인 애덕의 싸인이 그분들 각자에게 닿아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기도를, 우리 기도로 삼아 그분들과 함께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 ‘가난한 사람들이 겪는 최악의 차별은 영적 돌봄의 부족입니다. 우리는 그분들에게 하느님의 우정과 하느님의 축복, 하느님 말씀, 성사, 그리고 믿음 안에서의 성숙과 성장의 길을 계속해서 전해주어야 합니다.’
기도가 구체적 행동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헛된 것입니다. 하지만 기도가 없는 애덕의 실천은 쉽게 지쳐버리고 마는 자선 행위가 될 수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교황님은 1985년 UN 총회에서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께서 하신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마더 데레사 성녀는 UN 총회에서, 늘 손에 쥐고 다니던 묵주를 보여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저 기도하는 가난한 수녀일 뿐입니다. 기도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 사랑을 제 마음 안에 넣어주시고 저는 제가 길에서 만나는 모든 가난한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전해 줍니다. 여러분도 기도하십시오! 기도하면 여러분 주위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들은 여러분과 같은 건물의 같은 층을 쓰는 사람일 수도 있고, 여러분 집 안에서 여러분의 사랑을 기다리는 가족 중 누군가일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눈이 열리고,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교황님은 평소, 기도가 실천으로 옮겨지지 않으면 헛된 것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습니다. 이번 담화문의 특징은 그 반대의 말씀 또한 강조하신다는 점입니다. 즉 기도가 빠진 애덕의 실천을 경계하라 하십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기도하는 가운데 내 주위에 누가 가난한지를, 또 그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더 명확히 깨닫게 되고, 그분들에게 물질적 도움뿐 아니라 영적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마르코 복음 13장의 말씀입니다. 일명, ‘작은 묵시록’이라 불리는 말씀인데요, 이해하기가 무척 어렵고 해석도 다양합니다. 그 이유는, 이 말씀 안에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그리고 세상 종말에 대한 말씀이 다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무렵 큰 환난에 뒤이어 해는 어두워지고 달은 빛을 내지 않으며 별들은 하늘에서 떨어지고 하늘의 세력들은 흔들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은, 로마 군대가 기원후 70년에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한 사건과 연관하여 이해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느님께서 계시는 곳이었고, 우주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성전 장막에는 별자리들이 수놓아져 있었고, 7개의 촛대는 태양과 달, 그리고 당시에 알려진 다섯 개의 행성을 상징했습니다. 성전은 우주의 중심이었고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이었기에, 성전의 파괴는 우주 질서가 무너진다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태양이 빛을 잃었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는데요, (마르 15,33) 살아 계신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 역시 성전의 함락과 연관됩니다. 이러한 천체의 변화는, 창세기에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세우신 우주의 질서가 무너지는 혼돈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큰 권능과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이 모습은 거룩한 변모 때에 예고된 예수님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을 보내어 당신이 선택한 이들을 사방에서 모으실 것입니다. 이 ‘천사들’은,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과 복음선포자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그 비유를 깨달아라” 하시는데, 이스라엘의 많은 나무가 상록수여서 변화가 없는데 비해, 무화과나무는 잎이 지고 새순이 돋는 변화를 보여 줍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데요, 유다인들에게 한 세대는 40년을 의미했기에,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서기 30년경부터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때까지 40년을 의미할 수도 있는가 하면, 복음서가 정말로 종말이 임박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무척 난해한 구절입니다.
하지만, 복음서는 어려운 말씀을 굳이 풀어서 쉽게 바꾸어 쓰지 않고 이해하기 어려운 채 두었습니다. 많은 현명한 사람들은, 이 말씀 안에서, 세상의 종말뿐 아니라, 나 자신의 종말, 즉 개인의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으로 보고, 오늘이 그날인 것처럼,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갔습니다.
종말에 대한 말씀은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으로 사람들을 협박하는 이단들도 많이 생겨났습니다. 그런데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협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주기 위해 하신 말씀입니다. 환난의 때에, 순교자들은 이 말씀 안에서 희망을 찾았고, 스테파노 성인은 돌아가시기 직전에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습니다.
오늘날, 세상에 종말이 곧 오기라도 할 것처럼 혼란스럽습니다. 이스라엘은 2천 년 전 자신들이 겪었던 예루살렘의 함락을, 주위 다른 나라들을 공격하면서 다른 나라의 민간인들에게 안겨주고 있습니다. 세계 곳곳이 전쟁 중이고 국내의 여러 뉴스는 우리 또한 이미 소리 없는 전쟁에 돌입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바깥일 신경 끄고 그냥 기도나 하자’하고 성경을 펼치면 복음 말씀이, 세상의 혼돈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통해 세상을 보라고, 복음의 빛으로 세상을 읽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깨어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겠습니다.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무화과나무 가지와 잎을 보고 계절을 알 듯, 시대의 징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아야겠습니다.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를 실천해야겠습니다.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님 담화문: [담화] 2024년 제8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교황 담화 | 한국천주교주교회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