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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오바댜의 묵시
늘푸른 교회 이장우 목사
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열국 중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찌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로 더불어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3 바위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찌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5 혹시 도적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찌라도 그 마음에 만족하게 취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찌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6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탐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수탐되었는고 7 너와 약조한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이고 이기며 네 식물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 함정을 베푸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9 드만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인하여 에서의 산의 거민이 살륙을 당하여 다 멸절되리라.
1:1절에서 ‘오바댜의 묵시라’라고 하면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묵시라는 말은 우리가 인식하고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세계를 ‘묵시의 세계’라고 합니다. 땅의 일을 역사라고 하면 하늘의 일을 묵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묵시를 받은 선지자가 장차 있게 될 일을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묵시를 ‘계시’라는 말과 함께 사용합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일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묵시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계시가 모든 것을 진행시키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땅의 일로 하늘의 뜻을 움직이거나 바꾸는 것이 아니라 묵시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는 이 땅의 일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형식으로 나타납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이곳에 모였습니다만 무엇을 위하여 모였습니까?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무엇인지를 한번 물어보시고 오늘 말씀을 대하고자 합니다. 자신의 문제나, 집안의 문제나, 나라의 문제들이 중요 관심사라면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별 관심이 없는 내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사람이라면 그 무엇보다 주님의 묵시에 관심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에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강요해서 되는 일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1:27절의 말씀처럼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고 하신 것처럼 역사 속에 있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알 수가 없는 것이 묵시의 세계인 것입니다.
오늘은 오바댜서의 전체적인 내용과 그 상황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바댜 선지자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별로 없습니다. 선지서의 내용으로 보아 에돔이 예루살렘을 괴롭히는 배경하에서 주어진 말씀으로 봅니다. 그 내용으로 1:1-9절에서 에돔이 망한다는 내용입니다. 10-14절에서는 에돔이 망하는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15-16절은 에돔만이 아니라 온 세상이 다 심판을 받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온의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남은 자의 구원과 영원한 메시아 왕국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주 짧은 본문이지만 이 세상의 심판과 주님의 영원한 나라를 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묵시란 이 세상의 심판과 구원이 달려있는 말씀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한 말씀이 있겠습니까?
우선 에서와 야곱의 갈등과 반목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삭과 리브가가 결혼하여 20년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으려면 자녀들이 결혼하여 아이를 쑥쑥 잘 낳아야 할 텐데 아브라함도, 이삭도 자녀 생산이 마음대로 되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원한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과 소원에 의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태중에 있을 때부터 싸우던 에서와 야곱은 태어나서도 싸우는 관계입니다.
그러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어나면서 에서가 먼저 나옵니다. 온 몸이 붉다고 해서 에서라고 하고 이 에서의 후손이 이룬 나라가 에돔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서의 발꿈치를 잡았다고 해서 야곱입니다.
둘 다 똑같이 욕심이 많은 자식들입니다.
이들만이 아니라 이삭과 리브가도 하나님의 약속과는 상관없이 자기들의 취향대로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한 것입니다.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고 리브가는 야곱에게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에서는 야곱을 죽이려고 하고 야곱은 도망을 가는 것입니다. 누가 잘하고 못하고가 없을 정도로 자기들 욕심대로 산 것입니다. 이런 인간의 정황 속에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묵시의 말씀이 성취가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누구에게 주어진 것입니까?
야곱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야곱에게 주어졌기에 야곱은 세상의 힘과 권세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의하여 살아가야 하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성공을 위하여 야곱은 죽을 고생을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렇게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이루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다 놓아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아내들의 갈등, 자식들의 싸움, 자식이 계모를 범함, 천사와 씨름하다 불구자가 됨,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 자식을 잃으면 잃으리라는 자리까지 모든 것을 다 내려놓게 하시고 결국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서는 어떻습니까?
이삭의 축복의 내용으로 보자면 에서는 망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있습니다. 부가 있습니다. 야곱의 후손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을 때 이미 왕국을 이루고 있습니다. 우선 이삭의 축복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창세기 27:27-29절입니다.
“27 나의 아들에게서 나는 냄새는 주께 복 받은 밭의 냄새로구나 28 하나님은 하늘에서 이슬을 내려 주시고, 땅을 기름지게 하시고, 곡식과 새 포도주가 너에게 넉넉하게 하실 것이다 29 여러 민족이 너를 섬기고, 백성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는 너의 친척들을 다스리고, 너의 어머니의 자손들이 너에게 무릎을 꿇을 것이다 너를 저주하는 사람마다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사람마다 복을 받을 것이다.”
이 축복을 에서인줄 알고 했지만 야곱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서 이삭이 심히 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욕심과 상관없이, 그 욕심-자기 취향 따라 장남인 에서를 편드는-을 고발하면서 빈틈없이 이루어지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에서가 그렇게 축복하여 달라고 하여도 축복할 것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이삭이 에서에게 말한 내용이 창세기 27:39-40절인데, 새번역으로 봅니다.
“39 ○그의 아버지 이삭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네가 살 곳은 땅이 기름지지 않고, 하늘에서 이슬도 내리지 않는 곳이다. 40 너는 칼을 의지하고 살 것이며, 너의 아우를 섬길 것이다. 그러나 애써 힘을 기르면, 너는, 그가 네 목에 씌운 멍에를 부술 것이다.”
엄청난 대비가 됩니다. 그러면 누가 축복을 받고 형통하겠습니까? 야곱이겠지요?
그러나 야곱은 죽을 고생을 하면서 평생 동안 남은 것은 하나님의 약속 하나 남았습니다.
그러나 에서는 땅도 기름지지 아니하는 곳에서 칼이나 믿고 살아야 하는데 오히려 얼마나 힘 있는 나라가 되었는지 야곱의 자손들이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을 때에 이미 왕을 세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런 관계 속에서 계속하여 갈등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출애굽시에도 선대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고 나서도 이스라엘이 공격을 받으면 그것을 좋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틈을 타서 자기들의 잇속을 채웠습니다. 지난번에 보았던 아모스서에서도 에돔의 죄를 지적하였습니다.
아모스 1:11절에서 칼로 그 형제를 쫓아가며 긍휼을 버리며 노가 항상 맹렬하여 분을 끝없이 품었다고 합니다. 모압과 암몬도 이스라엘을 괴롭혔지만 에돔도 계속하여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채찍으로 사용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오바댜 1:10-14절에서 에돔의 멸망 이유가 나오는 것도 유다 자손의 패망을 기뻐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과 교만이 멸망이지만 그 이전에 이미 말씀이 주어진 것입니다.
에서와 야곱이 태어나기도 전에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하셨고, 이삭이 야곱을 축복하면서 야곱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야곱을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신다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는 아무리 땅에서 힘이 있고, 강하고 든든하여도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통하여 세상의 일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가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3절입니다.
‘바위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에돔 족속이 사는 곳은 천연 요새를 이루고 있으며 이들의 토지는 비옥하였고, 무역으로 보물이 쌓여있었고, 이들의 지혜도 소문이 나 있을 정도입니다. 세상에서 부러울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는 정도로 세상의 여러 가지 조건을 다 갖추고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번 살고 싶지 않습니까?
우리가 늘 바라는 바가 무엇입니까? 돈 걱정 없이, 나라 걱정 없이 든든하고 안전하게 살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없습니까? 그런 든든함이 에돔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중심의 교만이 자기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모습입니다.
하나님 필요 없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부족함이 없는 든든한 국가, 든든한 사회, 가정, 하나 더 보태어 든든한 교회까지 갖추어진다면 누가 감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고 하지 않겠습니까?
이 사고방식을 교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멸망을 오바댜 선지자가 선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묵시가 임한 것입니다. 묵시란 세상의 역사가 예측할 수 없고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뱌다 시대의 현실은 야곱이 심히 미약하여 있습니다. 나라가 힘이 없으니 외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런 틈을 타서 에돔은 더욱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묵시 세계에서는 에돔이 멸망한 것입니다. 에돔의 교만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1절에서 열국 중에서 에돔을 치기 위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들은 자기들의 이해관계에 의하여 에돔을 치러 일어난다고 그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에돔을 치러 일어나는 역사 세계에서의 일은 묵시의 세계에서 결정된 일이 이루어지고 있을 뿐입니다. 그들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에돔이 얼마나 철저하게 심판을 받는가 하면 4-9절입니다.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사이게 깃들일지라도 끌어내리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입니다. 도적이나 강도가 와서 물건을 훔쳐가도 그들이 만족할 만큼 취하면 어느 정도는 남지만 에돔은 하나도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에돔과 약조한 자들이 배신하고 화목하던 자들이 속이면서 에돔을 멸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와 지혜와 용사들이 다 멸절될 것입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무엇을 현실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습니까?
눈에 보이는 역사 세계입니까? 선지자들이 증거한 묵시세계입니까? 오바댜의 묵시를 통하여 에돔의 멸망을 예고하였는데 그대로 성취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더 넓게 확대하면 온 세상이 에돔처럼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들의 소유를 늘리고 그것을 지키면서 그것으로 든든하게 여기며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교만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물어도 다시세우겠다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말라기 1:2-5절에서 에서를 황무하게 만드십니다.
그러나 에서는 무너진 것을 다시 쌓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시 헐어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이 세운 성으로 든든히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에돔의 정신이며 이 시대의 정신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고집을 부리지만 마침내 자기의 손을 털고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게 하시는 것입니다. 묵시를 믿게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의 복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땅의 것을 생각지 말고 위에 것을 찾으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묵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