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35장은 욥이 극심한 고통 가운데에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와 침묵하신 것에 관해 고민하던 말(참조, <욥19:7;21 15>)을 놓고 반론을 펴고 비판하는 엘리후의 세번째 변론입니다. 그 구성은 첫째는 인간의 행동이 하나님께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기도가 응답되지 아니하는 이유로 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초월성
1) 엘리후의 논리 비약
엘리후는 경건한 생활이 자신의 삶에 아무 유익이 되지 아니하며 또한 극심한 고통에서 해방시키지도 못하고 있다는 욥의 주장에 대하여 반박하였습니다. 그리고 욥의 자세가 스스로 하나님보다 의롭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고 비난하였습니다. 사실 욥은 다만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강하게 호소한 것뿐이었는데도 엘리후는 그것을 확대 적용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에 대한 엘리후의 증거는 옳은 말이지만 그의 친구 욥이 하나님을 불의하게 평가했다고 주장한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이었던 것입니다.
a.현세의 공간과 다른 영역(빌1:23)
b.스스로 깨끗이 여기는 착각(잠30:12)
2) 시공을 초월하신 하나님
엘리후는 욥이 던졌던 몇 가지 호소성 질문에 대하여 욥과 그와 함께한 다른 친구들에게 답변해 주겠다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점 중에 가장 두드러지는 것 중의 하나는 존재 형태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간이나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며 어느 곳이든 동시에 거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육체를 가지고 땅 위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제한을 받습니다. 시공을 초월해 존재하시는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서 역사하시는 분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을 보호하시며 사랑해 주고 계십니다.
a.무한하신 존재(시147:5)
b.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있음(시19:1)
3)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와는 무관함
시공을 초월해 계시는 하나님은 홀로 계시며 하나님의 존귀와 영향은 지극히 크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행위에 영향을 받지 아니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을 판단하심에 하나님 자신의 이해 관계로써 하지 아니하십니다. 인간의 악함이나 의로움도 하나님께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주장한 엘리후는 사람의 행위가 사람에게는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즉 엘리후는, 인간은 하나님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존재이며 인간이 사는 세계를 초월할 수가 없는 존재임을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엘리후의 견해를 전적으로 수용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견해를 수용한다면 성도들이 소유한 신앙관과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a.메뚜기같이 보잘것없는 존재(사40:22)
b.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겠느냐(욥22:2-3)
2. 악인의 그릇됨과 간구
1) 학대가 많은 세상
하나님은 우주를 창조하시고 천지 만물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죄가 이 땅에 들어온 이후 이러한 법칙은 깨어지고 인간 세계에는 학대가 많이 발생하였습니다. 아담의 죄성을 가지고 태어난 인간들은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살게 되었습니다. 강한 사람들은 약한 사람들을 긍휼히 보지 않고 약한 자들의 것을 빼앗아 자기 것으로 삼는 악한 행위를 쉽게 합니다. 따라서 이 세상에는 학대받는 자들이 많이 생겨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a.세상의 요란함과 학대함(암3:9)
b.하나님이 모두 보고 계심(출3:7-9)
2) 호소하지 아니함
엘리후는 이 세상에 학대가 많음을 언급하면서 학대받는 자들이 도움을 청하지만 그들이 하나님을 향해서 도움을 청하지는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도움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하나님께 호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과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설사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고 할지라도 온전한 신앙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단순한 불만을 늘어놓으며 한탄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시편 기자는, 진정한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 온다고 찬양했습니다(참조, 시121:1-2).
a.하나님의 팔을 의지하라(욥40:9)
b.대답하지 아니하심(잠1:25)
3) 응답이 없는 헛된 부르짖음
엘리후는 학대받는 자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 상달 되지 않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헛된 부르짖음을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헛된 부르짖음은 일차적으로 교만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리고 믿음 없는 자의 부르짖음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진정으로 경외함으로써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필요에 의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뿐입니다.
a.하나님이 죄인들을 듣지 않으심(요9:31)
b.강포한 입(시73:6-8)
3. 권고와 책망
1) 하나님을 신뢰하라
엘리후는 욥이 하나님은 뵈올 수 없고 일의 판단하심은 그 앞에 있으니 자신은 그를 기다릴 뿐이라는 말을 하나님께 함부로 하였기 때문에 그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욥은 깊은 신앙의 소유자였지만 그 역시 연약한 인간이었기에 계속되는 고난 앞에 절망에 빠졌습니다. 사실 성도들이 겪는 큰 시험에는 욥과 같이 하나님의 구원과 은총에 대하여 실망함으로써 오는 좌절이 있습니다(참조, 시42:6). 그러나 하나님은 좌절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사람들의 사정을 모두 다 알고 계십니다. 뿐만 아니라 그에게 참된 희망과 위로를 베풀어 주십니다.
a.판단하심의 종식자는 하나님(삿11:27)
b.진리로써(사59:4)
2) 자비하신 하나님
엘리후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욥에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진노하심으로 벌을 주지 아니하셨고 악행을 끝까지 살피지 아니하셨다고 묘사하였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외면하고 계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의 자녀가 아닐지라도 모든 인간을 인도하십니다.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양 떼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먹이시고 초장으로 인도하십니다.
a.하나님을 깨닫지 못하는 인간(욥9:11)
b.기억해야 함(벧후3:8-10)
3) 헛된 말과 지식
욥은 자신이 죄가 없으므로 자신에게 주어진 핍박과 환난이 부당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이에 엘리후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인간사에 대해서 인간이 왈가왈부하는 것은 헛된 지식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엘리후는 한층 높은 안목으로 욥을 깨우치는데 그것은 의인도 핍박과 고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다시 되받는다는 사상은 어느 곳에서든지 두루 쓰이는 진리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하나님의 일에도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법칙에서 초월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a.변론을 위반 말들(딤전6:20)
b.허탄한 자랑들(벧후2:18)
결론
35장에서 엘리후는 하나님의 초월성과 내재성에 관해 언급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너무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하나님과 인간의 삶을 완전히 격리시키고 말았습니다. 물론 하나님과 인간은 분리가 되면서도 인간의 생활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활에 따라 하나님은 고민하기도 하시고 기뻐하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