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의 리얼리즘적 양상과 그 특성(5)
주체성과 산문성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여기서 말하는 리얼리즘시에 있어서 주체성이란 ‘시 속에 반영된 창작 주체의 형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체성, 즉 시적 주체의 형성은 섣부른 재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한 시인의 삶의 무게가 실려 있을 때 진실성의 구현으로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시 속에 반영된 창작 주체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시적 주체는 시 속에 형상화된 시인의 자화상인 셈이다. 물론 시인의 모습이 사진처럼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강조와 생략 등의 예술적 변용을 거쳐 드러나는 것이 시적 주체라 하겠다.
시적 주체가 진실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인 자신의 삶에 솔직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시적 주체의 자기동일성 확보와 연결된다. 여기서 자기동일성은 고정불변의 실체가 아니다. 주체와 세계 사이의 긴밀한 상관 관계가 리얼리즘시의 요체인 이상 세계 현실 또는 상황의 변화와 무관하게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는 시적 주체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형상일 수는 없는 것이다.
때로 내가 무모한 돌격을 시험했을 때
적이여! 너는 아픈 타격으로 전진을 위한 퇴각을 가르치었다.
때로 내가 비겁하게도 진격을 주저했을 때,
적이여! 너는 뜻하지 않은 공격으로 나에게 전진을 가르쳤다.
만일 네가 없으면 참말로 사칙법도 모를 우리에게,
적이여! 너는 전진과 퇴각의 고등수학을 가르쳤다.
패배의 이슬이 찬 우리들의 잔등 위에 너의 참혹한 육박이 없었더라면,
적이여! 어찌 우리들의 가슴 속에 사는 청춘의 정신이 불탔겠는가?
오오! 사랑스럽기 한이 없는 나의 필생의 동무
적이여! 정말 너는 우리들의 용기다.
- 임화, <적> 부분 -
인용시는 카프의 활동 정지 및 해산을 전후한 시기에 임화의 시적 변모의 핵심 가운데 하나인 시적 주체가 의식적 배역을 포기하고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즉 <적>은 창작 주체의 형상으로서의 시적 주체가 직접 전면에 등장하는 시다. <우리 오빠의 화로>에서의 ‘저’와 <적>에서의 ‘나’는 위상이 다르다. 시적 주체가 배우처럼 여공의 역할을 하는 경우가 전자라면 시인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측면이 강한 경우는 후자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근대시인 혹은 현대시인의 요건 가운데 하나가 개성적인 시세계의 확보라고 할 때 그것은 많은 경우 개성적인 시적 주체의 형성을 전제로 한다.여기에서 개성적인 시적 주체는 궁극적으로 시인 자신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차원과 결부되고 인용시 <적>은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추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 위엔 박 한 통이 쇠었다. 밤서리 차게 나려 않는 밤 싱싱하던 넝쿨이 사그러붙던 밤 지붕 밑 양주는 밤새워 싸웠다. 박이 딴딴히 굳고 나뭇잎새 우수수 떨어지던 날 양주는 새 바가지 뀌어들고 초라한 지붕 썩어가는 추녀가 덮인 움막을 작별하였다.
- 오장환, <모촌> 전문 -
앞에서 살펴본 <적>의 시적 주체가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면 인용시 <모촌>의 경우 시적 주체는 화자의 차원으로 머물러 있다. <모촌>의 주된 시적 대상은 박이 쇠는 초라한 지붕 밑 ‘양주’인데 그들이 밤새워 싸운 것은 막막한 앞날에 대한 걱정 때문일 것이다. 앞길이 막막한 상태에서 생활 근거로부터 떠나게 되는 유랑농민의 상황이 박 한 통을 매개로 간명하게 그려져 있는데 응축과 생략이 고도로 구사된 일종의 이야기시라고도 하겠다. 이 시에서 집중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움막을 떠나는 양주’는 당대의 민족현실을 대변해주는 형상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러한 현실에 대한 주체의 반응은 직접적으로 표출되지 않는다. 시 속에 반영된 창작자 의 형상인 시적 주체가 화자의 차원으로 물러나 시적 대상에 대한 서사적 거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모촌>의 시적 주체는 화자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함으로써 리얼리즘의 성취에 기여한 경우다.
우리의 시문학사에서 해방 정국은 어느 시기보다 사회현실 문제 혹은 변혁운동에 대해 적극성을 띤 시적 주체가 광범위하게 등장하는 시기였다. 이와 같은 시적 주체는 당대의 시대적 상황에 상응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사회현실 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시적 주체의 등장을 해방 정국의 리얼리즘시의 일반적 특성으로 확대해석해도 될 듯하다. 시대적 상황이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할 때 시적 주체가 세계현실에 적극성을 띠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시가 응축적 양식이다. 그런데 리얼리즘시에서의 응축이란 산문적 확장과 무관할 수 없다.창작 주체와 세계 현실 사이의 접점 형성이 산문적 확장으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산문적 확장이란 시적 주체와의 상관 관계 속에 드러난 세계현실을 의미한다. 세계현실에 대한 탐색으로서 산문적 확장이란 진정한 의미의 시적 응축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산문적 확장과의 팽팽한 긴장 관계에 의해 시적 응축이 생생하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적 응축이란 시로서의 형태적 완결성 혹은 예술성을 뜻한다. 하지만 형태적 완결성 혹은 예술성의 표준은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한편 시에서의 산문적 확장이란 새롭고도 충실한 내용의 확보를 지향한다고도 할 수 있다. 산문적 확장이란 ‘언어의 서술’에, 시적 응축이란 ‘언어의 작용’에 연결된다. 즉 산문적 확장과 시적 응축의 대립이 배타적으로 작용하지 않고 상승효과를 거둘 때 참된 시가 산출된다고 하겠다.
북쪽은 고향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르다
- 이용악, <북쪽> 전문 -
시적 응축이 고도로 구사된 짧은 서정시다. ‘북쪽’과 ‘그 북쪽’ ‘얼어붙을 때’와 ‘풀릴 때’, ‘시름’과 ‘마음’이 서로 짝을 이루면서 호흡의 완급을 적절히 조절하고 있다. 그러한 운율은 이 시의 비장한 어조와 긴밀히 호응하고 있다. 시의 전체적 짜임새를 보자면 “북쪽은 고향”을 “그 북쪽은 여인이 팔려간 나라”로 변주시킴으로써 고향의 상실을 먼저 제시하고, “머언 산맥에 바람이 얼어붙을 때/ 다시 풀릴 때”를 통해 고향과의 시간적 공간적 거리를 드러낸 다음, “시름 많은 북쪽 하늘에/ 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르다”를 통해 고향에 대한 안타까운 감정을 완곡하게 표현하면서 마무리하고 있다.
인용시 <북쪽>에서의 시적 응축이 특별히 주목되는 이유는 산문적 확장과의 긴장관계를 팽팽히 유지하고 잇다는 데 있다. 이 시에서 산문적 확장의 핵심이 되는 시어는 아무래도 “여인이 팔려간 나라”일 것이다. 여인이 팔려간 나라로서의 고향은 단순히 시인 이용악의 고향에 그치지 않고 당대 우리 민족의 현실을 집약시켜 대표하는 곳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음은 눈 감을 줄 모르다”와 같은 시구에서는 당대의 민족 현실에 대한 시적 주체의 하염없는 안타까움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시의 양식적 특성의 하나가 내포와 함축이다. <북쪽>에 돋보이는 내포와 함축은 단순히 응축만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고 산문적 확장과의 고도의 긴장 관계 속에서 시적 응축이 이루어짐으로써 형성될 수 있었다. 이 시는 시적 응축이 산문적 확장과의 긴장관계 속에서 작용해야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시라고 할 수 있겠다.
재를 넘어 무곡을 다니던 당나귀
항구로 가는 콩시리에 늙은 둥글소
모두 없어진 지 오랜
외양깐엔 아직 초라한 내음새 그윽하다만
털보네 간 곳은 아모도 모른다
찻길이 뇌이기 전
노루 멧돼지 쪽제비 이런 것들이
앞 뒤 산을 마음 놓고 뛰어다니던 시절
털보의 셋째 아들은
나의 싸리말 동무는
이 집 안방 짓두광주리 옆에서
첫 울음을 울었다고 한다
<털보네는 또 아들을 봤다우
송아지래두 붙었으면 팔아나 먹지>
마을 아낙네들은 무심코
차그운 이야기를 가을 냇물에 실어보냈다는
그날 밤
저릅등이 시름시름 타들어가고
소주에 취한 털보의 눈도 일층 붉더란다.
갓주지 이야기와
무서운 전설 가운데서 가난 속에서
나의 동무는 늘 마음 졸이며 자랐다.
당나귀 몰고간 애비 돌아오지 않는 밤
노랑 고양이 울어 울어
종시 잠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어미 분주히 일하는 방앗간 한 구석에서
나의 동무는
도토리의 꿈을 키웠다
그가 아홉 살 되든 해
사냥개 꿩을 쫓아 다니는 겨울
이 집에 살던 일곱 식솔이
어대론지 사라지고 이튿날 아침
북족을 향한 발자국만 눈우에 떨고 있었다.
- 이용악, <낡은 집> 부분 -
일제 강점기의 시 중에서 산문적 확장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주로 서사적 골격에 의해 시가 전개되고 있는 바 당대의 대표적인 이야기시라 할 만하다. 이 시에서 다루어진 중심 사건은 털보네의 야반 도주이고 그것은 일제의 통치에 따른 민족 민중의 궁핍화 현상의 단적인 사례일 것이다. <낡은 집>은 다루어진 사건의 골격이 웬만한 단편소설을 상회할 만큼 산문적 확장이 광범위하게 일어난 시다.
시에서 서사는 시적 주체와의 밀접한 관계 속에서 구사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인용시 <낡은 집>의 경우 시적 주체는 서사의 서술자, 혹은 이야기 화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화자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호흡과 정서를 시구 속에 은밀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하고 있다. 이것은 시적 서사의 특징이거니와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 것은 시적 응축과 긴장관계 속에서 산문적 확장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산문적 확장과 시적 응축은 적당한 비율로 절충되는 방식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산문적 확장과 시적 응축은 서로 최고 최선의 상태를 지향한다. 인용시 <북쪽>은 시적 응축에, <낡은 집>은 산문적 확장에 최대한으로 밀착해서 긴장이 조성된 작품이다.
사회현실 문제에 대한 실천적 관심이 산문적 확장을 불러오게 마련이라는 점은 인용시에서 뿐만 아니라 해방 정국의 진보주의적 경향의 시에서도 확인되었다. 진보주의적 열정에 의해 추진된 광범위한 확장은 리얼리즘시의 주류적 경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시대적 과제의 해결에 조급한 나머지 산문적 확장이 시적 응축과의 긴장 관계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는 것이 리얼리즘시의 문제로 지적된다고 하겠다. 임화의 <깃발을 내리자>나 이용악의 <하늘만 곱구나> <기관구에서> 등은 시적 응축이 제대로 작용하는 가운데 산문적 확장이 적극적으로 추진되어 시적 긴장이 증폭된 시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