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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골산 봉서방 원문보기 글쓴이: 궁극이
60편 7절-11절: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7절: ‘길르앗이 내 것이요 므낫세도 내 것이며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유다는 나의 홀이며.’ 길르앗과 므낫세는 요단 동쪽의 땅이다.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 취해진 땅이다. ‘에브라임은 내 머리의 보호자요’ 라고 하는 것은 에브라임은 큰 지파로서 이스라엘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 것을 말한다. ‘유다는 나의 홀이며’ 라고 했는데, ‘홀’은 ‘지도자. 왕권’을 의미한다. 남조유다를 보면 유다지파에서 왕이 많이 나왔다. 20대의 왕 중에 아달랴만 빼놓고 모두 유다지파에서 나온 왕이다.
6절에 세겜과 숙곳이 나오는데, 이 땅도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땅으로 이곳에 이방인들이 이스라엘과 함께 살고 있었다. 이곳만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땅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일에 순종자에게 이 땅을 주기를 기뻐하신다. 온 세계의 땅을 누구에게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라고 했느냐? 성도들에게. 하나님을 믿는 우리보고 지키고 다스리고 통치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성령의 눈으로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대로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구원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이 땅의 주인은 성도다. 하나님의 것이면서 성도의 것이다.
그래서 성경으로 보면 현재 예수님을 안 믿고 있는 사람들은 성도들의 땅을 차지하고 있는 거다. 성도들의 땅에 살고 있는 거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요, 하나님께서 이 땅을 성도들에게 주셨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들은 우리들의 땅에서 사는 거다.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아도 믿는 사람이 세상을 이런 눈으로 보게 될 때 삶의 주격이 달라진다. 그래서 우리 성도는 신앙에 긍지가 있는 거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땅을 만드신 거냐? 교훈적 계시적으로 보면 성도들의 이룰구원을 위해 주셨다. 그러니까 성도들은 이 땅에 살면서 영능의 실력을 키워서 자기 땅에 사는 이방인들을 좇아내야 한다. 성도들은 주인행세를 하는 이방인들을 신앙실력으로 정복을 하고 차지해야 한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감염이 되어서 그들과 합세가 되어있는 세상 속화된 기독자들에게는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정복을 하며 살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는 예수 믿는 정신을 알아야 한다. 절대로 예수님을 믿지 않던 부모님들이 산 것처럼 살지 말아라. 예수 믿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해도 예수 믿는 정신을 가지고 정복을 하며 살아야 한다. 힘이 있고, 용기가 있고, 긍지가 있고, 실력이 있어서 정복을 하며 살아야 한다. 혼자 예수 믿다가 죽는 식으로 살지 말아라. 예수를 믿는다는 게 ‘뭘 도와주십시오’ 라고 하면서 편히 살다 죽으면 천국에 가는 거냐? 그런 게 아니다. 부자이던 가난한 자이던 예수 믿는 것은 정복이다. 천국을 점령하는 거다. 내 천국이 저 사람 속에 있다.
온 땅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거룩한 일에 순종하는 자에게 주기를 기뻐하신다. 거룩한 일에 순종하는 성도라면 벌써 하나님의 영능의 실력이 들어가는 거다. 이걸 역사적으로 보면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어떻게 차지했느냐? 애굽에 살 때 양의 피로 세상이라고 하는 애굽을 떠나 홍해에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말씀을 받고 약속의 땅으로 가면서 영능의 실력을 갈고 닦고 성장시키면서 신앙실력 대로 약속의 땅을 차지하여 얻은 땅이다.
가나안 땅은 세상적이며 육적이며 비진리적이며 인본주의적인 수단 방법으로 얻어지는 땅이 아니다. 이걸 계시적으로 보면 인본주의 사고방식으로는 절대로 신앙사상이 안 들어간다는 거다. 정복이 안 된다. 사람을 아무리 많이 끌어 모아도 정복을 못한다. 정신적 사상적으로 사람을 바꾸는 일은 진리가 아니면 안 된다. 그러니 정신을 차리라는 말씀이다.
8절: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모압은 롯의 후손이다. 이들이 미디안과 합세해서 이스라엘을 저주한 일이 있다. 모압족속들은 씨가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통혼을 잘 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진노를 받기도 했다.
느헤미야 13:1에 보면 암몬과 모압은 영영히 하나님의 회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했다. 이게 무슨 뜻이냐? 혼합된 사상은 하나님의 회에 절대로 못 들어온다는 거다. 예수님을 믿는 기독교 정신 사상에 이방사상, 세상 속화된 종교적 혼합사상은 절대로 못 들어온다. 혼합사상은 우리교회에도 못 들어온다. 용납이 안 된다. 들어오면 교인들의 신앙이 다 죽는 거다. 하나님의 진노가 쏟아지는 거다.
혼합사상이 된 교회를 정화하려면 구별을 시켜야 하고, 구별을 해서 선택을 하게 해야 한다. 선택을 안 하고 있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크다. 선택을 하게 하려니 구별을 해서 알게 해야 하는데, 이게 제대로 안 되면 얻어맞는 거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들이 이 면에 대한 심각성을 별로 느끼지 못한 채 일반적인 사고방식으로 많은 사람이 모여서 종교활동이나 하고 문화운동이나 하는 것이 신앙인 것으로, 복음인 것으로 알고 있다. 이게 얼마나 큰 문제인지 모른다.
일반적으로 민주주의라고 하면 법 이전에 사람이 바로 서야 한다. 그래야 민주주의가 깨끗하다. 사람이 바로 안 만들어지고 바로 서지 않은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하게 되면 덩어리를 키워서 큰소리를 내면 사람들이 그리로 쏠리게 되고, 이런 상태로 여기저기서 외치게 되면 이게 폭동이다.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다. 법이 없는 자유는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람이 바로 서야 민주주의가 바로 되는 거다. 같은 이치로 기독교 안에서도 사람이 진리사상으로 바로 서야 교회가 바로 되는 거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한 상태에서 교회를 하게 되면 깡패세상이 돼버린다. 하나님의 종이라고 하면 좋은 쪽으로만 생각을 하지 하나님의 종의 어깨에 뭐가 얹혀있는지를 모르는 목사들이 많다.
왕상11:1에 보면 솔로몬이 바로의 딸 외에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 여인들을 사랑했다. 모압사람들은 그모스 신을 섬겼는데 ‘그모스’란 ‘힘 센 자’ 라는 뜻이고, 암몬자손은 가증한 몰록 신을 섬겼는데 ‘몰록’이란 ‘왕’이라는 뜻이다. 이 족속들은 자녀들을 불살라서 이 우상들에게 바쳤다. 오늘날 기독교 사회가 이들과 똑같은 일을 하고 있다. 성도들을 충성봉사로, 종교적 사업적 세상 앞에 몸을 바치게 하고, 이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춤을 추게 하는 게 우상 앞에 제사를 드리는 거다.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라고 하는 것은 주인의 목욕물을 준비하는 종이 된다는 것이고,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라고 하는 것은 주인의 신발을 씻는 종이 된다는 거다. 에돔의 조상은 에서인데 이 에서는 야곱의 형이다. 이 에서는 호전적이며, 전쟁을 좋아하고, 우상을 숭배했고, 귀가 얇아서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잘 들었다. 진리의 사람이 아니면 거짓 종들의 말을 잘 듣는다. 어디서 교회가 부흥하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고 하면 우르르 몰려간다. 이런 곳에 몰려가는 자들은 다 거짓 종들이다. 어디에 가면 누가 능력 있는 안수를 한다고 하면 그리로 쫓아가는 것도 거짓 종들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에돔의 영토를 통과하려고 했으나 이 에돔이 이스라엘에게 원한을 품고 있었기 때문에 거절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게 계속 전쟁을 걸어왔다. 유다를 침공했고,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가 되었을 때 이를 보고 기뻐했다. 그 결과로 에돔은 결국 황폐되고 메시아 왕국의 소유가 된다고 했다.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을 많이 학대했다. 이럴 때 삼손이 이스라엘을 구해냈고, 블레셋이 여호와의 궤를 빼앗아 다곤의 신전에 두었는데 다곤의 신들의 팔다리와 머리가 잘려서 몸통과 함께 넘어져 있던 일도 있다. 그리고 이스라엘과 하나님을 모욕하던 블레셋의 골리앗이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고, 사울의 아들들이 블레셋에게 죽임을 당하기도 했고, 다윗에게 여러 번 패하기도 했고, 이스라엘 왕 나답에게 포위를 당한 일도 있고, 유다 왕 웃시야에게 패배를 당한 일도 있고,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패배를 당한 일도 있고, 바로에게 진멸을 당했고, 결국은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아 멸망이 됐다.
블레셋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이스라엘에게 패한 일이 여러 번 있기 때문에 자기 나라의 일을 말할 때는 늘 이스라엘을 말하게 될 것이고, 이스라엘을 말하려면 하나님을 말을 안 하려야 안 할 수 없는 거다. 예를 들어서 ‘우리나라의 위대한 장군 골리앗이 어린 다윗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어린 아이가 어떻게 자기 힘으로 골리앗을 죽일 수 있었겠느냐? 하나님이 도와서 죽인 거다’ 라고 말을 할 수밖에 없는 거다. 그러니까 ‘블레셋은 나를 인하여 외치리라’ 라는 말은 블레셋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역사를 말하려면 이스라엘이 섬기는 여호와 하나님을 말을 안 할 수가 없다는 뜻이다.
‘모압은 내 목욕통이라. 에돔에는 내 신을 던지리라. 블레셋아, 나를 인하여 외치라 하셨도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룩운동으로, 하나님의 영능의 실력으로 모암과 에돔 땅을 차지했다. 하나님께서 주시겠다고 한 땅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는 땅인 세겜과 숙곳에 이방인들이 살았는데, 이들은 자신들이 사는 곳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겠다고 약속하신 땅이라는 것을 알아야 했다. 가나안 땅에 사는 모든 이방인들이 그래야 한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열두 지파로 하여금 다 차지하게 했으니까 이들은 모두가 하나님의 땅에 살고 있는 거다.
이 말씀의 또 다른 뜻은 이방정신에 감염이 되어서 진리신앙을 버리고 이방인과 합세해서 참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육적 이스라엘은 부끄러운 줄 알고 깨닫고 분별하여 바로 살라는 말씀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이 바보 같은 이스라엘아, 가나안은 땅은 하나님께서 주신 이스라엘의 땅인데 왜 이방인들과 합세해서 진리 길을 가는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느냐?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바로 살아라’ 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 홍해에서 세례를 받고, 광야에서 말씀을 받고 약속의 땅으로 가면서 많은 전쟁과 시련과 연단으로 영능의 실력을 키워서 영능이 실력대로 싸워 이겨서 차지한 땅이다. 세상적이며, 육적이며, 비진리적인 인간의 수단 방법으로 얻은 땅이 아니다. 본 8절은 이걸 강조해서 말을 하는 거다.
우리가 성경을 보면 항상 이스라엘 백성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이나 의사나 뜻이 전개가 되는 것이지 이방인들이 주격으로 되어있지를 않다. 따라서 믿는 우리는 큰 나라에 살던 작은 나라에 살던 그곳을 자타의 이룰구원을 위해 최적의 장소로 주신 것으로 알고 긍지를 가지고 살면서 이룰구원을 잘 이뤄가야 한다. 이방인이 권력이 아무리 강하다고 해도 돋보거나 겁낼 필요가 없는 거다.
9절: ‘누가 나를 이끌어 견고한 성에 들이며 누가 나를 에돔에 인도할꼬.’ 에돔성은 깎아지른 곳에 있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성이다. 정복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성이다. 이들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들로서 우상숭배자들이요 교만한 자들이다. 또한 전쟁을 좋아하는 자들로서 출애굽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가는 선민 이스라엘의 길을 가로막은 자들이다. 알고 보면 이들은 이스라엘과 같은 형제들인데도 사상적으로 이스라엘에게 철두철미하게 원수노릇을 했다.
에돔성은 정복하기가 어려운 난공불락의 성인데, 이는 에돔사상이 그렇게 정복하기가 힘이 든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전도로 생각을 하면 불신자들을 전도하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거다. 세상물질과 인정정실로 한 덩어리가 되어서 교만성으로 굳어져 있는 이방인들을 전도로 깨뜨리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안 믿는 사람이 가난해서 굶어죽게 생겼거나 병이 들어서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게 되면 보통은 하나님을 붙잡을 마음이 생기는데 배부르고, 돈도 많고, 조직도 크고, 배후가 든든한 사람에게 예수 믿으라고 하면 쉽게 믿느냐? 이렇게도 생각을 해 봐라. 우리 궁극교회 교인들 중에 누군가가 자기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할 때 쉽게 믿었느냐? 예수를 믿으라고 하는 첫 마디에 안 믿었다면 이건 세상적인 뭔가가 자기의 배경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배부르고 등 따실 때 예수를 믿었다면 참 귀한 거다. 그런데 가난하고 사는 게 바닥을 기고 있는 사람에게 예수를 믿으라고 할 때 안 믿는 사람이 있다. 병이 들어서 죽어가는 데도 안 믿는 사람이 있다. 그러니 전도를 한다는 게 얼마나 힘이 드는 거냐?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예수 믿으라고 하면 ‘나는 내 주먹을 믿는다’ 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면 인간 자기가 어떻게 자기 주먹을 믿는다는 거냐? 권투선수라고 해서 자기 주먹을 믿을 수 있는 거냐? 자기 주먹이 자기를 살려줄 것 같으냐? 이런 걸 생각할 때 전도가 참으로 힘이 드는 거로구나.
예수 믿는 사람이 추도식을 하는 것은 우상숭배인데, 예수 믿는 한 가족인데도 추도식을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해도 된다는 사람이 있을 때 하나님께 바로 나가고자 하는 신앙을 가로막는 자가 누구냐 하면 추도식을 해도 된다고 하는 자다. 추도식을 해도 된다는 사람은 하면 안 된다고 하는 사람을 향해서 ‘너는 왜 유별나게 예수를 믿느냐? 다른 교회는 다 추도식을 하는데 왜 너만 안 된다고 하느냐?’ 라고 한다. 이러니 두 사람이 완전히 대적이 되는 거다. 이게 뭐냐? 한 형제, 한 교인이라도 이런 건 말로 해서는 통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는 사람임에도 비진리로 나가는 자들이 얼마나 고집이 센지 난공불락의 성과 같다. 우상숭배의 이 교만을 누가 정복할 수 있겠느냐?
10절: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셨나이까. 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군대와 함께 나아가지 아니하시나이다.’ 남공불락의 요새는 하나님께서만 공략할 수 있는 것인데, 이스라엘이 이 성을 공략을 할 때 하나님께서 도와주시기는커녕 이스라엘의 군대를 쳐버렸다. 선민 이스라엘이 에돔의 요새를 쳐 들어가기는커녕 하나님께 징계를 받고 있는 거다. 참으로 설상가상이다.
왜 이렇게 된 것 같으냐?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흩으신 거냐? 그 이유가 하나님께 있느냐, 이스라엘에게 있느냐? 이스라엘 백성들의 사고방식이, 이스라엘 군인들의 사고방식이 어떻게 되어있기에 흩어졌느냐? 흩어졌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의사단일이 아니라는 거다. 의사단일이 되어야 정복을 할 수 있고 성령님의 능력이 나오는 거지 흩어져 있으면 정복을 못하는 거다. 교회로 말을 하면 교회가 하나님의 의사단일이 아니라면 완전히 세상 판이 된 것이니 이것은 흩어진 거다. 이런 상태로는 적을 정복은커녕 기존의 신앙을 지키기도 어렵다. 우리는 정신상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에돔의 교만한 고집과 이론들을 누가 꺾을 수 있겠느냐? 에돔사람들도 자기들의 조상이 아브라함이라고 한다. 오늘날 거짓 종들, 거짓 기독자들이 ‘예수는 나의 구주’ 라고 하는 것과 같은 거다. 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너희는 우리 족속과 한 집안 한 혈통’이라고 할 것이고, 에서의 후손이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있는 에돔족속들은 이스라엘을 향해서 ‘너희들만 하나님을 바로 섬긴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른 신을 섬겨도 너희들처럼 얻어맞지 않고 부자로 잘 살고 있다’ 라고 하는 거다. 그러니 오늘날 에돔족속과 같은 사상으로 굳어진 자들에게 진리복음을 전하면 먹혀 들어가겠느냐? 참으로 힘든 거다.
여기서 더 나아가 진리본질로 예수를 믿는 사람이 세상 속화된 정신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에게 진리복음을 전하면 그들에게 진리복음이 먹혀 들어가겠느냐? 참으로 힘들다. 어떻게 보면 불신자들보다 더 힘들다. 그래서 대전에서 공부(주-신학생 및 교역자 대상으로 김경형목사님이 매 주 정례적으로 진행하는 신학 및 성경연구 모임)하는 목사님에게 어떤 목사님이 하는 말이 ‘왜 꼭 그렇게 해야 하느냐? 좀 폭을 넓혀라. 왜 곧이곧대로만 하려고 하느냐? 그러면 교인이 안 모인다’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 진리복음이 먹히겠느냐?
교회에 헌금한 것을 연말에 세무서로부터 환급을 받는 제도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교회는 이런 것은 용납이 안 된다. 생각을 해 봐라. 예수님께서 성도가 낸 세금에 대해 영수증을 해준다고 했느냐? 하나님께 드린 헌금에 대해 하나님께 환급을 받겠다고 한다면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이냐? 세무서로부터 헌금에 대해 환급을 받겠다고 하는 게 이것과 다른 게 뭐가 있느냐? 이게 뭐 하자는 거냐? 하나님께서 천국 영수증을 발급해 주느냐? 지금 기독교가 기독교가 아니다. 복음이 아니다. 성경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있다.
11절: ‘우리를 도와 대적을 치게 하소서. 사람의 구원은 헛됨이니이다.’ 성도다윗은 사람의 구원을 헛된 줄 안다. 모두는 임시성에 속한 구원이기 때문이다. 블레셋은 키가 큰 것, 대표적으로 골리앗이 있다. 이 교만이다. 모압은 미녀작전이 있었다. 외모 외형으로 교만이다. 에돔은 물질로 교만이다. 사람이 이런 것으로 자기의 자랑을 삼으면, 말하자면 이런 것들이 자기의 하나님이고 자기의 구원이라고 할지라도 이런 것들은 전부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 아닌 시간 안에 속한 변질될 것이고 사람에게 속한 것이기 때문에 구원이 안 된다.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사람의 발아래 두는 것이 창조의 법칙이요 믿음의 법칙이다. 그런데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이 성도의 머리 위로 올라가면 이 성도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된다. 이걸 인간 편에서 보면 자기로부터 하나님이 떠나는 것이지만 영의 눈으로 보면 자기가 하나님을 떠나는 거다. 떠난다고 할 때 ‘어디로부터, 무엇으로부터, 무엇이 주격이 된 곳에서 떠나느냐?’ 이걸 잘 봐라. 사실은 하나님은 떠나지 않는 건데, 사람의 구원은 헛되다고 하는 것은 성도의 이룰구원 성화구원이 안 된다는 면에서 하나님이 떠난다고 하는 거다. 성도가 인본주의로 나가게 되면 그 어떤 것도 이룰구원이 안 된다. 이걸 하나님이 떠난다고 하는 거다.
오늘날 이런 무리들이, 즉 블레셋이나 모압이나 에돔이나 앗수르나 애굽의 사상들이 교회 안에 가득 들어있다. 온통 세상 판이다. 교회 인도자들은 교회 안의 이런 사상들을 성경으로 구별시켜서 다 쫓아내야 한다. 그 사상이, 그 어두움이 교회에서 물러가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의사단일성으로 만들어지게 해야 한다. 이게 교회고, 하나님의 백성이고, 성도다.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붙잡고 세상이 끝날 때까지 당신의 구원운동을 전개해 나가신다.
시132:에 보면 시온성이 나오는데, 시온성이란 다윗의 진리통치, 말씀통치, 신정통치를 의미한다. 여기에서 신앙무장이 되고, 여기에서 왕족이 나오고, 여기에서 성령님의 역사가 나온다. 이걸 다 통칭하여 구원이라고 한다. 우리교회는 이래야 한다. 영원 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을 벗어난, 성경을 벗어난 짓은 할 수 없는 거다. (계속)
김경형목사님의 생전 설교를 정리했습니다. http://cafe.daum.net/909k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