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가는 토요일(10월27일)에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가을 특유의 푸른 하늘과 밝은 햇살이 계속됐다.
그런데 금요일 밤 9시 뉴스의 일기예보를 듣고는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토요일 딱 하루만 전국적으로 비바람이 몰아친다는 소식에 푸념을 했다.
주간 내내 쾌청했던 날씨가 하필이면 산에 가는 날 그럴 게 뭐람!
마누라는 웃으면서 가지 마라는 하늘의 계시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장대비 쏟아지는 장마철에도 갔다며 대수롭지 않게 받아 넘겼다.
하지만 전혀 염려가 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가을비는 여름비와 달리 체온이 받아들이는 느낌이 다르다.
그래서 금요일 밤 뉴스가 끝나자마자 급하게 준비를 했다.
방수가 잘 된다는 등산복을 입어도 속옷이 젖는 경험을 했으므로 배낭을 멘 채로 덮어쓸
수 있는 큰 우의를 직접 만들기로 했다.
동네 실내장식가게에서 구입한 이중비닐을 재단하고 테이프를 붙여서 완성했다.
바지 무릎에서 신발 윗부분을 덮을 수 있는 스패츠도 만들었다.
그렇게 준비해서 갔더니 모두들 감탄을 했다.
때깔이나 폼은 나지 않았지만 일행들이 착용하고 온 메이커 제품보다 방수 기능이 완벽했다.
하루 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맞으며 산행을 했어도 속옷과 양말은 뽀송뽀송하기만
했다.
이번 산행은 원래 우두령에서 추풍령으로 가기로 했으나 동절기 등산금지 구간인 속리산 대간
길부터 먼저 다녀오기로 일정이 바뀌었다.
오전 8시25분, 보은군 내속리면 대목리 천왕사 입구에 도착하여 천왕봉 안부로 오르는 2.5km
의 대간 접속로가 빗속이라 그런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접속로나 이탈로가 긴 대간코스는 횟집에서 사시미 보다 쓰게다시가 더 많은 상차림이나 마찬
가지라 할까.
비가 오지 않았으면 단풍으로 물든 속리산의 화려한 절경을 만끽했을 터인데 아쉬움이 컷다.
물기가 질척한 바읫길을 조심해서 오르내리느라 속도가 제대로 나지 않았다.
비로봉과 입석대를 거쳐 11시30분쯤 신선대휴게소에 도착하자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에서
이른 점심식사를 했다.
일행 중에 버너를 소지한 대원이 오뎅을 넣은 라면을 끓여서 따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갈증이 생기면 지금까지는 찬물을 마셨지만 앞으로는 뜨끈한 물을 마셔야 좋을 것이다.
12시10분, 속리대간의 정점인 문장대에 도착했다.
비는 그쳤지만 바람이 어찌나 세게 몰아치는지 몸을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었다.
운무가 지나다니면 문장대 서쪽 아래 관음봉이 신기루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문장대에서 북쪽의 밤티재로 가는 3km의 대간 능선길을 ‘속리용아’라고 부른다.
암벽을 오르내리고 바위 틈새를 엎드려 기거나 몸이 겨우 빠져 나가는 그야말로 험난한
지대를 지나야 했다.
2시50분, 밤티재를 통과했다.
이곳에 산불감시초소가 있는데 가을 건기철에는 입산금지령이 내려져 있다.
다행히 비가 내리는 바람에 감시인이 부재 중이었는데 만약 적발되면 일인당 7만원의 벌금을
물린다고 한다.
감시인이 있는 날에는 몰래 우회하면서 소리도 나지 않게 조심해서 지나야 된다고 한다.
백두대간에는 이런 곳이 몇 군데 있어서 대간종주자들에게 장애물 처럼 되어 있다.
밤티재에서 대구 앞산 높이인 696고지에 올라섰을 때 수북하게 쌓인 낙엽에 길을 분간키
어려워 10여분 동안 헤매다 겨우 대간길을 찾아서 오후4시20분, 최종목적지인 ‘늘재’에 도착
했다.
버스가 대기하고 있는 곳으로 가을비 속을 걸으며 또 한 구간의 대간종주를 마쳤다.
접속로 2.5km를 빼면 속리산 대간길은 9.2km 밖에 걷지 않았다.
그래도 8시간이나 걸린 것은 그만큼 길이 험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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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튿날 일요일(10월28일)에는 K2산악회를 따라 빼재에서 부항령 구간을 다시 찾았다.
왜냐하면 지난 9월22일 이 구간을 지나다 알바를 했기 때문에 그 곳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이틀 연속의 대간길 행군을 몸이 얼마나 따라주는지 시험해보는 차원이기도 했다.
일요일 새벽3시에 기상하여 간단하게 준비를 마친 후 4시5분, 범어네거리 지나 복개도로 옆
하나은행 앞에서 승차하였다.
새벽 4시25분, 성서 홈플러스 앞에서 대원들을 모두 태우니 46명이었다.
한 사람의 좌석이 부족하자 인솔자는 출입구 계단에 신문지를 깔고 앉았다.
붉은 선이 알바해서 정상적으로 가지 못했던 구간
오전6시20분, 빼재에 도착하자마자 선두로 나서서 오전7시30분, 덕유삼봉산을 2등으로
올랐다.
15분을 쫒아 내려가자 나타난 오두재 갈림길에서 지난번에 알바했던 길을 알아보고 가슴을
쳤다.
다른 길로 가느라 가보지 못했던 소사고개로 내려서니 오전8시20분, 나이 40이라는 중년의
대원과 계속 선두를 유지했다.
초점산을 오를 땐 정말 힘에 부쳤다.
아침도 먹지 않고 집을 나선 것도 그렇지만 전날 속리산 대간길을 다녀온 탓으로 에너지가
완전 고갈되다시피 하였다.
선두는 먼저 가고 대열 중에서 7위로 쳐졌다.
주머니에 비상용으로 들어있던 사탕 한 개와 초콜릿 반쪽으로 겨우 허기를 면하고 대덕산을
지나 얼음골 폭포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야 힘이 나서 선두를 추격했다.
오후1시10분, 인솔자 빼고 총 45명 중 2위로 부항령에 도착했다.
선두는 오전에 덕유삼봉산을 같이 올랐던 대원으로서 오후12시55분에 도착했다고 하였다.
마지막 후미 그룹이 도착한 시간이 오후4시50분이었으니 선두와 후미가 4시간 차이 난다는
얘기는 농담이 아니었다.
K2 백두대간15기 회원 중 최고령자는 55년생이라고 한다.
하산주를 나누는 자리에서 내가 52년생이라고 밝히니까 모두들 놀라워 하면서 주목을 했다.
K2백두대간 15기 대원들
나는 점쟁이 말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지금까지 점을 보러 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산에서 돌아온 일요일 밤에 미처 보지 못했던 토요일 신문을 보다가 오늘의 운세를
재미삼아 슬쩍 보았다.
그런데 용하게도 임진년(52년생) 용띠 점괘에 이런 내용이 실려 있었다.
10월27일 토요일(음력9월13일) - 마른 풀이 비를 만나 푸르다.
10월28일 일요일(음력9월14일) - 주위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
< 끝 >
첫댓글 특수 제작 스패치와 비옷이 멋지구먼 허나 너무 달리지는 말게 젊은이들 욕할라^^.
^^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얘기를 실천하기에 게을리 하지 않을 따름.
"임진년 용띠, 주위에 이름을 떨치게 된다"... 아주 마음에 드는 괘다.
ㅎㅎㅎ 말라 빠진 풀이 비를 맞은들 무슨 소용 !
ㅎㅎㅎ 최고령자가 2위를 하여 입소문 좀 탔을 뿐 !
아~~!!! 비가와도 가는 산행, 마냥 부럽구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