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신축년(辛丑年) 새해 원단[元旦]
고조모님 묘소 벌초 및 모암재공(휘 계철) 암각문 발견 조사(20210212)...
매년 새해 첫날이면 장흥읍 행원리 뒷산의 새빛재 부근에 있는 고조모님(강릉 유씨)의 산소 벌초와 주변 정비를 합니다...
오늘도 행원리 석천사앞에 주차하고 물 2통과 장비를 들고 산을 올라가서 간단히 예을 올리고 빠르고 능숙하게 작업을 했습니다...
주변에 심어놓은 동백나무들이 튼실하게 잘 자랐습니다...
아버님과 브라더 그리고 둘째 아들도 쉬지 않고 작업을 했습니다...
저도 땀좀 흘렸죠...
휘리릭~~~
하산후에 석천사 주변의 또랑에 있을것 같은 암각문을 호미와 부러쉬를 들고 조사했습니다...^^
광산김씨 재각인 '영모재'옆에 있는 작은 폭포가 이쁩니다...
석천사 밑 개울가에서 발견한 암각문...
브라더가 부러쉬로 깨끗하게 만듭니다...
대충 흙과 이끼를 제거했습니다...
'행원위씨세장 주사 위계철 서'
魏啓哲(헌종6년 庚子1840~癸丑1913) 향년 74字는 치선(致善), 號는 모암재(帽巖齋)
모암재공은 1894년 중앙관료제도 및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나주부 산하 장흥군의 탁지부(현재의 재정경제부)의 주사(중앙과 지방 64명 정원)로 1896년에 유도천(향교 추천)으로 임명되었습니다. 당시 장흥지역은 1894년과 1895년에 일어난 동학난과 이에 따른 장흥성 전투와 장흥 석대들 전투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전사했으며 이후 수습과정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투옥 또는 사형 당했을 때이므로 장흥땅과 그인근의 민심이 매우 흉흉할 때 였지만 모암재공께서는 시시비비를 공평히 처리해서 관군과 동학군 양쪽에서 비난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또한 하산사 중건을 주도했습니다.
행원의 '원'이라는 글자가 동산 원(園)이 아닌 으뜸 원(元)이러는것이 이상하지만...
글씨가 깨끗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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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동이로 물을 부어서 글씨가 더 선명하게...
역시나 뚜렷하게 더 잘 보입니다...
다른 암각문이 더 있을것 같아 주변을 더 둘러봤지만 찾질 못하고 철수...
음력 정월 초하루부터 의미있는 일과 발견이 이어졌습니다...
모두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재치...
첫댓글 杏園이라고 하지 않고 왜 杏元이라 했겠습니까. 문집까지 있는 천하에 모암재공이셨습니다.
물론 글자를 일부러 달리해서 휘하는 예도 있지만 이는 오자가 아니라고 여겨집니다.
행원마을의 특수성이 아닌가 싶습니다. 타 지역에서 행원마을로 들어올 초창기에 그 마을에서 자리 잡으려면 기존 광산김씨 텃세가 오죽했겠습니까.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杏元 長興魏氏世庄 主事 魏啓哲 書'는 '행원마을 으뜸 장흥위씨 세장' 주사 위계철이 서했다로 풀이하시면 될 것입니다.
모암재공께서는 주사라는 직함에 자부심을 가진 듯합니다./ 위이환
석질이 일반 화강석 같지가 않습니다. 마치 진흙덩이가 굳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나름 바위를 골랐을 듯하고 면이 좋은 자리를 잡으려 했을 것같습니다. 다만 염려도 있습니다. 사실 제아무리 글자가 좋다고 해도 본인께서 각을 할 리는 없을 테니까 석수쟁이 정질에 글자 변형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위이환
모암재공께서 조성한 명문은 글씨가 특이합니다. 일반적으로 庄자를 쓸 때 가로획 다음에 삐침을 약간 떨어지는 듯하게 결구하는데, 암각 글자는 삐침을 가로획 밑에서부터 시작이 아니라 가로획 위에서 결구했습니다. 굉장히 멋스럽게 쓴 글씨체입니다. 따라서 전반적인 글씨 분위기 풍이 모암재공의 친필글씨로 여겨집니다./ 위이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