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이십 년이 지났다. 집안 여기저기서 앓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화장대 서랍 손잡이가 서랍 문을 닫으니 툭 떨어졌다. 손잡아 준다고 설렐 나이는 아니긴 하다. 세숫대야 끝부분에 금이 갔다. 자존심에 물이 새는 것은 막았지만 겉치레까지 신경 쓰기는 부대꼈나보다. 결혼하며 돈을 꽤 주고 장만한 이불은 옷감이 헤져 바늘을 찌르기에 안쓰럽다. 색 바랜 김치 통 뚜껑은 반듯하게 닫히는데 예전만큼 열심을 내지 않는다. 더 열거해 무엇 하겠나.구차한 살림살이만 드러날 뿐인 것을.
아직도 이것들을 이고지고 함께 하는 건 알뜰한 절약 정신이라 우긴다. 진공청소기에 줄이 없어진지가 꽤 되었는데 우리 집 청소기 배 안에는 똬리 튼 뱀이 여태 산다. 광고에는 낡으면 버리고 편리한 것으로 교체하라 연일 부추긴다. 익숙한 물건을 내치는 게 쉽지 않다. 사람 관계가 아닌 무생물과도 이별은 어렵다.
다시 돌아보니 무병장수를 꿈꾸며 여전히 현역으로 뛰는 짱짱한 것들이 몇 있다. 아이들 보다 나이 많은 다리미는 코드만 꽂아주면 열정적으로 주름을 펴준다. 다리미와 동창생인 쌀통은 처음 마음처럼 쌀을 품고 있다. 친정어머니가 사 준 스테인리스 바가지는 앞으로 반백년은 더 쓰지 싶다. 남편은 예복 같지 않은 걸 고른 덕에 지금도 양복으로 입는다.
그것들과 한날한시 들어온 두 사람 형편은 어떤가. 교체시기를 통증으로 알리는 치아 때문에 딱딱한 음식은 자제한다. 감춘다고 될 일이 아니라며 삐져나오는 흰머리는 야금야금 세력을 확장한다. 탄력이란 무엇인가 묻는 거울 속의 얼굴은 나조차 낯설다. 실로 윤번제로 신체 각 부분에 부지런히 탈이 난다. 흙으로 돌아갈 그 때까지 돌고 돌며 괴롭히겠지.
아이들은 과거는 없고 미래만 있는 존재라 했다. 내 아이들을 보면 이 말이 떠오른다. 그저 자라기만 한다. 물만 줘도 자라는 콩나물이 따로 없다. 게임을 하면서, 급식을 먹으면서, 사춘기를 겪으면서 그러고도 자라기까지 하니 얼마나 좋을까. 둥글게둥글게 나이테를 그려나가는 어린 사람들이 부럽다. 티 하나 없는 말간 얼굴도 샘나고 짧아진 바짓단을 원망하는 눈초리도 샘난다.
흰 머리카락을 걱정하는 에미를
보며 ‘어머니, 백발은 아름다운 면류관이라고 하잖아요.’ 곰살궂게 아이가 놀린다. 이제는 작아진 신발을 엄마한테 물려준다. 한 철 지났는데 몸에 낀다고 못 입는 옷이 많아진다. 새 옷처럼 아직도 뻣뻣한데 아깝다 못해 속이 쓰리다. 찬 밥된 아이 옷에 내 몸을 대본다. 헤져서 떨어지지 않으면 일단은 몸에 걸쳐본다.
십여 년 전 친정 부모님이 치아에 큰돈을 들여야 했다. 한 사람도 만만찮은데 두 사람이 치과에서 받은 견적은 입을 다물지 못할 금액이었다. 농담으로 아버지가 집을 팔자고 했다. 이것도 유전인지 그 집 셋째 딸인 나도 치과에 갖다 바치는 돈이 많다. 장기할부로 결재한 것도 아닌데 카드 내역에 치과 이름이 붙박이로 앉았다.
나보다 여덟 살 많은 지인이 마흔이 되던 날, 이제 불혹이니 나머지 생은 부록이라 생각하며 살아가라 농을 쳤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마흔을 먼 미래로 여겨 멀찍이 두어서다. 마흔이 될지라도, 불혹의 뜻이 그러하듯 미혹되지 않는 심장을 가지겠지 싶었다. 마흔을 지나 오십이 되기 이 년 남았다. 미혹거리는 도처에 있고 나는 시시때때로 마음이 간지럽다.
떨어진 손잡이를 주워 화장대 위에 올려둔다. ‘나도 부서질 수 있어,’외치는 것 같다. 그래, 나도 그러고 싶다. ‘나도 부서질 수 있어, 그 자리에 가만히 있지 않아.’
늘 식구들 손닿는 곳에 내가 있었다. 식구들이 배고프기 전에 밥 차려내고 기침 한 번에 병원 데려가고 오지 않는 버스 대신 아이를 데리러 가고 뱀허물마냥 벗어던진 옷들을 빨고 다림질해 다시 옷장에 넣었다. 그러고도 틈틈이 바깥일을 한다.
언젠가 앓아누웠는데 죽이 먹고 싶었다. 그런데 죽 조차 내가 해서 먹어야하는 현실과 마주했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기 위해 몸을 일으켜 죽을 쑤어야한다는 건 가혹했다. 주부라는 직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위로가 되지 않으니 그만 두시라.
나는 새로운 것에 미혹되려 애를 쓴다. 언제 도래할지 모를 미혹거리를 찾아 아예 동구 밖에서 헤맨다. 헤매고 있는 사람은 찾는 사람이다. 어서 나타나라 어서 나타나라 주문을 왼다. 시쳇말로 투잡을 꿈꾼다. 벌려놓은 일이 많아 주부는 안고 간다. 막둥이가 겨우 열다섯이니 사표를 던지는 건 아니라는 통찰력쯤은 생겼다.
내 이름 석 자를 촘촘히 박는 일을 하고 싶다. 엄마나 아내나 주부 같은 보통명사로 카테고리 된 것과 다른, 내 이름을 간판으로 내건 고유명사 카테고리를 만들 것이다. 신사임당도 율곡의 어머니로만 살았다면 우리가 이름을 기억했을까. 요즘 사람들이 흠모하는 오만원의 모델이 되었을까.
서랍 손잡이도 제 할 일 다 했다고 툭 떨어짐으로 파업을 알린다. 내가 무생물을 따라 하긴 자존심 상한다. 파업이 능사가 아님을 뉴스를 통해 보았다. 일차원적인 파업보다 고차원적인 투잡을 택한다. 나도 부서질 수 있어.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첫발을 내딛는다.
첫댓글 에나로 님, 진짜 글 맛이 좋습니다.
넘 잘 쓰십니다.
수필가로 백 번 인증합니다.
부디
좋은 글 자주 올려주십시오~~
주인장답게 너무 90도로 인사하시네요ㅎ 부끄럽습니다.
주인장님 말씀에 동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푸른문학상 <벨소리>로 유명하신 이현영 님이 이제 수필로? 멋지십니다 글이야 예전부터 잘 쓰는 줄 알았지만 글을 정말 잘도 부리십니다요
샘까정 와그라십니까. 더 부끄럽꾸로ㅎ 고맙습니다 ♡
현영님 이름 석 자가 제 머리에 촘촘히 박혔어요~🤗
마음에 훅 와닿는 글 잘 읽었습니다.
함께 부서지면서 나아가요~~~^-^
일요일 아침, 반가운 댓글이! 함께 부서져보아요^^♡
@에나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