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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 모태문화와 '3수 분화의 세계관'1
Ⅰ. 글을 시작하며
Ⅱ. '2수 분화의 세계관'과 '3수 분화의 세계관'
Ⅲ. 동북아시아 모태문화에 대한 모색
1. 한국은 중국의 패러디인가?
2. 고유 논리의 가능성
Ⅳ. 동북아시아 모태문화와 '3수 분화의 세계관'
1. 민족 비서(秘書)와 민족 종교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2. 『한서(漢書)』 「율력지(律曆志)」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3. 신라 장식보검(보물 635호)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4. 중국 천단(天壇)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5. 만주족 창세신화 『천궁대전』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Ⅴ. 글을 마치며
Ⅰ. 글을 시작하며
서양학자들 뿐만이 아니라 동양학자들도 한국 사상이나 문화를 '중국의 변방적 변용'이나 '중국의
패러디'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그렇다면 유가ㆍ불가ㆍ도가의 탈을 쓰지 않은 우리의 인식틀은 없는 것인가?
이런 점은 필자가 동양학을 공부하면서 끊임없이 질문하던 것이었고, 중국이나 일본과 구별되는 우리의
인식틀과 문화의 구성원리를 찾는 작업을 하고 있다.
많은 이들은 우리의 고유한 무엇을 찾아 들어가다가 만나게 되는 샤마니즘·무속(巫俗)에 주목하기도
하고, 또한 이론적인 틀을 찾아 나선 이들은 『천부경』이나 『삼일신고』 등 비전된 서적들에 의거
해서 삼일철학(三一哲學), 한철학, 삼신사상(三神思想) 등으로 재구성해내기도 하였다.
(김상일, 1983; 이강식, 1995; 유동식, 1983).
필자가 공부를 하면서 이상하게 느낀 점 가운데 한 가지는, 우리 문화의 구성원리나 인식틀에 대한
탐구는 제도권에서 벗어나서 흔히 말하는 재야학자들에 의해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현재 민족 종교나 재야학자들이 연구하고 있는 『한단고기』에 들어 있는 『천부경(天符經)』이나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에는 독특한 세계이해의 틀이 내재되어 있다.
물론 이런 비서들이 후대에 가필되고 조작되었을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조 3년(1459), 예종 1년(1469), 성종 즉위년(1469) 세 번에 거처
『고조선비사』, 『삼성밀기』, 『표훈천사』, 『대변설』, 『조대기』 등, 현재 전하고 있는 책들에
인용되고 있는 민족 비서를 국가에서 수거한 기록이 남아있다.2)
이를 통해서 보면 민족 비서들에 기록된 상고사나 고대사에 대한 기록이 과장되거나 가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비서들에 기록된 세계관이나 사유체계는 조선시대까지도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곧, 그것이 고려시대나 그 이전, 혹은 필사하여 현재까지 전하는 과정에서 왜곡되거나 가필되었을
지라도3), 그 안에는 우리의 고유한 사유체계와 세계 이해의 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런 비서들이 후대에 가필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 속에는 우리 나름의 사유방식과 세계이해
의 틀이 내재되어 있을 것이고, 그것은 학문적으로 다룰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글에서는 유·불·도로 분화되기 이전의 '동북아시아 모태문화'인 북방유목문화의 사유방식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북방유목문화의 사유체계와 세계관은 동북아시아의 모태문화이자, 우리 문화의 저변에서 가장 우리다운
색과 향을 만드는 '한국 전통문화의 구성원리'를 이루는 '사상적 구성요소' 가운데 하나이다
(우실하, 1998a).4)
최치원의 난랑비서(鸞郞碑序)에는 우리 나라에 '유·불·도를 모두 포함하는'(包含三敎) '현묘한 도'(玄妙
之道)가 본래부터 있었고, 이것을 '풍류라고 이르며'(曰風流) 그 근원에 대해서는 『선사(仙史)』에
자세히 전한다고 밝힌 바 있다.5)
최치원이 언급한 『선사』라는 책이 전하지 않지만, 난랑비서의 내용은 유·불·도로 분화 발전되기 이전
의 모태사상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모태사상은 신라 시대까지도 독자적으로 풍류·풍류도(風流道)·풍월도(風月道)·화랑도(花郞道)
등의 이름으로 체계화되고 다듬어져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곧, "화랑도는 결코 유불선(儒彿仙) 삼교(三敎)를 종합해서 만들어낸 어떤 종교 문화가 아니다.
이미 있었던 종교 문화가 능히 삼교를 포섭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전통적인 종교 속에는 이미
유불선 삼교의 요소가 들어있기도 했다는 뜻이다"(유동식, 1983: 85)고 보아야한다.
그렇다면 이런 사상이 갑자기 사라진 것인가? 아니면 우리 문화 어디엔가 남아있는 것인가?
이 글은 동북아시아 모태사상이자 모태문화의 뿌리를 이루는 사유체계·우주관·세계관을 살펴보고, 현재
전승되고 있는 민족 비서들·고고학적 유물·유적·북방 만주족의 창세신화 등에 남겨진 흔적들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서 이러한 사유체계들이 현재까지도 면면히 살아 숨쉬고 있음을 살펴볼 것이다.
이것은 민족 사상의 뿌리가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는가를 밝히는 작업이자, 그것을 현재화하고 재구성
하기 위한 전초작업이라 할 수 있다.
Ⅱ. '2수 분화의 세계관'과 '3수 분화의 세계관'6)
서양의 역사ㆍ문화ㆍ사상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유럽 문화의 2대 원류(原流)로 헬레니즘(Hellenism)
과 헤브라이즘(Hebraism)을 든다. 곧, 이 두 문화적 전통이 서로 경쟁ㆍ협력ㆍ투쟁하면서 서양의 역사ㆍ
문화ㆍ사상을 생산ㆍ전개ㆍ변형ㆍ발전시켜 오늘의 형태로 가꾸어 왔다는 것이다.
헤브라이즘은 아라비아 사막 인근의 고대 히브리인의 사상과 문화에 기원을 둔 것으로, 유태교와 그리
스도교의 전통을 총괄하여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헤브라이즘은 헬레니즘에 비해 '신 중심적이고', '초월적이며', '영적인 세계를 신봉하는' 성향을
지닌다.
예를 들어 "기독교의 배경이 되는 것들 중의 상당 부분, 예를 들면 창조관이나 십계명, 입법자이자 재판
관으로서의 유일하고도 초월적인 신 개념 등 『성경』의 2/3 이상을 마련해 준 사람들이 바로 히브리인
이었다."는 것이다(E. M. 번즈ㆍR. 러너ㆍS. 미첨, 1994 :84).
이에 비해서 헬레니즘은 그리스 문화에 기원을 둔 것으로 '인간 중심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합리
적'이고, '세속적'이며, '세계시민주의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
이들은 "우주 만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존재로서 인간을 찬양했으며, 사제나 전제 군주의 명령에 복종
하기를 거부했고, 심지어 자신들이 믿는 신 앞에 굴복하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그들의 태도는 본질적으로 세속적이고 합리적이었다."는 것이다(E. M. 번즈 외, 1994: 129).
그런 까닭에 이들은 신앙보다는 지식을 숭상하는 인간 중심적이고 합리적이며 현세 중심적인 문화를
만들어 왔다.
서양문화에서 이 두 전통은 서로 경쟁·협력하면서 독특한 서양의 문화·사상·문학을 생산·전개·변형시켜
왔던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문화나 사상을 논할 때에도 - 5000년 이상의 문화사나 사상사를 이해하고 정리할 수
있는 - 이런 상대적으로 차별적이고 대립적인 전통이 있다. 두 문화적 전통이란,
(1) 북방 수렵문화의 전통인 '신 중심적이고 초월적인' '3수 분화의 세계관'과,
(2) 남방 농경문화의 전통인 '인간 중심적이고 현세적인' '2수 분화의 세계관'이다.
동북아시아에서 '2수 분화의 세계관'은, B.C. 5000년경을 기점으로 북상한 농경문화에 수 천년 동안
적응하면서 형성된 세계관이다.
그러므로 '2수 분화의 세계관'이 정리된 『주역』에는 '3수 분화의 세계관'과 '2수 분화의 세계관'이
공존하면서, '2수 분화의 세계관'이 '3수 분화의 세계관'을 통제 종속시키는 형태이다.
이런 의미에서 필자는 이 글에서 '3수 분화의 세계관'을 동북아시아의 모태사상 혹은 모태문화의 뿌리
라고 부르고자 한다.
'3수 분화의 세계관'은 없음(0)에서 하나(1)가 나오고, 하나에서 셋(3)으로 분화되고, 셋이 각각 셋
으로 분화되어 아홉(9)이 생겨난다.
이러한 인식틀에서 3은 변화의 계기수가 되고 9는 변화의 완성수가 되며, 9의 자기복제수인 81(9×9=81)
은 우주적 완성수를 의미한다. '
2수 분화의 세계관'은 역(易)에서 보듯이 하나(1:太極)에서 둘(2:陰陽) 넷(4:四象) 여덟(8:八卦)으로
계속 둘로 나뉘어지며, 8의 자기복제수인 64괘로 세상사를 설명한다.
북방 샤마니즘의 전통에 기반한 '3수 분화의 세계관'은 이후에 다른 여러 요인들과 습합(習合)되면서
삼재론(三才論), 삼신사상(三神思想), 신선사상(神仙思想), 풍류도(風流徒), 도가사상(道家思想) 등으로
전개되며, 불교가 전래되었을 때 쉽게되어 중국과 한국의 독특한 불교를 만들어낸다.
이런 전통은 언제나 '초월적이고, 탈세간적이며, 영적 세계를 중시하는' 특성을 지닌다.
한편 '2수 분화의 세계관'은 다른 요인들과 습합되면서, 음양론(陰陽論), 역사상(易思想), 선진유학
(先秦儒學), 성리학(性理學) 등으로 전개된다.
이런 전통은 언제나 '현세적이고, 합리적이며, 인간 중심적인' 특성을 지닌다.
'3수 분화의 세계관'이 한자 문화권에서 정리되는 것이 천지인 삼재론ㆍ삼신사상이고, '2수 분화의
세계관'이 정리된 것이 역사상ㆍ음양론이다.
이런 '3수 분화의 세계관'에 터한 삼재론과 '2수 분화의 세계관'에 터한 음양론/역사상이 춘추 전국시대의
혼란기를 거치면서 발해만 인근 비주문화(非周文化)·변방해안문화(邊方海岸文化) 지역에서 습합되고
완성되는 것이 음양오행론(陰陽五行論)이다.
공자(孔子) 이래의 유학(儒學)의 전통은 "귀신을 공경하지만 멀리하라(敬鬼神而遠之)"(『논어』, 제6,
옹야 20)는 공자의 가르침에 따라, 초월적이고 영적인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부차적인 것으로 만든다.
결국 동북아시아의 문화사는 '현세적이고 인간 중심적인' 유가(儒家)와, 상대적으로 '초월적이고 탈세간
적인' 신교(神敎)/무교(巫敎)ㆍ도교(道家)7)ㆍ불교(佛敎) 전통의 대립과 갈등을 통해서 전개된다.
한반도의 초기 역사시대에 북방 수렵목축문화의 '3수 분화의 세계관'은 주로 백두대간의 동쪽을 통
해서 지속적으로 한반도로 전파되어 영향을 미치고, 남방 농경문화의 '2수 분화의 세계관'은 중원에서
압록강의 거처 백두대간의 서쪽으로 전파된다.
그런 까닭에 백두대간 서쪽의 고구려·백제의 문화와 백두대간 동쪽의 신라의 문화는 매우 이질적이었다.
현재 전하고 있는 민족 상고사의 비서들을 보면, 그 사유체계나 세계인식의 틀이 모두 '3수 분화의
세계관'을 기본적인 토대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다시 언급하기로 한다.
Ⅲ. 동북아시아 모태문화에 대한 모색
1. 한국은 중국의 패러디인가?
최근 중국· 일본과는 다른 우리 민족의 '고유 논리'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 한국 인문학의 쟁점으로 떠
오르고 있다(「한겨레신문」, 1996,12.31일자).
그러나 많은 국내외의 학자들은 한국은 중국의 단순한 패러디나 변방에 불과한 것으로 보고있다.
1894년 겨울과 1897년 봄 사이에 네 차례에 걸쳐 조선을 답사하고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이란
저서를 낸 영국 왕립지리학회의 이사벨라 버드 비수(Isabella Bird Bishop: 1831-1904)이 한국을
'중국의 패러디'라고 명명한 이래로 많은 동·서양의 학자들은 한국을 중국의 변방으로서 취급하고 있다.
비수은 아래와 같이 지적하고 있다.
한국의 왕은 그의 종주국인 중국의 황제에게 보내는 글 속에서, "예교(禮敎)로 교육받은 저희 백성들은 모두 공자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습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말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 아주 정확한 열쇠가 된다. 정부·법률·교육·예절·사회적 관계·도덕에서 중국의 영향은 압도적이다. 이 모든 측면에서 한국은 막강한 이웃 나라의 미약한 반영에 지니지 않는다. (.......) 한국의 문학·교육 체계·조상 숭배·문화·사유 양식은 매우 중국적이다. (......) 중국의 패러디인 이곳에 서양 문명의 효모가 발효되기 시작한 것이다(이사벨라 버드 비수, 1994: 29-30)
이러한 시각은 비솨만이 아니라 우리에게 잘 알려진 라이샤워(Edwin O. Reischauer)와 페어뱅크(John
K. Fairbank)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의 저서인 『동양문화사』는 제10장을 '한국의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한국 문화에 대해서 할애하고
있는데, 그 부제가 '중국 문화의 일변형(一變形)'으로 되어있다.
이들은 "일본이 문화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고, 한국은 그 위대한 인국(隣國)인 중국과 문화적
으로 더욱더 상사(相似)하다는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는 일이 없다"고 강조한다(라이샤워ㆍ
페어뱅크, 1984: 506)
박동환은 서양 철학이 동일률·모순률·배중률의 논리학에 기초하고 있다면, 중국 철학은 "서로 모순
되는 사태가 서로를 이루어 준다"는 "상반상성(相反相成)"의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고 구별하면서 중국
철학사의 논리와 다르지 않은 우리 나라는 고유한 "철학사가 없는 민족"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한겨레신문」, 1996, 12, 31일자).
곧, "동아시아 세계에서 중국이 중심에 강자로 군림해 있어서 약자인 주변국들은 그들 자신의 독자적
문화 사상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없었다"는 것이다(박동환, 1993: 220)
박동환에 의하면, 이러한 '중심유도의 논리' 때문에 한국인들은 "자신의 특수 주변적 처지를 뚜렷이
반영하는 독자적 문화와 사상을 오늘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박동환, 1993: 222-223).
그러나 이러한 지적과는 달리, 우리 나라가 중국·일본과는 다른 문화적 독자성을 분명하게 지니고
있다는 사실 역시 부정하기 어렵다.
정재서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흡인력을 가진 문화권과 이웃한 다른 민족들이 모두 동화했음에도 한국이
의식주와 언어·문화에서 독자성을 유지해 왔다는 것은 우리에게 무언가 고유한 논리가 있다는 예증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한겨레 신문」, 1996, 12, 31일자).
그는, "한대(漢代)이후에야 비로소 중국 문명은 '중국적'이라는 자기 동일성을 갖게 된다"(정재서, 1996:
189)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8)
이 시기가 바로 '영적 세계'에 대한 관심을 주변적인 것으로 만든 공자 이래의 '음양오행화된 유교'가
주류의 사상으로 완성되고 중국 문화 정신의 주류를 2수 분화에 입각한 논의로 정립하는 시기인 것이다.
2. 고유 논리의 가능성
한국의 고유한 논리의 가능성은 '3수 분화의 세계관'에서 찾아질 수 있다고 본다.
최종적으로 삼태극으로 상징되는 '3수 분화의 세계관'은 '하나를 잡아서 셋을 포함하고, 셋을 모아 하나
로 돌아간다'( 執一含三 會三歸一)는 것과, '셋에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체(體)로 삼고, 하나에서 셋
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용(用)으로 삼는다'(三一其體 一三其用)는 자신의 고유한 논리를 지니고 있다.
이제까지 '3수 분화의 세계관'에 터한 삼태극/삼신사상의 원리는 주로 재야학자들에 의해서 다루어지
고 있을 뿐, 제도권 안에서는 관심을 보이고 있지 않다.
동양철학을 전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유교·도교·불교 철학을 전공하고 있을 뿐, 삼신사상의 뿌리를
조명하고 이론적으로 다듬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
'3수 분화의 세계관'을 체계화하고 있는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등이 비록 후대에 쓰여진 위서
라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한국인들의 사유체계와 세계를 이해하는 인식틀이 내재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전들은 제도권밖에 버려져 있다.
이런 까닭에 학문적으로 입증되지 않고 다듬어지지 않은 해석들이 난무하고, 자신이 속한 단체의 이해
관계에 따라 '신비한 우주의 비밀을 담은 비서'처럼 취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또다시 제도권의 비판과 무관심 불러오게 되고, 이런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기존의 관심 세계에 집중된 동양 철학계의 또 다른 '중심유도의 논리'에 기인하는 것
이라고 본다.
이제 이런 논의들이 제도권 안에서 학문적으로 조명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다면, 푸닥거리나 하는 왜곡된 현재의 무속 신앙을 가장 '한국적인 것'이라고 착각하거나,
언제까지나 중국의 아류에 머무는 '중국의 패러디'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한국 사회에서의 지식인들에게는
(1) 이제까지 서구의 잣대로 우리의 사유 체계나 세계관을 '미신'(?)으로 부당하게 낙인찍어 왔던 서구
중심적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9)을 해체하고,
(2) 또한 '중국 중심의 동양관'과 '제도권 중심의 동양철학관'이라는 틀에서도 벗어나야 하는 이중적인
짐이 짊어져 있다.
서구중심적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 우리의 유형·무형의 모든 문화 산물들은 해독되지
않는 '문화의 수수께끼'에 머물 수밖에 없을 것이고, 중국 중심의 또 다른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한국 문화나 사상은 언제까지나 중국의 변방에 머룰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두 가지의 굴레들이 해체되지 않는다면 '서양 문화의 비판적 수용과 전통 문화의 창조적 계승'이
라는 구호는 여전히 공허한 말장난에 머물 것이다.
Ⅳ. 동북아시아 모태문화와 '3수 분화의 세계관'
그렇다면 '중국의 패러디', '중국의 일변방적 변용'을 벗어날 수 있는 사상의 근거를 어디에서부터 찾
을 수 있는가? 이런 사상적 틀이 단지 위서 논쟁이 일고 있는 비서(秘書)들에만 담겨있는 것인가?
만일 이런 사상적 틀이 동북아시아 모태문화의 인식틀이자 우리 민족의 고유한 논리적 틀이라면 이런
인식틀에 의한 유물이나 유적들이 있어야할 것이 아닌가?
『천부경』이나 『삼일신고』 등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에 입각한 우주론과 세계이해가 단지
위서(僞書) 논쟁이 일고 있는 비서들에서만 보이는 것이라면, 이런 서적들을 위서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먼저 민족 비서나 종교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를
살펴보고, 비서이외의 서적·유물·만주족의 창세신화 등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을 살펴볼 것이다.
1. 민족 비서와 민족 종교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현재 각종 민족 종교와 사상 분야에서 중요한 경전으로 취급되고 있는 『천부경』(天符經)·『삼일
신고』(三一神誥) 등에서는 1을 체(體)로 삼고 3을 용(用)으로 하는 '3수 분화의 세계관'을 가장 핵심
적인 사상의 토대로 삼고 있다.
『천부경』은 "하나는 시작됨이 없는 하나에서 시작되며, 그 하나는 셋으로 나뉘어도 근본은 다함이
없다."(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는 것에서 시작되며, 정확하게 우주적 완성수인 81자(9×9=81)로
형성되어 있다.
또한 천지인을 각각 1(天)·2(地)·3(人)에 배당하여 삼극(三極)으로 삼고 모든 수의 중심으로 삼고 있다
(『태백일사(太白逸史)』, 「소도경전본훈(蘇塗經典本訓)ㆍ천부경」 ; 임승국 역주, 1986: 233).10)
곧, 3수 분화의 세계관의 수상 전개의 특징( 0-1-3-9-81)을 가장 간단한 81자의 문장 속에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자료 1> 『천부경』 81자
一 始 無 始 一 析 三 極 無
盡 本 天 一 一 地 一 二 人
一 三 一 積 十 鉅 無 化
三 天 二 三 地 二 三 人 二
三 大 三 合 六 生 七 八 九
運 三 四 成 環 五 七 一 妙
衍 萬 往 萬 來 用 變 不 動
本 本 心 本 太 陽 昻 明 人
中 天 地 一 一 終 無 終 一.
*자료: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천부경」
『삼일신고』에서도 없음(無)에서 일기(一氣)가 나와서 삼극(三極)으로 나뉘고, 이것이 곧 삼신(三神)
이니 삼신은 바로 천일(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의 신이라고 보고 있다(『태백일사』, 「소도경전
본훈ㆍ삼일신고」; 임승국 역주, 1986: 230).
실제로 태극이 셋으로 나뉘는 것은, 태극이 음양으로 나뉘는 '2수 분화의 세계관'에 입각한 기존의
논의와는 전혀 다르다.
『삼일신고』에서는 원(圓)은 1로서 무극(無極)이고, 방(方)은 2로서 반극(反極)이며, 각(角)은 3으
로서 태극(太極)이라고 하여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으며, 태극은 그 안에 3기(三氣)를 함유하고 있을 때
태극일 수 있다.11)
그러므로 이런 '3수 분화의 세계관'에서 태극은 음양으로 나뉘어지는 것이 아니라, 3기(三氣)로 나뉘어
지는 것이다.
태극을 음양 2기가 분화되기 이전의 상태로 보는 것과 달리, 태극을 3기를 함유한 것으로 보는 시각은
한(漢)나라 시절에도 분명하게 남아있었다.12)
이것이 바로 "하나는 시작됨이 없는 하나에서 시작되며, 그 하나는 셋으로 나뉘어도 근본은 다함이 없다."
(一始無始一 析三極無盡本)는 『천부경』의 본 뜻인 것이다.
또한 『삼일신고』에서는 '하나는 곧 셋과 같고 (나뉘어진) 셋은 곧 하나이다'(卽一卽三 卽三卽一)는
논리를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고 있고, 하나이면서 셋인 삼위일체의 신관을 삼일신(三一神)이라고 부른다(『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삼일신고」; 임승국 역주, 1986: 237-240). 이러한 『삼일신고』의
사상을 요약하고 있는 것이 아래의 부분이다.
삼일신고는 (.....중략....), 대저 하나를 잡아 셋을 포함하고(執一含三) 셋을 모아 하나로 돌아옴(會三歸一)의 뜻으로 근본을 삼는다. (...하략....).13)
여기에서 보이는, "하나를 잡으면 셋을 포함하고, 셋이 모이면 하나로 돌아간다"( 執一含三 會三歸一)는
것과, "셋에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을 체(體)로 삼고, 하나에서 셋으로 나뉘어지는 것을 용(用)으로 삼는다"
(三一其體 一三其用)는 사상은(『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삼일신고」; 임승국 역주: 1986, 230),
『천부경』이나 『삼일신고』등 소위 민족 종교의 경전에서는 공통되는 기본 사상이다.
이러한 사상의 추상적 상징이 삼태극(三太極)이다.14)
대부분의 민족 종교에서도 '삼신 사상'(三神思想)에 입각한 교리 체계를 지니고 있어, 위의 『천부경』
이나 『삼일신고』의 논리를 계승하고 있다. 보기를 들어 증산도의 경전인 『도전』(道典)의 첫머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태시(太始)에 하늘과 땅이 '문득' 열리니라. 홀연히 열린 우주의 대광명 가운데 삼신이 계시니, 삼신(三神)은 곧 일신(一神)이요 우주의 조화신이니라. 삼신께서 천지만물을 낳으시니라. 이 삼신과 하나 되어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통치자 하느님을 동방의 땅에 살아온 조선의 백성들은 아득한 예로부터 삼신상제(三神上帝), 삼신하느님, 상제님이라 불러 오니라(『道典』, 제1편 1장 1절-4절).
강증산으로부터 파생된 대순진리회나 미륵불교, 태을교, 보화교, 원불교 등 수많은 민족 종교들이
모두 이러한 틀을 공유하고 있다.15)
이런 '3수 분화의 세계관'에 터한 삼일철학은 음양(陰陽), 이기(異氣), 성정(性情), 심신(心身) 등의 2분
법과는 전혀 다른 인식틀이다.
『태백일사』 「소도경전본훈 제5」에 보이는 『삼일신고』는 5장으로 전체가 366자로 구성되어
있는데(제1장 虛空, 제2장 一神, 제3장 天宮, 제4장 世界, 제5장 人物), 제5장 '인물'편에서는 삼일철학
이 인성론에서 수양론에 이르기까지 체계화되어 있다.
사람(人)과 만물(物)이 한가지로 삼진(三眞)을 받았으나, 생각하면 중생들은 땅에서 헤메어 삼망(三妄)이 뿌리를 내렸고, 진(眞)과 망(妄)이 대(對)하여 삼도(三途)를 지었다.
(三眞이란) 성(性)·명(命)·정(精)을 말한다. 사람은 온전히 다 지니고 있지만 만물은 치우쳐있다.(人全之物偏之) 참된 성은 선하고 악이 없어 큰 철학자는 이를 통하고(眞性善無惡上哲通), 참된 명은 맑고 탁함이 없어 중간급의 철학자들이 알고(眞命淸無濁中哲知), 참된 정은 두텁고 박함이 없어 하급의 철학자들이 이를 보전하니(眞精厚無薄下哲保) 참된 것으로 돌이키면 일신이다(反眞一神).
(三妄이란) 심(心)·기(氣)·신(身)을 말한다. 심(心)은 성(性)에 의지해서 선악이 있으니 선은 복이 되고 악은 화가 된다(心依性有善惡善福惡禍). 기(氣)는 명(命)에 의지해서 청탁이 있으니 맑으면 오래 살고 탁하면 요절하다(氣依命有淸濁淸壽濁夭). 신(身)은 정(精)에 의지해서 후박이 있으니 두터우면 귀하고 엷으면 천하다(身依精有厚薄厚貴薄賤).
(三途란) 감(感)·식(息)·촉(觸)을 말하는데 변하여 18 경지를 이룬다(曰感息觸轉成十八境) 감(感)에는 기쁨·두려움·슬픔·성냄·탐냄·싫어함이 있고(感喜懼哀怒貪厭), 식(息)에는 향기로운 것·문드러진 것·찬 것·더운 것·진동하는 것·젖은 것이 있고(息芬爛寒熱震濕), 촉(觸)에는 소리·색·냄새·맛·음탕함·부딪힘이 있다(觸聲色臭美淫抵).
중생들은 선악·청탁·후박이 서로 섞여서 가닥길(境途)을 따라 함부로 달아나다가, 낳고 성장하고 늙고 병들어 죽는 괴로움에 떨어진다(衆善惡淸濁厚薄相雜 從境途任走 墮生長肖病歿苦). (그러나) 철학자는 느낌을 그치고(止感) 숨을 고르게 조절하며(調息) 접촉을 금하여(禁觸) 한 뜻으로 행하여 3망을 3진으로 고치고 나아가 큰 조화를 부리니 참 본성에 통달하고 공적을 다 닦음이 곧 이것이다(哲止感調息禁觸一意化行改妄卽眞 發大神機 性通功完是).16)
위의 인용문에서도 "執一含三 會三歸一"과 "三一其體 一三其用"의 논리가 근간을 이루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전승되어 있는 '고기(古記)'의 내용을 보면, 우주론, 인성론, 신화구조 등 모든 것이 이런 논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제1」에서는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
의 「삼신설(三神說)」을 인용한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이 있다.
『고려팔관기(高麗八觀記)』 「삼신설(三神說)」에 이르기를, "상계(上界)의 주신(主神)은 그 호를 천일(天一)이라 하나니, 조화(造化)를 주관하시며 절대지고의 권능을 갖고 계신다. 무형으로써 형으로 삼으며(無形而形), 만물로 하여금 각기 그 성(性)을 통하게 하니, 이를 청진대(淸眞大: 맑고 참된 것 가운데 가장 큰 것 - 필자)의 체(體)라고 한다. 하계(下界)의 주신(主神)은 그 호를 지일(地一)이라 한다. 교화(敎化)를 주관하며 지선유일(至善唯一)의 법력이 있어 하는 바 없이 만들고(無爲而作), 만물로 하여금 각기 그 명(命)을 알게 하니, 이를 성선대(善聖大: 착하고 성스러운 것 가운데 가장 큰 것 - 필자)의 체(體)라고 한다. 중계(中界)의 주신(主神)은 그 호를 태일(太一)이라 한다. 치화(治化)를 주관하며 최고무상(最高無上)의 덕량(德量)을 가지고 말없으면서 교화하고(無言而化) 만물로 하여금 각기 그 정(精)을 보전하게 하니, 이를 미능대(美能大: 아름답고 능력있는 것 가운데 가장 큰 것 - 필자)의 체(體)라고 한다.
그러나 주체(主體)는 곧 하나인 상제(上帝)이고 각각 신이 있는 것이 아니니, 작용(作用)이 곧 삼신(三神)이다. 그러므로 한인씨(桓因氏)는 한 번 변화하여 7이 되며, 두 번 변화하여 6이 되는 운을 받아 아버지의 도(父道)를 사용하여 천하에 쏟으니 천하가 이에 교화(敎化)된다. 신시씨(神市氏: 桓雄-필자)는 천일생수(天一生水)와 지이생화(地二生火)의 자리를 계승하고 스승의 도(師道)를 사용하여 천하를 인솔하니, 천하가 이에서 배운다. 왕검씨(王儉氏)는 지름이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길이인 3.14의 기(機)를 받아 왕의 도(王道)를 사용하여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이에 따른다고 한다."17)
위의 인용문을 보면 앞서 이야기한 3수 분화의 논리가, (1) 삼신의 개념, (2) 천지인 삼재론과 천일
(天一)·지일(地一)·태일(太一)의 논리, (3) 조화(造化)·교화(敎化)·치화(治化)의 논리, (4) 성(性)·명(命)·
정(精)의 논리, (5) 심(心)·기(氣)·신(身)의 논리, (6) 부도(父道)·사도(師道)·왕도(王道)의 논리 등과도
치밀하게 연결되어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점은 많은 부분 도교의 논리와 이어져 있지만, 도교는 동북아 모태사상으로서의 삼신사상이,
중국에서 불교와 접하면서 새롭게 탄생한 '중국적으로 변형된 후대의 사상'일 뿐이다.
우리의 전통 사상에서는 이미 이런 삼신사상의 논리들을 우리의 신화와 연결시킨 독자적인 세계관을
완성했던 것이다.
우리에게 전승되어온 '고기(古記)18)에는 이 글에서 언급하지 않은 많은 논리들이 '3수분화의 세계관'
위에서 명료하게 정리되어있다.
이런 서적들이 고려시대 혹은 그 이전에 민족의식을 고취하기 위해서 구전되는 이야기를 새롭게 꾸며낸
것이라고 해도, 그 속에는 우리 민족의 독특한 사고방식이나 세계이해의 틀이 내재해있다는 점은 부정
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 이들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새로운 문화철학을 만들어 내는 일이 우리들에게 남겨진 과제인 것이다.
2. 『한서』 「율력지」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태극이 둘(=陰陽)이 아니라 셋으로 나뉜다는 '3수 분화의 세계관'에 입각한 태극관은 『한서』
「율력지」에서도 보인다. 먼저 『한서』 「율력지」 '제1 상(上)'에서는 12율려의 기본이 되는
'황종의 수(黃鐘之數)'를 설명하면서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다.
황종의 수(黃鐘之數)가 일어나는 근본은, 1에서 시작되어 3이 되고, 3이 3번 쌓이고, 이렇게 하여 12진(辰: 12지지의 총칭 - 필자)의 수(數)는 177,147이 된다( 『漢書』, 第 四 冊, 1992: 956)19)
곧 동양 음악의 기본이 되는 12율려(6律과 6呂)에 배당되는 수는 1에서 계속 3을 곱한 수가 된다.
그러므로 12지지(자, 축, 인, 묘, 진, 사, 오, 미, 신, 유, 술, 해)에 배당되는 수는 1에서 177,147까지 이며,
이것을 수식으로 표현해보면 자(子)에서 해(亥)까지 각각 이 된다.
이러한 점은
(1) 황종율관(黃鐘律管)이 왜 9분척(九分尺)을 쓰며,
(2) 그 황종율관의 ⅓을 더하고 빼면서 12율관의 길이를 정하는 3분 손익법(三分損益法)의 사상적
배경이 무엇이며,
(3) 우리 음악의 3분박의 사상적 배경이 무엇이며,
(4) 삼태극의 도형과 이런 수상 전개의 연관성이 무엇인지를 푸는 열쇠가 된다.20)
아래에 인용한 『한서』 「율력지」에 나오는 내용에 대한 맹강(孟康)의 주(註)는, 태극을 음양으로
나누는 것과는 달리 셋으로 나누어 보는 삼태극의 논리가 한나라 시대에도 분명하게 있었음을 밝히는
중요한 기록이다.
맹강이 이르기를 "황종은 자(子:12지지의 처음 - 필자)의 율(律)이다(黃鐘, 子之律也). 자(子)의 수는 1이다(子數一). 태극원기는 셋을 함유하고 있으면서 하나인 것이다(泰極元氣含三爲一也). 이것이 1수가 변하여 셋이 된다는 것이다(是而一數變而爲三也)( 『漢書』, 第 四 冊, 1992: 957).21)
태극(泰極)은 태극(太極)과 같은 말이다. 위의 맹강의 주는, 태극은 셋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셋이라는 삼일철학(三一哲學)과 삼태극의 논리가 한대(漢代)까지도 하나의 사상적 줄기로 살아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앞서 살펴본 12율에 배당된 각각의 수들이, 태극원기(太極元氣) 혹은 태극
일기(太極一氣)가 삼기(三氣)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3을 곱한 수 곧 으로 표현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결국 동양음악의 사상적 뿌리도 '3수 분화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사상적 바탕이 정리된 것이 앞서 살펴본 『천부경』, 『삼일신고』 등 민족 비서에 보이는 '삼이일,
일이삼(三而一 一而三)'의 사유체계라고 볼 수 있다.22)
3. 신라 장식보검(보물 635호)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3수 분화의 세계관'에 보이는 수상 전개의 특징(1-3-9-81)을 명확하게 도상화하고 있는 것이, 신라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14호분에서 출토된 장식보검(보물 635호)이다.
이 장식보검은 5-6세기경의 신라 미추왕릉지구 고분에서 발견된 것이다.23)
이 장식보검을 보면
(1) 하나의 원이 3개의 파문으로 나뉘어진 삼태극은 하나에서 셋으로 분화되는 '3수 분화의 세계관'을
상징하고 있고,
(2) 3개의 삼태극이 방향을 달리하여 회전하면서(시계 반대 방향 시계 방향 시계 반대 방향) 3수의
3변(三變: 3×3=9)을 상징하고 있고,
(3) 3개의 삼태극 안에는 고대 태양신의 상징인 삼족오(三足烏)의 변형문이 각각의 삼태극이 회전하는
방향으로 함께 돌면서 3마리의 태양조 혹은 삼족오가 각기 3변(三變)하여 완성수 9수를 이루고 있으며,
(4) 3개의 삼태극 전체를 감싸고 있는 직사각형의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는 금알갱이 혹은 금립(金粒)은
삼태극의 상하좌우에 정확하게 9개씩 장식되어 72개(9×8=72)가 되는데,
(5) 이 72개의 금립은 3개의 삼태극이 이루는 9수와 합쳐서 우주적 완성수인 81수(9×9=81)를 이루고
있다(우실하, 1998a: 229).
이 장식보검은 고대 북방 유목민족들의 태양숭배사상·'3수 분화의 세계관'·샤마니즘의 조령(鳥靈)
숭배사상 등이 모두 집약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를 통해서 보면 『천부경』이나 『삼일신고』에 보
이는 논리가 단지 민족 비서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5-6세기의 고고학적 유물에도 그 상징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삼일철학(三一哲學)을 체계화하고 있는 『삼일신고』와 『천부경』 등은, 고구려와 발해를 통해서 전래
된 것이라고 하는 김상일의 논증(김상일, 1992: 186-188)은 더 많은 고고학적 유물과 기록의 발굴을
기다려야하겠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라고 보인다.
결국 신라시대 장식보검에 보이는 수상의 전개는 『천부경』의 논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료 2> 신라 미추왕릉 지구 계림로 14호분 출토 장식보검(보물 635호).
*자료; 『국립경주박물관』, 1995: 133.
<자료 3> 신라 장식보검(보물 635호)에 보이는 삼태극 문양의 수상(數象) 전개..
*자료; 우실하, 1998a: 236,〈도표 6-13〉.
4. 중국 천단(天壇)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필자는 천단을 직접 둘러보면서, '이것이 만주족이 세운 것이라면 북방민족의 모태문화의 수상(數象)
이 어디엔가 드러나 있을 것이다.'는 생각으로 자세히 살펴보았다.24)
중심 건물인 기년전(祈年殿)25)도 모두 1-3-9의 수상 전개를 보이지만, 중심적인 제사터인 환구( 丘:
Circural Mound)는 앞서 살펴본 장식보검과 같이 『천부경』의 수리(數理) 구조를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환구는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으로 1530년(明 嘉靖 9年)에 처음 세워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천단의 모습은, 북방 만주족인 청나라가 명나라를 치고 1749년(靑 乾隆 14年)에
기존의 터에 새롭게 그들의 세계관을 담아 확장하여 세운 것이다.
곧, 현재의 대리석으로 꾸며진 천단은 청나라를 세운 만주족에 의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것으로 만주족
의 세계관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보면 된다.
천제단은
(1) 천원지방(天圓地方)에 따라 사각형의 담장으로 둘러싸여 있고,
(2) 사각형의 담장에는 동서남북 4방으로 4개의 출입구가 각각 3개의 문으로 구성되어 있고,
(3) 사각형의 중심에는 하나의 큰 원으로 구성된 담장 안에 3단으로 구성된 환구가 있으며, (
4) 3단의 환구를 둘러싸고 있는 원형 담장에는 동서남북 4방에 출입구가 있는데 이것도 각각 3개의 문
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5) 3단의 환구도 동서남북 4방에서 오르는 각각 4개의 계단이 있는데 모두 9계단씩 3단으로 되어있으며, (6) 3단으로 된 환구의 맨 윗 단 한 가운데에는 대리석으로 된 직경 약 80cm 정도의 천심석(天心石)이
약간 볼록하게 나와있고,
(7) 천심석을 중심으로 대리석 판이 9겹으로 원을 그리며 배치되어 있는데,
(8) 천심석을 중심으로 9겹으로 배열된 대리석 판은 첫째 바뀌는 9개로 하나의 원을 그리고 둘째 바퀴는
18개(9×2=19), 셋째 바퀴는 27개(9×3=27)로 이어져 마지막 아홉째 바퀴는 정확하게 81개(9×9=81)로
구성되어있다. 또한
(9) 나머지 아래의 두 단도 9겹의 대리석으로 돌려져있는데, 모두 9의 배수로 이루어져있으며,
(10) 동서남북에 계단이 있어서 4등분된 3단의 원에 설치된 각각 4개의 난간들도 모두 한쪽이 9칸(9×1
=9, 맨 윗단)·18칸(9×2=18, 중간)·27칸(9×3=27, 맨 아래)씩 나뉘어있다.26)
곧, (1) 천제단인 환구는 철저하게 1-3-9-81수의 상징으로 구성되어있고, (2) 이것은 동북방 만주족들의
우주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자, (3) 『천부경』의 논리를 건축물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27)
<자료 4> 천단(天壇)의 전체적 모습 (북쪽의 3층 건물이 기년전, 남쪽이 환구)
자료: 『天壇』, 1994. 약 100여 쪽의 『天壇』에는 쪽수 표시가 없다.
<자료 5> 환구( 丘: Circural Mound )의 모습
자료: 『天壇』, 1994.
<자료 6> 환구의 한가운데 천심석(天心石).
주: 『천단』에는 천심석에 대한 상세한 사진이 없다. 위의 사진은 필자가 찍은 것으로 천심석에 앉은 이는 필자이다.
5. 만주족 창세신화 『천궁대전』에 보이는 '3수 분화의 세계관'
앞에서 만주족들의 천제단에 드러난 '3수 분화의 세계관'을 살펴보았다.
그렇다면 이런 세계관이 필자의 자의적인 해석인지 만주족의 신화구조를 들여다보자.
최근 만주족의 창세신화인 『천궁대전(天宮大戰)』이 최초로 국내에 번역 소개되었다.28)
『천궁대전』은 중국학자 부육광(富育光)이 지은 『살만교여신화(薩滿敎與神話)』29)에 실려있는 것을
번역한 것이다. 『천궁대전』은 한문으로 옮긴 것이고 본래 만주어로는 『우처구우러본』인데 이는
'조상신들의 이야기'라는 의미라고 한다(김재용·이종수, 1999: 344). 이 만주족의 창세신화도 그 기본
적인 구조가 3신과 '3수 분화의 세계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천궁대전』에 보이는 창세 과정은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인 삼일신(三一神)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구조이다. 곧
(1) 하늘과 땅이 나뉘지 않은 물거품이었을 때 그 물거품에서 최초의 '하늘의 여신'인 아부커허허(阿布
赫赫)이 탄생하고 그녀는 물거품이 있는 곳에는 어디에나 있게 되었고 나중에 크게 변하여 하늘이 되며
빛으로 만물을 만들어 내며,
(2) 청탁이 갈라져 맑은 것은 상승하고 흐린 것은 하강하였는데 아부카허허의 하반신이 찢어지면서
'땅의 여신'인 바나무허허(巴那姆赫赫)가 탄생하고,
(3) 다시 아부카허허의 상반신이 찢어지면서 '별자리 신' 와러두허허(臥勒多赫赫)가 탄생한다(김재용
외, 1999: 346-347).
이들 세 여신은 '하나이면서 셋이고, 셋이면서 하나'인 삼일신(三一神)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삼일신의 성격을 보여주는 곳을 보면 아래와 같다.
하부카허허·바나무허허·와러두허허는 같은 몸 한 뿌리로서 함께 현현하였고, 함께 존재하며 함께 잉태하였다. 아부카허허는 공기에서 구름과 우뢰를 만들고, 바나무허허는 피부에서 골짜기와 샘물을 만들고, 와러두허허는 아부카허허의 눈에서 해와 달과 작은 북두칠성을 만들어내었다. 이 세 신은 영생영육하며 대천세계를 양육하였다(김재용 외, 1999: 347).
이러한 점은 앞서 살펴본 『천부경』과 『삼일신고』 등에 보이는 삼일철학·삼일신과 같은 세계관의
다른 변형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서 보이는 여성 삼신은 우리들의 민속에 보이는 '아이를 점지해준
다는 삼신(三神)할머니 혹은 산신(産神)할머니'의 원형 혹은 변형인지도 모를 일이다.
삼일신의 구조 이외에도 『천궁대전』의 내용에서 중요한 상징들은 모두 9수로 나타난다. 곧,
(1) 전체가 9 모링(장에 해당 - 필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30)
(2) 9 가지 뿔의 신록(神鹿)·9 머리의 오친여신·9 머리 악마신 예루리·예루리의 9개의 머리가 변해서된
9개의 별·새를 보내 물어온 구문석(九紋石)·동쪽하늘의 9가지 달린 신수(神樹)·9층 하늘·하늘다리를
지나는 9 갈래의 길·9 돌산·9 버드나무 숲·9 시냇물·9 들질슴 뼈를 엮어 만든 전포(戰袍)·쿤저러라고
부르는 9 색깔 신조(神鳥)·9 색깔 신기한 빛·9 색깔 전포(戰袍)·9 머리 악한 새·북쪽 사람들이 살았다는
9 계단의 깊은 집 등 대부분의 중요한 상징들이 9로 이루어져있다.
이 밖에도 새를 매개로 죽은 이의 영혼을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샤만들의 세계관등 많은 부분들이
우리의 샤마니즘의 세계관과 중복된다. 이를 통해서 보면 '3수 분화의 세계관'은 북방민족들이 공유하고
있던 동북아시아의 모태문화이자, 우리의 사상적 뿌리라는 점을 알 수 있다.
Ⅴ. 글을 마치며
새로운 천년을 맞이하는 현 시점에서 민족 상고사·전통 사유체계와 사상·전통문화 등에 대한 전반
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그리고 이제까지 재야학자들에 의해서 부분적으로 다루어지고 있는 민족
상고사에 대한 전승 기록들이 제도 학문 안에서 엄밀하게 연구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런 기록들이 후대에 가필되거나 조작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을 통해서 보면,
(1) 이런 민족 비서들은 엄연히 존재하던 책들이고,
(2) 전승되는 과정에서 과장되거나 가필되었다고 하더라도 그 비서들에 기록된 세계관이나 사유체계는
조선시대까지도 면면히 흐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여러 민족 종교에서는 지금도 이런 사유체계와 우주관을 전제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비서들에 보이는 사유체계와 세계관이 단지 위서 논쟁이 일고 있는 비서들에 기록
되어 있을 뿐만이 아니라, 고고 유물이나 유적 그리고 만주족의 창세신화 등에도 보인다는 점을 밝혀본
것이다.
시기를 앞선 유물이나 유적 그리고 북방 만주족의 창세신화의 구조에서도 거의 똑같은 사유체계가 보인
다는 것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남겨진 비서들이 역사적 사실(史實)에 대해서 가필이 되었을 가능
성은 있으나, 그 저변에 흐르는 동북아시아 모태문화로서의 동북방의 사유체계와 세계관을 그대로 지니
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필자는
(1) 최치원이 밝힌 유·불·도 삼교를 포함하는 풍류도는 유·불·도 삼교로 나누어지기 이전의 모태사상이
라고 볼 수 있으며,
(2)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 없었던 풍류도의 기본적인 사유체계·세계관·우주관은 이러한 '3수 분화의
세계관'을 토대로 하였을 것이라고 본다.
물론 이런 견해를, 단순한 문헌적 고찰을 넘어서서 고고 유물을 통해 실증하고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은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맞이하는 지금 새로운 문화철학을 정립하기 위한 우리 모두의 과제이기도
하다.
특히 민속 자료·문헌 연구·어원 연구 등에 집중된 현재의 모습에서,
(1) 중국과 소련이 개방되면서 물밀 듯이 쏟아지는 고고 유물들을 적극적으로 연구 해독하고,
(2) 최근 축적된 고고학의 성과물들을 연계하면 『천부경』이나 『삼일신고』에서 보이는 동북아시아
모태사상의 단서들을 실증하고 구체화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우리가 고대사와 고대 사상을 연구하는 이유는 단지 고대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고대
사상으로부터 미래사회의 비전을 이끌어내는데 있다. 그러나 그 '고대로부터의 빛'은 준비하는 자에게만
그 서광이 보일 뿐이다.
21세기 문화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하며, 어떤 문화철학을 만들어갈 것인지는 우리들 모두에게 짊어진
짐이다. (끝)
------------ 1999.12.18 一竹 禹實夏 ----------
<참고 문헌>
孔子, 『論語』, 1989, 대전: 학민문화사(영인본).
金富軾 編, 『三國史記』, 고전연구실 편, 1958,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과학원.
班固, 『漢書』, 顔師古(注), 1992, 北京: 中華書局(7刷).
조선왕조실록CD-ROM간행위원회 편, 1999, 『CD-ROM 조선왕조실록』, 서울: 서울시스템,
(개정판).
증산도도전편찬위원회 편, 1992, 『도전(道典)』, 서울:대원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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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일, 1983, 『한철학』, 서울: 전망사.
-----, 1992, "대종교사상사", 『한국종교사상사 Ⅳ:증산교, 대종교, 무교 편』, 서울: 연세대출 판부, 119-219쪽.
김재용·이종수, 1999, 『왜 우리 신화인가: 동북아 신화의 뿌리 「천궁대전」과 우리 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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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환, 1993, 『동양의 논리는 어디에 있는가』, 서울:고려원.
우실하, 1997a, 『오리엔탈리즘의 해체와 우리 문화 바로 읽기』, 서울: 소나무.
-----, 1997b, "한국 전통문화의 구성원리에 대한 연구 - 초기 형성과정을 중심으로," 서울:
연세대 사회학과 박사학위논문, 전통문화의 구성원리 부분을 보완하여 아래의 책으로 간행.
-----, 1998a, 『전통문화의 구성원리』, 서울: 소나무.
-----, 1998b, "한국 전통미학의 구성을 위한 시론", 『한국음악사학보』 제20집(창간 10주년 기념 특집호),
서울: 한국음악사학회, 253-270.
-----, 1999, "상고사 사료에 대하여," 민족정신회복시민운동연합 집담회 발표문, 1999.7.7,
철학카페 느티나무,(미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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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식, 1995, 『한국 고대 조직 사상사 : 천지인 삼신사상의 조직론적 해석』, 서울: 아세아문화사.
임승국 역주, 1986, 『한단고기(桓檀古記)』, 서울:정신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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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M. 번즈ㆍR. 러너ㆍS. 미첨, 1994, 『서양문명의 역사 Ⅰ』, 박상익 옮김, 서울: 소나무.
원제는 E. M. BurnsㆍR. LernerㆍS. Meacham, 1984, Western Civilization, New York: W.W. Nort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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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버드 비수, 1994,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 이인화 옮김, 서울:살림.
원제는 Isabella Bird Bishop, 1898, Korea and Her Neighbours, London: St. James Gazette.
이 책은 같은 해에 뉴욕에서도 출판되었고, 1985년 Routledge and Kegan Paul에서도 출판 되었다.
라이샤워ㆍ페어뱅크, 1984, 『동양문화사』, 전해종ㆍ고병익 옮김, 서울: 을유문화사.
원제는 Edwin O. ReischauerㆍJohn K. Fairbank, 1960, East Asia The Great Tradition, Harvard Univ.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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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실하(사회학박사, 연세대, 홍익대, 성공회대, 항공대 강사)
(연구실: 334-6250, 홈페이지: www.gaonnur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