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 천보산 기슭에는
다 허물어져가는 무덤이 한기 있다.
의순공주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한편으로는 공주의 족두리가 묻혔다 하여
족두리 묘라 불리운다.
의순 공주의 본명은 이애숙,
효종과 10촌지간인 왕실 제사 담당관 이개윤(금림군)의 딸로
1650년 효종의 양녀가 되어 의순이란 공주작위를 받고
청나라 섭정왕 구왕(도르곤)과 정략적 혼인하였는데
의순은 '대의에 순순히 따랐다'는 뜻이다.
토요일 오후 지인의 공사중인 건물을 들려본 김에
의정부 천보산 아래 족두리묘를 찾아 보았다.
(공사중 건물 옥상)
(도봉산과)
(흥복산이 잘 보인다.)
(건물 지척에 을지대 병원과 캠퍼스가 있다.)
비가 오기시작하는데
병원 옆 캠퍼스로 들어가다 저지 당하고
그옆 기숙사 뒤에서 천보산 들머리를 찾아 보다
결국은 되돌아 나와 양지마을로 올라간다.
(양지마을 뒤 지능선 마루금)
산에는 벌써 하얀색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노린재 나무)
일단 천보산에 입산하였는데
족두리묘의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
핸폰으로 탐방기를 찾아보니
소림사 입구 사진이 나온다.
소림사에 가서 물어볼까 하여
소풍길을 따라 소림사쪽으로 진행..
(소풍길의 약수터들..)
드디어 소림사에 올라갔으나..
주지 스님은 출타중..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난감..
우중이지만 우산을 쓰고
이번에는 공을 들여 인터넷 검색으로
족두리묘 주소지를 찾는다.
'의정부 금오동 산 45-21'
의정부 캠퍼스 바로 옆이네..
우선 천보산 정상을 들려보고
(소림사 뒤 너럭바위서의 전망)
(비는 계속 내린다.)
(불곡산)
지난주에만 해도 허옇던 병꽃이
비 때문에 전망은 별로이지만
(팥배나무)
이제 서둘러 하산하여 족두리묘로 간다.
(돌아다 본 천보산)
인타넷서 보았던 소림사 간판이 보이지만
소림사 쪽으로 가면 안되고
입구에서 서쪽 힐링타운 아파트 뒤로 가면
허물어져 가는 묘가 한기 나온다.
바로 족두리묘이다.
(족두리 묘)
비석도 없이 허물어져 가는 묘와는 달리
번듯한 안내판이 옆에 서있고..
홀로 구석에 있는 족두리묘와는 달리
서쪽에 있는 금림군 가족묘지는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의순공주의 아버지,금림군 이개윤 묘)
공주는 오랑캐 구왕과 결혼한 후
자살하지도 않고 욕되게 7개월이나 (잘)살다가
구왕이 죽자 그의 동생에게 재가하였고(청나라 관습)
재가한지 2년만에 다시 과부가 되었는데도
수치스런 몸으로 멀쩡히 귀국하였으니..
죽지도 않고 수절도 안한 화냥년..
공주를 데리고 귀국했다는 죄로 아버지 금림군은
삭탈 관작 당했다가 이후 복귀하는 수모를 겪었으며,
의순공주 또한 공주 직위를 잃고
귀국후 6년만에 스물 아홉 나이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어린 나이에 조선 왕실의 안위를 위해
오랑캐 나라로 억지로 시집을 갔어도
살아 돌아온 것이 죄가 되는 나라..
유교가 근본이라는 양반과 사대부의 나라...
하지만 염치 없던 위선자 씹선비들의 나라.. 조선.
의정부 문화원의 안내판을 자세히 살펴본다.
"의순 공주는 압록강을 건너기 전,
차라리 죽는 편이 낫겠다 생각하여
강물에 몸을 던졌고
시신은 찾지 못하고 족두리만 건져와
선영의 아버지 묘 밑에 장사를 지내
이곳을 '족두리 산소'라 부르고 있다...
(생략)
...실록과 차이나는 것은
아마도 의순공주가 족두리를 벗어주었고
그것을 묘에 묻고 명복을 빌었다..라고 추측 한다"
하지만 귀국후의 일을 돌이켜 보면 다 헛소리..
열려비 세우듯 의순 공주의 자진을 바래며
정신승리로 만든 묘 같아 보인다.
내로남불의 대가..
위대한 유교 대학자로
효종의 스승이였던 송시열이
조정을 좌지우지 하던 시절의 일이다.
묘 관리도 엉망인데..
실제 묘안에는 족두리만 있을까?
공주의 시신도 묻혀 있을까?
왕족의 처녀에서 공주로
그리고 청나라 황족의 정부인에서
귀국하여 화냥년이 된 의순 공주..
짧지만 파란만장한 그를 추모하며
후에 정주당터와 의순초교도 찾아봐야 겠다.
2021.05.01 토요일.오후에 비옴.
첫댓글 저도 4월초에 녹양역에서 소림사를 거쳐 천보산 정상을 보았지요.
정상 바로 아래에 있어서 소림사 전망도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