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의 정권 연장 기도가 비점으로 치닫던 1987년 4월 한국 경제학계는 ‘중대 사건’을 맞는다. 주류 경제학 일색이던 당시 상황에서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모여 연구 모임을 출범시킨 것이다. 한국사회경제학회(한사경)은 그렇게 닻을 올렸다.
한사경이 설 수 있는 바탕은 ‘자본주의’ 한국 사회의 변화였다. 점증하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 등 경제 개발의 심각한 후유증은 새로운 학문 틀을 필요로 했다. 주류 이론이 바람직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해 한계를 드러낼 무렵, 1970~80년대에 생산된 한 무리의 젊은 학자들은 정치경제학의 복권을 요구했다. 종속이론의 실험이 실패로 끝난 뒤인 1989년께 한사경은 명실상부한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본산으로 자리 잡았다. 대학 전임강사급 정회원만 100명이 넘고 석사 과정 이상의 준회원까지로 범위를 늘려 잡으면 참가 학자는 250명을 헤아렸다. 진보적 경제학자로 잘 알려진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나 2015년 작고한 김수행 성공회대 석좌교수, 정일용 한국외대 명예교수 등이 이 단체의 중심을 이뤘다.
학회의 존재는 곧 정치경제학의 공식화를 의미했다. 한두 사람의 개별적, 산발적 학습을 원론, 한국 자본주의 등 6개 연구 분과로 묶어 ‘규모의 경제’ 효과를 거둔 것도 주목할 만했다. 여기서 얻은 성과는 1년 중 네 차례의 발표회 두 차례의 학술대회를 통해 알렸다. 외부 학자나 대중과 나눌 만한 결과물은 학술지 <사회경제평론>에 실었고, 정치경제학의 교과서로 쓰이는 <경제학개론>(비봉출판사/1992)과 <한국경제론 강의>(한울/1994) 등도 펴냈다. 그 이전까지는 마르크스의 <자본>을 비롯한 원론 연구에 치중했던 게 사실이다. 이후 원전들을 읽고 해석하는 작업을 통해 현실 적응력을 키워온 것이었다.
학회는 창립 10주년을 맞은 1997년 사단법인으로 전환했다. 이후로도 학회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면서 한국 경제의 발전과 경제민주화에 기여할 이론의 개발과 도입에 힘썼다. 한국 경제의 현실을 보다 밀도 있게 분석하는 작업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사회경제평론>은 2013년부터 연 3회 발간을 시작했다.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인 한, 우리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발전하는 한, 정치경제학의 쓸모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