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건 신부의 친필 서한을 판독하고 / 최승룡
작년 봄 정진석 주교님으로부터 최양업 신부님의 육필 라틴어 편지를 판독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미 기초 자료도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작업을 시작하였는데, 그 후 한국교회사연구소의 최석우 신부님으로부터 다시 부탁을 받고 김대건 신부님의 편지까지 떠맡아 일 년여를 이 일에 매달리게 되었다. 잘 보이지 않는 곳, 뒷면이 배어 나와 겹쳐진 곳, 복사를 잘못해서 반쯤 잘려나간 단어들 등등 마치 글자 맞추어 찾아내기하듯 더듬어가며 별것 아닌 글자 하나를 알아내는 데 서너 달 걸린 것도 있으니 대단한 인내와 고행길이었다. 어떤 때는 새벽 두세 시까지 흐릿한 복사본에 확대경을 들이대고 씨름하기도 하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대건 성인과 최양업 신부님의 성덕에 감복되었다기보다는 그분들과의 라틴어 문장에 완전히 매료되었기 때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완전한 라틴어 실력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 점, 한 획이라도 완전히 복원하고 싶은 욕심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하였다.
중국어는 중국 사람으로 오인될 만큼 잘하셨고, 프랑스어는 에리곤호 함장 세실 제독의 통역을 맡을 만큼 능통하셨으니, 당시로서는 가히 국보적 존재였을 텐데 아깝기 그지없다. 변변한 사전도 없이 그 어려운 라틴어 배우랴, 프랑스어 배우랴, 중국어 배우랴 얼마나 힘드셨을까? 김대건 신부님이 쓰신 편지 중에 나오는 항해에 라틴어 단어들을 열거하면, 그분의 풍부한 어휘 구사 능력을 추측할 수 있을 것이다.
큰 배, 전함, 나룻배, 종선, 항구, 해안, 바다, 대양, 갯벌, 돛, 돛대, 돛을 달다, 돛을 접다, 닻, 닻을 내리다, 키, 키잡이, 선장, 선원, 순풍, 역풍, 북풍, 폭풍, 파도, 산더미 같은 파도, 난파, 깃발 신호, 침몰, 상륙, 정박, 예인, 수리, 해적 발포….
김대건 신부님은 이런 풍부한 단어들을 구슬 엮듯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만드셨는데, 신부님이 쓰신 가장 긴 문장은 115단어로 구성되어 있다.(최양업 신부님의 문장은 156단어로 더 길고 더 화려하다.) 그 한 문장은 동사만 15개가 있는 복합문으로서, 감탄문, 이유문, 분사문 2, 결과문, 사격 부정법문 5, 자립분사문, 목적문, 조건문, 현재 비현실 조건문, 동명사문 등을 문법에 조금도 어긋남이 없이 운까지 맞추어 엮어 놓으셨으니 놀라울 뿐이다. 그 외에도 문법에 나오는 관계문, 양보문, 간접 의문문, 간략문, 일격 부정법문 등 모든 복합문을 시제에 맞추어 접속법 현재, 반과거, 전과거, 대과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셨다. 완벽한 철자, 불규칙 변화, 변칙, 불구, 탈형, 비인칭 동사, 생략법 등 모든 면에서 능통하셨다.
김대건 신부님이 쓰신 100여 쪽의 편지, 교회사, 치명록에서 틀린 곳이 열 개도 안 된다면 아무도 믿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틀린 것, 빠진 것까지 그대로 써놓고 참고 삼아 ‘원문에 있는 그대로’(sic)라고 표기해 놓았다.
이런 우리 교회의 국보급 문화재가 단편적으로 알려졌지만, 그 전문은 1938년에 라틴어 서한만 용산신학교 교재용으로 발간되었다. 그러나 그 교재용 서한을 기초로 하여 육필 서류를 판독한 결과 틀리거나 빠진 단어가 1,050개, 줄 전체가 빠진 곳이 여러 군데 합쳐 33줄이나 되었다. 그중에는 중요한 부분도 상당히 많이 있었다. 다행히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보존되어 있는 원본을 늦게나마 빌려 볼 수 있었으므로 완전히 판독할 수 있었으나, 지금까지 일곱 번을 보면서도 틀린 곳을 여러 군데 발견할 수 있으니 완전한 것이란 이 세상에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하겠다. 혹시 틀린 곳이 있다면 타자수의 실수를 발견 못 한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 전문가들의 과학적 연구를 통하여 규명되겠지만, 절두산 순교 기념관에 보관된 김대건 신부님의 서간과 저술이 상당 부분은 진품이라 생각된다. 이에 대해 후배들의 더 깊은 연구 분석을 기대하며, 파리 외방전교회 고문서고에 있는 최양업 신부님의 서간, 치명록 원본도 하루빨리 기증을 받도록 눈가가 힘을 써야 할 것이다.
이 귀중한 보물들을 지금까지 완벽하게 보존하다가 우리에게 물려준 파리외방전교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며, 만약 이 보물들이 우리 손에 있었더라면 이미 옛날에 분실되어 지금쯤 볼 수조차 없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베르뇌 신부님, 메스트르 신부님, 리브와 신부님, 르그레즈와 신부님 안녕히 계십시오. 오래지 않아 천국의 영원하신 성부님 대전에서 모두 다시 뵙기를 바랍니다.
내 가장 사랑하는 형제 토마스, 잘 있게. 우리 천당에서 다시 만나세. 내 우르술라 어머님을 특별히 부탁하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감옥에 갇힌 나는 그분의 권능에 나 자신을 의탁하며 천주께서 나로 하여금 악형 중에 용감히 항구하도록 붙들어 주시기를 바란다네.”
치명 전 감옥에서 한지에 붓으로 쓴 확실한 친필 서한 중 마지막 부분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동성중학교 교장
최승룡 테오필로 신부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서한> / 한국교회사연구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