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12. 29. 주일예배설교
어여쁜 비둘기 같은 성도(아가 1:15)
지난주에 살펴본 것처럼 아가는 ‘고귀한 사랑의 노래’이다. 본서에는 이러한 신랑(솔로몬)과 신부(술람미)의 사랑의 고백이 너무나도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사실 신랑과 신부의 사랑 고백은 부부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만든다. 하나님이 태초에 인간을 만드셨을 때, 부부를 통하여 가정을 이루게 하시고 그 가정이 부부간의 사랑의 고백을 통하여 견고하게 세워지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고백 위에 세워진 견고한 가정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고백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 되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그 후에 아담에게서 취하신 갈빗대로 하와를 만드시고 그녀를 아담에게로 이끌어오셨다. 그때 신부 하와를 향한 신랑 아담의 가장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있었다.
창세기 2:23 “아담이 이르되 이(하와)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은 이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의 바탕 위에 견고한 가정을 이루길 원하셨고, 이 아름다운 사랑의 고백이 이제 창조주 하나님께로 고백되어져서 하나님과 사랑으로 하나되는 가정 이루기를 원하셨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담의 가정이 하나님을 향해 어떤 고백을 원하셨을까? 그것은 “하나님 당신은 나의 창조주요 왕이시고 나의 전부입니다.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고백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이러한 고백이 단지 입술만의 고백에서 삶으로의 고백이 되기를 원하셨을 것이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기대는 철저히 무너져내렸다. 하나님과 인간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고 말았다. 그 결과 인간은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어 고통을 맛보며 사는 존재가 되었다. 하지만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식지 않았다. 인간과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고 그들과 영원한 사랑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인간을 향한 놀라운 사랑을 베푸셨다. 그것은 성자 하나님이 화목제물이 되심으로 하나님과 인간의 깨어진 관계를 다시 친밀한 사랑의 관계로 회복시켜 주셨다. 성부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의 권세를 회복시켜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신부가 되게 하셨으며,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되게 하셨다. 이 얼마나 큰 은혜요 사랑인가? 찬송가 304장의 가사 내용처럼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사랑이 아닐까요? 특히 신랑이신 주님이 신부인 우리를 바라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러워하실까? 결혼한 신랑이 신부를 바라볼 때 어여쁘게 바라보는 것처럼 주님은 우리를 그렇게 바라보실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본분 아가 1:15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아가 1: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본문은 신랑 솔로몬이 신부 술람미를 향하여 한 사랑의 고백이다.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자신의 포도원지기였던 술람미 여인을 아내로 삼고 노래한 참으로 고귀한 사랑의 고백이 아닐 수 없다. 왜 그런가? 그것은 무조건적인 사랑의 고백이기 때문에 그렇다. 무슨 말인가? 신부가 아름다워서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라 사랑하니까 아름답게 보였고, 그 아름다움을 사랑으로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상상해보라. 포도원지기로 뜨거운 햇빛에 그슬리어 검게 타고 거친 용모를 가지고 있는 술람미 여인이 과연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하지만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을 조건없이 사랑하고 아내로 받아들이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녀를 향하여 최상의 사랑의 고백을 하고 있지 않은가?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참으로 감동적이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는 솔로몬의 이 고백을 단지 술람미을 향한 고백으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만왕의 왕이신 신랑이신 주님께서 보잘것없는 나, 자격이 없는 나를 신부 삼아주시고 나에게 하신 사랑의 고백으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주님은 나를 가장 어여쁘고 사랑스러운 존재로 바라보신다. 특히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을 향해 그랬듯이 주님은 나의 눈을 비둘기같이 아름답게 바라보실 것이다.
특히 아가 1:15를 통하여 우리가 묵상해볼 것이 있다. 그것은 “솔로몬이 왜 술람미 여인을 향하여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고 고백하며 특별히 그녀의 눈을 비둘기에 비유했을까?” 하는 것이다.
비둘기는 새들 가운데 평생 부부의 지조와 금술을 지키는 새로 유명하다고 한다. 비둘기가 수백 또는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자기의 둥지를 잘 찾아가는 것은 둥지에 사랑하는 짝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은 실험을 통해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술람미 여인의 눈을 비둘기에 비유한 이유는 자명하다. 그것은 아무런 자격이 없지만 주님의 엄청난 사랑을 받아 신부된 우리가 주님의 그 사랑을 망각하지 않고, 평생 그 주님만 사랑하고 믿음의 절정을 지키며 살기를 원하시는 주님의 기대 때문이 아닐까?
아무쪼록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기대에 부응하며 어여쁜 비둘기 같은 성도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한다.